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의 결정문, 기후위기 우려하는 시민에게 '매뉴얼'이다

[초록發光] 국가인권위원회 결정문의 의미와 과제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가 2022년 12월 30일 기후위기와 인권에 대한 의견을 정부에 표명했다. 이번 의견표명은 현재 인권의 가장 큰 위협 요소로 떠오른 기후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국내외 요구를 반영한 것으로, 인권위가 기후위기와 인권 문제에 관해 처음으로 공식적인 의견을 밝힌 것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인권위는 기후위기와 인권의 관점에서 국내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개선 방향을 제시하고 6개 의견을 표명했다. 인권위의 결정문과 기타 참고자료를 토대로 시사점과 과제를 검토한다.

1. 기후위기는 생명권, 식량권, 건강권, 주거권 등 직·간접적으로 인권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므로, 정부는 기후위기 상황에서 모든 사람의 인권을 보호·증진하는 것을 국가의 기본적 의무로 인식하고, 기후위기를 인권적 관점에서 접근하고 대응할 수 있도록 관련 법령 및 제도를 개선하여야 한다.

인권위에 따르면 기후위기 상황을 인권의 관점에서 접근하면 자유권(생명권), 사회권(노동권, 사회보장) 및 연대권(깨끗한 환경권)과 직결돼 있고, 기후위기로 침해되는 개별적 기본권은 생명권, 식량권, 위생에 대한 권리, 건강권, 주거권, 자기결정권, 교육권 등 사실상 모든 권리이다.

국제사회는 정부가 기후위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법률을 제정하고 정책을 수립할 때는 인권적 접근방법에 기반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유엔을 포함한 국제사회는 기후변화의 원인을 규명하고 그로 인한 피해를 방지하려는 노력과 함께 기후위기를 인권의 문제로 접근해 대응하고 있다.

2015년 유엔 기후변화협약 제21차 당사국 총회에서 체결된 파리협정은 "당사국들은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행동을 취할 때 젠더 평등, 여성의 자력화, 세대 간 형평성뿐만 아니라 인권, 건강권, 토착민·지역공동체·이주민·아동·장애인·취약한 상황에 놓인 사람들의 권리 및 발전권에 관한 각국의 의무를 존중하고 촉진하며 고려해야 함을 인정한다"고 명시하며 기후변화가 인권 문제임을 강조했다.

유엔 인권이사회는 기후변화와 인권에 관한 12개 결의를 채택했고, 이를 통해 기후변화와 인권 의무의 관련성, 국가의 의무, 기업의 책무, 국제적 책임을 강조했으며, 2022년 유엔 인권이사회는 기후변화에 따른 취약계층 인권을 보호하는 내용의 유엔사무총장 보고서를 발표했다.

2019년 제74차 유엔 총회에서 발표된 ‘환경과 인권 보호 의무에 관한 특별보고서’에서도 "기후위기는 마실 수 있는 물, 음식, 위생적인 환경에서 살 수 있는 인간의 환경권 및 건강권, 생명권을 침해하고 있으므로 특히 정부는 기후 피해 시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인권적 접근을 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 우리나라 기후변화의 양상과 사회적·지리적 특성을 반영하여 기후위기 취약계층을 유형화하고, 기후변화가 취약계층 고용, 노동조건, 주거, 건강, 위생 등에 미치는 위협 요소를 분석하여 취약계층 보호 및 적응역량 강화 대책을 마련하여야 한다.

기후위기로 인한 피해는 사회적 차별구조인 성별, 인종, 사회적 지위, 장애, 직업, 거주지역 및 세대 등에 따라 피해 대상과 정도가 다르게 나타나며, 기후위기가 심화할수록 이와 같은 차별적 피해가 교차적으로 악화하고 재생산되는 과정이 반복된다. 기후변화에 따른 영향력의 정도는 집단별로 다르고 영령, 사회적·경제적 능력 등에 따라 대처 능력도 다르므로 정부가 기후위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제도와 정책을 수립할 때 기후위기 취약계층에 대한 분석과 인권침해 사항에 대한 검토를 선행해야 한다.

탄소중립법 제47조 제1항은 정부는 기후위기에 취약한 계층 등의 현황과 일자리 감소, 지역경제의 영향 등 사회적·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되는 지역 및 산업의 현황을 파악하고 이에 대한 지원 대책과 재난 대비 역량을 강화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같은 법 제2항은 실업의 발생 등 고용상태의 영향에 대해서만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하고 있고, 이에 따른 법 시행령 제48조에는 고용상태 영향조사 등에 대해서만 규정하고 있을 뿐 기후위기 취약계층에 대한 구체적인 지원책은 규정하고 있지 않다. 또한 '제3차 국가 기후변화 적응대책(2021-2025)' 중 취약계층 중점 보호를 위한 정책은 폭염에 따른 쪽방촌 주민과 야외노동자 보호를 위한 과제에만 집중돼 있어 이 정책이 취약계층 보호 정책이라고 일반화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가 2022년 12월 30일 기후위기와 인권에 대한 의견을 정부에 표명했다. 이번 의견표명은 현재 인권의 가장 큰 위협 요소로 떠오른 기후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국내외 요구를 반영한 것으로, 인권위가 기후위기와 인권 문제에 관해 처음으로 공식적인 의견을 밝힌 것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pxhere

3. 2022년 IPCC 제6차 평가보고서에서 발표된 국제기준을 고려하여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 시행령'의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상향 설정하고, 2030년 이후의 감축목표도 설정하여 미래세대의 기본권 보호를 위한 감축 의무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탄소중립법 제8조는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 배출량의 35% 이상 감축하는 것을 목표로 규정하고, 같은 법 시행령 제3조는 감축목표를 2018년 배출량의 40%로 상향하고 있다.

하지만 상향된 감축목표도 2022년 IPCC 제6차 평가보고서에서 강화된 감축목표(2030년까지 2019년 배출량의 43%)에 미치지 못한다. 2021년 유엔환경계획에 따르면, 지구 온도 상승을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 이하로 억제하기 위해서는 각국이 제시한 온실가스 감축 목표보다 7배 이상 더 감축해야 한다. 국제기후환경단체인 기후행동추적은 한국을 국제사회 목표치를 달성하는 데에 '매우 불충분한' 국가로 분류했다.

현재 탄소중립법에서 2030년 이후의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명시하지 않은 것은 감축량에 대한 세대 간 불평등을 초래할 수 있다. 2021년 독일연방헌법재판소는 '연방기후보호법'이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 대비 55% 감축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2031년 이후 감축목표가 규정되지 않은 것은 미래세대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판단해 일부 위헌 결정을 내렸다. 현재세대의 온실가스 감축량이 부족할수록 미래세대의 감축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으므로 이러한 행위가 다음 세대의 기본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지적이었다.

국내에서도 4건의 기후소송이 진행 중이다. 모두 정부를 대상으로 한 헌법소원으로, 2020년 3월 청소년 19명이 제기한 '청소년기후소송', 같은 해 11월 중학생 2명이 제기한 기후소송, 지난해 10월 기후위기비상행동 등 123명이 낸 기후소송, 그리고 올해 6월 태아를 포함한 어린아이 62명 낸 '아기기후소송' 등이다. 4건 모두 탄소중립법과 시행령 등에 규정된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가 너무 낮아 시민과 미래세대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있다는 취지의 헌법소원이다.

4. 정부가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설정할 때는 기업뿐만 아니라 농어민, 노동자, 장애인, 이주민, 소비자 등 기후위기에 더욱 취약한 계층의 참여를 보장하고, 이들의 의견을 반영하여 설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온실가스 배출은 산업활동 및 국민의 일상생활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발생하므로 감축목표를 설정함에 있어서도 농어민, 소비자, 노동자, 이주민, 장애인, 소비자 등 다양한 사회 구성원의 참여를 통한 공론화 및 의견 수렴 과정이 필요하다.

하지만 탄소중립법 시행령 제5조 제1항에 따라 탄소중립기본계획을 수립·변경하는 경우에 공청회 개최 등을 통해 이해관계자 등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는 규정 이외에는 별도로 참여와 관련한 규정이 없어 여전히 법적·제도적 참여 통로가 미비한 상황이다.

▲ 국내에서도 4건의 기후소송이 진행 중이다. 모두 정부를 대상으로 한 헌법소원으로, 2020년 3월 청소년 19명이 제기한 '청소년기후소송', 같은 해 11월 중학생 2명이 제기한 기후소송, 지난해 10월 기후위기비상행동 등 123명이 낸 기후소송, 그리고 올해 6월 태아를 포함한 어린아이 62명 낸 '아기기후소송' 등이다. 4건 모두 탄소중립법과 시행령 등에 규정된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가 너무 낮아 시민과 미래세대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있다는 취지의 헌법소원이다. ⓒ아기기후소송단

5. 기후변화와 관련된 기업공시를 강화하는 등 기업의 온실가스 감축을 유도할 수 있는 제도 및 정책 도입을 통해 기업의 책임성과 투명성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국가온실가스종합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에너지 및 산업공정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는 국내 총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95.7%를 차지하고, 2020년 자산총액 기준 상위 11대 그룹의 온실가스 배출량이 국내 총배출량의 약 64%를 차지하고 있다.

이에 인권위는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온실가스를 대량 배출하는 기업의 배출량 감축을 유도할 수 있는 제도 및 정책의 도입이 필수적이며, 금융위원회가 추진하고 있는 지속가능경영보고서의 의무화 계획에 기후변화 관련 기업공시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표명했다.

런던정경대 그래덤 기후변화·환경연구소의 집계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적으로 기업을 대상으로 한 소송이 계속 증가하고 있다. 2021년 기업을 상대로 제기된 38건의 소송 중 16건이 화석연료 기업 대상이었고, 나머지 22건은 식품 및 농업, 운송, 플라스틱, 금융 등 기업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 

기업을 상대로 제기된 소송으로는 석유기업 '로열더치셸' 건이 대표적이다. 2021년 5월 네덜란드 헤이그지방법원은 세계 2위 규모의 초국적 석유회사 로열더치셸에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9년 대비 45% 줄일 것을 명령했다.

6. 기후변화에 따른 영향 측정 및 평가 결과, 온실가스 배출 관련 정보 등을 통합적인 정보제공시스템을 통해 체계적이고 투명하게 공개하여 모든 사람이 기후변화 관련 정보를 신속하게 이용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하여야 한다.

정부는 기후변화의 영향에 대한 조기경보 정보, 적응 및 완화 조치, 잠재적 영향 및 자금 조달 등에 대한 투명성을 제공하고 시민들에게 정보에 기반한 참여를 보장해야 한다. 또한 기후 관련 정보가 기상청 기후정보포털, 환경부 기후변화홍보포털, 국가기후위기적응센터 한국기후위기정보포털 등 다양한 기관을 통해 분산되어 제공되고 있으므로, 수요자 측면에서 정보 접근이 용이하도록 이를 통합하는 등 개선할 필요가 있다.

윤석열 정부는 2022년 10월 '탄소중립 추진전략'에서 기후위기 취약주민 선정방식을 개선하고 단열개선·에너지바우처 등으로 생활공간을 개선하며 돌봄·방문 서비스를 활용해 안전과 건강을 관리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2022년 탄소중립법 시행에 따라 2023년까지 '국가 기후변화 적응대책'의 보완 및 세부시행 계획을 수립해야 하며, 2050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는 위 대책과 별도로 오는 3월 '국가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을 발표할 예정이다.

인권 감수성이 결여돼 보이는 정부가 인권위의 기후위기와 인권에 대한 의견에 귀 기울일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인권위의 이번 결정문은 기후위기를 우려하고 대책을 요구하는 시민들에게 필요할 때 꺼내 볼 수 있는 '매뉴얼'이 될 수 있다. 국내에서 기후변화 관련 기후소송(헌법소원)이 첫 번째로 제기된 지 2년 9개월이 지나고 있지만, 헌법재판소는 아직 답을 하지 않고 있다. 더 늦기 전에 헌법재판소가 매뉴얼을 근거로 제대로 된 판결을 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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