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철학의 부재가 문제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모빌리티라는 범주에서 보면 한국 사회는 아무 생각이 없다. 최근 국토부가 발표한 철도 경쟁체제 유지 방침 속에도 철학 따위는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공동체의 삶은 무엇을 바탕으로 유지되어야 하는가? 무엇을 지향해야 하는가? 따위의 질문을 던지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 되어버렸다.
세계는 그리고 한국은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는 신념을 장착한 채 전속력으로 질주하는 거대 이동 기계 같다. 얼마 멀지 않은 곳에 천 길 낭떠러지가 있다는 경고판이 서 있지만 가짜 뉴스로 취급된다. 근대 인류가 만난 대형재난은 예측하지 못한 사고들이었다. 물론 인간의 욕망은 누적된 시간 속에 재난을 잉태시키고 생산해내기도 했지만 사고는 갑자기 닥치는 것이었다. 타이타닉호가 사우스샘프턴 항구에서 닻을 올릴 때까지만 해도 빙산을 만나게 될 것을 예측한 사람은 없었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질 때에도 징후는 불과 몇 시간 전에야 나타났다. 성수대교는 그야말로 순식간에 상판이 주저앉았다.
그런데 인류는 오래전부터 기후 위기가 다가오고 있음을 알고 있다. 인간이 만들어내는 온실가스는 지구를 가열시키고 있다. 남북극의 빙하는 시간이 갈수록 더 빠르게 녹아내리고 있다. 폭염과 산불, 홍수와 태풍, 한파의 빈도와 강도는 그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매년 "100년만의"라는 수식어가 달린 기상이변 현상이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감염병은 이제 인간의 반려가 될 지경이다. 지구는 분명하게 계속 등도 아니고 음도 아닌 난을, 경고난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어리석은 인류는 경고난에도 아랑곳하지 '자유'롭게 무한궤도를 굴리고 있다. 유일신 자본주의는 무한 생산, 과다 소비, 무한 성장의 3위 일체로 인간의 머리 위에 존재하고 있다. 성장은 천국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되었다. 질주하는 자본주의가 닿을 미래는 유토피아인가 디스토피아인가?
<거대도시 서울 철도 ; 기후 위기 시대의 미래 환승법>으로 2020년 한국출판문화상 학술 저술상을 받으며 혜성처럼 등장한 전현우의 새 책 <납치된 도시에서 길찾기>(이하 길찾기)가 막 한국에 도착했다. 저자는 서문에서 이 책은 철학책임을 밝힌다. 다루는 시공간은 기후 위기 시대 오늘 한국이며 초점은 이동에 맞춰져 있다. 저자가 구상하고 있는 철도 3부작 시리즈의 두 번째 책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이 책은 기후 위기 시대 한국의 이동/교통 문제를 다루고 있으며 파국을 회피하는 대안은 철도 임을 말하는 책이다.
이제 인간의 삶은 이동과 분리할 수 없게 된 시대이다. 그런데 이동과정에서 탄소배출은 불가피하다. 이동을 중단할 수 없는 조건에서 탄소배출을 하지 않거나 줄이는 방법을 찾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탄소배출을 줄이기는커녕 촉진하는 것이 아닐까 의심되는 일이 지속되고 있다.
친절한 저자는 책을 읽는 방법도 알려주고 있다. 철학책 답게 개념에 정의를 부여하고 해석하며 동의를 구한다. 철학책이자 철도책이기도 한 이 책은 사실 자동차에 관한 책이기도 하다. 이 사회를 지배하는 것은 자동차다. 저자는 자동차가 우리 삶에 지배력을 행사하는 과정을 "자동차 지배"라고 정의했다. 자동차가 지배하는 사회는 현대 문명을 일궈냈지만 역설적이게도 "이동의 위기"를 만들어냈다.
"온실가스가 늘어날수록 지구 가열은 심화되고, 이에 따라 사람들의 삶이 서 있는 길과 도시는 무너져간다. 일종의 자멸에 가까운 상황이 바로 이 책이 탐구하는 이동의 위기다. 길찾기 19쪽."
나는 퇴근길 지하철역에 내리면 집으로 향하는 유일한 언덕길을 걸어 올라간다. 이 길은 인도가 없는 일방통행 차로이다. 밤이 늦으면 등 뒤쪽에서 들리는 자동차 엔진소리가 섬뜩하다. 차가 가까이 붙는 느낌이 들면 운전석을 향해 뒤를 돌아보며 나도 모르게 몸을 벽으로 붙인다. 저자는 자동차에 의해 공간이 납치되었다고 한다. 이동의 위기는 인간의 걷기 공간이 자동차에 의해 납치되면서 발생했다.
자동차 중독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희망이 없다. 모빌리티의 모든 것이 자동차를 정점으로 재 구성되었다. 이러다보니 자동차 사회의 폐해를 보완해 줄 철도조차도 자동차 사회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재 조정되었다. 철도망이 부활하거나 신설되는 과정에서도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자동차지배 개념이 작용한다. 고속철도역이 산속 오지에 들어서거나 도심을 우회하여 지난다.
이렇게 만들어진 철도역과 노선은 자동차를 대체하지 못하고 오히려 자동차 이용을 부추긴다. 머나먼 역까지 자동차를 이용해야 한다. 당연히 역들은 필수적으로 거대 주차장을 갖출 것을 요구받는다. 자동차 회사가 만든 게 아니라 국토부와 국가철도공단이 만드는 철도 노선조차 미래나 환경이나 지속 가능 같은 철학은 눈곱만큼도 보이지 않는 현실이다.
선거철만 되면 여야를 막론하고 등장하는 도심 철도 지하화의 문제도 꼬집는다. 거대한 자동차 지배체제에 대해서는 눈을 감은 채 도심 철도를 도시의 적으로 모함한다. 저자의 이야기를 들어 보자.
"'로컬'의 이름 아래 도심 철도를 없애 버려야 한다는 골치 아픈 이야기까지 들려왔다. 새로 짓거나 개량하는 철도 노선들은 시끄러운 도시를 버리고 대심도로, 교외로 논란을 피해 도망가 버렸다. 몇몇 지역 도시와 시민들은 철도가 사라지자 환호했다. 내 귀에는 이들의 환호가 마치 그 도시의 조종처럼 들렸다."
교통은 탄소 저감에 실패했다. 미국과 유럽의 탄소 배출량은 요지부동이고 중국과 인도에서 온실가스 배출량이 가장 빠르게 상승하는 분야는 교통이다. 저자는 지금까지 비난이 집중되었던 석탄 화력만큼, 지속가능성이 의심스러울 정도로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교통 분야를 보면서 이동의 위기를 본다.
자동차에 점령된 사회에서 자동차 없이 살아남기는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저자는 고민한다. 철도나 지하철, 버스 같은 탄소배출을 줄일 수 있는 공공교통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지역 주민들에게 자동차를 쓰지 말라고 할 수는 없다.
"승용차가 가장 편리한 선택이 되는 신도시에 터를 잡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고속도로를 타고 몰려들 승용차를 기대하고 상업 시설 입지를 선정한 상인들에게 교통량을 줄이라고 요구하는 것은 삶을 송두리째 바꾸라는 것이다. 자동차 제조업, 항공교통 종사자들까지 감안하면 기후 문제를 이야기하며 승용차와 항공 교통량을 줄이자고 말하는 것은 사람들이 살아온 삶의 방식과 그동안의 선택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저자는 책 곳곳에서 자동차 지배 사회의 지배종인 승용차 대형화 문제도 꼬집는다. 일명 스포츠 유틸리티 차량(SUV)이 대세가 되는 현상은 온실가스 감축과는 반대로 작용하는 힘이 되어 버린다. SUV 판매량이 늘수록 수익이 증가하는 자동차 제조사 입장에서도 냉엄한 경쟁체제에서 온실가스 문제는 고려대상이 아니다. 주차 공간이 부족한 아파트 단지에 사는 나에게는 이중주차된 SUV가 고역이다. 이를 악물고 육중한 차를 밀어내면서 느끼는 것은 갈수록 점점 더 많아진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누가 감히 SUV 이제 그만!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강고한 자동차 지배체제에 균열을 내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을 것이다. 제조업 중심의 한국 경제에서 자동차 생산은 특별한 상징성을 갖고 있다. 세계적 자동차 생산기업을 보유하고 있는 한국에서 "자동차 권하는 사회 유지"는 경제성장을 위한 토대이다. 토대가 상부구조를 결정한다는 말을 살짝 변용한다면 자동차 지배라는 토대 위에 한국사회의 거의 모든 것이 자리 잡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해 정부가 정책적으로 도로 부분의 화물 운송을 철도로 이전하게 되면 화물운송업에 종사하는 상당수의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게 될 수도 있다. 이런 일이 실제 시도되면 역사상 가장 치열한 화물연대의 생존 투쟁이 시작될 것이다.
자동차 지배를 벗어나는 일은 한국사회의 기본체질을 완전히 바꿔내야 가능한 일이다. 지역 공공교통의 재정립 또는 개편, 도로 교통 억제와 이를 가능하게 하는 모빌리티와 도시 시스템 재구성, 저탄소 공공교통으로의 수송분담률 이전, 기존 산업 종사 노동자들에 대한 재교육 및 재취업 보장, 개인 소유 자동차의 소형화 유도, 자동차를 전제로 한 삶의 방식 전환 등 무수히 많은 과제가 놓여있다.
솔직히 말하면 이런 이유들 때문에 희망보다는 절망이 앞서 온다. 그래서 이 책은 파국을 앞에 둔 묵시록처럼 다가온다. 하지만 유쾌한 묵시록이다. 철학과 역사를 아우르고 산업적 분석 뿐만 아니라 철도와 도로, 도시에 대한 저자의 다재다능한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미소가 절로 나온다. 게다가 인천사는 저자의 개인적 경험담은 인문학적 내공이 가득 찬 글을 경쾌하게 만들어 주고 있다.
저자는 대동여지도를 만든 김정호처럼 발로 뛰며 연구하는 사람이다. 전국의 철도망을 답사하고 역을 찾아다니는 찐 철도 '덕후'다.
2년 전, EBS 다큐 제작진과 동해북부선 이야기를 담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 정동진역 승강장에서 촬영을 하고 있을 때였다. 동해역으로 향하는 KTX가 정차했는데 유리창 안 객실에 <납치된 도시에서 길찾기> 저자인 전현우와 똑같이 생긴 사람이 보였다. 열차는 곧 출발 했고 나는 전현우에게 전화를 걸어 말했다. "진짜 도플갱어가 존재한다고. 당신하고 똑 같이 생긴 사람을 정동진역에 정차한 KTX안에서 봤다고." 수화기 넘어 껄껄 웃는 소리가 들렸다. 본인이 맞다며 동해역으로 가는 중이라는 것이었다. 촬영팀도 동해역으로 가야 해서 저자를 따라갔고 역 앞 카페에 마주 앉아 철도로 이야기 꽃을 피웠다. 저자는 삼척선을 찾아 나선 길이라고 했다. 철도에 미치긴 단단히 미쳤다고 생각했다.
최근에는 경부선 ITX 새마을호를 몰고 서울역에 도착해 교대 승무원에게 운전실을 넘겨준 뒤 승강장을 걷다가 객실에서 내리는 전현우 작가와 마주쳤다. 내가 운전하는 열차에 거장을 태우는 영광을 누린 셈이다. 전현우 작가는 열차에 타야 영감도 떠오르고 글도 잘 써진다는 말을 남기고 인파 속으로 사라졌다. 리베카 솔닛은 그의 책 <야만의 꿈들>에서 장소 자체가 나의 글쓰기 스승이었다고 밝히고 있다. 솔닛의 장소는 전현우에게는 열차 안일 것이다.
엄청난 독서량이 받쳐주는 필력과 발로 뛰는 연구가 주는 실사구시의 설득력, 기발한 아이디어가 끊임없이 샘솟는 젊은 연구자이자 작가를 만난 지금 여기 한국은 참으로 다행이다. 만약 당신이 자동차 지배로부터 "해방"되기를 꿈꾼다면, "나는 철도를 중심으로 하는 '확장된 걷기 공간'으로 도시를 재편하는 것이 해법이라고 주장한다." 라고 말하는 전현우를 따라 <납치된 도시에서 길찾기>에 나서길 권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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