과거부터 '세대론'은 자주 사용된다. 최근에는 MZ세대가 대표적이다. 1980~1994년 사이에 태어난 ‘밀레니얼 세대’와 1995년 이후에 태어난 ‘Z세대’를 통칭하는 말이다. 이전 세대와 달리 조직과 자신을 분리하고 ‘워라밸’을 지키는 세대로 규정된다.
그런 의문도 든다. 1980년대 이후에 태어난 이들 모두가 그런 성향을 가지고 있는 걸까. 더 정확히는 자신의 근무조건에 적극 문제제기를 하고, 보장된 휴식시간을 반드시 지키며 살아가고 있을까.
같은 세대 내에도 부모의 재산과 교육, 성별, 태어난 지역 등에 따라 차이가 발생하고 이는 불평등으로 확대된다. 그러나 우리는 그저 '어떤 동질성'이 같은 세대라고 치부하며 그들을 MZ로 묶어버린다. 이것이 타당한지는 의문이다. 자칫 불평등과 차별을 정당화하거나, 은폐 내지는 재생산하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프레시안>은 전수경 노동건강연대 활동가가 만난 10명의 도시 속 여성노동자의 이야기를 다룬다. 이들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MZ세대이나 그들이 우리가 생각하는 MZ세대의 삶을 살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는 도시 속 2030 여성들이 어떤 '노동'을 하고 있는지를 살펴보자. 편집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사무직 회사생활을 8년 했다. 규모가 큰 회사에서 오래 일했다. 몇 곳을 옮기면서도 '상장회사'만 골라서 다니려고 노력했다. 현장경험 없는 신입 직원 가르치기, 간부들이 부탁하는 업무들, 임원이 부탁하는 다른 기관의 회계... 케이를 필요로 하는 일은 점점 늘어나는데. 그냥 사원이었다.
대졸 신입 직원을 도와주던 어느 날, 신입 직원이 케이보다 급여가 더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 케이가 임금을 올려달라고 했을 때 회사는 3%를 올려주겠다고 했다. 케이가 일을 하는 마음은 '나랑 지내다 보면 알게 될 거야'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차별을 벗어나고 싶어 주어지는 업무마다 언제나 더 잘 하려고 했었는데, 억장이 무너졌다. 케이가 얼마나 많은 일을 하는지 아는 상무님, 부장님들이 케이의 임금이 낮은 것은 부당하다고, 말해 줄 것이라 생각했지만 해주지 않았다, '이게 뭐지, 너무한 거 아닌가' 자존심이 무너지고 우울해졌다.
케이는 회사생활을 청산했다. 인정도 없고 보상도 적은 직장생활로 우울할 때 케이가 기댄 건 강아지들이었다. 케이의 가족은 서로 보는 일이 거의 없었다. 서로 연락을 하는 것은 안 좋은 일이 있을 때뿐이었다. 케이는 언니가 키우다가 경제 사정이 어려워져서 데려온 늙은 개 두 마리와 살았다. 개를 돌보는 일이 케이를 지탱시켰다. 강아지 돌보는 일을 두 번째 직업으로 삼기로 한 것은 필연 같은 것이었다.
반려견 훈련사 이론 공부를 1년 정도 하고 현장 일자리를 찾아 나간다는 계획이었다. 유기견센터, 동물권운동 단체 등에서 하는 교육프로그램도 있고, 반려견 관련 사업을 하는 사업자들이 하는 교육과정도 있었다. 민간단체에서 운영하는 반려견 관련 교육과정을 이수하면 자격증을 받을 수 있었다. 자격증을 받으면 애견훈련소나 강아지유치원에 취업을 할 때 유리하다.
막상 교육을 마치고 일을 할 수 있는 현장을 찾는데 갈 곳이 마땅치 않았다. 훈련소나 유치원에서 일하는 교사들은 20대가 많았다. 케이 나이 서른, 경력도 없고 나이는 이미 많은 편이었다. 반려견을 전문적으로 교육하는 일은 현장에서 반려견과 쌓는 경험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우선 버티고 살아남아야겠다, 일이 생기면 무조건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처음 일한 강아지유치원은 영세한 규모였다. 쉬는 시간, 점심시간 구분이 없었다. 주말근무, 야간근무가 수시로 있었다. 퇴근 시간이 정해져 있지만 제 시간에 퇴근하기가 어려웠다. 퇴근 전에 원장이 이야기를 시작하면 한 시간 두 시간을 들어야 했다. 애견사업 이야기도 있고 집안일 이야기도 있다. 원장이 '여기 앉아봐' 해서 앉으면 '정말 앉네?' 하는 사람이었다. 1년을 다니고 나왔다.
두 번째로 간 곳은 원장이 강아지유치원 두 개를 운영했다. 오전 8시에 유치원에 나가서 오후 8시까지 근무하고 임금은 180만 원에 인센티브가 있는 조건이었다, 오후 8시에는 밤늦게 하원하는 강아지들을 돌보는 나이트 근무자가 왔다. 낮 시간 교사는 케이까지 2명이 있어야 하는데 한 사람이 곧 그만두었다. 혼자 남은 케이는 피폐해지지만 멈출 수 없는 노동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된다. 8년의 회사 생활이 몸에 새겨놓은 성실성, 먼저 찾아서 하는 부지런한 마음이 한 사람 빠진 자리를 채웠다.
아침 8시에 강아지유치원에 도착한 케이는 등원하는 강아지들을 맞을 준비를 한다. 보호자들이 강아지를 데리고 유치원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아늑하고 청결해야 한다. 등하원 차를 운영하는 곳도 있지만 그런 곳은 아주 고가의 유치원이다. 차로 오는 강아지도 있지만 걸어서 등원하는 강아지가 더 많다. 걸어서 온 강아지들은 목이 마르기 때문에 오자마자 먹을 물과 대소변판을 함께 준비한다.
케이는 컴퓨터를 켜서 엑셀 시트를 보면서 유치원을 예약한 강아지들을 확인한다. 강아지마다 등원, 식사, 간식, 하원 시간이 다르다. 하루 일곱 마리에서 열 마리의 강아지를 받는데, 보통 일곱 마리를 넘지 않는 선에서 예약을 받았다. 등원한 강아지를 보면서 컨디션을 확인하고, 다쳐서 온 데는 없는지 체크한다, 유치원에서 다친 것으로 오인될 수도 있기 때문에 보호자와 함께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모든 강아지가 등원하고 보호자들이 가고 나면 강아지유치원의 하루가 시작된다.
오자마자 흥분해서 노는 강아지들이 있다. 어지럽힌 것을 정리하고 아침밥을 준비한다. 휴대폰을 세워 동영상 촬영 모드로 해 놓고 아침밥을 먹인다. 네 밥 내 밥 다 먹으려는 강아지들이 있다. 식사교육이 필요한 강아지들은 식사 훈련을 시킨다. 아침 식사가 끝나면 휴대폰 동영상을 갈라서 각 보호자들에게 보낸다. 강아지를 유치원에 보내고 일터로 출근한 보호자들은 아침 식사 소식을 기다렸을 것이다. 보호자들이 반갑게 답장을 해 온다.
'우리 OO이 밥이 모자라 보여요' '우리 ㅁㅁ이 밥을 남겼네요?'
교사의 답장은 빠른 것이 좋다.
'배가 고팠나 봐요' '어제 집에서 컨디션이 안 좋았나요?'
유치원의 CCTV를 보호자들과 공유하면서 상시적으로 확인하도록 해 놓은 유치원도 있고, 케이가 일하는 유치원처럼 교사가 동영상을 보내고 보호자기 바로 피드백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곳도 있다, 식사시간이 끝나면 밥을 치운다. 밥을 먹고 기분이 좋아 뛰어다니는 강아지들을 진정시킨다. 진정하지 않으면 친구 강아지에게 시비 걸고 싸움이 일어날 수도 있다.
정리하고 휴식 후에 일대일 공부를 할 시간이다. 가르치는 것은 다 다르다. 개인기 공부를 하는 강아지도 있고 크게 바라지 않는 보호자도 있다. 개인기는 간단하고 귀여운 걸로 가르친다. 다른 강아지 간식을 빼앗아 먹는 습관을 고치고 싶은 보호자도 있다. 간식을 올바르게 받아먹는 방법을 가르친다. 개인공부를 10분씩 하니까 한 시간 이상이 걸린다. 점심을 먹는 강아지들은 점심을 준다. 조금 잠잠해진다.
휴식 후 오후 1시부터 산책 시간이다. 강아지에게 산책은 중요한 시간이다. 보호자들이 가장 기다리는 시간이기도 하다. 산책을 하면서는 보행교육을 한다. 풀이 있는 곳에서는 '노즈워크(nose work)'를 할 수 있게 가르친다. '노즈워크'는 좋아하는 간식이나 장난감을 숨긴 후 후각으로 찾도록 하는 교육 프로그램이다. 강아지의 지능, 기억력이 높아지고 사회성도 좋아지는, 중요한 교육이다.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면 오후 3시가 된다. 유치원으로 돌아와 발을 씻기고 양말을 신긴다. 산책하면서 찍은 동영상을 강아지마다 갈라서 보호자에게 보내준다. 강아지들의 미션 자랑이 예쁘다.
'우리 OO이 너무 신나 하네요' '우리 ㅁㅁ이 오늘은 선생님 말을 잘 듣네요'
보호자들의 피드백이 온다. 산책 동영상을 보면서 보호자들이 행복해 한다. 영상은 강아지유치원 인스타그램에도 올린다. 강아지유치원 교사를 채용할 때 사진을 잘 찍는 사람, 편집을 잘 하는 사람을 우대한다는 채용공고가 나기도 한다.
오후 프로그램이 다시 시작된다. 간식을 먹어야 하는 강아지는 간식을 준다. 간식에 따라서 알레르기가 있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사전에 보호자와 확인한다. 오후에는 낮잠 시간이 있다. 강아지들이 쉬거나 자는 동안 물을 갈아주고 대소변판을 갈고, 어지럽혀진 놀이공간 청소를 한다. 강아지유치원의 청소는 강도가 세다. 자고 있는 강아지들을 안전문 너머로 살피면서 케이는 각 강아지의 운동량, 식사습관, 특이사항 등을 엑셀에 기록하고 일지를 쓴다. 오후 6시에서 7시 사이 강아지들이 하원한다. 하원지도까지 마치고 나면 다시 유치원 바닥을 닦고, 그릇정리, 간식 재고, 배변판 모래 재고를 확인한다. 원장에게는 카톡으로 일일보고를 한다. 주중에 강아지를 유치원에 보낸 보호자들은 강아지 상태에 예민할 수밖에 없다. 주말이 지나면 클레임이 올 수 있어서 주말에는 CCTV를 보면서 점검한다.
케이는 출근 첫날 유치원 바닥을 닦다가 넘어졌었다. 바닥이 미끄러웠다. 무릎이 꺾이고 넘어졌지만 닦을 곳은 너무 많았다. 병원에 갈 수는 없었다, 넘어졌던 무릎이 아프기 시작했다. 한 사람이 그만 둔 후 원장은 채용공고를 안 낸 것은 아닌데 적극적으로 구하지도 않았다. 병원에 갈 시간을 낼 수가 없었다. 강아지들만 두고 유치원을 비우는 일은 가능하지 않다. 오후 8시에 오는 나이트 근무자가 일찍 올 수 있는 날을 기다려 동네 병원에 갔더니 '무릎 연골판이 뜯어진 것 같다'면서 2차 병원에 가야 한다는 소견을 써 주었다. 그렇게 2차 병원에 가니 '무릎 수술을 바로 해야 한다'는 진단이 나왔다.
그 진단을 원장에게 알리자 원장은 '수술을 미룰 수 없는지', '수술을 하더라도 바로 나올 수 있는지' 물었다. 못 나오면 다른 사람을 구하겠다고 했다. 케이는 위기감을 느꼈다. 산재 보상금도 받아야 하고 약속한 인센티브도 받아야 하는데 여기서 포기하면 받기가 어려워진다. 무릎 수술을 하고는 며칠 쉬지 못하고 바로 출근을 했다.
강아지유치원에서의 근무시간, 케이도 밥을 먹어야 하고 화장실에 가야 하니 어떻게든 틈을 봐서 했었다. 무릎이 아프기 시작하면서는 강아지들에게 필요한 것을 다 해주고 나면 유치원 바닥에 누워서 쉬었다.
자녀들을 돌봐야 한다면서 나이트 근무자까지 그만 두면서 밤 11시에 하원하는 강아지까지 보게 되었다. 케이가 버틴 마지막 3주였다. 원장에게 연락을 했다. 원장은 연락을 받지 않는다. 원장은 인력이나 인센티브 문제로 케이가 연락을 하면 늘 피했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케이는 유치원의 강아지 등원 예약 창을 닫고 원장을 만나러 갔다.
'예약을 안 받으면 어떡하냐?'
원장의 첫 마디였다. 근로계약서를 요구했지만 안 써준 것, 인센티브를 약속한 금액보다 적게 준 것, 초과근무수당을 안 준 것, 사람을 구하지 않은 것을 따졌지만 반응이 없다. 원장은 무릎 부상에 대해 산재를 해 달라는 요구도 거절했다. 강아지유치원 교사들은 최저임금(이나 그보다 낮은 임금)을 주는 대신 유치원 매출이 올라가면 인센티브를 주겠다고 하는 경우가 많다. 강아지를 잘 보는 곳으로 소문이 나고 매출이 올라가면 급여도 올려준다는 것이다. 교사에게 책임이 돌아간다. 열 마리의 강아지를 지도하는 교사는 ‘우리 아이에게서 눈을 떼지 말아 달라’는 열 명의 보호자를 만난다. 세심한 서비스를 할수록 입학문의가 많아질 것이다. 강아지유치원 창업자의 소신도 진심일 것이다. 강아지들에 대한 애정, 책임감이 케이를 그만두지 못하게 했다. 얼마나 더 해야 인센티브의 조건이 되는 것이었을까.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반려동물 시장규모가 2015년 1조9000억 원에서 2021년은 3조4000억 원으로 성장했다고 밝힌다. 2021년 국민은행이 펴낸 '한국반려동물보고서'는 전국 604만 가구, 1500만여 명이 반려동물을 키운다고 밝히고 있다. 이 가운데 80%는 반려견이다. 농림축산식품부가 2020년 펴낸 자료를 보면 반려동물 관련 업체는 2만여 곳, 종사자수는 2만5000여 명이라고 한다, 케이와 같은 강아지유치원 교사가 포함된 수일까.
반려동물 산업의 홍보물은 행복과 건강, 평생직업, 좋아하는 일, 여유로운 삶 같은 말이 유독 많다. 강아지유치원 블로그에 올라온 강아지 사진들을 보고 있자니 왜 '심쿵주의!'라고 붙여 놓았는지 알겠다. 창업컨설팅업체의 홍보 글들을 보니 강아지유치원은 유망한 창업아이템이다. 반려견 훈련을 배워서 취업하려 하는 이들의 정보 교환도 활발하다. 반려동물을 사랑해서 시작한 일이니까, 힘들어도 버틸 수 있다고들 한다, 애견미용사, 애견훈련사, 강아지유치원 교사, 펫베이커리, 반려동물장례코디네이터, 반려동물매개심리치료사…. 반려동물의 일생을 케어하는 반려동물 산업계 전반이 성장하고 있다. 애견 미용을 하다 강아지에게 손을 물려서 응급실로 실려간 애견 미용사의 이야기는 애견 미용사 자신도 알려지길 원하지 않는다.
2023년 4월 6일, 케이에게 연락을 했다. 케이가 무릎을 다친 것은 2022년 5월이다. 수술을 한 후 물리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한 번에 7~8만 원이 든다. 일주일에 2~3회를 받으라고 하지만 1회만 갔다. 무릎은 더 악화되었다. 오래 쉬지는 못했을 것이다. 가족의 도움이 없는 서른 살 여성이 넘어졌다고, 무릎을 다쳤다고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건설회사 사무직 직원이라는 첫 번째 직업이 케이를 멈추지 않는 기계처럼 소모시켰다면 강아지유치원 교사는 케이가 경력을 쌓아서 인정받고 싶은, 10년, 20년 하고 싶은 일이었다.
그러나 희망을 품게 했던 애견훈련사의 꿈은 중단되었다. 의사의 말로는 60세의 무릎이 되었다. '혼이 다 털린 것'처럼 정신적으로 고갈된 것은 어쩌지 못하지만 무릎 수술은 산재를 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산재보험을 신청하려고 준비하면서 케이는 자신이 노동자로 고용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았다. 근로계약서를 써주지 않은 것까지는 업계에서 흔한 일이니까 크게 걱정을 안 했다. 그러나 근로복지공단은 프리랜서가 아니었다는 것부터 증명하라고 '근로자지위확인서' 서류를 내밀었다. 원장은 케이가 내민 '근로자지위확인서'에 사인을 하지 않으려 피해 다녔다.
케이는 지난 해 겨울의 상황에서 반걸음 정도를 벗어나 있었고 더 큰 시련이 떠넘겨지려는 중이었다. 반걸음은 프리랜서가 아니라 노동자였다는 것을 확인을 받았다는 것이다. 무릎을 치료하기 위해서 산재를 신청했다. 산재는 인정되지 않았다. 근로복지공단은 케이의 상태를 '퇴행성'이라고 했다. '퇴행성', 그러니까 노화로 기능이 상했다는 것인데, 케이가 무릎을 다친 32살, 백번 양보해서 '퇴행성'이라고 하자, 산재가 왜 아닌가. 케이는 다시 산재신청을 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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