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 사회' 한국을 위해 진정 필요한 프로그램은?

[청년이 마주한 세계와 시민] ⑩다문화 가정 친구와의 교류

경희대학교는 지난 2011년 후마니타스칼리지를 설립하고, 3학점 교양 필수과목으로 '세계와 시민'을 운영하고 있다. '세계와 시민'은 매 학기 25명의 학생을 대상으로 100개의 강좌로 진행된다. 학생들은 오늘날 우리 사회의 중요한 이슈를 주제로 선정해 한 학기 동안 해당 주제를 토론하고 이를 연구해 동료에게 조사 결과를 소개하는 학생 주도의 공동 프로젝트(Global Citizen Project, GCP)를 수행한다. 수업에서 다뤄지는 주제는 성소수자 문제, 동물권, 플랫폼노동, 기후변화 등 오늘날 언론에서도 뜨겁게 다뤄지는 이슈들이다. 해당 주제들을 다루면서 학생들은 글로컬 차원에서 새롭게 구성되는 시민적 삶의 존재 조건을 이해하고, 세계시민으로서의 책임감 있는 삶의 자세를 다진다. 청년으로서 첫 걸음을 떼는 학생이 수업의 틀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순간을 기록하는 수업인 셈이다. <프레시안>은 지난해에 진행한 '세계와 시민' 수업 프로젝트 중 10개를 추려 수강생이 직접 작성한 원고를 소개한다. 편집자.

다문화인들의 한국 평가는 박하다. 이주민 10명 중 7명이 인종차별을 느끼고 있다는 뉴스 기사를 접할 정도다. 동방예의지국의 일원으로서 너나 할 것 없이 많은 다문화인들에게 착하게 대해준 것 같은데도, 몇몇 예외의 사람들 때문에 전체가 비판 받는 것 아닐까 생각하기도 한다. 우리는 이러한 현상에 대해 조금 더 근본적인 접근을 해보기로 했다. 애초에 서로 다른 문화 속에서 삶을 영위하던 이들이 진정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교류하는 단계에 이르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이 질문에 올바르게 대답하는 것이 첫 걸음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인종차별을 느낀 쪽도, 우리 나라에 들어온 다문화인들에게 최선을 다해 대해준 한국인들 양쪽 모두 잘못이 없지 않을까? 우린 이러한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방식의 다문화 봉사에 참여해보기로 하였다.

2022년 상반기, 경희대학교 세계와 시민 젓가락 행진의 이름으로 특별한 프로젝트가 열렸다. '젓가락 행진.' 한국에 살아가는 세계시민의 진정한 통합과 문화 교류를 목표로 하는 다문화 증진 멘토 멘티 프로그램이다. 한국인 대학생들이 다문화 가정 친구들과 팀을 꾸려 여러 장소를 다니며 한국의 문화와 교육을 접할 뿐 아니라, 서로의 일상생활도 함께 엿보는 방식의 프로그램이었다. '젓가락 행진'은 젓가락 한 짝의 똑같이 생긴 젓가락들처럼, 전혀 다를 것 없는 세계인의 통합을 의미한다고 한다. 우리가 이에 참여하기로 한 이유는 여타 다른 프로그램들과 달리 우리 스스로 활동을 정하고 이행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매력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는 진정한 해결책을 찾으려고 하는 목적에 부합하는 설정이었다. 이에 우리는 다음과 같은 활동들을 진행해보았다.

첫 모임의 장소는 멘티들이 생활하고 있는 곳을 알아볼 겸 정한 안산에 위치한 노아네 러시아 학원이었다. 노아네 러시아 학원은 문화를 위한 공간부터 학습을 위한 공간까지 건물 전체를 사용하고 있었다. 학원 방문 이후 우리는 우즈베키스탄 음식을 나눠 먹으며 문화교류를 했다. 멘토들은 음식의 재료를 추측했고 멘티들은 음식의 유래와 러시아어로 말하는 법, 음식을 먹는 법을 말해주며 서로의 음식문화를 공유했다. 그 후로 꾸준히 만남을 이어가며 우리는 다문화 가정 친구들에게 한국의 2030 세대가 어떻게 살아가는 지를 자연스레 알려주었다. 시청역으로 놀러 가 덕수궁 나들이를 가기도 하고, 압구정 신사 등에서 밥과 술을 먹으며 놀고, 대학교 탐방을 시켜주며 캠퍼스 라이프를 이해시켜주었다. 잘못 보면 그저 논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우리의 목적은 진짜 우리 나이의 한국인들이 어떻게 사는 지를 그들에게 알려주며, 그들이 진정으로 한국 사회에 녹아들 수 있게끔 만드는 것이었다. 김치 만들어 보기, 한복 입어 보기, 한국 역사에 대해 알아보기 등 지금까지 해왔던 모든 다문화 프로그램의 방식 자체를 부정하는, 우리만의 새로운 접근법이었다.

우린 이런 문화 활동만을 알려준 것이 아닌, 한국 대학생의 삶을 이어갈 수 있도록 입시에 대한 궁금증도 해소해주었다. 이 배경은 이러하다. 만남을 계속 이어가면서 노아네 친구들이 어떻게 젓가락행진 활동에 참여하게 되었는지 궁금했다. 친구들은 노아네 원장님께서 먼저 "한국 친구를 사귈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있다. 참여해 볼 생각이 있냐"고 연락을 하셨다고 했다. 이후 노아네에 방문했을 때 원장님께서 한창 대학 입시와 토픽 시험을 준비하고 있던 친구들이었기에 이 활동이 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2022학년도 1학기에 공식적인 활동을 마치고 본격적인 입시 준비를 도와주기 시작했다. 대학 입시, 어학당 지원, 토픽 시험 준비 등에서 도움이 필요했다. 먼저 대학교 입학팀에 문의해 다음 학기 지원을 위해 필요한 서류와 자격요건들을 정리했다. 활동 초반에만 해도 한국어에 흥미가 없었던 한 멘티는 우리의 영향으로 어학당을 다니고 싶어졌다고 말했다. 같이 필요서류를 알아본 결과, 그는 경희대학교 어학당에 지원해 현재 한국어를 열심히 배우고 있다. 또 다른 멘티는 11월에 토픽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개인이 새로운 사회에 적응하려면, 그 속에서 본인의 미래를 그릴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서 청소년이 인생의 목표를 설정하고 장래를 계획하는 데 있어 대학 진학은 효과적인 방법이다. 대학은 개인이 소속감을 느낄 수 있는 하나의 큰 사회가 되며, 다양한 교육과 경험의 기회를 제공받을 수 있는 학술의 장이기 때문이다. 이에 더해, 한국 사회에선 대학 졸업 여부가 개인의 능력을 판단하는 데 있어 아직 큰 부분을 차지한다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다. 이러한 까닭으로 우리는 다문화 가정 청소년이 한국 대학교에 진학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더 나아가 대학생으로서 다른 학생들과 관계를 맺고 한국의 2030세대가 문화 생활을 하는 방식을 자연스레 익히며 진정으로 한국에 녹아들어가는 효과도 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새로운 사회의 일원이 되려면 문화적 맥락과 교육적 맥락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지금껏 있어왔던 정부나 시민 단체 차원의 다문화 프로그램은 너무 단편적이었다. 우리 나라의 고유 문화를 배우는 목적 자체는 아름답지만, 다문화인들이 당장 한국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필요한 지식들이라 보기에는 어렵다. 그렇기에 세계 시민의 젓가락 행진 프로그램이야 말로 이미 문화적 매개체의 역할을 완벽히 해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에 더해 다문화 청소년에게 교육적 프로그램이 제공된다면 앞서 언급한 사회적 고민을 효과적으로 해소할 수 있을 것이며, 더 나아가 한국이 지구촌 세계시민 양성의 중심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젓가락행진: 경희대 학생 신혜원, 김윤재, 박혜조, 정민우, 감연서

ⓒ젓가락행진 학생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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