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한국은 1850년 영국보다 더 일해라?

[윤효원의 '노동과 세계'] 주 69시간 '노동 폭식' 강요하는 윤석열 정부

노동운동가 출신 이정식 장관의 '공장법' 타령

공장법(factory act)이 처음 출현한 나라는 산업혁명의 고향인 영국이다.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이 나온 해가 1776년이고, 공장법이 처음 만들어진 해가 1802년이다. 이후 공장법은 19세기 내내 개정을 거듭했다. 물론 개정의 방향은 근로시간의 연장이 아니라 단축이었고, 노동자에 대한 억압이 아니라 보호였다. 1802년 공장법은 단지 아동노동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다. 당시 성인 남녀는 공장법의 규제 밖에 있었다.

1850년 공장법, '주 60시간'

1802년 당시 공장법 규제의 울타리 밖에 있던 성인 노동자들은 "평생직장 개념"을 가질 수 없었다. 이정식 장관의 표현을 빌리자면, 당시 성인 노동자들은 "정부가 (노동법을 통해) 획일적으로 개인의 삶을 규제하고 관리하는 게 아니라" 개인적으로 사용자와 대등한 관계를 맺고 사적 계약을 통해 "자기 관리"를 할 수 있는 상태에 있었다.

1833년 공장법에는 어린이 노동을 감독하기 위해 공장감독관(factory inspector) 제도가 도입되었다. 근로감독관 제도의 효시다. 1833년 공장법에서 9-12세 어린이의 근로시간이 주 48시간으로 제한되었다. 1953년 대한민국에서 근로기준법이 제정될 때 법정기준이 된 48시간의 효시다.

1844년 공장법에는 9~13세 어린이의 근로시간이 하루 9시간으로 제한되고, 점심식사를 위한 휴게시간이 보장되었다. 우리가 아는 근무중 휴게시간의 효시다. 1847년 공장법에 이르면, 여성과 18세 미만 청소년의 근로시간이 하루 10시간으로, 주 근로시간은 58시간으로 제한되었다.

1850년 공장법에 이르러서야 성인 남성 노동자에 대한 근로시간 제한이 주 60시간으로 정해졌다. 아동과 여성을 거쳐 마침내 성인 남성에게도 공장법이 적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대한민국헌법도 '공장법 시절'의 산물

주 69시간제를 밀어붙이는데 앞장서고 있는 이정식 장관은 입만 열면 '공장법' 타령이다. 그가 공장법 운운하는 법은 1953년 한국전쟁 와중에 제정된 근로기준법이다. 이 장관의 주장은 간단하다. 근로기준법이 70년 전에 제정되어 낡았고 더 이상 시대에 맞지 않다는 것이다. (15일 노동부는 근로시간 유연화 법안 보완을 위한 의견수렴 절차에 착수했다. 윤 대통령이 '주 최대 69시간 근무'가 가능한 근로시간제도 개편에 대한 보완을 지시한 데 대한 후속 조치다. 다만 노동부는 의무 휴식시간 규정과 휴가 보장 강화 등에 방점을 찍고 있어 장기 근무에 대한 논란은 앞으로도 이어질 전망이다.)

1953년 근로기준법이 제정될 때, 노동위원회법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노동조합법도 같은 해 만들어졌다. 모두 '공장법 시절'의 산물이다. 이정식 장관의 논리라면, 노동자와 사용자의 개념을 규정하고 있는 노동조합법과, 노동관계를 조정하고 중재하는 노동위원회법도 그 근간을 뜯어 고쳐야 할 것이다.

국가보안법은 안 낡았나?

이정식 장관은 변화한 경제 구조에 따라 노동자와 사용자 개념을 맞추기 위해 노동조합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시대적 요구에는 침묵하고 있다. 노동관계의 조정과 중재에서 노동조합의 대표성과 독립성을 강화하자는 취지의 노동위원회법 개정 요구도 마찬가지다.

대한민국의 법령들 중에는 근로기준법보다 연원이 오래거나 비슷한 것들이 많다. 대한민국 헌법과 국가보안법은 1948년 제정되었다. 형법도 근로기준법과 같은 해인 1953년 제정되었다. 민법은 1953년 7월 초안이 만들어지고, 1958년 제정되었다.

이정식 장관의 표현에 따르자면, 이 모든 법들이 "낡은 제도의 철창(iron cage)"에 갇혀 있는 셈이다. 그렇지만, 이를 개정하자는 사회적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현대의 사회경제 체제에 맞지 않는 법률들이 수두룩한 상황에서 이정식 장관, 정확히는 윤석열 정권이 근로기준법의 근로시간 조항에만 목을 메는 이유는 간단하다. 대한민국 노동자들의 근로시간을 주 69시간, 즉 '공장법 이전'(pre-factory act) 수준으로 되돌리고 싶은 것이다.

▲ 3월 9일 오전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에서 열린 '노동시간 개악 저지 윤석열 정부 규탄 기자회견'에서 민주노총 관계자들이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1850년 영국'보다 더 일하라는 '2023년 한국' 

이정식 장관은 "특정 주에 69시간 일하면 나머지 주에는 그만큼 연장근로가 줄어든다"고 말했다. 영국의 '주 60시간'을 규정한 1850년 공장법보다 9시간이나 길게 일하라고 2023년의 대한민국 노동자들을 다그치는 셈이다.

이번 주에 69시간을 일한다는 의미는 일주일 내내 하루도 쉬지 않고 매일 9.6시간씩, 즉 10시간 가까이 일한다는 뜻이다. 일요일 하루를 쉬면, 엿새 동안 일하므로 하루 11.5시간, 즉 12시간 가까이 일해야 한다. 주말 이틀을 쉬면, 닷새 동안 13.8시간, 즉 14시간 가까이 일해야 한다.

이정식 장관 말처럼 이번주와 다음주로 '주 69시간'을 나누어 실시한다면 그나마 사정은 낫다. 지금 윤석열 정권이 추진하는 것은 월이나 분기로 하겠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번 달 내내 주 69시간, 혹은 이번 분기(3개월) 내내 주 69시간이 가능해지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주 69시간제', 법무법인 김앤장은 가능 

현재 우리나라의 법정 기준인 주 40시간을 기준으로 할 때, 이정식 장관의 말대로라면 이번 주에 69시간을 일할 경우 다음 주에는 11시간만 일하면 된다. 한 달을 네 주로 잡을 때, 이번달에 276시간을 일할 경우 다음달에는 44시간만 일하면 된다.

주 69시간제를 두고, 한덕수 국무총리는 "집중 근로시간에는 집중적으로 일하고, 이후에는 충분한 휴식을 보장해 근로자의 건강권을 보장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아마도 그는 법무법인 김앤장의 고문으로 활동하던 시절의 경험을 상기한 듯하다.

한 총리는 4년 4개월 동안 고문으로 일하며 그 댓가로 18억원을 받았다. 이는 한달에 3461만 원으로 일반 노동자의 연봉과 맞먹는다.

대한민국의 모든 사업장이 김앤장 같은 기득권층의 직장과 같은 조건이라고 믿는 이정식 장관은 "돈은 그대로 받고, 근로시간은 줄고, 선택권은 확대되는데 어떻게 장시간 노동을 조장한다고 주장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너스레를 떨고 있다.

이번 주 굶고 다음 주 폭식하면 건강에 좋다?

'이번 주 몰아서 일하고 다음 주 몰아서 쉬면 된다'는 윤석열 정권 인사들의 논리는 '이번 주 굶고 다음 주 폭식해도 건강에 이상 없다'는 말처럼 터무니 없는 것이다.

산업혁명이 한창이던 1817년 영국의 자본가 로버트 오언은 인간의 조건으로 '8시간 일-8시간 레크리에이션(recreation)-8시간 수면'을 정식화 했다. 그로부터 백 여년 후인 1919년 출범한 국제노동기구(ILO)는 미국의 수도 워싱턴에서 열린 창립대회에서 제1호 협약을 만들었다. 협약의 이름은 '근로시간의 규제'(the regulation of working time), 그 내용은 근로시간을 하루 8시간, 주 48시간으로 제한하는 것이었다.

WHO "주 55시간 이상은 위험"

2021년 5월 세계보건기구(WHO)가 ILO와 공동으로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45~74세 노동자를 대상으로 수행한 연구에서 주 55시간 넘게 일할 경우 주 35~40시간 일할 때보다 뇌졸중 위험은 35%, 허혈성 심장질환으로 죽을 위험은 17%나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관련 사망자 대부분이 60~79세에 죽었다. 이는 장시간 근무의 부작용과 후유증이 현역으로 일할 때가 아니라 은퇴 후에 집중적으로 나타난다는 사실을 뜻한다. 다시 말해 현행 고용관계를 중시하는 산업재해 통계로는 그 실체를 파악할 수 없는 사안인 것이다.

이런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WHO는 "주 55시간을 넘지 않도록 각국 정부들이 근로시간의 최대치를 제한하고 강제적인(mandatory) 연장근로를 금지하기 위한 법령과 정책을 도입하고 집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WHO-ILO 보고서가 검찰총장 출신 윤석열 대통령과 노동운동가 출신 이정식 장관에게 주는 교훈은 노동자를 아무리 쥐어짜더라도 그 최대치는 '주 최대 69시간'이 아니라 '주 최대 55시간'이라는 사실이다.

펜을 놓으며 독자 여러분께 질문 하나 던진다. 3.1운동이 일어난 해인 1919년 ILO가 채택한 '하루 8시간-주 48시간' 협약 제1호를 대한민국 정부는 비준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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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효원

택시노련 기획교선 간사,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사무국장, 민주노동당 국제담당, 천영세 의원 보좌관으로 일했다. 근로기준법을 일터에 실현하고 노동자가 기업 경영과 정치에 공평하게 참여하는 사회를 만들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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