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작 시급 400원을 위해 올해도 싸운다

[기고] 엄마이자 딸인 그들의 투쟁, 미래 위한 분투

나는 덕성여대 청소노동자 김은옥 씨의 이야기를 들으며 10년 전에 보았던 영화 <위로공단> 속 선경 씨를 떠올렸다. 영화 속 그를 직접 만나러 갔을 때 그는 담담하게 자신이 마침내 도달하게 될 죽음의 형태를 이야기했다. 그는 인터뷰 내내 누르던 울음을 우르르 쏟아내면서, 또 한편으로는 체념한 표정으로 내게 그런 이야기를 했다.

"지금처럼 급여를 받아서는 미래가 없는 거죠. 노후를 준비하기 어려우니까. 가끔 생각해보면 너무너무 막막해요. 살다 살다 안 되면은 정말 죽어야겠다. 죽어야 할 수도 있겠다."

그는 불행을 예감하고 있었다. 불행보다는 불행에 대한 예감이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 당시의 나는 양 무릎을 붙이고 그녀의 이야기를 가만히 따라가면서, 그녀가 저토록 평정을 찾고 이야기를 할 수 있기까지 어떤 과정들을 거쳐 왔을지를 가늠해보았었다.

남편과 사별하고, 장애를 가진 두 딸, 그리고 구순이 넘은 어머니를 부양하며 살아가는 김은옥 씨는 꼭꼭 눌러놓았던 삶을 가쁘게 쏟아내다 문득 ‘죽음’이라는 단어에 도달하자 그만 말을 멈추었다. 나는 은옥 씨의 이야기에서 10년 동안 내 안에 맺혀있던 선경 씨의 울음이, 울먹이는 목소리가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사는 게 너무 힘드니까, 엄마하고 나하고 딸내미들하고 삼대가 부둥켜안고 우리 같이 죽자는 이야기까지 했어요. '우리 죽으면 서로 이런 마음 아픈 모습들 보지 않아도 되잖아.' 하면서요."

내가 이렇게 힘들게 살아가는 것을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보이는 것, 그리고 그 사람들이 마음 아파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 서로의 고통을 알면서도 어쩔 도리가 없는 것. 고통의 내용이란 그런 것이다. 늘 '낭떠러지' 앞에 사는 것 같다는 선경 씨의 말이 떠올랐다. 저임금이 만든 가난의 굴레가 그들을 '낭떠러지' 앞으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 은옥 씨의 구순이 넘은 어머니는 자신과 함께 늙어가는 딸을 달래고 딸은 어머니를 또 어루만지며 낭떠러지 앞에서 간신히 서로를 붙들면서 살아남았다.

"우리 애들이 날 쳐다보고 있잖아요. 그리고 백 살에 가까운 우리 엄마가 나를 쳐다보고 있잖아요. 엄마에게 효도는 못해도 내 마음이라도 전해야 하잖아요. 나 정말 열심히 살아야 해요."

▲덕성여대 청소노동자들이 덕성재단 이사회에서 굳게 잠근 문 앞에서 면담을 요구하고 있다.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은옥 씨는 해를 넘겨 진행되고 있는 자신들의 시급 400원 인상 투쟁을 어떤 절박함 속에서 이어가고 있는 것인지를 이야기하고 싶다고 했다.

"우리가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시급 400원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덕성여대 청소노동자들에게 던진 "고작 400원 인상인데 인상 안 하면 안 돼요?" 와 같은 악플은 그녀의 삶을 통해 처절하게 반박된다.

고작(?) 시급 400원 인상의 의미

덕성여대 청소노동자들은 작년 봄부터 시급 400원 인상 투쟁을 시작했다. 그 투쟁이 해를 넘겼다. 9일간의 파업투쟁과 150여일의 천막농성 투쟁을 진행했지만 덕성여대 총장은 400원 인상과 퇴직자 미충원을 통한 구조조정을 맞바꾸자는 안을 고집하며 교섭에조차 제대로 응하지 않았다. 총장은 고작 시급 400원을 못 올리겠다고, 최저임금보다 조금 더 얹어준다고 큰소리를 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재정문제를 들어 올해 청소용역비를 4억7000만 원 감액하겠다면서도 기관장업무추진비는 되레 700만 원 증액했다. 바로 이것이 덕성여대 총장이, 그리고 이 사회가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를 대하는 태도다.

이 시급 400원이 여성노동자들의 삶에 미치는 영향은 지대하다. 은옥 씨는 작년 말, 철야농성을 위해 어머니와 장을 보러 집에서 먼 마트까지 나갔다. 조합원들과 나누어 먹을 나물 반찬을 위해 시금치 석 단과 무 두 개를 사서 집으로 돌아오는데, 불편한 걸음으로 한사코 버스를 타겠다는 어머니를 만류해 택시를 탔다.

"엄마가 버스 타겠다는 걸 내가 우겨서 택시를 타고 왔어요. 내가 한 푼을 안 쓰더라도 엄마를 편하게 오게 하고 싶어서요."

또 어느 날의 은옥 씨는 딸에게 폐가 될까봐 어머니가 자신의 장례비용 500만 원을 저금해두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엄마 앞으로 노령연금하고 보상금이 조금 나와요. 한 달에 한 80만 원 되나 봐요. 엄마는 내가 벌어온 돈 안 쓰려고 해요. 당신이 받는 그 돈으로 뭐든 쓰시려고 하죠. 그러다보니 당신이 모아 놓은 돈이 거의 없어요. 그런 엄마가 나 모르게 500만 원을 모아놨다고 하더라고요. 당신 돌아가신 후에 초상 치를 때 내가 힘들까봐 돈 보태라고, 또 오는 손님들 차비라도 주라고."

은옥 씨는 어머니가 그 통장을 이야기했을 때 너무 마음이 아팠다고 했다. 가장으로 생계를 책임지기에도 버거운 딸이 자신의 장례비용 때문에 애를 먹을까봐 없는 돈을 차곡차곡 모아온 어머니의 마음이 사무치도록 아팠다고 했다.

▲덕성여대 청소노동자 투쟁을 지지하는 졸업생들과 덕성여대 청소노동자들이 서로 부둥켜안으며 응원과 감사를 전하고 있다.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미래'라는 시간을 되찾기 위해

저임금 착취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는 여성노동자들에게 가난은 삶의 핵심적인 내용이다. 낭떠러지 앞에 내몰린 사람들에게는 미래라는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 당장의 생존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고작 시급 400원 인상이, 하루 커피 값도 안 되는 그 돈이 은옥 씨의 삶에 미치는 영향은 지대해질 수밖에 없다. 미래가 없는 삶과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삶은 그야말로 까마득한 차이다. 그야말로 '삶'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은옥 씨의 어머니는 고생하는 딸을 위해 구순이 넘은 나이에도 가사노동과 돌봄 노동을 돕고 있다. 올해 서른여덟 되었다는 큰 딸은 장애 1급, 작은 딸은 장애 3급이다. 작은 딸이 직장을 얻어 일을 하고 있지만, 장애인은 최저임금 적용 제외 대상이어서 용돈도 되지 않는 수준의 급여를 받고 있다. 그나마도 구순이 넘은 어머니의 가사노동과 돌봄 노동이 있기에 이렇게 전일제 근무가 가능했다고 은옥 씨는 말했다.

덕성여대 청소노동자들 가운데에는 은옥 씨처럼 생계부양자가 대다수다. 남편과 사별했거나, 질병이나 퇴직으로 남편이 일을 할 수 없는 경우, 나머지 가족구성원들의 삶을 이 청소노동자들의 임금에 기대고 있는 것이다.

내가 만난 여성노동자들은 가난이라는 단 하나의 화두를 벗어나기 위해 평생을 일했다. 단 한 순간도 일하지 않은 날들이 없다. 젖먹이를 재워놓고 인형 눈을 붙였고, 아이들이 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는 일당 1만3000원짜리 광고 끼는 아르바이트를 뛰었다. 요구르트 배달을 하다가, 카드 배달을 하다가 어느 누구 엄마에게 소개 받아 청소 일을 하게 되었다. 쇠로 된 무겁디무거운 책상을 들어 옮기며 걸레질하느라 나도 모르게 들어있는 멍을 집에서 발견하던 날들이, 폭우가 쏟아지는 날이면 비가 새는 강의실에서 양동이로 물을 퍼내던 날들이 고통스럽기도 했지만, 너무나 하기 싫었던 화장실 청소를 하는 노하우를 터득해나갔던 날들을 떠올리면서 이제는 웃을 수 있게 되었다.

관리자로부터 전기 좀 아껴 쓰라는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청소노동자들은 강의실마다 돌아다니면서 켜진 불 다 끄고, 쓰레기봉투에 조금이라도 더 눌러 담으려 애쓰고, 머리카락 한 올을 주우려고 무거운 쇠 의자 밑을 기어 다니며 걸레질을 한다. 그들은 자신의 노동에, 그리고 자신들이 노동하는 이 공간에 이렇게나 최선의 마음을 다하고 있다. 이런 노동자들의 노동의 가치를 최저임금 속에 가두는 이 사회가 과연 공정한가.

생생하게 살아남기

영화 <미씽-사라진 두 여자> 속에 등장하는 여성 주인공들은 어느 날 홀연히 사라지거나, 사라진 것들을 찾아 헤맨다. 영화의 말미에 마침내 드러나는 그녀들의 이야기는 처절하다. 그녀들은 단지 살아남기 위해 애쓸 뿐이지만, 그녀들에게 남겨지는 건 폭력과 가난, 그리고 상처들이다. 사회가 그녀들에게 부여한 '여성성'은 삶 전체를 희생해 아이를 양육하는 '엄마', 혹은 폭력과 학대도 견디는 순종적인 '아내'이다. 이 모든 폭력적 의무들에도 불구하고, 일터에서는 그녀들에게 이 모든 의무들이 마치 없는 것처럼 일에 매진할 것을 명령한다. 그리고 여성들이 남성 중심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 ‘미스터리’라는 장르 속에 감추어진 여성들의 실종은 이 사회 속에 살아가는 여성들의 필연적인 상실과 결핍을 상징적으로 드러내 보여준다. 여성들은 이 기나긴 자본주의 체제의 집권기가 여성에게 부여한 이 폭력과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죽거나 사라져왔다.

오늘 115주년 세계 여성의 날, 콜센터 노동자 선경 씨의 목소리도, 청소노동자 은옥 씨의 목소리도 거리에 우렁우렁 울려 퍼졌다. 차별을 말함으로써 차별을 타파하기 위해 외쳤다. 이렇게 우리는 서로의 손을 꽉 붙들고 끝끝내 살아남을 것이다. 그리고 115년 동안, 아니 그 이상의 시간을 여성노동자들이 광장에서 외쳐왔던 차별의 내용을 바꾸기 위해 내내 소리칠 것이다. 그대들아. 부디 사라지거나 죽지 말고 함께, 생생하게 아주 생생하게 살아남자.

▲덕성여대 청소노동자 투쟁 승리를 위한 서울지부 집중집회에서 만난 김은옥씨.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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