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의료인들과의 소통이 절실합니다

[발로 뛰는 동네의사, 야옹선생의 지역사회 의료일지]

안녕하세요. 지역사회에서 진료실 안팎을 오가며 아픈 분들을 만나고 있는 동네의사 야옹선생입니다.

우리나라는 의료 제도의 특징 상 질환에 따라 여러 과에서 진료를 받을 수 있고, 일차 의료기관부터 삼차 의료기관까지 여러 기관들을 동시에 다닐 수도 있습니다. 제가 만나는 환자분들 중에도 고혈압약은 저에게, 고지혈증약은 대학병원에서 처방 받는 분, 허리 통증으로 정형외과, 재활의학과, 한의원을 돌아가며 다니는 분, 이비인후과에서 비염약을 먹어도 콧물이 계속 난다면서 감기약을 추가로 처방해달라는 분 등 다양한 분들이 있습니다.

이렇게 여러 의료기관들을 이용하면 편리할 수도 있지만 주도적으로 관리하고 조절할 수 있는 주치의가 없고, 의사들끼리 소통이 되지 않으니 제대로 치료가 되지 않는 상황이 생기기도 합니다.

고관절 골절 후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이 소변이 제대로 나오지 않고 입이 마르고 입맛이 떨어졌다 하여 방문 진료를 나가게 되었습니다. 약을 살펴보니 수술 부위 통증 때문에 정형외과, 내과, 약국 등에서 진통제와 근육이완제를 종류별로 열 한가지나 드시고 계십니다.

"아이구, 어르신. 이 많은 약을 어떻게 다 드시고 계세요?"

"이 약을 먹어도 저 약을 먹어도 아프니 어째유. 이것 저것 다 먹어 봐야제."

통증 조절이 안 되니 기분에 따라 약을 조합해서 드시고, 이렇게 약을 들쭉날쭉 먹으니 치료용량에 도달하지 못하여 통증 조절은 커녕 부작용만 자꾸 늘어나는 상황이 된 것이죠. 이분은 재택의료센터 대상자로 등록하고 제가 주치의가 되어 기존의 약물들을 조정하고 상황에 맞는 약을 꾸준히 쓰면서 통증이 많이 조절되었고, 약물 부작용도 줄었습니다.

ⓒ박지영

그럼 의사들끼리 소통이 안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선 의사들이 너무 바쁩니다. 의뢰서나 소견서를 통해 소통을 할 수 있으나 환자의 정확한 상태를 공유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정보를 담을 시간과 여유가 부족합니다. 게다가 환자에 대한 정보를 다른 의사와 공유하는 것이 법적으로 쉽지도 않습니다. 환자나 보호자를 통한 의뢰서나 소견서로 의견 교환은 가능하지만 의사들까지 직접 전화를 하거나 의견을 묻는 것은 개인정보 보호 문제로 불가능합니다. 결국 환자나 보호자가 중간에서 전달을 해야 하는데, 의사가 하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파악하기 어려워 중간에 말이 바뀌거나 중요한 정보가 빠지게 됩니다.

몇 해전 뇌출혈로 쓰러진 뇌병변 장애인이 수개월의 입원 생활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습니다. 처음에는 거동을 전혀 못하여 욕창도 생기고 인지기능도 떨어졌지만, 꾸준히 재활치료를 받고 관리를 하면서 몸 상태와 인지기능이 많이 좋아졌습니다. 문제는 환자의 상황과 맞지 않게 계속 같은 약을 받아오는 겁니다. 어느 날 혈당이 너무 높게 나와서 당뇨 검사를 했더니 당뇨 진단기준을 훌쩍 넘습니다. 전후 상황을 살펴보니 식사량이 늘면서 체중이 증가하여 당뇨가 생긴데다, 증상이 없는데도 퇴원할 때 받아온 달콤한 기침 물약을 수개월 째 계속 드셔서 혈당이 높게 나온 것입니다. 원래 약을 받으시던 병원 의사에게 결과지와 소견서를 보여주고 약을 조절 받도록 하였으나 다음 방문 때도 약이 전혀 조절되지 않았습니다.

"어르신, 당뇨약 받아 오셨어요?"

"아뉴~말도 못 했어유. 들어가면 나오기 바빠서. 지금까지 그대로 먹었는데 괜찮겠지유"

환자 대신 병원에 간 팔순이 넘은 보호자는 의사와 간호사가 너무 바빠 보이는데다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약을 그대로 받아온 것입니다. 결국 제가 한 번 더 설명을 드려 물약을 중단시키고 당뇨약을 처방하였습니다.

이렇게 거동이 불편한 분들은 직접 다니면서 의사를 만날 수가 없으니 저 혼자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방문진료하다가 만나면 힘에 부칩니다. 근이영양증 환자가 피부질환이 생겨 과거 진료를 받았던 큰병원에 진료 요청을 했으나 환자가 직접 와야 한다고 하여 곤란한 상황에 처했습니다. 환자는 산소호흡기가 없으면 숨쉬는 것도 힘들어서 병원을 갈 수가 없는 상태였습니다. 보호자가 저희 병원으로 도움을 요청하여 방문을 나가 보니 피부 곰팡이 감염이 의심되어 치료를 했지만 어느정도 좋아지고 나서는 더이상 호전이 없습니다. 할 수 없이 피부과 교수인 친구에게 전화로 상태를 설명하고 사진과 동영상을 공유하여 자문을 받아 처방을 하였습니다. 다행히 지금은 상태가 급격히 좋아지고 있습니다. 이 경우만 봐도 의사들끼리의 소통은 분명 환자를 좋아지게 만들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의료제도 특성상 의사들끼리도 서로 경쟁을 해야 합니다. 이런 분위기에서 협력을 위한 소통을 하기가 쉽지는 않겠지요. 하지만 장애인 건강주치의와 재택의료센터 시범사업을 통해 주치의로서 환자를 만나보니 다른 의료인들과의 소통이 정말 절실합니다. 입원을 하거나 수술을 하고 나온 환자들의 상태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무엇을 주의해야 하는지 알지 못하고, 환자의 변화를 해당 전문과 선생님과 바로 공유하기가 힘들어 참으로 답답합니다. 거동이 힘든 장애인이나 여러가지 질병을 갖고 계신 어르신들은 특히 그렇습니다. 저만 그런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의사들이 그럴 것입니다. 제발 의사들이 경쟁하기보다 환자를 위해 아낌없이 소통하고 협력하여 최선의 결과를 만들 수 있는 제도적, 구조적 변화를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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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영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한 뒤, 서울대학교병원 가정의학과 전문의를 수료했다. 현재 대전 민들레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가정의학과 원장 및 지역사회의료센터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 <엄마의사 야옹선생의 초록처방전>, <아이를 위한 면역학 수업 : 감염병, 항생제, 백신>, <야옹의사의 몸튼튼 비법노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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