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에게 용서 강요하는 추신수? 미국은 용서가 쉽나?

[정희준의 어퍼컷] 가스라이팅의 대표 공간, 학원스포츠

"우리 아들이 살아있다면 모든 걸 용서할 수 있는데... 우리 아들은 죽었습니다. 저는 맹세했습니다. 절대 용서하지 않겠다고.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걸고 제가 죽을 때까지 저는 그들이 성공하는 걸 보고 싶지 않습니다. 그들이 또 다른 제2의 우리 아들들을 만들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이제 저희 가족은 어떻게 해야 하나요. 정말 숨을 쉴 수 없어 미치겠습니다."

작년 4월 27일 K리그2의 프로축구팀 김포FC 산하 U-18 유스팀 소속 선수 A군(16세)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 새벽 2시경 기숙사 건물에서 하늘의 별이 된 것이다.

A군은 극단적 선택 직전 카카오톡에 유소년팀 코치 2명과 선수 6명, 중학생 시절 축구팀 동료 2명 등 무려 총 10명의 이름을 열거하면서 "차별과 언어폭력에 매번 자살, 살인 충동을 느꼈다"며 "죽어서도 저주할 것"이라는 글을 남겼다. 평소 부모에게 단 한 번도 힘들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던 아이였지만 정작 유서엔 "단 한 번도 웃는 게 진심인 적이 없었다"며 부모의 가슴을 도려내는 마지막 고백을 남기고 떠났다. 자식의 유언이 '저주'인 만큼 부모도 이를 마음에 새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후 팀에서 선수들에 대한 조사가 있었는데 폭행, 폭언 관련한 정황은 나오지 않았다. 경찰은 사건을 자살로 종결했다. 2022년 8월 김포FC는 문제의 유소년팀 감독과 재계약 했고 11월엔 A군의 유서에서 집단 괴롭힘 가해자로 지목된 코치들과 재계약했다.

끊이지 않는 학원스포츠 가혹행위들

"아버지와 삼촌이 하는 말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지만 코치와 선배들 때문에 학교에 못 가겠어요, 코치와 선배들이 무서워요, 아빠, 삼촌이 신경 많이 써주셨는데 속 썩여 죄송하고 미안합니다."

2013년 야구선수를 꿈꾸던 야탑고등학교 1학년 B군이 코치들이 주도한 집단 괴롭힘으로 고층 아파트에서 뛰어내렸다. 이 아이가 스스로 생을 마무리한 이유가 나의 분노를 끌어올린다. 입학 후 코치에게 촌지를 주지 않았다는 게 그 이유다. 코치 주도로 3개월간 동기와 선배로부터 집단 괴롭힘을 당했다. 수시로 불러 폭행했다고 한다. 당연히 이런 사실이 밖에 알려질 수 없다.

그렇다면 당시 감독은 이를 몰랐을까? 얼마 전 논란 끝에 SSG 랜더스 단장으로 선임된 김성용이 감독이었다. 당시 야탑고 야구부 선수들 중엔 지금 프로선수 생활을 하는 이들이 많다. 미국에 진출한 김하성, 박효준과 현재 KBO리그에서 뛰는 선수 등 10여명이나 된다. 이들은 몰랐을까? 가해자는 없었을까?

두 사건의 결과는 판박이다. 경찰이 조사에 나섰지만 구타나 가혹행위 등 집단 괴롭힘 등의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 학교 측은 오히려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을 피해자 가족 탓으로 돌리기도 했다. 대부분의 학교폭력 희생자들과 그 유족이 감내해야 하는 황당하고도 처참한 현실이다. 악마는 꼼꼼하고 집요하다.

한국은 용서가 어려워? 미국은 쉽나?

지난 21일(현지 시간) 미국 댈러스 지역 한인 라디오에 출연한 추신수(SSG 랜더스)가 학교 폭력 논란으로 인해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표팀에 선발되지 못한 안우진(24·키움 히어로즈)에 대해 "한국 사회에서 용서가 너무 쉽지 않다"고 말했다가 논란이 됐다. 그는 안우진이 잘못된 행동을 했지만 굉장히 안타깝다면서 "저도 한국에서 야구를 하고 있지만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너무 많다"며 한숨을 쉬었다.

그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은 "한국은 용서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안우진이 어릴 때 잘못을 뉘우치고 처벌도 받았는데 대회를 못 나간다며 답답해했을 뿐 아니라 이를 '불합리한 일'이라며 "당하는 후배들이 있으면 선배들이 발 벗고 나서야 한다고 생각"한다고까지 했다. 안우진이 갑자기 '당하는 후배'가 됐고 그의 국가대표 제외는 '불합리한 일'이라는 것이다. 추신수에게 묻고 싶다. 미국 야구에서는 용서가 쉽나? 미국 학원 야구도 한국처럼 폭언과 폭력이 난무한가?

특히 이번 논란이 특이한 점은 2017년의 사건이 5년이 지난 작년 말 WBC 대표팀 선발이 진행되면서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는 점이다. 안우진은 1년 자격정지를 받아 대표팀 선발이 불가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전문가에 따르면 대표팀에 선발되면 훈련 및 출전일 수가 리그 의무 출전일 수를 채우는 데 유리하게 작용할 뿐 아니라 FA 계약을 앞당길 수도 있다고 한다. 결국 FA 앞당기고 그래서 미국에 빨리 건너가 대표팀에 들어가야겠다는 본인의 바램인가. 아니면 부모의 의지인가. 

안우진 측은 집단폭행이나 특수폭행은 아니었다, 가혹하고 강한 폭행은 아니다, 피해자들 일부가 용서했다고 주장하면서 5년 전 경찰 조사를 통해서도 처벌 받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형사법 상 문제가 없다'는 것을 주장하면서 여론 전환을 노리는 듯하다. 그러나 이는 학원 스포츠의 문제다. 일본이나 미국 같았으면 팀에서 아예 쫓겨났거나 최소 중징계다. 미국에서는 후배에게 손만 대도 경고다. 그리고 무엇보다 5년이 지난 지금도 안우진을 용서할 수 없는 피해자가 있다.

가스라이팅의 대표적 공간 학원스포츠, 그래서 더 위험하다

초등학교부터 운동을 시작하면 운동밖에 모르는 아이로 성장한다. 부모 역시 감독, 코치를 하늘로 여기게 된다. 대학에 가고 프로팀에 가기 위해 다른 모든 것들은 기어이 견뎌내야 한다. 판단력을 잃게 된다. 인질극이 시작된다. 기자가 몰래 카메라로 자식이 맞는 모습을 찍어 부모에게 보여줘도 부모는 못 본 척한다.

아이들은 숙소에서 선배들에게, 코치에게 폭언을 듣고 상처를 받아도, 하루가 멀다하고 맞아도 어디 가서 하소연할 곳도 없다. 감독님? 방조자다. 사실은 즐긴다. 용기를 내서 협회에 알려도, 대한체육회에 고발을 해도, 심지어 경찰에 신고를 해도 돌아오는 답은 "아무도 폭력이 없다는데 왜 너만 그러냐"이다. 그래서 고 최숙현 선수가 절망감에 말한 것이다. "내가 죽어야 하나." 이게 대한민국 스포츠의 참담한 현실이다.

드물게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면 그때부터 또다른 지옥이 시작된다. 감독으로부터, 다른 학부모로부터, 동료로부터, 심지어 옛 스승으로부터 설득, 무마, 회유, 협박이 들어온다. 운동은 계속해야 하지 않냐, 대학은 가야지 않냐는 등 오히려 적반하장 협박조다. 그래서 안우진의 경우가 그러했듯 피해자들이 시간이 지나 말을 바꾸고 입장을 번복하게 된다.

그래서 한국의 학원스포츠는 위험하다. 아이들이 가스라이팅 속에 길러진다. 판단력을 잃게 만들고 정신적으로 황폐화된다. 감독, 코치, 선배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살아간다. 폭력과 학대를 당연시하고 순응하게 된다. 결국 어린 선수들은 폭언과 폭력에 항시 노출되어 있을 뿐 아니라 있었던 사실조차 사실대로 말을 하지 못하게 된다. 범죄행위의 공범이 되는 것이다.

안우진은 반성하며 야구 열심히 하면 된다. 그가 꿈꾸는 메이저리그에서 성공한 선수가 되어 돈도 많이 벌길 바란다. 그러나 학교 폭력의 당사자가 태극마크를 달고 국제무대에 나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모습은 있을 수 없다. 우선 과거의 아픔을 잊고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피해자들을 또다시 괴롭게 하는 나쁜 행위이고, 무엇보다 우리 국민들의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는다.

▲SSG 랜더스의 추신수 선수.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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