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식 '강제동원 해법'은 반자유·반인권·반법치·반시장주의

[박세열 칼럼] '엄중한 한반도 정세'는 어떻게 '개인의 자유'와 거래됐나

윤석열 대통령의 뚝심. 대통령실과 여권에서 나오는 평가다. 재밌는 건 모든 사람들이 이번 '강제징용 대법원 판결 관련 해법'이 '윤 대통령의 의지'이고 '생각'이고 '추진력'이라고 입을 모은다는 점이다. 여당과 외교부를 비롯한 공무원들은 왜 그들 스스로 '업적'이라 전력으로 홍보하고 있는 이번 일의 처음과 끝에 윤석열 대통령이 있다고 말하는 것일까? 

일단 이런 문제는 이 글의 주제가 아니다. '해법'의 내용이야 언론에서 익히 따져왔던 것이기에 이 자리에서는 이런 결정을 발표하게 된 윤석열 정부의 '명분'에 대해 말해 보고자 한다. 정부가 발표한 '강제징용 대법원 판결 관련 정부입장 발표문'의 마지막 문단은 이렇게 끝난다. 윤석열 정부가 이런 결정을 '왜' 내렸는지에 대한 이유가 추상적이지만 함축적 언어로 담겨 있다.

"정부는 최근 엄중한 한반도 및 지역, 국제 정세 속에서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법치, 인권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가장 가까운 이웃인 일본과 함께 한일 양국의 공동 이익과 지역 및 세계의 평화 번영을 위해 노력해 나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강제동원 해법은 정부 발표문 속 언급된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법치, 인권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나라들"이 만들어내기엔 궁색한 결과물이다. 하나하나 따져보면 온갖 모순의 집합체이기 때문이다.

첫째, 자유민주주의의 핵심 가치 중 하나인 개인의 자유 문제에서, 강제동원 피해자 개인이 '강제력'을 통해 자유를 박탈당했고, 그 피해와 관련한 합당한 처우를 해달라는 요구, 즉 피해자 개인의 권리가 뭉개졌다. 이는 "자유민주주의라는 보편적 가치"에 입각한 일이라고 보기 어렵다.

둘째, 정부의 '발표문'에 적시된 대로, 한국의 대법원 판단을 두고 일본의 행정부가 '수출 규제'라는 반시장적 조치를 한 것에 대해, 한국 행정부가 한국 대법원의 판결을 사실상 제거, 일본 정부의 반시장적 조치에 사실상 스스로 굴복한 선례를 남겼다. 이는 "시장경제라는 보편적 가치"에 부합하지 않는다.

일본은 '수출 규제'가 '일본의 전략 물자가 북한으로 유입될 가능성'을 들어 안보의 문제라 주장, 강제동원과는 별개라고 일관되게 선을 그어왔는데, 한국은 WTO 제소했던 소송을 먼저 포기해 전 세계에 일본의 주장이 맞다는 인상을 줘 버렸다. 일본은 자국 전략 물자가 남한을 거쳐 북한으로 유입될 우려에 대한 구체적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으며, 현재까지 일본은 수출 규제라는 '반시장주의적' 행태에 대한 아무런 상황 변화도 없다.

셋째, 강제동원과 관련한 대법원의 판결을, 행정부가 사실상 무력화한다는 것에서 "법치라는 보편적 가치", 그 중에서도 행정, 사법, 입법의 3권 분립 원칙이 일그러졌다는 걸 부인할 수가 없다.

넷째, 법원 판결에 의해 가해가 입증됐는데 가해자는 가타부타 말이 없는데다 되레 떳떳하고, 피해자는 가해자로부터 직접적인 사과 한 번 받지 못하고 '덮으라'고 강제받는 상황을 "인권이라는 보편적 가치"에 부합한다고 말하기 어렵다.

엄중한 한반도 및 지역, 국제 정세라는 말은 어떤가. 구체적으로 명시하진 않았지만, 이 정부의 그간 언행에 따라 원인을 '북핵 위협'이라고 상정하자. 북한과 직접 협상의 전례가 없는 것도 아닌데, '상대의 성의 있는 조치'가 먼저라며 남북 대화를 외면해 온 정부는 어떤 정부인가. 이를테면 지난해 8월 15일 발표된 윤석열 대통령의 북한을 향한 '담대한 구상'은 대체 어디로 갔는가. 스스로 만든 해법을 차버리고, 영 반대편에 있는 일본을 향해 '담대한 구애'를 던진 것은 어떤 연유인지 알 길이 없다.

더 큰 문제는 강제동원 문제가 군사협력 문제와 연계돼 있는 것처럼 보이는 저 문구다. '엄중한 한반도 및 지역, 국제 정세'는 왜 '강제동원 해법'과 연결되어야 하는가? 강제동원 문제'가 해결이 안되면, 군사협력이 불가능한 일인가? 근본적으로 일본과 군사협력이 '엄중한 한반도' 정세를 다루는 유일한 해결책인가? 그 해결책을 위해 '엄중한 한반도'와 전혀 별개인 '강제동원 희생자' 문제를 제물로 올리는 게 "인권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는 국가가 할 일인가?

이 수많은 물음들을 남기고 있는 강제동원 해법이 결국 '인기 없는 해법'이란 걸 윤석열 정부도 알고 있는 것 같다. 윤 대통령은 "어차피 할 것 아니냐. 그러면 미리 매를 맞는 게 낫지, 내년 총선 앞두고 할 것인가"라는 말을 했다고도 하고(국민일보 3월 7일자), "윤 대통령이 한번은 식사자리에서 '지지율 1%가 나오더라도 (나라를 위해) 할 일은 하겠다'고 하더라. 이게 윤 대통령의 진심이구나 싶더라"는 여권 관계자의 발언이 보도되기도 했다.(뉴스1 3월 7일자). 지지율 1%를 각오할 '의지'가 이번 강제동원 해법 발표 추진에도 반영됐다는 의미다. '매'를 맞을 줄도 알았고, 지지율 1%도 불사하겠다고 한다. 국내 여론엔 신경 쓰지 않고 가겠다는 거다.

요컨대 모든 말이 다 껍데기다. 이런 모순투성이의 상황은 '결국 힘에 의한 논리에 세상이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대한민국 대통령이 자국민에게 스스로 '탈은폐' 해 준 셈이다.

외교에서는 '현상 유지'도 하나의 전략이 된다. 적절한 긴장감 속에 매듭지을 수 없는 일은 미루고, 매듭지을 수 있는 일은 매듭짓는 게 외교다. 윤 대통령의 외교 스타일에서도 '검사의 그림자'가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다. 이를테면 검사는 법률 판단의 주체가 아니다. 그러나 한국 검사는 마치 법률 판단의 주체처럼 행동한다. '수사의 목적은 유죄판결'이라는 건 검사가 수사 착수에서 판결까지 모든 것에 관여해, 끝내 '유죄'를 관철시켜야 한다는 한국 검사들만의 괴이한 논리다. 법률 판단 주체도 아닌 행정부가 법률 판단을 우회해 뭔가를 무력화 하는 것은, 윤석열 대통령의 행동에서 많이 목격된 것들이다. 화물노조의 '불법 파업 엄단' 때도 그랬고, 별건 수사로 점철된 현 정부 검찰의 스타일도 그렇다. 수사의 목적은 유죄라는 식, 외교의 목적은 해법이라는 식이다.

자신이 생각하는 '해법'을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희생시킬 수 있다며 불도저처럼 사안을 밀어붙이는 방식이 실패로 끝난 것은 지난 이명박 정부 시절 숱하게 목격해 왔다. 모든 것이 '의지'로 가능하다고 믿는 윤석열 대통령의 멘탈은 어쩌면 위험한 것일 수 있다. 문재인 정부 시절 있었던 남북협상을 돌이켜봐도, 당시엔 남북 정상간의 의지가 수위는 다를지언정 객관적으로 어느 정도 확인됐었고, 미국 정상의 의지도 확인되면서 일이 진행됐었다. 그런데 지금 한일 문제에선 자신이 가진 모든 패를 내 보여 주는 악수를 두고 있다. 외교의 장기 전략과 향후 발생 가능한 무수한 변수들은 '오늘'의 이 '해법' 아래서 고려 대상이 아니다. 단순한 전략이다. 지도자는 지나치게 신중할 필요도 없지만, 지나친 의지는 오히려 국가에 독이 될 수 있다.

당장 5월의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문제와, 일본산 수산물 수출 금지 문제는 어떻게 다룰 것인가. 그런 문제들에서도 '엄중한 한반도' 정세 때문에 대통령의 모종의 의지가 발현될 것인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스페인을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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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열

정치부 정당 출입, 청와대 출입, 기획취재팀, 협동조합팀 등을 거쳤습니다. 현재 '젊은 프레시안'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쿠바와 남미에 관심이 많고 <너는 쿠바에 갔다>를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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