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골공원에서 첫발 뗀지 1년, 오늘 포스코에 섰습니다

[기후체제 전환은 어떻게 가능할까] 60+기후행동창립1주년기념사

이 글은 지난 1월 19일 60기후행동이 창립 1주년 되는 날에 포스코 서울사무소 앞에서 석탄화력발전소 건설 철회를 요구하는 어슬렁시위를 하면서 발표한 성명서입니다. 편집자

일 년 전 오늘, 우리는 서울 탑골공원에서 첫걸음을 내디뎠습니다. 1월 19일, 즉 119. 화재 현장으로 긴급 출동하는 소방대원이 되고자 했습니다. 지구가 불타고 있는데 아무도 움직이지 않고 있다는 안타까운 사실을 널리 알리고 싶었습니다.

동시에, 탑골공원을 되살리고 싶었습니다. 탑골공원은 지난 세기 초 우리 겨레가 정의와 인도적 가치에 입각해 독립하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세계만방에 선포한 성스러운 장소입니다. 하지만 탑골공원은 산업화, 도시화 과정을 거치는 사이 ‘노인 보호구역’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탑골공원에 덧씌워진 부정적 이미지를 벗겨내는 일은 곧 노년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바로잡는 일입니다. 한마디로, 노년은 단순한 여생이 아닙니다. 잉여가 아닙니다. 100세 시대를 인정한다면 노년에게는 30~40년이라는 짧지 않은 미래가 있습니다.

코앞에 닥친 초고령사회는 노년에게만 처음인 것이 아닙니다. 동시대 모든 세대, 우리 사회 전체에게도 처음입니다. 거듭 강조하지만 노년도 ‘신인류’입니다. 노년 또한 참조할만한 롤 모델이 없는, 모든 것이 낯설기만 한 ‘신세대’입니다.

산업문명이 자기성찰 능력이 있었다면, 그리하여 자유, 평등, 상생으로 수렴되는 민주적 보편가치를 구현했다면 우리의 노년기는 진정 아름다웠을 것입니다. 손주들이 할아버지 할머니가 전해주는 삶의 경험과 지혜를 건네받으며 자랑스러워했을 것입니다. 물려받은 세상보다 조금 더 나은 세상을 물려주면서 노년들은 보람을 느꼈을 것입니다.

ⓒ연합뉴스

하지만 불행하게도 현실은 정반대입니다. 산업문명이 천지자연을 너무 빨리, 너무 많이 파괴했기 때문입니다. 산업문명은 오만하고 무례했고 무지했습니다. 대량 생산, 대량 소비, 대량 폐기를 반복하는 생산력 제일주의가 행복의 지름길이라고 잘못 판단했던 것입니다.

60+기후행동은 이와 같은 성찰에서 출발했습니다. ‘후손에게 이런 세상을 물려줄 수는 없다’는 각오와 반성들이 하나둘 모인 것입니다. 돌아보면, 단군 이래 우리 세대처럼 물질적 풍요를 누린 세대는 없습니다. 우리처럼 건강과 장수를 누리는 세대는 없었습니다(북반구 선진국의 노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이 있기까지 희생과 고통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정의로운 사회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친 이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민주주의가 한 단계 겨우 성숙하는 사이, 국민소득이 수백 배 늘어나는 사이, 우리 삶의 토대는 무너졌습니다. 지구 차원에서 인류의 지속가능성이 뿌리째 흔들렸습니다. 에너지와 자원이 고갈되기 시작했고, 결정적으로 지구 평균기온이 급격하게 상승했습니다. 이대로 가다간, 우리 생전에 인류 최후의 날을 목격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암담합니다. 현실정치에서 희망을 찾는 사람이 몇이나 될지 모르겠습니다. 다른 분야도 어둡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재계, 학계, 종교계, 문화예술계 어디를 둘러봐도 가슴 설레는 멋진 비전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미래를 열어나가야 할 청년들은 경제 논리에 포박되어 기후 위기와 같은 본질적인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그들의 부모 세대 또한 먹고살기에 급급한 나머지 멀리 내다볼 생각을 하지 못합니다. 이대로 간다면, 이렇게 살아간다면 말 그대로 공멸입니다.

그래서 우리 노년이 나선 것입니다. 노년이 ‘모든 문제의 문제’인 기후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동참하기로 한 것입니다. 여기서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기후 문제는 환경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기후 문제는 인간과 관련된 모든 문제의 총합입니다. 그러므로 기후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은 새로운 삶,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가는 과정입니다. 우리의 마음에서부터 이념과 체제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바꿔나가는 대전환이 곧 기후 위기 대응입니다.

너무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선 나 자신에서 시작하면 됩니다. 노년의 기후 행동은 일차적으로 노년이 자기 인생을 전환하는 것입니다. 성인이 된 이래 30~40년 간 자신을 지탱해온 가치관과 삶의 방식을 깊이 성찰하고 ‘새로운 삶’의 주인공으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삶은 한 편의 이야기입니다. 노년이 저마다 자기 삶의 이야기를 써내려 간다면 ‘제2의 탄생’은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노년이 다시 태어나는 순간, 곳곳에서 다양한 형태로 기후 행동이 만개할 것입니다.

60+기후행동이 지난 일 년 동안 걸어온 길을 돌아보면, 실천하는 시간보다 모색하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기후 관련 긴급 이슈가 생기면 피켓을 들고 현장에서 어슬렁거렸습니다. ‘어슬렁 현장 행동’은 60+기후행동의 특성이 담긴 새로운 시위 방식입니다. 산호초가 죽어가는 제주 해변, 구상나무가 스러져 가는 지리산 정상, 석탄발전소가 들어서는 삼척 해변 등지에서 어슬렁거렸습니다. 탈석탄법 제정을 촉구하기 위해 여의도 국회 앞에서 1인시위를 하기도 했습니다.

이와 함께 중장기 계획을 수립하기 위해 머리를 맞댔습니다. 2주에 한 번꼴로 줌 회의를 계속해왔고, 그 사이 1박2일 워크숍도 네 차례 개최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올 상반기에 60+인생전환 아카데미(가칭)와 사회적 상속 프로그램을 시범 사업 형태로 선보일 예정입니다.

인생전환 아카데미는 노년의 거듭남을 지원하는 신바람 나는 플랫폼입니다. 사회적 상속 프로그램은 우리 사회를 옥죄어온 불합리와 모순을 뛰어넘어 노년과 미래세대 모두에게 활력을 불어넣는 혁신적 캠페인이 될 것입니다. 회원 여러분뿐 아니라 일반 시민들도 많은 관심 가져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지난해 1월19일 탑골공원에서 첫발을 뗀 60+기후행동이 일 년이 지난 오늘, 포스코 서울사무소 앞에 섰습니다. 탑골공원과 포스코 앞. 이 두 장소가 갖는 상징성은 결코 작지 않습니다. 탑골공원에서 노년의 의미와 역할을 새롭게 제시했다면 오늘 우리는 포스코 앞에서 산업문명의 두 얼굴을 직시합니다. 산업문명의 가까운 미래를 냉정하게 바라봅니다.

철은 ‘산업의 쌀’로 불려왔습니다. 포철, 포스코가 없었다면 대한민국의 산업화와 압축발전은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화석연료에 기반한 산업 시스템은 이제 폐기 처분해야 합니다. 기존 방식의 경제성장은 파멸을 앞당길 뿐입니다. 달라져야 합니다. 바꿔야 합니다. 이제부터 모든 판단의 기준은 ‘인류의 지속가능성’이어야 합니다. 모든 결정의 기준은 ‘인간과 자연의 조화와 균형’이어야 합니다. 60+기후행동은 조화와 균형에 바탕한 지속가능성이 인류의 새로운 보편가치가 되어야 한다고 주창합니다.

올 한 해도 어슬렁거리되, 멈추지 않겠습니다. 회원 여러분과 함께, 노년들과 함께, 모든 세대와 함께, 그리고 바다 건너 미래를 염려하는 모든 노년들과 함께 기후 문제와 맞서겠습니다. 지속가능한 세상을 만드는데 힘을 모으겠습니다.

‘노년이 달라져야 미래가 달라진다’는 60+기후행동의 ‘첫 마음’을 잊지 않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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