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따라 기분이 좋아 이태원에 가보자고 했습니다"

[이태원 참사, 끝나지 않는 이야기] 유족이자 생존자의 진술서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지 석달이 다 되어가지만 아직 유가족과 생존자들의 상처난 마음은 치유되지 않고 있다. 국무총리를 비롯해 장관, 국회의원들은 이들의 상처를 보듬어주기 보단 아픈 상처부위를 건드리고 헤집기 일쑤다. 일부에서는 "놀러 가서 그렇게 된 일을 왜 국가의 책임으로 돌리느냐"고 그만하라고 이들의 등을 떠민다. 그럼에도 이들은 여전히 아픈 가슴을 부여잡고 길거리, 국회, 대통령실을 부유한다. 세상을 떠난 이들이 어떻게, 언제, 왜 죽어야만 했는지 알고 싶다는 이유가 이들의 등을 떠밀고 있다.

12일 이태원 참사 유가족 8명, 생존자 2명, 지역상인 1명은 국회 국정조사 2차 공청회에 참석해 참사에 대해 증언했다.이들의 이야기는 하나하나가 구구절절했다. <프레시안>에서는 이들의 발언 전문을 싣는다. 이들이 겪는 슬픔, 그리고 아픔을 공유하고자 하는 취지다. 아래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발언과 대독된 진술서 전문을 옮긴다.

"오늘은 유족 혹은 생존자분들의 진술을 한 분이라도 더 듣는 기회여야 한다고 생각해서, 저 역시 본인이 (참사) 당사자이며 또 유족이시기도 한 분의 진술을 대신 대독하겠습니다. 제가 읽을 내용은 어머니, 그리고 누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자 이태원으로 간 동생분의 글입니다. 그날의 참사로 누나를 떠나보낸 동생은 힘든 기억을 더듬어서 글을 써주셨습니다. 

(유족께서) 조목조목 짚어주신 정부의 부재, 사전대비에 있어 안전요원을 적시적소에 배치하지 않았던 점, 현장 대응에서 도로와 인파 통제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더 많은 생명을 구하 지 못한 점... 10월 29일 참사일로부터 오늘까지도 정부는 어디에 있나 질문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읽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진선미 의원

※기사를 보기 전 유의해주시기 바랍니다. 아래의 진술서 전문은 10.29 이태원 참사 당시의 현장과 참사 경험 등을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날따라 다들 기분이 좋아서 서울 이태원의 핼러윈 축제에 가보자고 얘기를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어머니와 누나를 모시고 이태원으로 향했고, 밤 9시 50분쯤 도착했습니다.

밤 10시쯤 세계음악문화거리 초입 골목으로 들어갔습니다. 처음 골목에 들어갈 때는 '사람이 정말 많다' 생각을 했고, 그때까지는 위험을 감지하지 못했습니다. 골목에 안전요원과 경찰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밤 10시 10분쯤 해밀톤 뒤쪽을 지날 때는 몸을 가누기가 어렵고, 인파에 떠밀리듯 이동하고 있어 당장 이곳을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으로 해밀톤 골목으로 향했습니다.

골목에 진입했을 때에도 너무나 위험한 상황이라서, '누나라도 먼저 나가 있으라고, 나는 어머니 모시고 벽 쪽에 붙어 있다가 사람들 빠지거든 나가겠다고' 하고 … 누나는 골목 앞쪽으로 한 걸음, 저랑 어머니는 벽 쪽으로 한 걸음. 그렇게 움직인 순간 조금씩 움직이던 걸음을 옮길 수가 없었습니다.

골목 위쪽에서는 아래 상황이 보이지 않았고, 서로의 뒤통수만 보이는 상황에서 다들 빨리 나가려고, '살려달라'고 외쳤습니다. 다들 그 좁은 골목으로 탈출하려 모여들었고, 점점 압박은 심해졌습니다.

처음에는 주변 모두가 의식이 있었고 살려달라고 외쳤습니다. 그렇게 10분 정도 경과되니 그쪽에 있던 사람들은 숨 쉴 공간도 소리칠 힘도 없어서 너무나 고요했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선 채로 하나둘 의식을 잃기 시작했고, 그 뒤로도 20분가량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어머니는 빠져나오기 5분 전부터 인파에 끼어, 발이 땅에서 3㎝내지 5㎝ (정도) 공중에 떠 있었습니다. 어머니 다리를 끌어안고 위로 들어 올려서 숨을 쉬게 하려 했으나 꼼짝하지 않았고, 숨소리가 가팔라지는, '살려달라'는 어머니를 바라보면서 한 손은 어머니를 잡고 한 손은 옆 사람 손목을 잡고, '도와주세요' 외치면서 균형을 잡고 버텼습니다.

버티던 30초는 어머니가 숨을 못 쉬고 호흡곤란이 오셨는데, 그때 뒤쪽에서 경찰 한 분, 구급요원 두 분이 들것을 들고 인파를 헤쳐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잠시 벌어진 그 틈을 이용해 다시 해밀톤 뒤쪽으로 향했고, 나올 때 "여기 의식이 없어요", "밑에 사람이 있어요"라는 얘기가 곳곳에서 울려 퍼졌습니다.

곧바로 누나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가 10시 41분이었습니다.

온몸에 힘이 빠지고 나가다 다시 갇힐까 두려워 20분, 30분 간 골목에서 누나에게 전화를 하며 있었습니다. 그동안에도 통제가 없어 사람들은 앞의 상황을 모르고 참사 현장으로 향했고, 옆 골목도 인파로 가득 차 위태로운 상황이었습니다.

최대한 빨리 서울시와 정부에서 협력하여 도로 통제, 인파 통제하였다면,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큰길로 나갔을 때, 말 그대로 아비규환이었습니다. 아직도 도로에는 버스, 일반차량, 구급차량이 뒤섞여 도로가 마비되어 있어 응급 환자를 이송할 수 없었습니다. 의식을 잃은 사람들은 길거리에 누워서 CPR 이외 다른 조치를 받을 수도 없었습니다.

일부는 빨간색으로 'N' 표시가 몸에 있었고, 경찰에게 (표시가) 무엇인지 물었을 때 'CPR 필요 없음'이라고 답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목격했을 때는 절반 이하만 그 표시가 있었고 나머지 분들은 제대로 된 지원 없이 방치되었습니다.

50명 넘게 확인을 했으나 누나를 찾지 못했습니다.

"10.29 참사로 누나를 잃은 동생분의 글은 여기까지입니다. 이 글을 쓰시면서 얼마나 힘드셨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너무 죄송하고 또 한편으로 감사합니다. 오늘 공청회는 유가족, 또 생존자분들이 직접, 또 상인분들이, 구조자분이 직접 그날의 이야기를 하는 날입니다. 다만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갖고 기억해 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 말을 모든 국민들이 들으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존자 두 분이 그러셨지 않습니까? 159명의 안타까운 희생자가 생겼을 때 본인들도 그렇게 할 것 같아서 병원으로 달 려 갔다고. 제발 2차 가해하지 말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상입니다." -더불어민주당 진선미 의원

▲12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용산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 공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조응천·진선미·천준호 의원들이 한 진술인의 발언을 들으며 눈물을 닦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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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예섭

몰랐던 말들을 듣고 싶어 기자가 됐습니다. 조금이라도 덜 비겁하고, 조금이라도 더 늠름한 글을 써보고자 합니다. 현상을 넘어 맥락을 찾겠습니다. 자세히 보고 오래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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