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유지 외교'로 미·중 사이 줄타기? 차이잉원, 미국서 매카시 회동

외신 '대만·미, 중 자극 피하려 신중 행보' 분석…중 외교·국방 등 일제히 강력 규탄

차이잉원 대만 총통이 남미 순방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미국에 들러 케빈 매카시 미 하원의장을 만났다. 백악관은 이번 만남이 "경유"에 불과하다며 비공식적 성격을 강조했지만 중국은 크게 반발했다. 이번 만남에서 대만과 미국 모두 중국을 의식해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로이터> 통신을 보면 매카시 의장은 5일(현지시각) 오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인근 시미밸리에 위치한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도서관에서 차이 총통과 회담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지금 우리의 유대감은 내 생애 어느 때보다 강하다"며 대만에 대한 강한 지지를 표명했다. 

그는 회담에서 대만으로의 무기 배송 속도를 높이는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고 밝히고 "대만에 대한 무기 판매를 지속하고 그러한 판매가 적시에 대만에 도달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매카시 의장은 "대만인과 미국인 사이 우정은 자유 세계에 매우 중요한 문제"라며 무역과 기술 분야를 비롯해 대만과의 경제 협력도 증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차이 총통은 회견에서 "우리가 온 힘을 다 해 세운 민주주의와 평화가 전례 없는 도전에 직면했다"며 지지를 호소했다. 그는 참석한 미 의원들의 "흔들림 없는 지지"에 감사를 표하며 이는 "대만인들에게 우리가 혼자가 아니고 고립돼 있지 않다는 것을 다시 확인해 준다"고 말했다.

차이 총통은 지난달 29일부터 9박 10일 일정으로 중미 수교국인 과테말라와 벨리즈를 순방한 뒤 귀국길에 캘리포니아에 들러 매카시 의장을 만났다. 지난해 낸시 펠로시 당시 미 하원의장이 대만을 방문한 데 이어 1년 새 대만 총통과 미 하원의장과의 만남이 두 번이나 이뤄졌다.

이날 매카시 의장은 현재 대만에 방문할 계획을 갖고 있지 않지만 이것이 향후 방문하지 않겠다는 의미는 아니며 "중국은 내가 어디에 가고 누구와 대화를 나눌지, 누구와 친구가 되고 누구와 적이 될지 말할 위치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카린 장 피에르 백악관 대변인은 5일 언론 브리핑에서 차이 총통의 미국 방문이 "경유"라고 강조하며 방문의 비공식적 성격을 강조했지만 중국의 반발을 막진 못했다. 

중국 외교부는 6일 오전 대변인 명의 성명을 내 미국의 "경유" 주장은 포장일 뿐이며 이번 회동은 "공식 접촉"이고 "하나의 중국 원칙에 대한 중대한 위반"이라고 비난했다. 외교부는 성명에서 이번 만남을 "강력히 규탄"하며 미국에 "대만과 모든 형태의 공식 교류를 즉시 멈추고 실질적인 관계 향상 또한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중국 국방부 대변인도 6일 "대만 당국 지도자의 어떤 형태로의 미국 방문에도 단호히 반대한다"며 "중국 인민해방군은 책임과 사명을 준수하고 높은 수준의 경계 태세를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 의회격인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외사위원회와 공산당 중앙 대만판공실도 일제히 성명을 내 이번 방문을 규탄했다.

중국은 대만 인근에서 항공모함을 동원한 무력시위도 벌였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6일 대만 국방부는 중국군 항모 산둥함이 대만 동부 해안에서 370km 떨어진 지점에 머물고 있다고 밝혔다. 국방부는 전날 산둥함 전단이 대만과 필리핀 사이 바시 해협을 통과한 뒤 대만 남동부 해역을 통과해 서태평양에서 훈련을 벌였다고 밝힌 바 있다.

외신은 이번 방문에서 미국과 대만 양쪽이 중국을 자극하지 않으려 신중한 행보를 보였다고 평가했다. 차이 총통은 5일 캘리포니아 방문에 앞서 지난달 29~31일 남미 순방을 위한 환승지인 뉴욕에 들렀지만 공개 행사는 최소화했다. 차이 총통은 이 기간 조니 언스트·댄 설리번·마크 켈리 등 미 상원 군사위원회 소속 공화당 의원들 및 하킴 제프리스 민주당 하원 원내대표를 만났지만 이를 공개하지 않았다. 해당 의원들은 5일 보도자료를 내 회동 사실을 간략히 알렸다. 

지난해 펠로시 당시 미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으로 중국이 대만 주변에서 연일 무력시위를 벌이며 위협하고 미·중 관계가 바닥을 친 것을 의식한 행보라는 해석이 나온다. <뉴욕타임스>(NYT)는 차이 총통의 신중한 행보는 중국에 펠로시 방문 때와 같은 무력 시위 구실을 주지 않기 위함이라고 봤다. 

미국 쪽도 차이 총통 방문을 "경유"로 표현하며 공식 방문이 아님을 강조하려 애썼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번 방문 형식이 "미국이 대만 지도자에게 지지자들을 만날 기회를 주는 동시에 (대만과의) 관계를 비공식적으로 유지하겠다는 중국과의 약속을 지키는 복잡한 안무의 일부"라고 평가했다. 매체는 경유 형식의 방문이 대만과 미국이 중국을 자극하는 것을 우려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대만 안보에 해를 끼치고 미국의 동아시아 동맹국들을 불안하게 하는 것 또한 걱정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중국의 위협에 시달리며 미국으로부터 결정적 지원을 이끌어내지는 못하고 있는 대만으로서는 미국과의 관계에 더 신중을 기할 수 밖에 없다는 의견도 나온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윌리엄 커비 미 하버드대 중국학 교수가 차이 총통이 매카시 의장을 대만이 아닌 캘리포니아에서 만나기로 한 것은 매카시 의장 등이 표명한 대만에 대한 지지가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는 상황이 왔을 때 군사적 지원으로 이어질지 확신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짚었다고 보도했다. 

커비 교수는 매체에 "수사적으로 대만에 대해 매우 강경한 태도를 취하는 이들이 실제로는 대만을 지원하기 위한 노력을 거의 하지 않고 있으며 실질적으로는 대만의 자율성을 오히려 훼손하고 있을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 차이잉원 대만 총통(왼쪽)과 케빈 매카시 미국 하원의장이 5일(현지시각) 미국 캘리포니아주 시미밸리의 로널드 레이건 도서관에서 회동한 뒤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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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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