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라왕 전세사기꾼, '누구'가 아니라 '어떻게'가 중요하다

[경제지리학자들의 시선] 세계의 주거불평등과 한국의 특수성

경제지리학에 대한 흔한 오해 중 하나가 지리적 다양성만을 추구한다는 단편적 평가이다. '서로 다르다'는 것은 모든 상황에 적용할 수 있는 일반적 논리에 비춰 '어떻게 다른지' 그리고 이 다름을 통해 일반적 논리를 어떻게 발전시킬 수 있는지 고민할 때 그 가치가 극대화된다. 경제지리학자는 시간과 장소가 없는 경제학적 모형에 공간적 맥락을 주입하고 새로운 모형으로 능동적 재해석을 시도한다.

지금은 금리 상승으로 주춤하지만, 지난 20여 년간 한국 사회의 가장 큰 화두는 '주택가격 상승과 이에 따른 주거불평등 악화'였다. 지난해 대선을 부동산 문제, 특히 주택가격 상승이 집어삼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모든 사태가 누구의 잘못인지를 놓고 치열한 정치적 논쟁이 벌어졌고, 일부 학자들은 여기에 기초자료를 제공했다.

그런데 지금의 주거불평등이 우리만이 일이 아니라면, 달리 말해 가장 큰 범인이 국내의 누군가가 아니라 세상이 돌아가는 전체 판이었다면 잘잘못을 가리는 정치적이고 소모적인 논쟁을 넘어 세상의 전체 판에서 한국의 특수성을 읽어내려는 학문적인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래서 이 글에서는 한국의 현실이 아니라 영미권의 '주거자본주의(residential capitalims)' 논의를 소개하려고 한다.

▲지난 8일 오후 9시 7분께 서울 관악구 부근 한 빌라 반지하에 폭우로 침수된 일가족 3명이 갇혀 신고했지만 결국 사망했다. 주민들에 따르면 사고가 난 빌라 바로 앞 싱크홀이 발생해 물이 급격하게 흘러들었고, 일가족이 고립돼 구조되지 못했다. 사진은 침수현장. ⓒ연합뉴스

잠깐의 주택소유 확대, 결국 민간임대 증가 

전체 이야기 시작에는 이례적인 저금리 기조가 있다. 1990년대 후반부터 경기침체에 빠지지 않기 위해 저금리 정책이 시행되었고, 그 기조는 최근 몇 달 전까지 계속되었다. 저금리 유동성은 자산시장, 특히 주택시장에 유입되어 주택가격을 급격하게 상승시켰다. 주택담보대출이 늘어나면서 부채를 동원한 주택수요가 증가했고 그 결과 주택소유율이 높아졌다.

그런데 이러한 주택소유와 주택가격의 동반 상승은 이전 고성장 호황기와는 그 구체적인 과정이 달랐다. 가장 결정적인 차이는 저성장으로 가계소득이 거의 정체되었다는 점이다. 원래 집은 가계소득을 모아서 구매하는 것이었다면, 최근에는 가계소득 정체로는 주택가격 상승을 감당할 수 없었고, 가계소득과 주택가격의 차이는 부채로 메꿔졌다.

물론 부채 확장이 무한정으로 계속되지 않았다. 가계소득은 정체된 상태에서 저금리 기조가 계속되면서 주택가격만 끝없이 올라갔고, 벌어지는 이 차이를 메꾸기 위해 부채도 동반 상승했다. 부채 확장이 한계에 이르러 더는 주택가격이 상승하지 않은 시점에 전 세계를 놀라게 한 2008년 세계금융위기가 터졌고, 더는 은행에서 돈을 빌리는 것이 쉽지 않았다.

신용 수축은 그동안 감춰져 있던 '주거 부담가능성 문제(housing affordability problem)'를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가계소득으로 주택을 살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주택을 사게 만들어서 주택가격을 계속 상승시켰던 것이 부채 확장인데, 은행이 갑자기 깐깐하게 굴어 더는 돈을 빌려주지 않으면 이제 쉽게 누구도 그 비싼 주택을 살 수 없게 된다. 집을 사지 못하면 어쩔 수 없이 남의 집을 빌려서 살아야 한다.

전체적으로 잠깐의 주택소유 확대와 결국의 민간임대 증가가 나타났다. 처음에는 가장 안정적인 점유형태인 주택소유가 늘어나는 듯 보였지만, 결과적으로 가장 불안정한 점유형태인 민간임대가 많아졌다. 이전보다 집을 사기가 어려워져 월세를 찾거나 잔뜩 부채를 껴안고 집을 샀다고 하더라도 2008년 세계금융위기로 빚을 갚지 못하면 주택소유에서 다시 민간임대로 튕겨 나가야 했다.

기성 집주인 세대와 청년 세입자 세대

그렇다고 세계금융위기 이후 모든 사람이 힘들었던 것은 아니다. 신용이 수축하였다고 해도 은행이 모든 사람에게 돈을 안 빌려준 것은 아니고, 주택가격이 상승을 멈추고 하락하기 시작했다고 하더라도 오른 만큼 떨어지지 않았다. 만약 주택가격이 본격적으로 상승하기 이전에, 즉 1990년대 후반에 집을 샀다고 하면 주택가격이 오른 만큼 자산을 축적하고 이를 담보로 은행에서 돈을 빌리기 쉬워진다.

여기서 점유형태 불평등은 세대간 불평등으로 전이된다. 위에서 언급한 1990년대 후반 또는 그 이전에 주택을 구매한 기성세대는 주택가격이 상대적으로 낮아진 위기 이후 최적의 투자 시점에 추가 주택을 구매하여 월세를 받는 집주인으로 발전한다. 반면에 이 시점에 주택시장에 최초로 진입한 청년세대는 높아진 주택가격 앞에서 주택소유의 꿈을 접고 세입자 신세를 시작하게 된다.

기성 집주인 세대(generation landlord)와 청년 세입자 세대(generation rent)는 사회 전체적으로 대립할 뿐만 아니라 한 집에서 집주인과 세입자로 직접적으로 대면하기도 한다. 여기서 '세대'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집을 사지 못해 평생 임대로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절박함이 일부 청년이 아니라 청년 다수가 겪는 일반적인 문제라는 것을 시사한다.

그런데 세대 간 불평등은 다시 세대내 불평등으로 발전한다. 모든 청년이 집을 사지 못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기성세대 중에서 주택으로 상당한 자산을 구축한 일부 부모는 자식에서 자산을 이전한다.

이처럼 출발선이 다른 일부 청년은 자신의 주택에서 거주하고 더 나아가서 집주인으로 청년 세입자 세대와 대립한다. 자산 불평등 대물림으로 세대와 주택의 불평등은 서로 얽히고설켜 복잡한 형태를 띤다.

주거불평등은 단순히 주택 부문으로 끝나지 않는다. 대부분의 가구가 소유한 가장 큰 자산이 주택이므로, 주거불평등은 곧 자산불평등이다. 집을 가지고 있으면 매 2년 또는 4년마다 이사를 안 해도 될 뿐만 아니라 주택가격 상승으로 가만히 앉아서 자산을 축적할 기회를 얻을 수 있다. 물론 가격은 오를 수도 떨어질 수도 있지만, 세입자는 주택을 통한 자산축적의 기회 자체를 박탈당한다.

▲ 주거자본주의 관련 흐름도 ⓒ이후빈

그렇다면 한국은? 앞으로는 어떻게?

지금까지의 이야기가 한국과는 거리가 먼 영미권만의 문제일까? 필자는 일부러 위에서 국가를 표시하는 용어를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 여기에 '영끌', '패닉바잉' 등과 같은 한국 특유의 용어를 적절한 문맥에 집어넣어도 별로 이상하지 않을 듯 하다. 물론 위의 이야기가 한국에 그대로 100% 적용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의 주거불평등을 제대로 대응하려면 '가계소득 정체 - 저금리 유동성 - 주택가격 상승'이라는 큰 판에서 한국이 구체적으로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를 꼼꼼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이때 가장 큰 무기는 '일반적 논리'와 '지리적 차이' 사이의 끊임없는 고민이다. 양자를 왔다 갔다 하면서 세계의 주거불평등에서 한국의 특수성을 모색하는 경제지리학자의 작업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그리고 저금리 유동성이 고금리 긴축으로 바뀌는, 달리 말해 세상이 돌아가는 판이 전환되는 현시점에서 일반적 논리와 지리적 차이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을 발 빠르게 업데이트할 필요가 있다. 최근 주목받고 있는 빌라왕 전세사기에서도 누가 잘못했는지 그 범인을 찾는데 매몰되는 경향이 있는데, 그런 사기가 가능했던 판이 어떻게 만들어질 수 있었는지에 대한 보다 넓은 시야가 요구된다.

이런 측면에서 필자는 전세자금대출에 주목한다. 한국은 2010년대 초중반 주택담보대출 규제를 풀었다가 주택가격 상승에 놀라 다시 조였고, 이에 따라 영미권과 같은 주택소유 확대는 없었다. 하지만 한국 고유의 전세는 서민을 위한 전세자금대출 확대에 힘입어 상당한 변화를 겪었다. 전세자금대출이 초래하는 새로운 주거불평등을 분석할 때 갭투자, 전세사기 등 눈에 보이는 문제를 깊게 이해할 수 있다.

■ 필자 소개 

이후빈 교수는 서울대학교 지리학과에서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확장과 저소득층 주거지역의 탈상품화’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국토연구원 주택·토지연구본부를 거쳐 현재 강원대학교 부동산학과에 재직 중이다. 주택금융화, 주거불평등, 주거정책이라는 주제를 놓고 세계와 한국 사이에서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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