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전임자 급여는 어디서 오는가

[윤효원의 '노동과 세계'] 회사 돈과 사용자 돈은 다르다

사용자는 회사가 아니다. 노동자도 회사가 아니다. 둘 다 회사의 일부다. 물론 법률적으로 현대 자본주의의 핵심 조직인 회사의 소유권은 사용자, 즉 자본가에 속해 있다. 하지만 소유권이라는 법률적 관계가 회사와 관련한 모든 것을 자본가 마음대로 할 수 있음을 뜻하는 건 아니다. 이는 소유와 경영의 분리라는 말에서 잘 드러난다.

노사관계의 측면에서 볼 때, 노동조합 전임자의 급여를 제공하는 실질적 주체는 사용자가 아니라 회사다. 현실에선 사용자 역시 노동자와 마찬가지로 이해관계자의 일부로서 회사라는 법적 조직체로부터 보수나 급여를 받는다.

노동조합이 사용자의 주머니 돈을 구걸할 이유도 없고 구걸할 필요도 없다. 노동자들이 만든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단체인 노동조합은 사용자의 돈을 구걸하는 하위 파트너가 아니다. 자본가와 노동자가 자신의 보수나 임금을 회사로부터 받듯이 노동조합 전임자의 임금도 마찬가지다.

사용자가 노동조합 전임자에게 지급하는 급여는 사용자의 주머니에서 나온 돈이 아니라, 회사의 공금이다.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장의 급여는 현대자동차라는 회사의 공금에서 나오지, 단 한 푼도 정의선 회장의 주머니에서 나오지 않는다.

회사 돈과 사용자 돈은 다르다

다시 강조하지만, 사용자는 회사가 아니다. 사용자 역시 노동자처럼 회사라는 현대적 조직체를 구성하는 이해관계자(stake-holders)의 일부다. 이러한 제도적 현실과 법적 제약을 인정한다면, 회사 돈과 사용자의 개인 돈은 다르다는 자명한 결론에 이른다.

현대자동차의 재산은 이 회사의 소유주인 정의선 회장의 재산과 분리된다. 현대차의 법인격은 정의선 회장의 법인격과 구별되고 분리돼 있다. 재벌 회장이 회사로부터 받은 개인 돈에서 노동조합으로 원조되는 돈은 단 한 푼도 없다.

금속노조 현대차지부가 쓰는 공장 안 노조사무실도 정회장의 개인 소유물에서 원조 받은 게 아니라 법인격에서 독립된 회사의 공적 자산에서 원조 받은 것이다. 회사 조직에는 정씨뿐만 아니라 수 만 명이 넘는 금속노조 조합원도 함께 일하고 있다.

정의선 회장이 회사 돈에서 지원받은 업무용 자동차와 금속노조 현대차지부가 회사로부터 지원받는 노조사무실의 법률적 지위는 본질적으로 같다. 주식회사라는 법인격을 부여받은 현대차 조직 안에서 정의선 회장은 노동자나 노동조합처럼 하나의 기관(organ)에 불과하다.

▲윤석열 대통령이 2일 오후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2023 경제계 신년인사회에서 경제인들과 떡을 자르고 있다. 왼쪽부터 추경호 경제부총리, 최진식 중견기업연합회장,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구자열 한국무역협회 회장,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윤 대통령,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연합뉴스

노동조합의 상대는 기업이 아니라 사용자단체

집단적 노사관계에서 노동조합은 노동자를 대변한다. 그럼 사용자를 대변하는 자는 누구인가. 그것은 독립된 법인격체로서의 회사가 아니라 개별 인간으로서 권리와 이익, 그리고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투쟁하는 사용자(자본가) 자신이다. 이러한 자본가들의 이익과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조직된 단체가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와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같은 사용자단체들이다.

노사관계에서 선수(players)는 무생물인 회사가 아니라 생물인 인간 대 인간, 즉 노동자와 자본가다. 그리고 노동자단체와 사용자단체다. 따라서 노동조합은 기업을 상대로 하는 조직이 아니다. 기업 안에서는 사용자와 자본가를 상대하고 기업 밖에서는 전경련과 경총 같은 사용자단체를 상대하는 조직이 노동조합이다.

제대로 된 법치주의라면 '결사의 자유'라는 규칙 하에서 노동자와 자본가는 회사에서 창출된 이윤을 두고 각자의 권리와 이익을 위해 회사라는 조직 안팎에서 자주적으로 게임을 해 나간다.

단체교섭와 사회적 대화가 그런 것이다.

노사관계의 본질이 대립적인 이유

노사관계의 본질이 대립적이고 투쟁적이라 할 때, 그것은 노동자와 회사 혹은 노동조합과 회사의 관계가 대립적이고 투쟁적이라는 말이 아니다. 노동자와 사용자, 그리고 노동조합과 사용자단체의 관계가 그렇다는 말이다. 대립과 투쟁이 노사관계의 본질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은 권리와 이익을 둘러싼 노사 간의 권리와 이익이 상호충돌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업하기 좋은 것'과 '사용자(자본가)하기 좋은 것'은 다르다. 투쟁적인 노동조합과 대립적인 노사관계가 회사에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고, 반대로 노사가 하나라고 주장하는 어용스러운 노동조합과 협력적인 노사관계가 회사를 망칠 수도 있다. 대한민국 경제사에서 노조가 망친 기업은 별로 없지만, 사용자(자본가)의 탐욕이 망친 기업은 수두룩하다. .

회사 공금에서 제공되는 노조전임자 급여가 무슨 문제?

현대자동차나 삼성전자는 자본가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단체인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나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에 내는 회비를 회사 공금에서 낸다. 회사의 핵심 이해관계자인 노동자와 노동조합에 반대하는 활동을 펼치는 자본가단체인 전경련과 경총에 내는 회비가 자본가의 개인 돈이 아니라 회사 공금에서 나가는 것을 뭐라 하는 이는 없다.

당연한 이치로 조합원을 대표하여 자본가의 권리와 이익을 규제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노동조합 전임자 급여를 자본가나 사용자의 개인 돈이 아니라 회사 공금에서 지급하는 것이 문제가 될 수는 없다. 노동자들의 결사체이면서 동시에 회사라는 조직체의 중요한 이해관계자인 노동조합은 회사 재원을 요구하고 사용할 권리를 갖고 있다. 헌법 제33조가 보장한 단체교섭권이 바로 그것이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가는 회사와 분리된 독립적 법인격을 가지며 회사라는 조직체를 이루는 구성원의 일부에 불과하다. 이는 노동자와 노동조합도 마찬가지다. 정의선 회장이 타는 차와 그가 받는 보수를 현대자동차 회사가 제공하는 게 당연하듯이, 현대자동차에서 일하는 노동자를 대표하는 노동조합의 사무실과 그 전임자의 급여를 회사가 제공하는 것도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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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효원

택시노련 기획교선 간사,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사무국장, 민주노동당 국제담당, 천영세 의원 보좌관으로 일했다. 근로기준법을 일터에 실현하고 노동자가 기업 경영과 정치에 공평하게 참여하는 사회를 만들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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