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전술핵 벨라루스 배치 선언'에 체면 구긴 시진핑

지난주 중·러 공동성명서 영토 밖 핵무기 배치 반대…미·나토 "벨라루스로 핵무기 이동 징후 아직 없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벨라루스에 전술핵을 배치하겠다고 밝힌 데 대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가 "무책임하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다만 나토와 미국은 실제 핵무기 이동 징후는 감지되지 않았다고 밝혔고 전문가들은 해당 발언이 위협에 그칠 가능성이 크며 실제 이전이 일어나더라도 위험 증가 정도가 적다고 봤다. 푸틴 대통령의 발언이 지난주 시진핑 국가주석과의 공동성명 내용에 위배된다는 지적이 나오며 중국의 중재자로서의 입지에 찬물을 끼얹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오아나 룬게스쿠 나토 대변인은 26일(현지시각) 성명을 내 "러시아의 핵 관련 수사는 위험하고 무책임하다. 나토는 경계를 늦추지 않고 상황을 감시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다만 룽게스쿠 대변인은 "우리의 핵태세를 조정할 정도의 러시아 핵태세 변화가 보이진 않았다"고 설명했다.

전날 푸틴 대통령은 벨라루스에 전술 핵무기 배치를 선언하고 오는 7월1일까지 전술핵 저장고 건설을 마치겠다는 일정까지 제시했다. 푸틴 대통령 발언이 실행된다면 러시아는 사실상 냉전 이후 처음으로 영토 바깥에 핵무기를 배치하게 된다. 소련 시절 러시아 외에 우크라이나·벨라루스·카자흐스탄에 핵무기가 배치돼 있었지만 1996년까지 세 나라 모두 핵무기를 러시아로 이전했다.

룬게스쿠 대변인은 이날 "나토의 핵공유에 관한 러시아의 언급은 잘못됐다. 나토 동맹국은 국제조약을 완전히 존중하며 행동하고 있다"며 "러시아는 최근 미국과의 핵무기 통제 조약인 신전략무기감축협정(New START·뉴스타트) 참여를 중단한 것을 비롯해 지속적으로 군축 협정을 위반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푸틴 대통령은 전날 벨라루스 전술핵 배치를 정당화하며 미국이 동맹국에 수십 년간 전술핵을 배치해왔다고 비판했다.

호세프 보렐 유렵연합(EU) 외교안보 고위대표도 이날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벨라루스가 러시아 핵무기를 받아들이는 것은 무책임한 긴장 고조 행위이며 유럽 안보에 대한 위협"이라고 비판했다. 보렐 고위대표는 "벨라루스는 이를 여전히 이를 중단할 수 있고 이는 그들의 선택"이라며 "EU는 추가 제재로 대응할 준비가 돼 있다"고 경고했다. 독일 외무부는 25일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푸틴 대통령 발언이 "추가적 핵위협 시도"라고 비판했다.

우크라이나 외무부는 26일 성명을 내 푸틴 대통령의 이번 발언은 "핵확산금지조약(NPT)의 기본 원칙을 훼손하는 푸틴의 범죄적 정권의 또다른 도발"이라며 러시아의 "핵협박"에 대응하기 위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의가 즉각 소집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올렉시 다닐로우 우크라이나 국가안보국방위원회 서기는 이날 소셜미디어를 통해 푸틴 대통령의 벨라루스 핵배치 언급이 "벨라루스를 핵인질로 삼은 것"이라고 비난했다. 미하일로 포돌랴크 우크라이나 대통령 고문도 이날 소셜미디어를 통해 "푸틴은 패배를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과 현재 할 수 있는 일이 전술무기 배치 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라고 냉소했다.

전문가들 "시행 가능성 낮다…이전 되더라도 위험 제한적"

나토와 더불어 미국 쪽은 당장 긴장 고조 정황은 보이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존 커비 미국 국가안보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이날 미 CBS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핵무기가 이동한 어떤 징후도 없었다. 푸틴 대통령이 핵무기를 사용할 의도가 있다는 징후 또한 감지한 적 없다"고 말했다.

워싱턴에 기반을 둔 싱크탱크 전쟁연구소(ISW)는 푸틴 대통령 발언을 "서방의 핵 확전 공포를 이용하려는 시도"라며 실제 확전 가능성은 낮은 "정보 작전"으로 봤다. <뉴욕타임스>(NYT)는 파벨 포드비그 유엔군축연구소 수석 연구원도 러시아 핵 저장 시설의 복잡성 탓에 벨라루스가 7월까지 이를 넘겨 받을 준비가 될 지 의심스럽다며 이전이 실제로 이행될 가능성을 높지 않게 보고 있다고 전했다.

<뉴욕타임스>는 또한 전문가들이 설사 벨라루스로 러시아 핵무기 일부가 이전되더라도 이미 러시아 영토 내에 넓은 범위를 타격할 수 있는 핵무기가 배치된 상태기 때문에 핵위협 자체가 유의미하게 커지진 않는다고 지적했다고 덧붙였다. 매체는 포드비그 연구원이 만일 벨라루스로의 전술핵 이전이 이뤄진다면 "러시아가 이론적으로는 더 많은 대상을 겨냥할 수 있겠지만 변화는 미미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러시아가 협력을 구하고 있는 중국이 핵무기 사용에 반대하고 있는 것도 러시아가 실제 핵 사용에 나서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의 근거 중 하나로 제시된다.

중 '평화 중재자' 행보에 찬물…푸틴 "중국과 군사 동맹 아니다"

다만 지난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 직후 러시아가 또 다시 핵 위협을 가한 것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포함해 '평화 중재자'로서의 외교적 입지를 다지고자 하는 최근 중국의 행보에 찬물을 끼얹은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주 시 주석과 푸틴 대통령은 정상회담 뒤 공동성명을 내 핵보유국의 자국 영토 밖 핵무기 배치에 반대한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이에 보렐 고위대표는 시 주석의 러시아 방문이 "핵전쟁 위협을 줄였다"고 반색하기도 했다. 중국은 서방의 제재에 동참하지 않은 채 우크라이나 전쟁에 관한 독자적 해법을 주장하며 러시아와의 밀착을 강화하고 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이주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 방문 예정에 이어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 등 유럽 주요 지도자들이 곧 중국을 방문해 우크라이나전 관련 논의를 이어갈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푸틴 대통령의 이번 발언이 중국의 우크라이나전 중재 계획을 엉키게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러시아 국영 <타스> 통신은 푸틴 대통령이 26일 국영 러시아24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중국과의 협력이 "군사 동맹이 아니다"라고 분명히 했다고 보도했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중국과 어떤 군사 동맹도 맺고 있지 않다. 군사기술 협력은 하고 있다. 우리는 숨기는 것 없이 투명하고 비밀은 아무 것도 없다"고 말했다. 미국과 서방은 중국이 러시아에 무기를 제공해선 안 된다고 거듭 경고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병사들이 26일(현지시각) 격전지인 동부 바흐무트 인근의 참호에 들어가 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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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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