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뚜기가 우박처럼 쏟아져 내렸다"

[함께 사는 길] 영화 <더 스웜>으로 본 기후위기와 메뚜기

'메뚜기도 한철'이란 우리 속담이 있다. 생물의 짧은 전성기를 뜻하는데, 우리의 오랜 농경문화와 연관돼 있다. 시골에서 만나는 메뚜기는 반갑다. '메뚜기 쌀'이란 쌀 브랜드에서 알 수 있듯이 농약의 영향이 덜 미치는 자연이라는 상징성을 갖게 하는 게 바로 메뚜기이다. 메뚜기란 한 종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방아깨비·풀무치 등 메뚜깃과에 속하는 곤충의 총칭이다.

죽음의 메뚜기 떼

사실 메뚜기 관련 이미지는 동서고금에 따라 천양지차다. 대표적으로 아프리카, 중동, 중국, 아메리카 등에서 메뚜기는 재앙의 또 다른 말이다. 1878년 미국 서부 개척 당시 로키산맥 부근에서 거대한 메뚜기 떼가 출현했다. 2004년 제작된 내셔널지오그래픽의 <퍼펙트 스웜: 죽음의 메뚜기 떼(Perfect Swarm)>에 따르면, 당시 수조 마리에 달하는 메뚜기가 살아 있는 토네이도처럼 서부 지역을 휩쓸었다. 소설 <초원의 집>의 작가 로라 잉걸스는 "우박처럼 갑자기 쏟아져 내렸다. 이들이 해를 가려 사방이 컴컴해졌다"라고 할 정도였다. 당시 메뚜기 떼 피해 금액을 현재로 환산하면 1160억 달러, 우리 돈 약 143조3000억 원에 이른다.

중국 정사 삼국지엔 조조가 여포에게 패할 당시 거대한 메뚜기 떼가 출현해 인근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것이 승패를 가르는 중대 변수였다. 2003년 아프리카에 등장한 사막 메뚜기 떼는 그 무리의 길이가 500km에 달했다(서울~부산만큼의 길이로 메뚜기가 뭉쳐서 날아다닌다고 상상해 보라). 1987~1988년에도 사상 최대의 사막 메뚜기가 아프리카를 궤멸할 정도로 피해를 주기도 했다.

메뚜기는 엄청나게 먹어 치운다. 갓 부화한 메뚜기 유충은 자기 몸무게의 3배에 달하는 먹이를 매일 섭취하는데, 청소년으로 치면 매일 180kg을 섭취하는 꼴이라고 한다. 국제연합 식량농업기구(FAO) 관계자가 "중간 규모 메뚜기 떼가 하루에 케냐 전체 인구의 식량을 먹어 치울 수 있다"라고 밝힌 것도 이 때문이다. 메뚜기 떼는 녹색에 집착하면서 사람이 입은 녹색 옷도 갉아 먹었다는 기록도 있다. 날개 달린 성충은 하루 150km를 날아다닐 수 있기에 아프리카 빈곤을 부추기는 중요 요인으로 작용한다.

과거 우리도 사례가 있다. 기상청에 따르면, 고구려 8번, 백제 5번, 신라 19번의 대규모 메뚜기 피해가 <삼국사기>에 기록될 정도였다. 역사학자 김덕진은 <대기근 조선을 뒤덮다>(푸른역사 펴냄)에서 조선시대인 1670~1671년에 일어난 경신대기근 때 메뚜기 재앙을 겪었다는 기록이 <조선왕조실록>에 전해지고 있다고 밝혔다.

고대 이집트에선 메뚜기 날개에 있는 독특한 문양이 히브리어로 '신의 형벌'을 의미한다고 생각했다. 메뚜기는 한자로 '황(蝗)'으로 쓰는데, '벌레 훼(虫) + 임금 황(皇)'의 조합이다. 곤충의 황제라는 의미다. 메뚜기 한 마리씩은 문제가 되지 않지만, 이들이 뭉치면 가혹한 폭군이 된다. 메뚜기 재앙은 성경과 꾸란에 기록될 정도였고, 황해((蝗害) 또는 황재(蝗災)라는 한자어도 있다. 세계 각지의 곡창 지대에선 반드시 메뚜기와 연관된 잔혹사가 있었다. 지역에 따라 현재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현재 FAO는 메뚜기 떼 발령 현황 위성 지도를 관리하면서 '메뚜기 주의보'를 발령하고 있다.

스크린에 비친 메뚜기 재앙

프랑스의 한 메뚜기 방제 연구기관이 보유한 영어와 프랑스어 메뚜기 관련 논문만 무려 2만 편이 된다고 한다. 이는 역사적으로 메뚜기 관련 피해가 상당했다는 걸 반증한다. 현실 세계와 사람들의 무의식을 반영한 영화에서도 메뚜기 떼가 등장한다. 1937년 개봉한 영화 <대지(The Good Earth)>는 미국 소설가 펄벅의 동명 소설(1931년 작)을 영화화했다. 영화는 20세기 초 중국 농촌지역에서 가족 간 갈등을 핵심으로 다루면서 갈등 증폭의 외적 요인으로 대규모 메뚜기 떼를 등장시켰다. 1979년 개봉한 영화 <엑소시스트 2(Exorcist Ⅱ: The Heretic)>와 2007년 <리핑-10개의 재앙(The Reaping)>은 성서적 관점에서 메뚜기 떼를 사탄의 헌신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과학기술의 오남용에 따른 돌연변이 메뚜기를 등장시킨 작품으로 2005년 작 <로커스트 토네이도(Locusts: The 8th Plague>와 함께 2022년 작 <쥬라기 월드: 도미니언(Jurassic World: Dominion)>이란 작품을 꼽을 수 있다. 이런 허구적 상상은 메뚜기의 신체적 능력과 연관돼 있다. 메뚜기는 최대 2m까지 점프를 할 수 있는데, 사람으로 치면 100m 이상 점프하는 수준이다. 사람이 메뚜기의 능력을 얻는다면 100m를 3초에 주파하고, 한쪽 다리로만 자기 몸무게의 10배를 들어 올릴 수 있다. 또 물만 있으면 먹이를 먹지 않고도 1주일을 버틸 수 있는 강인한 생명력을 갖고 있는 것이 메뚜기다.

▲ <더 스웜>(저스트 필리포 감독, 2021) 포스터.

이번에 다룰 영화 <더 스웜(The Swarm)>은 2021년 개봉한 프랑스 독립영화다. 싱글맘 비르지나(술리안 브라힘)는 청소년기에 접어든 딸과 어린 아들과 산다. 그는 생계 수단으로 식용 메뚜기를 키우며 "생강과 파프리카 맛이 나는 메뚜기”라고 선전하지만, 서툰 실력에 메뚜기 사육도, 판매도 시원찮다. 메뚜기 농장을 위해 빚을 계속 지면서 아들의 축구 캠프 비용 마련도 버겁다. 사춘기 딸은 학교에서 메뚜기 냄새가 난다는 놀림을 받고 엄마에게 차라리 메뚜기 농장을 접고 다른 곳으로 이사 가자며 갈등한다. 신산한 삶에 괴로워하던 비르지나는 메뚜기 하우스를 때려 부수다가 넘어진다. 쓰러져 의식이 없는 동안 그는 자기 피를 먹은 메뚜기들의 상태가 하루아침에 놀랍도록 달라진 것을 보게 된다. 

이전에 비해 크기도 커졌고 왕성한 번식으로 개체 수도 엄청나게 늘어났다. 덕분에 딸에게 오토바이를 선물하고 아들의 축구 캠프 비용을 치르는 등 돈을 벌 수 있게 됐다. 비르지나는 메뚜기 성장의 '특별한 조건', 즉 피를 구해 공급한다. 이게 어려워지자 그는 자기 피와 몸을 메뚜기 떼에게 공급하는 광기를 보인다. 피 맛을 알게 된 메뚜기는 급기야 사람마저 해치게 된다.

대규모 자본이 투입된 앞선 할리우드식 재난과 공포영화에 익숙하다면 CG 사용이 별로 없어 낯설 수밖에 없는 영화 <더 스웜>은 정적인 공포를 담고 있다. 영화는 <대지>처럼 가족의 갈등과 인간 광기의 섬뜩함을 보여준다. 덕분에 2020년 시체스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특별상, 2021년 제라르 메 국제 판타스틱 영화제에서 비평가상과 관객상을 받았다.

영화에서 메뚜기의 상태를 변화시킨 '특별한 조건'은 실제로도 있다. 메뚜기는 영어로 그래스호퍼(Grasshopper)와 로커스트(Locust)로 구분한다. 서아프리카 모리타니에서 메뚜기를 연구한 일본인 마에노 울드 고타로는 <메뚜기를 잡으러 아프리카로>(김소연 옮김. 해나무)에서 이를 면밀하게 나누고 있다. 고타로에 따르면, 메뚜기는 저밀도 환경에서 발육한 개체를 고독상이라고 하고, 고밀도 환경에서 발육한 무리를 군생상이라고 한다. 이들은 다른 종으로 인식했다. 색상은 물론 크기와 날개 길이도 확연히 차이를 보였기 때문이다. 20세기 초 고독상 메뚜기가 무리에 들어가면 군생상으로 변한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이를 상변이라고 하는데, 상변이 하는 메뚜기를 로커스트, 그렇지 않은 종을 그래스호퍼로 구분한다.

기상이변, 메뚜기 떼 출연 조건

메뚜기가 상변이 해서 대규모 무리를 형성할 수 있는 특별한 조건은 무엇일까? 고타로는 "역사적으로도 큰 메뚜기 떼가 출현한 해는 예외 없이 가뭄 후에 큰비가 내렸다"라고 지적했다. 조선시대 경신대기근 당시 발생한 메뚜기 떼도 가뭄 이후 폭우의 영향이었다. 아프리카 사하라 지역은 건기와 우기가 뚜렷하다. 7~8월 우기에 얼마나 많은 양의 비가 내리느냐에 따라 이듬해까지 초지가 남아 있는 비율이 결정된다. 건기는 메뚜기는 물론 메뚜기의 천적도 사라지게 한다. 우기 이후 풀이 돋아날 시기 가장 빨리 이동할 수 있는 종이 바로 메뚜기다.

2019년 10월 동아프리카 케냐, 소말리아 등에선 이례적으로 두 달 동안 폭우가 쏟아졌다. 약 300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는데, 그 뒤 바로 대규모 메뚜기 떼가 출현했다. 4000억 마리의 메뚜기는 축구장 면적 10만 개에 달아는 농경지를 초토화했다. 서울대학교 지구환경과학부 남성현 교수는 아프리카에서 발생한 극단적 기상이변과 메뚜기 떼 출현을 "기후관측 역사상 전례를 찾을 수 없는” 인도양 동쪽과 서쪽의 2도 온도 차이 때문에 발생한 사건 때문으로 분석하고 있다. 인도양 서쪽에 위치한 호주에서 2019년 발생한 대규모 산불도 같은 이유였다. 

이런 현상은 궁극적으로 인간에 의해 벌어진 기후위기 때문이다. 지난 200년간 지구 평균 기온은 1.1도 상승했다. 이는 히로시마에 투하된 핵폭탄이 1초에 4개씩, 하루 34만5600개 터지는 수준의 열에너지가 축적됐기 때문이다. "지금은 1초에 5개씩 터지는 수준의 에너지가 지구 전체에 흡수되고 있다"라는 것이 남성현 교수의 지적이다.

퍼펙트 스톰(Perfect Storm)은 위험이 크지 않은 개별 사안이 동시에 발생하면 엄청난 파괴력을 일으킨다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지구 가열화와 기후위기에 따른 가뭄과 홍수는 퍼펙트 스웜(Perfect Swarm), 다시 말해 대규모 곤충 습격을 일으킨다. 인간이 만든 자연 재난은 생태적 재난으로 이어지고, 이 재난은 인류의 생존을 위협한다. 대규모 메뚜기 떼 피해 방제를 위해 중국에선 오리와 닭을 투입하고, 메뚜기 떼가 모이게 하는 호르몬을 제어하는 등의 여러 방법을 적용해 실험하고 있지만, 실제 아프리카 등 현장에선 살충제 사용이 보편적이다. 살충제는 식수 오염과 농작물 축적 등 인간과 생태계에 2차, 3차 피해를 일으킬 수 있다.

독일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자연에 의해 초래된 '신의 영역'의 위험(Danger)과 인간의 결정 행위(decision making)에 따른 위험(Risk)을 구분한다. 현재 기후위기는 인간이 만든 위험이라는 점에서 이를 완화하고 적응하는 것 역시 인간이 해야 한다. 그것이 생존 필수 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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