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라는 국민의힘 운동장, 넓으나 좁은 尹의 품

[기자의 눈] 협소한, 너무나 협소한 여당 전당대회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쓰라. 많은 사람이 그곳으로 들어가려 하겠지만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루카복음 13:24)

국민의힘이 3.8 전당대회를 앞두고 벌이고 있는 촌극을 보면, 흡사 성경의 저 구절을 오독하기라도 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윤심(尹心)이 지배하는 전당대회'라는 분석은 이제 새롭지도 않다. 문제는 그 '윤심'이 배경으로 하는 영역 자체의 협소함이다.

여러 조사에서 대통령 국정지지도는 정권 출범 8개월차에 40%를 밑돌고 있다. 역대 정권과 비교해도 낮은 편이다. 그렇다면 내년 총선을 앞두고 상대적으로 더 다수인 중도층과 비판층으로 확장을 꾀해야 한다. 그게 정치의 상식이다.

그러나 지금 여당은? 40% 지지도에 기대어, 그 지지층 내에서 갈라먹기를 하고 있는 형국이다. "대통령에 당선된 당원은 당의 정강‧정책을 충실히 국정에 반영하고 당은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적극 뒷받침한다"(국민의힘 당헌 8조)라는 균형과 견제의 원칙은 사라지고, 대통령의 언행이 그 자체로 따르고 지켜야 할 기준이자 법도가 됐다.

급기야 당 대표 대행인 정진석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주말 "이번 전당대회를 대통령을 공격하고 우리 당을 흠집내는 기회로 사용하지 마시라. 이런 분들에 대해서는 당과 선관위원회가 즉각 제재에 나서겠다"고 엄포까지 놨다. 

당 안팎에서 비판이 쏟아졌다. "이 조치를 비방한 자는 심판, 처단한다"(긴급조치 1호 5·6항)는 유신 시절 긴급조치를 떠올리게 한다는 비판은 그나마 고상한 축에 속한다. '영원한 진보 논객' 진중권 교수는 "육갑하고 있다", "수준 낮아서 못 봐주겠다"고 걸쭉하게 쏘아붙였다. '논객'의 사회적 기능은 많은 사람들이 하고 싶은 말을 대신해 주는 것이다.

정 비대위원장만큼은 아니라도, 즉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대부분의 국민의힘 당권주자들의 말과 행동은 윤석열 대통령이라는 거대한 천체가 내뿜는 인력의 영향을 받고 있다.

친윤 단일후보로 발돋움한 김기현 의원은 선거캠프 출정식에서 큰북을 치고 '어퍼컷' 세리머니를 했다. 친윤계의 지원을 업고 '윤심 주자'라는 평을 받고 있는 그가, 윤 대통령이 지난 대선 당시 했던 유세 장면을 그대로 모방·재연한 모습은 여러 모로 시선을 끌었다.

안철수 의원은 8개월 전 인수위 때를 회고하며 "인수위원장으로 일했을 때 110대 국정과제를 일일이 다 상의를 다 하고 보고를 했지만 어느 것 하나, 110개 중에 하나라도 대통령께서 이의를 제기하신 적이 없지 않느냐"고 윤 대통령과의 '업무 궁합'을 과시했다.

친윤계의 집중 견제를 받고 있는 나경원 전 의원도 대통령실과 한껏 각을 세우는 듯하더니 "윤석열 정부의 성공"을 흡사 염불처럼 외고는 단양 구인사를 찾았다. 구인사는 윤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 찾아 국민통합 메시지를 냈던 곳이다. 나 전 의원은 또 '윤핵관'과는 거듭 각을 세울지언정 윤 대통령의 UAE 순방 성과에 "가슴이 벅차오른다"며 "큰 성과를 이끌어낸 윤 대통령께 감사드린다"고 그의 건강을 기원하기도 했다.

지난 전당대회 때는 옛 바른정당계의 도전에 맞서 '정통 보수' 주자로 나섰던 나 전 의원이 지금은 오히려 당내 주류에 맞선 도전자 위치에 놓이게 된 역설적 상황은, 그만큼 집권 여당의 당권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무대 자체가 협소함을 뜻한다.

나 전 의원이 16일 전직 대통령 묘소를 참배하고 SNS에 올린 글을 보면 그의 정체성은 여전히 "정통 보수"다. 그는 "보수의 뿌리이자 기둥"인 이승만·박정희·YS 묘역을 참배했다며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보수의 자랑스런 가치를 지키"는 것을 자신의 정치적 사명으로 내세웠다. 나 전 의원이 친윤계의 견제를 뚫고 전당대회에 출마해 혹여나 당선이 된들, 그가 이끌 집권당의 진로는 옛 미래통합당·자유한국당의 궤적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할 것임을 예고한다. 그러나 그런 나 전 의원조차도 품지 못할 만큼 '친윤의 뜰'은 좁다.

옛 바른정당계로 대표되는 이른바 '개혁보수' 그룹은 이미 사실상 링 밖으로 밀려났다. 전대 룰을 고쳐 여론조사를 배제하면서 로프를 안쪽으로 더 좁게 친 탓이다. 링 면적은 정확히 30% 정도 좁아졌다.

친윤계 교통정리라는 해석을 낳은 '윤핵관 맏형' 권성동 의원의 불출마 선언문에도 이런 상황은 매우 선명하게 반영돼 있다. 권 의원은 "보수정당의 정체성을 강화해야 한다"며 "우리 당의 정강정책 곳곳에 박혀 잇는 '민주당 흉내내기'부터 걷어내야 한다. '따뜻한 보수'와 같은 유약한 언어도 버려야 한다"고 했다. 권 의원이 '걷어내고 버리자'고 한 것들을 의인화한 이름들은 다음과 같다. 유승민, 그리고 김종인.

당권 경쟁 과정에서 국민의힘의 전신 정당이 승리한 사례로 강재섭 대표가 지휘한 2008년 총선, 박근혜 비대위원장이 지휘한 2012년 총선이 친윤계 발(發)로 회자되기도 했는데, 지금 국민의힘의 방향은 이 두 차례 승리의 경험에서 도출할 수 있는 '필승 방정식'과 정반대로 향하고 있다. 2008년 총선 당시 이명박 정권과 한나라당이 내세운 구호는 '중도·실용'이었고 친이계의 지역적 기반은 수도권이었다. 2012년에는 김종인과 그의 '경제민주화'를 앞세운 박근혜 비대위의 확장 전략이 승리의 핵심 요인이었다. 그들이 실제로 중도적이었는가, 경제민주화를 실천했는가와는 별개로.

전체 운동장의 넓은 부분은 놔두고 '윤심'이 그려준 40%라는 경계선 안쪽에서 펼쳐질 경쟁은, 승리자가 누구든 결과적으로 대통령의 정치적 부담만 가중시킬 확률이 높다. "민심 1위도 당심 1위도 다 안 된다면 윤 대통령이 지명하라"(12일자 <경향신문> 사설 표제)라는 냉소가 나올 만큼 직접적·노골적인 현재의 상황은, 용산이 져야 할 그 부담의 성격 또한 직접적·노골적으로 만들 것이다.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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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훈

프레시안 정치팀 기자입니다. 국제·외교안보분야를 거쳤습니다. 민주주의, 페미니즘, 평화만들기가 관심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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