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힘들었을 때요? 동료 아닌 '여성'으로만 볼 때죠"

[인터뷰] 한국철도공사 철도차량 정비원 하현아 씨

1908년 미국 뉴욕 한 피복회사의 열악한 작업장에서 146명의 여성노동자들이 불에 타 죽는 참혹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분노한 여성노동자 1만 5천 명이 1908년 3월8일 뉴욕 한복판에 모여 여성 노동자들의 인간답게 살 권리를 외쳤습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제정된 날이 바로 3월 8일, 세계여성의날입니다.

현재를 사는 한국 여성 노동자들의 삶은 어떨까요. 통계청이 발표한 '2022 통계로 보는 남녀의 삶'의 통계를 살펴보면, 2021년 여성 고용률은 51.2%, 남성 고용률은 70%입니다.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회원국 평균(61%)보다 한참 낮은 수준입니다. 또한 한국의 성별임금격차는 OECD 가입을 했던 1996년부터 26년째 1위라는 불명예를 벗지 못하고 있습니다. 2021년 기준 성별임금격차는 31.1%로 남성이 100만원을 받을 때 여성은 68만 9000원을 받는 셈입니다.

세계여성의날을 맞아 노동만으로도 충분히 힘든데, 편견과 차별까지 견뎌야만 했던 여성 노동자들을 <프레시안>이 만났습니다. 특히 여성 노동자가 적은 '남초 직군'에서 치열하게 살아남은 여성 노동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의 일터는 각기 달랐지만, 이들이 느낀 차별과 편견은 비슷한 형태로 나타났습니다. 철도 정비원, 화물차 기사, 타워크레인 기사, 조경 노동자로 일하고 있는 여성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편집자

몸집이 크고 긴 철도는 여러 노동의 집약체다. 철도를 운전하는 기관사, 역과 기차 안을 운영하는 역무원, 열차의 연결과 분리 업무를 담당하는 수송원 그리고 열차의 정비를 담당하는 정비원을 비롯해 많은 이들의 노동이 필요하다. 특히 큰 철도를 정비하기 위해서는 힘과 기술이 필수다.

<프레시안>은 20년 동안 한국철도공사에서 철도 정비사로 일해온 여성 노동자인 하현아 씨를 지난달 21일 만났다. 수색역 인근에 있는 한국철도공사 서울차량 차고지에서 만난 하 씨는 자신의 키에 두 배나 되는 기차가 서 있는 차고지를 자신의 일터라고 소개했다. 서울차량사업소에서 철도 정비를 담당하는 180여 명 중 여성 정비 노동자는 8명에 불과했다.

우연한 계기로 철도 정비 업무를 시작하게 된 그는 거대한 기차를 정비하기 위해 온몸의 무게를 실어 가며 일을 했다고 했다. 하 씨는 "온몸으로 달라붙어서 온몸의 무게를 실어서 했다"며 "팔 힘으로는 부족한 부분이 있어서 몸의 무게로 힘을 실어서 하다 보니, 정말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기차의 먼지와 기름에 범벅이 된 적도 있었다"고 말했다.

▲ <프레시안>은 지난달 21일 20년 동안 한국철도공사에서 철도정비사로 일한 하현아 씨를 만났다. ⓒ황지현

온몸을 써도 힘에 부치는 상황보다 힘들었던 것은 심리적인 압박감이었다. 긴장을 하며 출근했다는 하 씨는 "내가 1인분을 다하지 못하는 것 같은 자괴감이 드는 게 가장 힘들었다"며 "어떤 남성 동료는 배려해준다고 내가 할 일조차 도맡아서 다 해주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는 그 동료는 선의에 의해서 도와주었지만, 나는 할 수 있는 일조차도 못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 같은 자괴감이 들었다"고 회상했다.

자신을 대신해서 일을 해주는 동료를 보며 자괴감이 들었던 이유는 동료들이 자신을 동등한 동료가 아닌 '여성'이라는 존재로만 바라보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나를 같이 일하는 동등한 동료가 아닌, '여성'으로만 보는 것 같아서 힘들었다"며 "제가 할 수 있는 일이고, 부딪히면서 해봐야 더 잘 할 수 있는 일인데 배려한다는 이유로 제 일까지 다 하는 것은 참 싫었다"고 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하 씨는 근력 운동을 했고, 더 많은 업무에 '덤비듯' 뛰어들었다. 그렇게 일을 하다 보니, 정비 일은 힘으로만 되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하 씨는 "일을 해보니 근력도 중요하지만 요령, 일머리가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하다 보니 힘으로 되지 않아도 될 때가 있다"며 "미숙하거나 못하는 일에 '여성'이라는 꼬리표가 붙지 않도록 더 오버해서 일을 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남초 직군인 동시에 도제식으로 일을 배우는 철도 정비 분야의 남성중심문화에 살아남기 위해 다른 남성들처럼 선배를 '형'이라고 불렀다. 또, 부당하고 차별적인 상황에는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참기만 했던 시절도 있었다고 했다. 하 씨는 "솔직히 처음에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 지를 몰라서, 웃어넘겼다. '갑분싸'(갑자기 분위기 싸해지는 상황) 만들기 싫었던 것 같다"고 했다. 참지 못하고 불쾌감을 표시해 '왕따'가 된 적도 있다고 했다.

하 씨는 노동조합으로 인해 남성 중심의 문화가 변했다고 말했다. 그는 "사업소도 마찬가지고 회사로서도 성인지 교육이나 노조 차원의 교육이 많아지면서 조직 문화 전체의 감수성이 달라졌다"며"노조는 남성중심적인 문화에서도 여성이 살아남을 수 있도록 함께 싸워줬다"고 했다. 그러면서 남성들도 "행동이나 말에 대해서 조심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평등한 일터가 되기 위해 하 씨는 더 많은 여성의 존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더 많은 여성의 존재가 필요하다. 그리고 존재들이 개별화되지 말고 연대해서 함께 목소리를 내어야 한다"며 "여성들이 자기주장을 좀 많이 하고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리고 "여성들이 곳곳에서 계속 일을 하면서 생존했으면 좋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다음은 하현아 씨와 인터뷰 주요 내용이다.

▲ <프레시안>은 지난달 21일 20년 동안 한국철도공사에서 철도정비사로 일한 하현아 씨를 만났다. ⓒ황지현

"정비를 담당하는 직원 수는 180명, 여자는 8명"

프레시안 : 본인과 하는 일을 소개해달라.

하현아 : 한국철도공사 코레일 서울 차량 사업소에서 20년째 차량 정비 업무를 하고 있는 하현아다. 입사는 2003년도에 했고 지금은 ITX 새마을, 무궁화호 열차를 정비하고 있다.

프레시안 : 하루 일과가 어떻게 되나.

하현아 : 4조 2교대로 교대근무를 하고 있어서 4일 주기로 주간, 야간, 비번, 휴일 이렇게 업무를 하고 있다. 기차가 입·출고되는 시간표에 맞춰서 하루 일과가 돌아간다. 기차가 출고 될때는 기관사와 합을 맞춰 기차 운영에 문제가 없는지 제동 시험을 한다. 입고된 열차들에는 열차의 정비를 요청하는 내용을 확인해서 정비를 한다. 또 3개월, 6개월마다 등 일정 기간마다 열차를 정기적으로 수선을 하기도 한다. 야간으로 근무하는 날은 저녁 6시 30분에 출근해서 다음 날 오전 9시 10분에 퇴근한다.

프레시안 : 철도 정비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나.

하현아 : 사실 특별한 계기는 없다. 2003년도에 공기업 시험을 본 거다. 역무는 하늘의 별 따기처럼 어렵다고 해서 정비로 들어오게 됐다.

프레시안 : 철도 정비를 하는 여성 노동자 수는 얼마나 되나. 비율이 궁금하다.

하현아 : 우리 사업소의 경우 무궁화호와 ITX 새마을호 등의 정비를 담당하고있고, 직원 수는 180명 정도인데 여자는 7명 정도 된다. 최근에는 정비 쪽에 젊은 여성들도 2명 들어왔다. ktx가 개통하기 전까지는 훨씬 많았는데 무궁화 비율이 줄고 ktx가 늘어나면서 직원 수가 줄었다. 여성 비율은 적은 편이다.

프레시안 : 여성 비율이 아주 낮다. 관리직급에는 여성이 얼마나 분포해있나.

하현아 : 저희는 관리직급에 여성이 없다. 현장에 있는 게 더 편하기도 하다. 하지만 저랑 동기인 남성에게는 관련한 진급 혹은 교육기회를 제안하는 관리직이 있지만 제게는 제안하지 않았다.

프레시안 : 사업소를 둘러보니 열차가 크고 다양하다. 일을 하면서 고충은 없었나.

하현아 : 기본적으로 교대근무이기 때문에 생활패턴이 불규칙하다. 중량물을 취급하니 근력이나 힘에 부친다. 무거운 장비를 취급할 때는 힘에 부쳤다. 우리 사무소는 공동체 의식이 강해서 도움을 요청하면 도와주지 않는 직원은 없지만, 처음에는 도움을 요청하는 것조차 힘들었다. 내가 1인분을 다하지 못하는 것 같은 자괴감이 드는 게 가장 힘들었다. 어떤 남성 동료는 배려해준다고 내가 할 일조차 도맡아서 다 해주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는 그 동료는 선의에 의해서 도와주었지만, 나는 할 수 있는 일조차도 못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 같은 자괴감이 들었다. 그게 처음에 너무 컸다. 지금은 경력이 어느 정도 차고 지난 일이니 편하게 말하는 것이지만, 처음에는 회사에서 내 몫을 못할까 봐 출근하면서부터 긴장을 했다.

이런 일도 있었다. 야간작업 중에 열차끼리 붙이고 떼는 작업을 입환작업이라고 하는데, 이 일을 어쩔때는 혼자 하게 되기도 한다. 그래서 내가 이쪽의 입환을 하지 못하면 다른 동료가 또 와야 하니까, 그렇게 안 하려고 온몸으로 달라붙어서 온몸의 무게를 실어서 했다. 팔 힘으로는 부족한 부분이 있어서 몸의 무게로 힘을 실어서 하다 보니, 정말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기차의 먼지와 기름에 범벅이 된 적도 있었다. 그렇게라도 해야지만 버틸 수 있었다.

▲수색역 차량차고지에 붙여있던 중량물 취급주의 안내문 ⓒ황지현

프레시안 : 힘의 한계를 느끼면 막막했을 것 같다. 어떻게 극복하셨나.

하현아 : 그래서 웨이트 운동도 했다. 팔근육을 키워야 한다는 얘기를 일상적으로 한다. 팔을 보면서 '그렇게 해서 되겠어?'라고들 한다. 젊은 여성 동료들도 열심히 운동한다. 그렇지만 일을 해보니 근력도 중요하지만 요령, 일머리가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하다 보니 힘으로 되지 않아도 될 때가 있다. 시간이 지나면 익히는 것 같다. 지금은 괜찮게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쉽지 않겠지만 당당하게 동료 직원들의 도움을 요청했으면 좋겠다. 내게 도움을 줬던 다른 동료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오히려 열심히 하려고 하는 모습을 보고 더 돕고 싶다고 했다. 꼭 정비 일이 아니더라도, 일을 하다 보면 잘하는 사람이 있고 못 하는 사람이 있지 않나.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일을 못 해도 열심히 하면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과 비슷하다고 해야 하나.

가장 힘들었을 때? "나를 같이 일하는 동등한 동료가 아닌, '여성'으로만 볼 때"

프레시안 : 정비를 담당하는 직원 수는 180명인데 그중 여성은 7명밖에 안 된다고 했다. 일터에서 만난 남성중심적 문화라든지, 여성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있었나.

하현아 : 일단 철도 장비 규격도 표준 남성에 맞춰져 있어서 여성이 다루기 어려운 점이 있었다. 또한 여성에 대한 선입견도 있었던 것 같다. 지금은 조직문화가 많이 바뀌었지만, 과거에는 성희롱이라든지 성적 불쾌감을 불러일으키는 언동이 잦았다. 예를 들어 '남자친구 있어?', '애인 얼마나 사귀었어?' 라고 신상 터는 것부터 회식 가면 춤이랑 노래도 시켰다. 그리고 여성은 항상 웃고 밝게 그 작업장의 분위기를 띄워야 한다는 '분위기 메이커'로서의 역할도 주어졌었다. 워낙 남성이 많고 남성 중심적 문화가 과거에 있었기 때문에 직접적인 성희롱도 꽤 많았을 것이다.

제가 그중에서도 제일 싫었던 것은 제 일인데도 불구하고 제가 여자라는 이유로 앞서서 다 해주는 것이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고, 부딪히면서 해봐야 더 잘 할 수 있는 일인데 배려한다는 이유로 제 일까지 다 하는 거죠. 내가 일 다 해놨으니까 그냥 와서 쉬기만 하라고 하는 경우도 있었다. 좋은 분들이죠, 의도가 선하고 저를 편하게 해주려고 하는 것이지만 나는 오히려 불편하고 싫었다. 왜냐면 나를 같이 일하는 동등한 동료가 아닌, '여성'으로만 보는 것 같아서 힘들었다.

▲ <프레시안>은 지난달 21일 20년 동안 한국철도공사에서 철도정비사로 일한 하현아 씨를 만났다. ⓒ황지현

프레시안 : 그 부분이 참 힘든 것 같다. 무례하거나 차별적인 상황에서 나를 지키면서도 계속 일할 수 있는 방법. 현아씨는 어떻게 대처하셨나.

하현아 : 솔직히 처음에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를 몰라서, 웃어넘겼다. '갑분싸'(갑자기 분위기 싸해지는 상황) 만들기 싫었던 것 같다. 불쾌함을 표시해보기도 했다. 그러면 자기들끼리만 담배 피우러 나가고, 휴게실에서 얘기 안 하고 정말 '왕따'가 된 적도 있었다. 특히 옛날 선배들은 더 아저씨같은 분들이 많아서 이상한 농담도 많이 하고 그때는 진짜 참고 넘겼던 것 같다. 이제는 시간이 지나고 제가 경력이 쌓이면서 불쾌감도 적극적으로 표시할 수 있게 되었다. 사실 저는 노동조합이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사업소도 마찬가지고 회사로서도 성인지 교육이나 노조 차원의 교육이 많아지면서 조직 문화 전체의 감수성이 달라졌다.

프레시안 : 노조의 성인지 교육으로 일터의 분위기가 어떻게 바뀌었나.

하현아 : 행동이나 말에 대해서 조심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런 교육의 역효과로 '여자들하고 할 수 있는 얘기가 없다'는 펜스룰도 있었지만, 조직 차원에서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경계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먼저, 무례한 것, 하지 말아야 하는 것들을 공유하고 다음 단계에서는 어떤 대화가 오고 갈 수 있는지 익혀갔던 것 같다.

그리고 저는 후배들에게도 불쾌한 상황에서 자신의 의견을 솔직하게 이야기하라고 한다. 한 후배가 내게 어떤 선배가 "여자가 왜 그렇게 걸어? 조신하게 걸어야지"라고 말했다면서 기분이 나빴다고 이야기했다. 그래서 그 선배를 불러서 따로 그 후배의 의사를 전달했고 그 분도 그제야 아차 싶었다며, 사과를 했다. 간접적이라도 표현을 해서 사과를 받고 시정되는 경험을 통해 자신의 불쾌감을 표현할 수 있는 조금은 안전한 환경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 같기도 하다. 남성문화에 있던 남성들도 여성 직원들을 '여성'이 아닌 동등한 직원으로 인식하면서 할 말과 안 할 말을 가리는 훈련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일을 하다 보니 차별적인 상황이나 발언이 있을 때 '드세다'는 낙인이 찍히더라도 그때그때 불쾌감을 표현하는 게 훨씬 나은 것 같다. 그런 상황이 없다면 가장 좋겠지만...

프레시안 : 노조가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을 했다고 생각하나.

하현아 : 남성중심적인 문화에서도 여성이 살아남을 수 있도록 함께 싸워줬다. 지금은 조합에 여성국이 있다. 저도 여성위원회로 활동을 같이 했었다. 과거에는 성고충심의위원회에 신고를 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 여자들이 자기 주장을 많이 하지 않았을 때였다. 하지만 지금은 신고가 많이 들어오기도 하고, 가해자들이 징계를 받는다. 이 과정에서 노동조합이 피해자를 적극적으로 조력한다. 피해자를 만나서 구제하고, 가해자와 격리시킬 수 있도록 의견을 낸다.

남성 중심의 문화에서 살아남기 위해 입에 붙은 '형'이라는 호칭

프레시안 : 다른 동료들을 부를 때 '형'이라고 부르더라, 왜 그렇게 부르는지 물어봐도 되나.

하현아 : 아 그런 모습까지 보셨군요. 글쎄. 일종의 '생존방식' 같은 거라고 생각한다. 저희같은 경우 정비 업무를 배우는 과정이 도제식이다. 업무를 익히려면 선배들과 유대가 있어야 하니까, 남자들이 많던 일터다 보니 '선배'라고 부르기보다는 '형', '형님' 이렇게 부르는 게 일상이었다.

프레시안 : 공감이 된다. 한국문화에서 '오빠'라는 호칭이 갖는 성애적 맥락 때문에 일터에서는 더욱 그렇게 호칭하지 못하는 것 같다. 나를 '여성'으로만 보게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그렇게 하고 싶지도 않은 것 같다.

하현아 : 그렇다. 일터에서 남성 동료를 '오빠'라고 부르는 것은 상상도 해보지 않고 절대 쓰지 않는다. 그래서 살아남으려고 자연스럽게 나도 '형'이라고 불렀던 것 같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이 남성 중심의 호칭 문화를 어떻게 다르게 해볼 생각조차도 해보지 못했던 것 같다.

▲ <프레시안>은 지난달 21일 20년 동안 한국철도공사에서 철도정비사로 일한 하현아 씨를 만났다. ⓒ황지현

프레시안 : 남성 중심의 문화에서 살아남기 위해 남성을 흉내 내는 방식을 차용한 것 같다. 그 견고한 문화를 어떻게 돌파할지 개인으로서는 참 어려운 문제 같다.

하현아 : 부끄럽지만 그런 것 같다. 맨 처음 일을 시작할 때부터 '형'이라고 불렀고, 그렇게 불러야만 나를 어떤 보호 해야 할 대상으로 보지 않고 어떤 성적인 대상으로 보지 않으니까. 나도 오히려 더 '남성적'이라고 생각하는 행동을 했던 것 같다. 어떤 어려운 일이 있어도 씩씩한 척을 더 많이 했고, 눈물겹게 힘든 일이 있어도 절대로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프레시안 : 여성들이 남성 중심의 일터에서 인정받기 위해 그런 규율을 내면화하는 것 같기도 하다.

하현아 : 맞다. 내부적으로 나를 계속 다그치고 일부러 더 일에 적극적으로 덤볐다. 미숙하거나 못하는 일에 '여성'이라는 꼬리표가 붙지 않도록 더 오버해서 일을 했던 것 같다. 남성들은 전혀 의식하지 않는 부분들을 출근 하면서부터 걱정하기도 하고, 내면적으로 나를 더 다그쳤다. 그래서 여기저기 많이 아팠던 것 같다. 공구 자체가 무겁다 보니 후배들도 보면 손목터널증후군은 물론이고 몸이 '너덜너덜'해진다고 표현하는데, 이를 내색하진 않는다. 오히려 더 강하게 보여야 하니까.

프레시안 : 힘들진 않았나.

하현아 : 많이 힘들었다. 강한척 하고 살아야 해서 그런 게 몸에 밴 것 같다. 일을 잘하는 것처럼, 내가 이 일을 다 완수해낼 수 있는 사람인 것처럼 항상 씩씩한 모습까지 보여야 하니까 힘들었다. 어떤 날은 힘이 들고, 못할 수도 있는 건데 그게 '여자'라는 꼬리표가 될 까봐 두려웠다.

▲ <프레시안>은 지난달 21일 20년 동안 한국철도공사에서 철도정비사로 일한 하현아 씨를 만났다. ⓒ황지현

"일을 하는 여성들이 곳곳에서 계속 생존했으면 좋겠다"

프레시안 : 코레일의 일은 아니지만 서울교통공사에서 발생한 신당역 살인사건은 같은 철도노동자의 입장에서 어떻게 보셨나.

하현아 : 저희도 코레일 자회사에 역무 외주를 준 역에서 역무원이 화장실에서 불법촬영을 했던 사건이 보도된 적이 있다. 그때 이런 성범죄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켰었다. 이번 신당역 사건에서 놀라웠던 것은 그 여성 노동자의 동선이 노출되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순회를 혼자하는데, 서울교통공사뿐 아니라 저희도 그렇게 하고 있다. 사람이 없어서 밤이든 낮이든 너무 당연하게 혼자서 하고 있다. 스토킹 살해범이 마음만 먹으면 동선을 확인해서 언제든지 범행을 저지를 수 있는 일이었다. 이 사건은 서울교통공사뿐 아니라 저희한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프레시안 : 치열하게 20년 동안 한 분야에서 일을 하셨다. 자부심을 느끼는 순간은 언젠가.

하현아 : 이렇게 남성들 틈에서 살아남아 계속 정비를 하는 것 자체로 자부심을 느낀다. 저는 철도 자체가 좋다. 서민들의 발이라고 알려진 '새마을' 호를 정비하는 것도 좋고, 우리나라에서 철도라는 운송수단이 지니는 공공성도 자랑스럽다. 좀 아날로그스럽긴 하지만, 낭만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 속에서 일하는 것도 좋고 뿌듯하다.

프레시안 : 일터에서 이루고 싶은 목표나 꿈이 있나.

하현아 : 일단 지금은 건강하게 정년까지 일을 마치는 것이 제일 큰 목표다.

프레시안 : 일터가 평등하다고 생각하나.

하현아 : 저는 20년을 일해서 일터가 편하고 익숙하지만, 평등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주어지는 기회도 다르다. 예를 들어 관리장의 시험을 볼 수 있는 조건이 충족 되었을 때, 남성에게 더 그 시험을 보라고 추천을 한다. 여성들에게는 한 번 해보라고 권하지 않는다. 저도 그런 조건을 갖췄지만 저에게도 그런 권유를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그런데 제 또래의 동기나 같은 나이의 친구들에게는 권유를 한다. 저는 사실 관리직을 하고 싶진 않지만, 회사에서는 제가 관리직을 하고 싶지 않다는 저의 선호를 알지 못하지 않나. 그리고 이미 보이지 않나. 여성 임원의 수, 여성 관리직의 수가 참 적다.

프레시안 : 평등한 일터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하현아 : 더 많은 여성의 존재가 필요하다. 그리고 존재들이 개별화 되지 말고 연대해서 함께 목소리를 내어야 한다. 개인으로서의 여성은 고립되거나, 초년생의 저처럼 차별 속에서 버티게 된다. 개별화되지 말고 연대의 힘으로, 함께 목소리를 내야 한다.

프레시안 : 세계여성의날을 맞아 동시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에게 해주실 말씀이 있다면.

하현아 : 우리나라는 아직도 멀었다(웃음) 여성들이 자기주장을 좀 많이 하고 행복했으면 좋겠다.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알아주지 않고, 먼저 해 주는 건 아무것도 없다. 제가 그렇게 살아와서 그럴 수도 있다. 서로 만나서 이런 이야기를 많이 하고 하나라도 작은 실천을 해야 지만 조금 평등한 세상을 만들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제안조차 벅찬 여성들도 있을 것 같다. 얼마전 고교 현장 실습생의 죽음을 그린 영화 '다음 소희'를 보았다. 그나마 저는 정규직이고 공기업의 직원이고 노조도 있고, 누군가 볼 때는 배부른 상황일지도 모른다. 비정규직에 젊은 여성이라면 그들이 받는 차별에 쉽사리 목소리를 낼 수 있나. 목소리를 내라고 하지만, 그것도 어떻게 보면 제 위치에서 가지고 있는 기득권 속에서 할 수 있는 일일지 모른다. 그냥 여성들이 곳곳에서 계속 일을 하면서 생존했으면 좋겠다.

▲ <프레시안>은 지난달 21일 20년 동안 한국철도공사에서 철도정비사로 일한 하현아 씨를 만났다. ⓒ황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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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연

프레시안 박정연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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