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이들에게 '아리아리'! 겹겹의 아름다움 빚는 크래프트 양조장

[서형원의 우리술 탐방기] ③경기 용인 <제이앤제이브루어리>

평소 디자인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편이라 "예뻐야 해, 예쁜 게 중요하다고!"라고 자주 말한다. 하지만 정말 아름답다는 건 무얼까? 제품 껍데기를 예쁘게 만들면 아름답다 말할 수 있을까?

여덟 가지 우리 술을 빚는 용인의 작은 양조장 <제이앤제이브루어리>를 만나는 시간은 내게 아름다움이라는 현상의 안쪽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되었다. 제이앤제이의 술들은 멋진 디자인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부부가 손으로 빚는 이 술들은 여러 겹의 아름다움을 두르고 있었다. 그 아름다움 속으로 들어가보자.

줄리아와 주휘가 빚는 술들

▲제이앤제이브루어리의 여덟 가지 술들 ⓒ홍지숙

제품 종류 : (위 사진 왼쪽부터) '호심 노을 에디션' 탁주(원주) 17.5% 375ml, '청혼 화이트' 탁주 13% 375ml, '청혼 블루' 청주 15% 375ml, '청혼 골드' 과하주 19.5% 375ml, '청혼 레드' 소주 25% 375ml, '청혼 블루 스페셜' 청주 15% 500ml, '아리아리' 청주 15% 500ml, '요리요리' 청주 15% 500ml.

원재료 : 용인백옥쌀 참드림 품종, 우리밀 누룩, 자가제조 입국, 효모(한국식품연구원 전통발효제), 청혼 레드는 보리 추가 사용.

제조법 : 탁약주는 이양주, 주종에 따라 3주~6주 발효, 이후 추가 숙성. 청혼 레드는 이양주를 맑게 걸러 상압 5단 증류 후 1년 이상 숙성.

제이앤제이브루어리(J&J Brewery), '줄리아와 주휘의 브루어리'의 줄리아는 디자인과 홍보를 맡고 있는 배경미 대표다. 미국에서 피아노와 건축 인테리어를 전공하고 술 빚는 주휘를 만나 양조장 대표가 되었다. 또 다른 제이는 이주휘 부대표. 오랫동안 우리 술 전문가 교육 과정을 밟은 '국가대표 전통주 소믈리에'다. 양조를 책임지고 있다.

여기서 잠깐, 쌀 등의 곡물로 빚은 우리 술의 네 가지 큰 분류를 대략 이해하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첫째, 쌀과 누룩으로 술을 빚어 맑은 술을 떠내면 귀하고 맛있는 '청주', 둘째, 거칠게 걸러 탁하게 내면 든든하고 편안한 '탁주' 혹은 '막걸리', 셋째, 빚은 술을 가열하여 증류하면 '소주', 넷째, 맛난 술을 더운 여름에도 오래 보관하며 마시기 위해 청주를 발효할 때 소주를 넣어 알코올 도수를 높이면 달콤하고 짜릿한 '과하주(過夏酒)', 즉 여름을 나는 술이 된다.

한 가지 더 짚어둘 일이 있다. 우리나라 주세법은 우리 술의 꽃봉오리라 할 수 있는 청주를 '약주'라고 칭하고 전통누룩을 쓰지 않는 일본식 '사케'만을 청주로 분류하고 있다. 어이없는 일이지만, 일제강점기에 정한 구분법을 여태 바꾸지 못해 우리 청주를 청주라 부르지 못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 연재에서는 우리 맑은 술을 청주라고 쓰기로 한다. 제품 뒷면 표기에는 주세법에 따라 약주라고 되어 있다. 오해 없으시길.

제이앤제이는 이 네 가지 우리 술에 '청혼'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 술들은 두 사람이 부부가 되기로 한 그때쯤 탄생했다. 그래서인가? 청혼 시리즈의 첫 번째는 과하주 '청혼 골드'다. 두 사람이 만나 하나가 되었듯이, 청주와 소주가 만나 과하주라는 한 술을 이루었기 때문이리라. 청혼 골드는 농익은 연인처럼 달큰하며 그 내면은 알코올 도수 19.5도로 상당히 뜨겁다.

예로부터 '백주(白酒)'라고도 불리던 탁주는 '청혼 화이트', 맑은 우리 술 청주는 '청혼 블루', 뜨거운 불이 빚어낸 소주는 '청혼 레드'로 이름 붙였다. 그 외에 달콤한 프리미엄 청주 '청혼 블루 스페셜', 쌀로 빚은 화이트 와인 같은 청주 '아리아리', 요리에 곁들일 때 빛을 발하는 '요리요리'가 있다.

물 타지 않고 가공하지 않은 제이앤제이의 원주는 한국화가셨던 줄리아 어머니의 호를 따서 '호심 노을 에디션'으로 탄생했다. 17.5%의 호심은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수천가지 탁주 중 세번째로 알코올 도수가 높은 탁주로 생명력 넘치는 원주의 깊고 풍부한 맛이 특별하다.

▲건물 2층에 위치한 양조 공간. 자신 있게 공개할 만큼 매우 청결하고 효율적으로 관리되고 있다. 작은 공간에서 다양한 술을 빚는 비결이다. ⓒ홍지숙

'비즈니스' 그 이상의 '크래프트'

사업을 잘하는 양조장은 큰 공장에서 한 가지 술을 빚어 판다. 효율 높은 양조장은 한 가지 술을 빚어 이것으로 여러 도수의 맑은 술, 탁한 술을 내며, 다양한 부재료를 추가하여 개성이 다른 술들을 내기도 한다.

취재를 시작하면서 제이앤제이는 여덟 가지 술을 다 따로 빚는다는 말을 듣고 말문이 탁 막혔다. 이 작은 양조장에서 두 사람이? 아 그러니까 이 일의 본질은 '비즈니스'가 아니구나. '크래프트'라는 것이 이런 것일까?

한 가지 원주를 빚어 그대로 담아 '호심'을 내고, 맑은 술을 떠서 '청혼 블루', 탁하게 걸러 '청혼 화이트', 청혼 블루를 증류해 '청혼 레드', 청혼 블루를 발효할 때 청혼 레드를 넣어 '청혼 골드'를 만들어 내면 된다. 하나의 술로 이렇게 변주하는 것도 꽤 어렵고 복잡하다.

그런데 두 사람은 이 술들의 개성을 다 살리기 위해 모든 술을 따로 빚는다. 감미료나 첨가제 없이 쌀과 누룩과 물, 효모만으로 빚는다는 것은 같지만, 한국식품연구원이 개발한 전통발효제 중 여러 효모를 달리 쓰고 발효 조건을 달리해서 여덟 가지 술을 빚는다는 것이다.

이주휘 부대표는 맥주 양조에서 효모를 달리해서 술의 개성에 변화를 주는 방법을 배웠다고 한다. 우리 전통 양조는 오랫동안 환경과 손맛에 크게 영향을 받아왔고 이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현대 양조는 여러 변수를 정확하게 계산하고 통제하여 원하는 맛과 개성을 정확하게 표현하고 제품화하는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으며 우연마저 결국은 과학으로 설명해야 한다. 그래서 내가 원하는 개성을 담은 술을 빚기 위해서는 풍부한 과학적 데이터를 가진 맥주나 위스키에서도 배울 필요가 있다.

▲청혼 레드를 증류하는 상압 5단 증류기. 향이 좋은 소주를 내리기 위해 쌀과 보리로 원주를 빚는다. 멋진 소주인데 생산량이 적어 구하기가 쉽지 않다. ⓒ홍지숙

'청혼 레드'는 주재료에도 변화를 준다. 기왕 있는 술을 증류해도 소주를 만들 수 있지만 청혼 레드의 원주는 쌀과 보리로 따로 빚는다. 우리 소주 고유의 향을 더 풍부하게 표현하기 위해 보리를 더하기로 한 것이다. 이렇게 빚은 원주를 상압 5단 증류기로 증류하여 1년 이상 숙성하여 청혼 레드를 낸다. 향이 풍부하면 무겁기 쉽고 깔끔함을 추구하면 밋밋하기 쉬운데, 청혼 레드는 담백하고 깔끔하면서도 향긋한 곡물향이 매력적이다.

게다가 제이엔제이브루어리는 발효에 쓰는 입국을 사서 쓰지 않고 용인 쌀을 전남 영암의 주조장에 가져가서 직접 제조한다. - 입국도 지역 농산물로 써야 하는 지역특산주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 입국의 품질은 술의 맛, 특히 산미에 큰 영향을 미친다. 제이앤제이브루어리는 달지 않고 산미가 매력적인 술을 주로 빚는 양조장이기 때문에 입국을 직접 제조함으로써 술의 개성을 더 잘 조율한다.

손길, 마음, 가치를 겹겹이 쌓아 만들다

제이앤제이의 술들은 주휘의 솜씨에 줄리아의 감각과 고집을 더해 만들어진다. 줄리아는 깔끔한 술, 자극적이지 않고 자연스러운 술, 음식과 잘 어울리는 술이어야 한다는 점을 매우 강조하고 지키려 한다. 술을 어떤 모습으로 담아서 우리에게 내놓을 것인지, 술이라는 내용물만큼이나 중요한 이것을 위해 줄리아는 상상 이상의 노력을 기울인다.

줄리아는 가족들이 건강을 잃고 곁을 떠나는 일을 겪으면서 자연환경의 소중함을 절감하게 되었다고 한다. 주휘는 워낙 검소하고 소박한 삶을 살아온 사람이고 클라이머로서 히말라야 등반에 도전할 만큼 자연과 가까운 사람이다.

호심의 라벨은 환경을 고려해 접착력을 약하게 제작했는데, 이 라벨은 상온에서 붙이면 다 떨어지고 냉장창고에 들어가서 일일이 손으로 붙여야 제대로 붙는다고 한다. 호심을 낼 때마다 이 일을 한단다. 아리아리, 청혼 블루 스페셜, 요리요리는 병 값보다 훨씬 비싼 - 나로선 상상하지 못한 일이다. - 여러 겹 한지에 활판 인쇄를 한 라벨을 쓰는데 가장자리를 손으로 수십 번 뜯어내어 모양을 낸다.

이렇게 만든 라벨은 접착하지 않고 무명실로 묶는다. 부부싸움을 해도 라벨을 묶을 때는 한 사람이 잡아주고 한 사람이 묶어야 하므로 같이 해야 한단다. 두 사람이 여덟 시간 작업해 300매를 묶는단다. … 비즈니스가 아니라 크래프트다.

호심과 아리아리 라벨에는 장애인인 줄리아의 오빠 배경욱 작가의 그림이 사용되었다. 제이앤제이는 여러 방법으로 장애인의 예술활동을 후원하고 있다. 더불어 사는 세상에 기여하는 일에도 두 사람은 진심이다.

하지만 환경이든 더불어 사는 사회든, 아무리 좋은 가치라고 해도 날것 그대로의 구호로는 사람의 마음을 얻지 못한다. 줄리아의 생각이 바로 그렇다. 이 가치들은 아름다워야 한다. 장애인의 그림이어서 쓰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아름답기 때문에 쓰는 것이어야 한다. 한지여서 좋다고 할 것이 아니라 거기에 아름다움을 담아야하기 때문에 굳이 어려운 활판 인쇄를 하고 라벨 가장자리를 손으로 뜯는다.

이렇게 만들어진 아리아리의 디자인은, 그 이면의 모든 과정을 생략하고도, 드러난 그대로 참 아름답다. 만약 그 아름다움을 얻기까지의 과정을 들여다보게 된다면, 이 술을 만난 이가 느끼는 아름다움의 깊이는 달라질 것 같다. 내가 그랬듯이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아름다움은 거기에 담긴 과실향 그윽한 술과 너무나 잘 어울린다.

▲한지에 활판 인쇄, 배경욱 작가의 그림, 손으로 뜯고 무명실로 묶어 완성한 아리아리. 아름다운 병을 열어 상쾌한 술을 만났을 때의 기쁨 ⓒ홍지숙

매우 전통적이며 완전히 현대적인

글을 마무리하며 아리아리 한 병과 볼 넓은 와인잔을 꺼낸다. 샴페인이 떠오르는 투명한 황금빛 술이 반짝인다. 살짝 흔들어본다. 가벼운 과실향에 설레며 한 모금 머금으면 달다 시다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상쾌함이 입안에 넘친다. 쿰쿰함, 잡맛, 끈적임은 전혀 없다. 쌀로 빚은 와인이라는 말이 딱 적절하다.

쌀로 빚은 술에서 다양한 과실향이 난다는 것을 아직 사람들은 잘 모른다. 쌀의 전분을 잘 당화하고 발효하면 화려한 향들이 피어난다. 술을 잘 빚으면 곡향보다 꽃향과 과실향이 넘친다. 그런 우리 술들이 아주 많고 아리아리는 그 중에서도 매우 현대적이며 보편적 잠재력을 가진 술이다.

제이앤제이의 술들은 첨가물 없이 지역농산물로만 빚은 전통주지만, 현대의 우리 삶 우리 식생활과 어울리는 술을 추구한다. 눈과 혀로는 이 술들의 어디에서도 예스러움을 찾을 수 없다. 옛것을 버린 것이 아니라 예로부터 이어진 것이 오늘 우리의 일부로 살아있는 것이다.

전통은 오늘의 우리 삶 속에 조화롭게 살아 있어야 생명력이 있다. 매우 전통적이지만 완전히 현대적인 제이앤제이브루어리의 술들이 내게 다시 확인해준 교훈이다.

지난 해 2022년은 줄리아와 주휘에게 특별한 해였다. 호심이 '참발효어워드 탁주 부문 대상'을 수상하고, 청혼 골드가 국제우수미각상(Superior Taste Award) 투스타즈(Two Stars)를 수상했으며, 여러 제품이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술 품질 인증을 획득하여 국내외에서 품질을 인정받았다. 제이앤제이브루어리는 이제 막 전성기를 향한 도약을 시작한 것 같다.

'아리아리'는 한글문화연대가 응원의 마음을 담아 '파이팅' 대신 쓰자고 제안한 말이다. 평창 동계올림픽 조직위가 그 뜻을 받아들여 쓰면서 알려지기 시작했다.

"아리아리!"

청혼의 설렘으로 탄생한 우리 술, 사랑하는 두 사람의 손길로 겹겹의 아름다움을 빚는 크래프트 양조장. 그 미래를 아리아리 응원한다.

▲제이앤제이 카페&브루어리 뒷뜰에서. 왼쪽부터 달마시안 강아지 '퐁이', 배경미(줄리아) 제이앤제이브루어리 대표, 이주휘 부대표, 제이앤제이에서 인턴 중인 한지혜 해일막걸리 대표, 서형원 별주막 대표, 홍지숙 술별닷컴 대표. ⓒ홍지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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