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국심사 앞당기니 면세점 근무도 앞당겨? 진짜 '사장'은 누구?

[윤효원의 '노동과 세계'] 김포공항 롯데면세점 근무시간 논란

롯데면세점 샤넬노동자의 근로시간은 누가 결정하나

백화점과 면세점에서 상품을 판매하는 노동자들의 근로시간 결정 방식이 사회적 논쟁거리가 되고 있다. 이들을 대표하는 노동조합인 백화점면세점판매서비스노조가 면세점협회와 백화점협회를 상대로 근로시간 문제를 기업별 교섭이 아닌 산업별 교섭에서 논의하자고 요구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사건의 발단은 김포국제공항 롯데면세점에서 일어났다. 지난 달 김포국제공항을 관리하는 한국공항공사가 롯데면세점에 개점시간을 오전 6시 30분에서 6시 10분으로 20분씩 앞당기라고 일방적으로 통보한 것이다.

출국심사 시간 앞당기니 면세점 근무시간도 앞당겨라?

개점 시간이 갑자기 변경되는데 문제 의식을 느낀 조합원이 노조에 시정을 요구했고, 노조는 개점 시간의 일방적 변경에 항의하는 공문을 공항공사에 보냈다. 그런데 공항공사는 "많은 여객이 입국장에 진입하지 못하고 출국장에 대기함으로써 (출국심사대에) 긴 대기줄 발생에 따른 여객불편"을 덜기 위해서라는 엉뚱한 답변을 내놓았다.

공항공사가 출국심사대 운영시간의 변경에 맞추어 면세점 영업시간도 변경시키라고 면세점업체에 요구한 것인데, 문제는 이 과정이 면세점 노동자 및 관련 노조와의 협의를 배제한 채 일방적으로 이뤄졌다는 점이다.

노동자와 노조를 배제한 일방적 결정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근로시간 등 근로조건을 변경하기 위해서는 근로계약과 취업규칙이 정한 기준을 따라야 한다. 그리고 해당 노동자를 대표하는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자대표'나 근로자참여및협력증진에관한법률상 노사협의회의 '근로자위원'과 상의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해당 사업장에 노동조합이 있다면 그 노조와 협의해야 한다. 롯데면세점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를 대표하는 노조는 백화점면세점판매서비스노조다. 그런데 김포공항 롯데면세점에서는 모든 절차가 생략되고 무시되었다.

김포공항을 관리하는 한국공항공사에도 노사협의회와 노조가 있다. 공항공사가 자기 직원인 공항공사 노동자들의 근로시간을 변경할 때 노사협의회와 노조에 상의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진행하지는 않을 것이다. 자기 직원도 아닌 다른 회사 직원의 근로시간 변경 문제를 달랑 공문 한 장으로 끝내 버리는 한국공항공사의 처사는 '모범적 사용자'라는 공기업의 위상을 생각할 때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근로조건을 결정하는 진짜 사장님은 누구인가? 

공항공사의 '갑질'에 롯데면세점 역시 절차를 무시하고 근로시간 변경을 밀어붙인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는 일방적인 근로시간 변경이 롯데면세점이 직접 고용한 노동자의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일 것이다.

롯데면세점은 화장품과 패션상품을 파는 업체에 판매 장소를 임대하고 임대료, 즉 지대(rent)를 받는다. 예를 들어, 롯데면세점에서 샤넬 상품을 파는 노동자는 롯데면세점 소속이 아니라 프랑스 다국적기업 샤넬 소속이다. 공항공사가 롯데면세점에 대해 '갑'의 지위를 가진다면, 롯데면세점은 샤넬에 대해 '갑'의 지위에 있는 셈이다.

이렇듯 샤넬 상품을 판매하는 노동자는 한국공항공사가 관리하는 김포공항에 위치해 있는 롯데면세점에서 일하고 있다. 한국공항공사-롯데면세점-샤넬로 이어지는 공급사슬(supply chains)은 당연하게도 이들 3개 회사가 근로시간과 휴게시설 같은 노동자의 근로조건과 환경에 공동으로 관여하게 만든다.

▲ [그림1] 공항 면세점의 노동력 공급 사슬. ⓒ윤효원

여성 노동자에게 새벽 20분의 가치는?

문제는 관련 회사들이 근로조건 개선의 책임을 회피하면서 그 피해를 고스란히 노동자들에게 떠넘기고 있다는 사실이다. 근로시간의 일방적 변경사례가 대표적이다.

아침 6시 30분에 맞춰진 출근 시간을 6시 10분까지 앞당기려면, 잠에서 깨는 시간만 앞당겨야 하는게 아니다. 일터까지 가는 대중교통편의 시간대도 앞당겨야 한다. 공항은 주거지 외곽에 위치한 경우가 대부분이라 출퇴근 시간은 편도 1시간을 훌쩍 넘는 경우가 많은데, 새벽에 대중교통 여건은 좋지 않다.

백화점면세점판매서비스노조에 따르면, 조합원의 97.3%가 여성이고 조합원 평균 연령은 35.3세다. 조합원의 53.2%가 35세 미만이고, 20대 비율도 20.3%에 이른다. 조합원 다수가 어린애를 키우고 있다. 이들에게 새벽 시간 20분의 가치는 남다르다.

노사관계의 출발점인 근로시간 결정

근로시간은 근로조건과 고용관계의 출발점이다. 근로시간을 기초로 임금이 계산되고 휴게시간과 휴일이 결정된다. 노동문제(Labour Questions)의 기본인 근로시간의 결정에 관여하는 행위는 노사관계의 당사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이러한 이유로 백화점면세점판매서비스노조는 공항공사에 공문을 보내 "공사의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면세점 운영을 지배하고 노동자들의 건강권과 휴식권을 침해"하지 말고, "이후 변경이 필요할 때는 (노조와의) 교섭을 통해 합의 하에 시행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백화점이 갑이고 입점업체는 을이다"

샤넬 노동자는 공항의 면세점은 물론 신세계백화점, 롯데백화점, 현대백화점 같은 도심의 백화점에서도 일한다. 일하는 공간은 백화점이지만 고용관계를 맺은 회사는 입점업체, 즉 샤넬이다.

백화점에서 일하는 입점업체 노동자의 근로시간은 백화점에 의해 결정된다는 게 노조의 판단이다. 노조가 장시간 근로와 불규칙한 휴일, 그리고 수유실과 탈의실 등 부족한 휴게시설 문제를 샤넬에 제기하면, 샤넬은 “백화점이 갑이고 입점업체는 을이다”면서 샤넬이 해결할 수 없다는 변명을 늘어놓기 때문이다.

근로시간을 누가 결정하는 지를 확인하기 위해 노조가 백화점과 입점업체 샤넬 사이에 체결된 계약서의 공개를 요구했지만 거절당했다. 브랜드 파워가 가장 센 샤넬조차 백화점과 면세점 앞에서 을의 지위에 놓여 있다면 다른 브랜드들의 사정은 더 말할 필요조차 없다고 노조는 보고 있다.

▲ [그림1] 시내 백화점의 노동력 공급 사슬. ⓒ윤효원

윤석열 대통령 "노동시장 이중구조는 착취구조"

윤석열 대통령은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두고 "착취구조"라고 말했다. 맞는 말이지만, 윤 대통령의 노동시장 착취 개념은 본질적 결함을 갖고 있다. 노동시장의 실질적 지배자인 자본가가 노동시장의 착취구조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대한 언급이 없기 때문이다.

공급사슬이 복잡해지면서 노동시장도 복잡해 졌다. 노동자의 입장에서 보면 임금을 결정하는 회사 따로, 근로시간 같은 근로조건을 결정하는 회사 따로, 심지어는 휴게시설 같은 근로환경을 결정하는 회사가 따로 있다.

이렇게 복잡하고 다양한 구조를 가진 노동시장 문제는 기업 수준에서 이뤄지는 노사관계와 단체교섭만으론 실마리를 찾기 어렵다. 김포공항 롯데면세점에서 일하는 샤넬 노동자의 근로시간을 일방적으로 변경한 주체가 겉으로 보기에는 샤넬 회사인 것 같지만 공급사슬과 노동시장의 구조에서 보면 롯데면세점과 한국공항공사이기 때문이다.

백화점협회와 면세점협회는 산업별 교섭에 나서야

2022년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롯데백화점을 사업부로 둔 롯데쇼핑에서 연봉 19억4000만 원을 챙겼다. 이는 전년 15억 원과 비교했을 때 2억 원 넘게 늘어난 금액이다. 2022년 한 해 신동빈 회장이 롯데백화점에 출근한 날은 며칠이나 됐을까. 롯데면세점과 롯데백화점에서 일하는 샤넬 노동자는 1년 내내 출근하면서 롯데를 위해 지대, 즉 이윤을 창출했다.

현실에서 작동하는 이윤의 흐름과 노동시장의 사정이 이러하다면 샤넬 노동자는 자신의 임금은 샤넬과 교섭하더라도 자신의 근로시간에 대해서는 롯데와 교섭하는 게 맞지 않을까. 백화점협회와 면세점협회를 향한 백화점면세점판매서비스노조의 산업별 교섭 요구를 지지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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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효원

택시노련 기획교선 간사,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사무국장, 민주노동당 국제담당, 천영세 의원 보좌관으로 일했다. 근로기준법을 일터에 실현하고 노동자가 기업 경영과 정치에 공평하게 참여하는 사회를 만들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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