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미국, 고속도로 진입한 중·러, 그 사이 한국은?

[중국과 러시아의 협력 이해하기] ④

중러, 슈퍼컴퓨터 협력

슈퍼컴퓨터의 활용 범위는 안보와 경제 양면에서 무궁무진하다. 중러 양국이 슈퍼컴퓨터 기술응용연구센터 설립에 합의한 것은 지난해 7월이다. 앞서가는 중국의 경험을 러시아가 학습한다. 협정 의정서는 러시아 노보시비르스크 주립대학과 중국의 국립슈퍼컴퓨팅 천진센터가 체결했다.

이 분야도 미중 양국은 치열하게 경쟁한다. 중국은 세계 500대 슈퍼컴에서 가장 많이 보유한 나라다(중국 186개, 미국 123개). 1초에 100경번의 연산을 수행하는 세계 최초 엑사플롭스(ExaFLOPS)급 컴퓨터 최소한 2개를 운영 중이다. 중국은 현재 10개의 exascale 슈퍼컴퓨터 프로젝트를 착수 중이며, 미국은 3개로 추정된다. 러시아 정부는 아직 독자 기술 확보가 미흡하다. 현재 세계 톱500 슈퍼컴 목록에 4개의 러시아 시스템이 등재되었다. 그동안 AMD, 엔비디아 등 미국 기술을 활용해왔지만,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AMD, 인텔 등 반도체 제조 시설 활용이 차단되었다.

미국은 1960년대부터 슈퍼컴에 집중적으로 투자해왔다. 하지만, 미국 반도체 소비의 88%가 수입된다. 뒤늦게 반도체 공급망 강화에 나섰지만, 글로벌 협력 없이 독자적인 슈퍼컴 생태계 구축은 쉽지 않다. 대부분 국가는 TSMC와 삼성전자의 펩 시설, ASML의 노광장비, 중국의 리튬 공급에 의존한다.

이 분야에서 중러 협력은, 미국에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중국은 세계 1위 슈퍼컴을 독자 기술로 구축했다. 중국은 타이후라이트(TaihuLight) 슈퍼컴으로 세계 1위에 올랐다(2016). 칭다오와 텐진, 그리고 선전 슈퍼컴센터에서 운용한다. 당초 AMD와 계약하고 중국 하이곤(Hygon) CPU를 사용하려는 계획은 미국이 제재를 걸었다.

중국은 이런 슈퍼컴의 성과를 크게 홍보하지 않는다. '톱500' 리스트에 올리지도 않고 관영매체 홍보도 없다. 그렇다고 비밀로 하는 것은 아니다. 슈퍼컴의 노벨상으로 알려진 고든벨상(Gordon Bell Prize)에 중국 연구자들이 투고한 논문에는 오션라이트 시스템의 세부 사양이 포함돼 있다. 기술에 관한 정보만 조용히 알리는 것이다. 미국의 제제 유발을 피하려는 것으로 추정된다.

▲ 푸틴과 시진핑. ⓒAP=연합뉴스

중러, 우주협력을 양국 협력의 모델로

중러 우주 협력은 30여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양국 총리는 정기적으로 우주협력분과위원회에서 만나 지상관측, 달과 심해탐사, 우주전자부품, 우주 잔해감시, 위성 위치확인 시스템 등 다양한 분야의 협력을 논의한다. 협력 방식은, 중국이 러시아의 발전된 지식을 흡수하고, 러시아는 차이나머니를 수혈 받는 방식이다. 중국은 구소련과 미국보다 40년 늦은 2003년 우주비행사를 띄울 만큼 뒤늦었지만, 최근 놀라운 속도로 성장 중이다.

우주정거장 협력은 2021년 3월, 중국 국가항천국과 러시아 우주공사가 손을 잡고, 달 연구를 위한 우주정거장 건설에 합의하면서부터다. 양측은 "달 표면과 궤도에 만들어지는 종합적 실험·연구 시설로 다양한 연구를 수행할 것이며, 달 탐사와 이용, 달 기반 관측, 기초과학 실험 등을 포함한 장기 프로젝트"라고 밝혔다.

그동안 미국과 러시아의 우주 협력을 감안하면 중러 협력은 새로운 변화다. 미러 양국의 우주 협력은 1975년 시작되어, 1998년에는 국제우주정거장(ISS)을 건설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러시아가 제재를 받자, 미국과의 협력을 거부하고(러시아는 'ISS의 추락, 폐기'를 주장) 중국과 우주 정거장 건설에 나섰다. 

미국은 ISS의 기존 협력이 계속되기를 바란다. 러시아가 ISS에 제공한 기술은 ISS 동체에 부착된 우주 화물선 '프로그레스'의 엔진으로 ISS가 고도 약 400㎞를 유지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프로그레스가 없으면 ISS는 지상으로 추락한다. 미국에는 없는 기술이다. 현재는 2024년까지 유지하는데 합의된 상태지만, 미국은 2030년까지 러시아의 참여를 바라는 입장이다. ISS 폐기 시점이 앞당겨지면, 중국이 지구 궤도에서 우주정거장을 운영하는 유일한 국가가 되어, 미국은 우주 경쟁에서 난감한 상황이 될 우려가 있다(그러나 최근 ISS 사고를 수습하면서 미러 양국은 협력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중국에서는 "미국은 중러 협력을 경계할 것이다. 우주분야 후발주자임에도 중국이 달과 화성, 심우주 탐사 등에서 빠르게 성과를 내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홍콩에서는 "중국은 러시아의 우주 경험이 필요하고, 러시아는 우주 과학자들의 일자리를 위해서 중국의 연구자금이 중요하다"고 본다.

중국은 오는 2050년까지 우주 강국을 목표로 하고 있다. 우주정거장 '톈궁'은 이미 완공(2022년 말)하여 가동을 시작했으며, 향후 인류 최초로 달기지 건설(2025), 목성 탐사선 발사(2029), 달 유인화(2030)를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ISS가 폐기될 경우, 우주정거장은 '텐궁'이 유일하게 된다.

중러, 무인비행기 드론 협력

최근 러시아가 중국 드론 구입을 모색하면서, 미국의 윌리엄 번스 CIA국장과 마이클 매콜 하원 외교위원장이 경고하고 나섰다. 중국이 드론 100기를 러시아에 보내려 검토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러시아가 드론 강국인 중국이 아닌 이란에서 드론을 구입해온 이유는 미국의 제재를 의식했기 때문이다. 중국의 드론 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중국의 드론은 대전차 미사일을 발사 할 수도 있고, 동시에 네 개의 목표를 파괴 할 수도 있다. 중국에서는 매우 낮은 수준의 무인 비행기조차 러시아에는 매우 부족한 실정이기에, 이로 인해 매우 큰 손실을 입었다.

반면, 우크라이나는 터키 드론에 많이 의존한다. 우크라이나는 2014년 크림전쟁이 종료된 후 드론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우크라이나의 주력 드론은 터키로부터 구매한 바이락타르 TB-2이며 자체 생산한 A1-SM 퓨리와 레레카-100 등을 활용하고 있다. 최근에는 미국으로부터 스위치블레이드를 지원받고 있다.

여기서 중국의 드론 발전 동향을 보자. 중국은 드론을 4차 산업혁명의 중점 분야 중 하나로 육성한다. 중국의 드론 기술력은 향후 산업 전반의 발전 방향에 큰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세계 드론 시장을 선도하는 중국은 세계 상업 드론 시장의 약 94%를 장악하고 있다(2017년 기준). 우리 한국의 시중에서 일반인이 구입할 수 있는 드론 10대 중 9대는 '메이드 인 차이나'다. 일부 주요 제품을 보자.

- 세계 상업용 드론 1위 기업 DJI의 소형 드론 ‘스파크’는 합리적인 가격과 최첨단 기술로 보급형 드론의 끝판왕으로 평가받는다.

- 방수 드론 ‘파워 레이’는 수심 30미터까지 잠수해 최대 4시간 수중 촬영이 가능한 레저용 제품이다. VR 헤드셋을 착용하면 촬영 장면을 실시간으로 감상할 수 있다.

- 소형 드론 전문 업체 이랜뷰는, 무게 60g, 가로 6cm, 세로 9cm 크기로 스마트폰 케이스 속에 들어가는 소형 드론을 제작한다. 이 제품은 비행시간 3~5분, 500만 화소 카메라로 셀카를 촬영할 수 있다.

- 중국 2위 전자상거래 업체 징둥은 택배 배송 드론으로 이름나 있다. Y-3 드론은 최대 10kg의 물품을 싣고 20㎞를 왕복할 수 있다. 징둥은 최대 1톤 화물을 운반할 수 있는 초대형 물류 드론을 개발 중이다.

중국이 세계 최대의 드론 제조국가로 올라선 발전 요인을 정리하면,

- DJI 등 선발 업체들이 시장에서 성공하면서, 후발주자들이 따라올 수 있는 시장 환경이 조성되었다.

- 하드웨어 스타트업 환경이 우수하다. 중국 드론 기업들의 절반 이상이 위치한 심천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하드웨어 창업의 중심지다. 가장 저렴한 가격으로 부품을 조달하고, 신속하게 시제품을 만들 수 있는 ‘화창베이 전자시장’이 있다.

- 전문화된 액셀러레이터 기관들이 초기부터 다양한 컨설팅과 솔루션을 제공해왔다. 중국 정부는 이 같은 선전 스타트업 클러스터에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젊은 드론 개발자들이 자신의 아이디어를 실현시키기 적합한 환경인 것이다.

중러 AI, 신무기 플랫폼 구축 협력

AI와 관련된 군사 기술은 모든 국가가 중시하는 분야다. 중국은 러시아와 손잡고 이 분야의 글로벌 선두를 겨냥하고 있다. 미국은 이런 중러 협력에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중국은 자체 기술로 세계적 인정을 받고 있으며, 미국의 인공 지능 분야는 군사 분야에서 우수하다. 2019년, 미국 전문가들은 인공지능 분야에서 중국이 미국보다 훨씬 앞서 있다고 평했다.

미국 언론은, 러시아가 AI 자율 무기 플랫폼을 개발하는데, 중국이 기술지원을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최근 미국 연구기관들은 '러시아의 인공지능과 자치'라는 보고서에서, AI분야에서 러시아의 강점과 중국의 핵심 기술 협력에 대하여, 중국을 '인공 지능 분야에서 러시아의 핵심 파트너'라고 소개했다. 중러 양국이 C4ISR(지휘, 통제, 통신, 컴퓨터, 정보, 감시 및 정찰 능력)발전을 위해 협력한다는 것이다.

컴퓨터 과학 분야의 글로벌 랭킹 프로젝트인 CSRankings는 컴퓨터 과학 대학 순위를 발표했다(2021.1). AI분야에서 칭화대학이 세계 1위, 베이징대학은 세계 2위를 차지해 미국의 명문 컴퓨터 강호인 카네기 멜론 대학(Carnegie Mellon University)을 제쳤다. 세계 10대 대학 중 중국 대학들은 칭화대, 베이징대 이외에, 저장대학, 홍콩과학기술대학교, 중국과학아카데미대학, 난징대학 등 6개 대학이 선정되었다. 세계 최고의 하버드 대학은 31위였다.

투자 규모로 보면, 세계 AI시장을 주도하는 국가는 미국과 중국이다. 2020년 기준, 미국이 60억 달러, 중국은 143억 달러를 투자했다.

러시아는 중국의 인공 지능이 이미 여러 산업분야에서 응용하는 등 빠르게 발전하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 중국에서 로봇은 이미 유치원과 요양원에서 보조원으로 일하기 시작했다(러시아 자유 미디어 웹사이트, 2019.11.26). 다음은 러시아 언론에 소개된 내용이다. 

'중국 언론과 교류하면서 인공지능 합성 앵커를 보았다. 러시아 기자들은 로봇이 미디어 실무자를 완전히 대체하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에 놀랐다. 중국은 인공 지능 로봇이 핫스팟, 비상 사태, 차트 작성 및 금융 정보 집계와 같은 어려운 작업에 응용하기 시작했다. AI 기계에 위탁하고, 전문가들은 순수한 의미의 창조에 참여할 수 있다. 또한 중국의 로봇은 새로운 기술을 습득할 수 있는 자기 학습 능력을 가지고 있다. 다른 로봇에서 정보를 얻을 수도 있다.'

4년 전 얘기다. 현재, 중국의 AI 로봇 산업을 보자. 요양원에서 일하는 로봇 간호사는 40만 위안에 판매되고 있다. 이 로봇 간호사는 침대 환자를 돌보고, 심장 박동과 혈압을 측정하고, 좋아하는 음악을 재생하고, 지인을 전화로 연결하고, 환자와 화상 채팅을 하고, 책 읽기 등 외로움을 달래는데 도움이 되는 인공 지능 치료에 투입되고 있다. 중국은 이미 유사한 인공 지능 간병인을 개발한 미국 일본과도 협력하고 있다.

올바른 글로벌 인식의 필요성

백년 제국인 미국의 위력이 조금씩 약화되면서 국가 실리주의가 글로벌 대세를 이루고 있다. 이런 가운데 급속하게 부상하는 중국과 자원 대국 러시아의 협력이 불러오는 파급 효과는 글로벌 군사 및 경제 분야로 빠르게 확산되는 중이다. 여기에 우크라이나 전쟁과 4차 산업혁명, 그리고 미중 갈등이 출렁인다.

요컨대, 불확실하고 불안정한 시대 환경이다. 지금은 18세기 산업혁명 이래 가장 거대한 전환적 시기다. 거대한 중국의 부상을 예상한 사람은 드물다. 거대한 러시아가 중국과 손잡고 이처럼 긴밀하게 협력하리라고 예상한 사람도 드물다. 모두가 예상하지 못한 대전환의 시대다.

일부에서 예상하는 것처럼, 미중 경쟁이 어느 한쪽의 파탄으로 끝나기는 어렵다. 그들 양국은 그동안 축적해온 ‘G2 질서’를 통해 글로벌 경제에서 창출되는 이익의 가장 많은 부분을 가져가고 있다. 미중 양국이야말로, 글로벌 이익의 최대 공동 수혜국인 것이다. 다만, 미국이 중국의 추격에 적절히 대응하면서 타협을 모색하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결국 그들은 타협하게 될 것이다. 전쟁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 대한민국의 미래다. 이런 대전환의 시대를 맞아 편협하지 않은, 보다 치밀하고 정교한 글로벌 접근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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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광수

1979년 해외경제연구소에서 중국경제 연구를 시작했고 베이징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1-96년 베이징에 주재하면서 주중 한국대사관과 한국무역협회, 그리고 SK, 한솔제지, 현대건설 등의 현지 고문으로 일했다. 주요 저서로 <미중 패권전쟁은 없다>(2019년), <미중 관계의 변화와 한반도의 미래> <중화경제권시대와 우리의 대응>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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