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러 첫 충돌? 흑해서 러 전투기 만난 미 무인기 추락

미 "러 전투기가 프로펠러 강타" 러시아는 부인…러 대사 "대결 원치 않아"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뒤 처음으로 흑해 상공에서 미국 무인기와 러시아 전투기 사이 물리적 충돌이 있었다고 미 정부가 밝혔다. 러시아 쪽은 접촉 사실을 부인하는 가운데 미·러 간 긴장이 고조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미군 유럽사령부(USEUCOM)와 미 국방부의 설명을 종합하면 14일(현지시각) 오전 러시아 SU-27 전투기 2대가 흑해 상공 국제 공역에서 운항 중이던 미 정보감시정찰(ISR) 무인기 MQ-9 주변에서 30~40분 간 비행하다 오전 7시3분께 MQ-9의 프로펠러를 강타해 공해상으로 추락시켰다. 사령부는 이 충돌이 "안전하지 않고 비전문적인 방식"으로 일어났다고 비판하며 "러시아 승무원의 이러한 공격적인 행동은 매우 위험하고 비의도적인 확전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경고했다.

사령부는 충돌 전부터 2대의 SU-27기가 MQ-9 앞에 수 차례 연료를 뿌리며 난폭하게 비행했다고 설명했다. <뉴욕타임스>(NYT)는 러 전투기가 연료를 투척한 이유가 미 무인기의 카메라 및 다른 센서를 훼손하기 위함이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군 고위 관계자를 인용해 덧붙였다. 미 MQ-9는 공격과 정찰 기능 모두를 갖춘 무인기로 이라크·아프가니스탄·시리아에서 사용됐다. 1980년대부터 사용된 러 SU-27 전투기는 미국 F-15 전투기와 비슷한 성능을 가지고 있다는 평가다.

패트릭 라이더 미 국방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MQ-9기가 이 지역에서 정보감시정찰 임무 수행 중이었으며 우크라이나 전쟁 이전부터 무인기를 흑해 지역에 운항해 왔다고 설명했다. 사령부는 유럽·아프리카 주재 미 공군은 국제법과 해당 국가법에 따라 주기적으로 유럽 각국 영공과 국제 공역을 비행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뉴욕타임스>는 미군 고위 관계자를 인용해 MQ-9기가 이날 아침 루마니아 기지에서 이륙해 통상 9~10 시간 가량 소요되는 정기 정찰 임무 수행 중이었으며 무기는 싣지 않은 상태였다고 전했다. MQ-9에는 대전차 레이더 유도 방식 무기인 헬파이어 미사일 탑재가 가능하다. 

라이더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러시아 전투기 또한 약간의 피해를 입은 것으로 보고 있다"며 이후 해당 러시아 전투기가 착륙했다고 말했다.

반면 러시아 쪽은 양국 항공기 간 접촉이 없는 상태에서 미 무인기가 돌연 추락했다고 주장했다. 러시아 국영 <타스> 통신과 <로이터>에 따르면 러시아 국방부는 14일 미 무인기가 갑작스러운 방향 전환 등 "급격한 기동" 뒤 "고도를 잃고 수면에 충돌했다"고 밝혔다. 국방부는 "러시아 항공기는 탑재한 무기를 사용하지 않았고 무인기와 접촉하지 않았으며 안전하게 본국 비행장에 착륙했다"고 설명했다. 

국방부는 이날 오전 MQ-9기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 기간 설정한 "임시 영공 체제를 침범했다"고 주장했다. <AP> 통신은 러시아가 크림반도 인근 광범위한 지역을 비행 제한 구역으로 설정했다고 설명하며 어떤 국가도 국제 공역에 대한 제한을 주장할 수는 없다고 비판했다.

미 국무부는 이날 아나톨리 안토노프 미국 주재 러시아 대사를 초치해 강력한 항의를 전달했다고 밝혔다. 안토노프 대사는 대사관 누리집을 통해 이날 캐런 돈프리드 국무부 유럽·유라시아 담당 차관보와의 30분 가량의 만남에서 미국 쪽 주장을 거부하고 미 무인기가 러시아 영토를 향해 "도발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고 강조했다고 전했다. 다만 그는 "러시아는 대결을 추구하지 않는다"며 이번 사태가 미국과의 직접 대결로 번지는 것은 경계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번 사건으로 양국 간 긴장이 높아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로이터>는 엘리자베스 브로 미국기업연구소(AEI) 선임연구원이 "이번 사건은 대중에게 알려진 서방과 러시아의 직접적 접촉이기 때문에 (우크라이나) 분쟁에서 매우 민감한 단계"라고 짚었다고 보도했다. <뉴욕타임스>는 미 고위 관리들이 흑해 상공에서 어떤 종류의 사건이나 잘못된 의사소통이 더 큰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난 몇 달 간 걱정해 왔다고 전했다. 지난해 10월 러시아가 흑해 상공에서 비무장 상태의 영국 정찰기 근처에서 미사일을 발사한 일도 있었다.

다만 이번 충돌을 러시아가 체계적으로 계획했다는 징후는 발견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뉴욕타임스>는 다수의 미국 관리들이 이번 사건이 미국이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항공기를 공격하려는 더 광범위한 전략의 시작이라는 정보는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매체는 과거 러시아가 고의적으로 미국 항공기나 함정을 공격한 바 있지만 조종사의 단독 행동으로 발생한 경우도 존재한다고 덧붙였다.

미국 쪽 주장대로 러시아 전투기가 MQ-9기에 연료를 뿌렸다면 이는 의도적이라고 볼 수 밖에 없지만 미 싱크탱크 랜드연구소의 다라 매시코트 선임연구원은 소셜미디어(SNS)에 러 전투기의 해당 행동이 러시아군이 최근 수 년간 사용해 온 "강압적 신호"의 새로운 형태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연구소는 지난해 펴낸 보고서에서 '강압적 신호'가 상대방의 행동에 영향을 주려 하되 실제 무력 사용까지는 나아가지 않도록 고안된 제한적 군사 행동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매시코트 연구원은 러시아 SU-27기가 미 MQ-9기의 프로펠러를 타격했다면 MQ-9기의 강제 진로 변경을 의도한 것일 수 있다고 추측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이날 저녁까지 미국이 추락한 무인기의 잔해를 회수하지 못했으며 익명을 요구한 국방 관리가 잔해 인양이 매우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미 국방부는 사건 자료 기밀 해제를 위해 노력 중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14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주 미국과 독일 언론의 노르트스트림 가스관 폭발이 특정 우크라이나 지지 세력과 연관돼 있다는 보도에 대해 "완전히 말이 안 된다"고 일축했다고 <타스>가 보도했다. 푸틴 대통령은 "이런 종류의, 이 정도 위력을 가진 폭발은 전문가만 수행할 수 있으며, 특정 기술을 가진 국가 차원 지원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며 폭발로 "이익을 얻은 자를 찾아야 한다. 이론적으로 보면 미국이 이익을 취했다"고 주장했다.

▲2020년 1월14일 미국 MQ-9 무인기가 네바다주 시험훈련장 상공에서 비행하는 모습. ⓒAFP=연합뉴스 
▲2013년 7월7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국제해상장비전(IMDS)에서 러시아 SU-27 전투기가 비행하는 모습.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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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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