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한덕수 만났지만…서로 "양보하라" 예산안 충돌

한덕수 "법인세 감면 효과, 감당할 수준" vs 이재명 "그 정도밖에 안 되니까 포기해야"

한덕수 국무총리가 12일 내년도 예산안과 관련한 야당의 대승적 결단을 촉구하기 위해 국회를 찾았으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기 싸움만 벌인 채 빈손으로 돌아갔다.

한 총리는 이날 오후 국회 본청 내 민주당 당 대표실을 찾아 이 대표와 면담했다. 여야의 예산안 협상에 진전의 기미가 보이지 않자 직접 야당 대표를 찾아 호소에 나선 것이다. 화기애애한 모습으로 대화를 시작한 두 사람은 서로 양보를 요구하며 대화가 평행선을 달리자 굳은 표정으로 만남을 끝마쳤다.

여야 협상 때와 마찬가지로 최대 쟁점은 법인세였다. 이 대표는 "책임 야당으로서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일에 대해서는 양보하기가 어렵다"면서 "그 중 하나가 법인세 최고세율 구간 문제"라고 했다.

이 대표는 "법인세 감면에 동의한다. 그러나 감면을 한다면 여력이 있는 초(超)대기업이 아니라 형편이 어려운 중소·중견기업에 감세하는 게 맞다"면서 "우리가 정부 여당에 협조해야 될 건 협조하겠지만 책임 야당으로서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해서는 안 될 일, 국민적 눈높이에 맞는 꼭 해야 될 일에 대해서는 양보하지 않겠다"고 단호한 태도를 보였다.

이 대표는 "(정부 예산안)원안과 준예산 중 선택해야 하는 상황으로 우리가 몰릴 순 없다. 우리가 다수당이기 때문"이라면서 "'국민 감세 3법'을 수정안에 담으려고 한다"고 밝혔다. 이 대표가 말한 국민 감세 3법은 중소법인의 법인세율을 낮추고 종합소득세 부담을 일부 완화하고 월세공제액을 늘리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12일 내년도 예산안 협의를 위해 국회 대표실을 방문한 한덕수 국무총리와 대화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 총리는 이에 대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법인세율이 21%이고 상당히 많은 나라들이 법인세를 내려 투자를 촉진하며 고용을 창출하는 기업을 유치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이어 "지금 대표님이 걱정하시는 초부자 감세라고 하는 법인세 3000억 원 이상 이익을 올리는 기업에 대한 법인세 감세가 이뤄지는 부분은 저희가 판단하기에 약 3000억 원 정도라고 판단하고 있다"면서 "3000억 원 정도 감면을 통해 저희가 해당 기업들의 경제활동을 더 활성화 시키고,  그 회사를 지탱하고 있는 고용 노동자, 주주, 많은 이해관계 당사자들에게 좀 더 많은 소득을 올릴 수 있게 한다면 3000억 원 정도의 법인세 감면은 우리가 충분히 감당할만한 수준"이라고 주장했다.

한 총리는 또 "법인세에 관한 한은 여야가 최고의 이 분야 전문가인 김진표 국회의장의 수정안을 받아들여서 예산이 원활하게 타결하는 게 좋겠다는 말씀을 이재명 대표님에게 간곡히 말씀드리고 싶다"고 했다. 김 의장은 여야 이견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법인세 최고세율을 25%에서 22%로 줄이되 시행을 2년 유예하는 중재안을 내놨으나 민주당은 이를 거부한 바 있다.

이 대표는 그러자 재반박에 나섰다. 통상 공개회동에서 한 차례씩 발언을 주고받은 후 비공개 전환을 하는 상례에서 벗어난 것이다. 이 대표는 한 총리에게 "말씀을 듣고 보니까 '액수가 얼마 안 되는데 그냥 정부안대로 하는 게 좋겠다'고 하시지만, 저는 반대로 얼마 안 되는 것을 가지고 왜 그렇게 주장하는지 저희로선 납득하기 어렵다"고 강하게 맞받았다. 

이 대표는 "그 정도밖에 안 되니까 굳이 원칙에도 어긋나고 양극화도 심화시킨다는 초부자 감세를 포기하는 게 합당하지 않나"라며 "저는 정치가 대화와 타협으로 하는 게 가장 좋다고 생각해서 (정부가) 국민 눈높이 맞게 양보하셔서 예산안이 원만한 협의가 되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했다.

두 사람이 공개 발언이 끝나자, 김성환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팩트(사실) 체크 관련 한마디만 하겠다"며 한 총리 발언에 대해 다시 반박하고 나섰다. 김 정책위의장은 이어진 비공개 면담 과정에서 '법인세 감세 세수 효과는 내년도에는 그게(3000억 원) 맞지만 실제로는 그 다음해부터 최소 2조5000억 원의 감세 효과가 생긴다"고 말했다고 기자들에게 전했다.

김 정책위의장은 이어 "(한 총리가) 세계적인 추세가 감세인 것처럼 이야기하셨는데 미국만 해도 사실상 IRA(인플레이션 감축법)이 법인세를 증세해서 기후 위기에 쓰는 것이고 영국은 감세하려다가 44일 만에 총리가 바뀌었다"면서 "세계적 추세는 법인세 증세에 가깝다. 그러니까 세계적 추세와 다른 이야기라고 바로잡는 과정이 있었다"고 했다.

한 총리는 이에 대해 별도 반박 발언은 하지 않았으며, 이 대표와 대화 역시 공개 발언 연장선상에서 시각 차만 드러낸 채로 마무리됐다고 안호영 민주당 수석대변인이 전했다. 

민주당은 앞서 한 총리의 이 대표 예방에 대해 "무슨 협상 카드를 들고 올 것 같지 않다. 정부가 예산안 처리를 위해 노력한 흔적, 사진찍기용(用) 아닐까 의심하고 있다"(김 정책위의장, 이날 기자간담회)라고 의혹을 제기한 바 있는데, 실제로 한 총리는 협상안을 들고 오지 않았고 이 대표와 언쟁만 벌이고 돌아간 셈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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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어리

매일 어리버리, 좌충우돌 성장기를 쓰는 씩씩한 기자입니다. 간첩 조작 사건의 유우성, 일본군 ‘위안부’ 여성, 외주 업체 PD, 소방 공무원, 세월호 유가족 등 다양한 취재원들과의 만남 속에서 저는 오늘도 좋은 기자, 좋은 어른이 되는 법을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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