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의 '법치주의'는 무엇이고 '자유를 제거하려는' 자들은 누구인가

[기자의 눈]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법치주의'

법치주의라는 말이 묘하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3일 국무회의 마무리 발언을 통해 "민주주의와 공화주의라는 것도 법치에 의해 발현된다"고 전제하며 "법치는 모든 사람이 함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제도"라고 말했다. 방점은 "법 위반 사태에 책임을 물어야 할 국가가 이를 게을리한다면 이는 우리 사회의 자유를 부정하는 것이자 사회적 약자를 방치하는 것"에 찍혀 있는 것 같다. 특히 "자유를 제거하려는 사람들, 거짓 선동과 협박을 일삼는 세력과는 함께할 수 없다"는 부분에서는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들었는데, '자유를 제거'한다는 표현 자체가 생소한데다, 대체 자유를 제거하려는 자들이 누구고 어떤 방식으로 '제거' 행위를 하고 있는지 구체성이 빠졌기 때문이다.

대통령실은 이 발언을 이재명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통해 언론에 공개했다. 이 부대변인도 '거짓 선동과 협박을 일삼는 세력 등의 예를 들어달라'라는 기자의 질문에 "특정한 세력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결국 구체성이 결여된 추상적 가치들의 향연인데, 물론 화물연대 파업에 맞서 '강석열'의 면모를 보여준 상황이라 알쏭달쏭한 이 발언을 굳이 별도로 전한 이유에 대해 짐작가는 바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법치주의는 '법에 의한 지배'다. 이것은 거대한 시스템이다. 우리가 하는 흔한 착각은 시스템이 저절로 생성돼 합리적으로 운용된다고 믿는 것이다. 하지만 법치주의에도 '주체들'이 있다. 법치주의는 인간이 이룬 국가가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하거나 국민에 의무를 부과할 때 그 모든 것은 법률에 근거해 이뤄져야 한다는 걸 의미한다. 하지만 법치를 구현하는 자들은 유권자가 선출한다. 인간의 자의적 의지가 개입되지 않은 한치 오차 없는 '법치'에 의한 '국가'가 존재할 수 없다. 만약 그런 게 존재한다면 그건 유토피아일까? 아니면 디스토피아일까?

법치주의는 크게 보면 두 가지 의미의 결합이다. 첫째, 좁은 의미인데, 법치에 어긋난 행위를 바로잡는 법 집행 주체가 강조된 법치주의다. 법을 어긴 사람은 법에 의해 처벌하고 단죄해야 한다는 것인데, '만인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격언이 주로 권력형 범죄자를 다룰 때 사용된다는 걸 생각해보면 쉽다. 두번째 의미는 첫번째보다 더 중요하다. 처벌보다 더 중요한 것은, 법에 의해 보장된 시민의 권리가 침해될 때 법치주의가 시민들을 강력히 옹호하고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점이다.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 법치주의의 중요한 의미는 후자에 방점이 찍혀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민주주의와 공화주의라는 것도 법치에 의해 발현된다"는 말은 반만 맞는 말이다. 18세기 말 '절대 왕정'의 '법치주의'에 따르면 근대 공화주의와 민주주의는 탄생 자체가 불가능했다. 구체제를 무너뜨린 자리에 공화주의와 민주주의가 들어섰고, 공화주의와 민주주의에 걸맞는 '법치주의'가 세워진 게 순서다. 법치에 의해 민주주의와 공화주의가 발현된다는 말은, 민주주의와 공화주의의 가능성을 묶어두는 것으로, 법치의 첫번째 의미를 보수적으로 해석한 말이다. 법치와 공화주의, 민주주의는 상호 보완관계로 보는 게 맞다. '법치는 민주주의와 공화주의에 의해 발현된다'는 말도 틀리지 않기 때문이다. 말꼬투리 잡기 같지만 그렇지 않다. 평생 '범죄자'를 잡아 처벌해 온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이라고 해서 우리가 이해해 줄 문제가 아니다.

이태원 참사의 경우를 보자. 이 경우 법치주의는 참사 피해자와 그 유족들이 당한 피해, 그들의 민주적 권리 구제를 위해 존재해야 한다. '법치'에 의해 나쁜 사람을 잡아 처벌하는 데 방점이 찍혀야 하는 게 아니라, 마땅한 시민의 권리가 침해된 사람들을 중심에 세우고, 대체 어떤 연유로 헌법에 보장된 '행복 추구권'이 침해됐는지, 국가는 어떤 책임을 방기했는지 알 권리를 위해 사용돼야 할 말이다. 그런데 국회는 법치주의에 의해 출범한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를 아직도 가동시키지 못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최측근인 국민의힘 장제원 의원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해임 건의안이 '법치주의'에 근거해 국회를 통과했는데도 이를 비난하며 "국정조사 또한 정권 퇴진 운동에 불과하다"는 인식을 보였다. 정부는 어떤가. 경찰은 이태원 사고 다음날에 시민단체와 언론의 동향을 수집해 '특별취급' 레테르를 붙인 '정책 참고자료'를 만들어 뿌렸다. 이런 건 법치주의에 맞는 행위인가? 뭔가 '제거'된 느낌이 드는 것은 기분 탓일까?

법치주의에 따르면 권력자의 말, 특히 국무회의와 같은 공식적 국가 대사가 결정되는 장에서 권력자의 말은 법률적 의미를 가져야 하고 구체성을 띠어야 한다. 국정 철학이라기보단, 반대파에 대한 엄포와 경고로 점철된 추상적이고 이념적인 말이 난무하면 사람들은 불안해진다. 이를테면 '자유를 제거하려는 세력'의 구분은 과연 누가 하는가, 그런 구분을 독점하는 것은 대체 누구로부터 부여된 권위인가 하는 불안들이다. 

막스 베버는 정치가의 자질로 열정, 책임감, 균형적 현실감각을 꼽았다. 정치가는 보통 '불모의 흥분 상태'에 빠져 있다. 아무것도 만들어내지 못하는 '흥분 상태'가 세상에 도움 되는 추동력이 되기 위해선, 책임감과 균형적 현실감각이 중요하다. 그 중에서도 균형적 현실감각은 가장 중요한 자질이다. 이것 없이 열정과 책임감만 있는 정치인이 스스로 어떤 도그마에 빠져 잘못된 판단을 하고 밀어붙이면 오히려 국가를 더한 위험에 빠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치인은 자신과 자신이 처한 환경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객관성은 대중들의 공감을 얻어야 한다. 예를 들어 '자유를 제거하려는 세력'이 대체 어떤 세력인지 (말을 안 해줘서) 사람들이 모르는 상황이라면, 이 말을 한 정치인의 추상적 책임감과 '불모의 열정'은 공허한 것이 된다. 그런데도 대통령의 이 자신감 있는 추상적 말투에서 어떤 심판자적 권위주의 태도가 엿보인다면 지나친 해석일까.

'자유를 제거하려는' 이라는 말은 공소장 같은 곳에도 어울리지 않는 비법률적 용어다. (아마 80년대 공안 시대엔 익숙하게 사용됐을 수 있다.) 대체 자유를 제거한다는 행위가 무엇인지 참으로 궁금하다. 법치주의도 그렇다. 이를테면 민간인을 대통령 전용기에 태우는 것도 '법치주의'에 따른 것인가. MBC의 특정 보도를 빌미로 전용기에 안 태우는 것도 '법치주의'에 따른 것인가. 언론의 자유가 '제거'되진 않았는가. 만약 그게 정무적 판단, 정책적 판단이라고 한다면, 지금 과거 정부의 정책적 판단이 현 정부의 '법치주의' 하에서 단죄의 대상이 되는 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내로남불'은 멀리 있지 않다.

과거 독재 정권들도 '법치'를 입에 달고 살았다. 그들의 '법치'는 '사회 안녕을 위협하는' 사람들을 처벌하는 게 목적이었다. '사회 안녕을 위협하는' 행위에 대한 기준은 자칭 '법치주의자'들이 독점했다. 그 결과가 어땠는지 모두 다 안다. 현 정부가 '독재 정부'와 같다는 게 아니다. 법치주의라는 말이 '자유 제거'와 같은 추상적이고 이념적 가치와 함께 사용되는 게 우려된다는 말이다. 정부가 이런 걱정을 덜어줘야 할텐데, 그렇다면 '자유를 제거하려는' 세력이 누구인지, 어떤 행위를 하는지 특정해주고 국민의 공감대를 얻어 제대로 '법치주의'를 보여주길 바란다.

▲윤석열 대통령이 11월 24일 오후 경남 창원시 현대로템을 방문, K2전차 등 전시장비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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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열

정치부 정당 출입, 청와대 출입, 기획취재팀, 협동조합팀 등을 거쳤습니다. 현재 '젊은 프레시안'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쿠바와 남미에 관심이 많고 <너는 쿠바에 갔다>를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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