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호의 우리말 바로 알기] ‘억지’와 ‘떼거지’

1997년에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현재 중부대학교 근처로 이사를 했다. 처음에는 대전 둔산동에 자리를 잡았으나 이왕 지방으로 내려왔으니 시골에 들어가야겠다고 생각하고 금산군 진산면의 작은 농가를 구입하여 입주하였다. 작은 오두막집이었으나 나름대로 재미있게 살기에는 제격이었다. 마침 동네 어른이 주변에 밭이 있으니 사라고 해서 480평이 조금 넘는 땅을 사서 고구마 농사도 짓고, 각종 야채도 심어서 도시에 사는 친구들이 주말마다 내려와 즐기는 공간이 되었다. 특히 주변에 계룡대가 있어서 당시 육군대학에 있던 친구들이 매주 와서 주말농장을 가꾸며 함께 즐기기도 했다. 그리고 오랜 세월이 흘러 친구들도 모두 제대하고, 필자도 정년을 코앞에 둔 노교수(?)가 되어버렸다. 요즘은 그동안 가끔 가던 농장에 매일 가서 나무(엄나무, 오가피, 헛개나무, 스카이로켓 등)도 심고 나름대로 즐거운 노후를 준비하며 꿈에 부풀어 있다. 세월이 흘렀으니 마을 어른도 많이 돌아가시고 젊은 세대로 바뀐 것을 느낄 수 있다.

열심히 밭을 가꾸고 있는데, 필자보다 젊어보이는 사람이 밭으로 와서 대뜸 “남의 땅을 침범허지 말라.”고 고함을 친다. 필자는 실제의 땅보다 안 쪽에 나무를 심고 있는데, “200 평밖에 안 되면서, 너무 남의 땅을 침범하고 있다.”고 고함을 친다. 그리고, 필자가 하지도 않은 일을 가지고 억지를 부린다. 화가 나서 함께 소리치고 싸워 봤지만 대화가 안 통한다. 무슨 논리인지 모르겠다. 정말 억지가 심해도 보통 심한 것이 아니다. 조용히 나무 잘 심고 있는데, “왜 타관 사람이 와서 남의 땅에 농사를 짓고 있느냐?”고 따지는 것과 같다. 시골 인심이 과거와 너무 달라졌다. 오호 애재라. 동네 사람들 다 나와서 구경하고 얼굴이 화끈거린다.

‘억지’란 정말 이런 경우에 쓰는 말이다. “생각이나 주장을 무리하게 내세우거나, 잘 안 될 일이나 해서는 안 될 일을 기어히 해 내려는 고집”을 ‘억지’라고 한다. 세종시에 살면서 자주 밭에 오지 못한 것이 탈이 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이런 억지는 지금까지 처음 겪어 본다. ‘어거지’라는 말도 있다. 이 동네 사람들은 ‘어기지를 부린다.’고 한다. ‘억지’의 비표준어이다. 그래서 ‘어거지 농사(지나치게 힘겨운 농사)’, ‘어거지 웃음(억지 웃음의 방언)’ 등으로 사용하지만 표준어는 아니다. 내 땅에 내가 농사 짓는 것도 잘못했다고 하니 얼마나 부아가 나는지 모르겠다. 지난해 선거 기간 중에 세종시 전의면에서 열심히 농사지으면서 살고 있는데, 그것도 부동산 투기의 전형적인 모습이라고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난 적도 있다. 화가 나서 농업경영체 등록도 했고, 매일 일하는 모습을 페이스북에 올리기도 했다. 참으로 세상에 이런 억지가 있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사람이 싫어진다.

‘떼거지’라는 말도 있다. 우리 어린 시절엔 “떼거지부린다”라고 했는데, 이런 표현은 옳지 않은 것이다. ‘떼거지’란 “재변으로 말미암아 졸지에 거지가 된 많은 사람들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그래서 “떼를 지어 다니는 거지”을 이른다. 그러므로 일반적으로 ‘거지떼’를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그런데, 사람들이 거지들이 밥 달라고 문 밖에서 아우성치며 고집부리는 것을 생각하고 ‘떼거지부린다’라고 표현한다. 억지로 생떼를 부릴 때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기본적으로 의미의 비약이 심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예문으로는

극심한 가뭄으로 인해 도처에 떼거지가 생겨났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하루 아침에 떼거지가 되었다.

등과 같이 쓸 수 있다.

우리가 “원치 않는 일을 어쩔 수 없이 해야 할 때”, ‘억지춘향’이라는 표현을 한다. 억지로 일을 이루게 하려는 말을 비유한 것이다. 필자의 경우는 ‘억지춘향’과는 다르다. 내 땅에 내가 농사짓는 것을 억지로 방해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 떼거지로 몰려와도 물러나지 않을 것이다.

퇴직 후 아름다운 꿈을 안고 시골에 살고자 했던 바람은 이미 산 넘어간 것 같다.

호호 통재라! 투덜투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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