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와 위기 앞에 '멈출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하다

[청소년 인권을 말하다] 참사 외면하는 교육, 일상의 문제 외면하게 만든다

2017년 11월 15일, 경북 포항에서 규모 5.4, 진도 6의 지진이 일어났다. 건물이 무너지고 많은 사람이 다쳤다. 더 큰 문제는 바로 다음 날이 대학수학능력시험일이라는 점이었다. 지진이 난 직후 정부는 수능 시험을 예정대로 진행한다고 발표했으나, 다시 당일 저녁 8시 무렵 수능 시험을 1주일 뒤로 연기한다고 발표했다. 갑자기 발생한 재난에 정부가 안전 문제와 재난 지역 학생들을 고려하여 시험을 연기하기로 결정한 것은 잘한 일이라 하겠다. 하지만 바꿔 말하면 그렇게 큰 지진이 일어났음에도 처음에는 수능 시험을 강행하려 했다는 데서 한국 사회에서 수능을 비롯한 대학 입시가 가지는 위상을 느낄 수 있다.

그로부터 2년여 뒤,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되었다. 코로나19로 인해 2020년 초반에는 학교 등교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고, 등교가 개시된 이후에도 여러 학교에서 집단 감염이 반복되었다. 그런 와중에도 수능 시험은 예년처럼 치러졌다. 코로나19 감염자가 늘고 유행이 일상화된 올해에는 약 2400명이 코로나19에 걸린 채로 수능 시험을 치렀다. 초유의 감염병 사태도 대학 입시를 가로막지는 못했다. 입시 절차가 차질 없이 진행되는 것은 교육은 물론 한국 사회의 지상 과제였다.

처음에 이런 소식을 접하고 코로나19에 걸려서 아픈 채로 시험을 본 수험생들은 과연 이 시험이 자신들에게 '공정'하다고 생각했을지, 시험 결과를 수용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병에 걸린 상태로 시험을 본 이들 외에도 학교에서 집단 감염이 일어나서 등교를 했다 안 했다 했다거나, 가까운 시기에 코로나19에 걸렸다가 컨디션이 흐트러진 학생들은 어떨까. 포항 지진 당시에도 바로 지난주에 큰 지진을 겪은 학생들이 시험을 제대로 칠 수 있을까 하는 우려가 나왔었다.

애초에 일제고사식 수능이 대학 입시에 큰 영향력을 가지고, 점수 몇 점 차이로 당락이 갈리며, 대학 서열과 학력·학벌 차별로까지 이어지는 한국의 대입에는 병에 걸려서, 사고를 당해서, 무언가 불행한 일이 생겨서 힘겨운 수험생들 각각의 사정은 끼어들 틈이 없다. 대학 입시 제도는 개개인의 노력, 능력, 적성 등을 평가하여 공정하게 기회를 주는 절차라고 포장되어 있지만, 사실은 개인의 사정과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과정이다. 그렇기에 수능 시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해진 일정대로 시험이 치러지고, 수십만 수험생이 시험에 응시하여 시험 점수에 따라 줄을 세우는 것 자체인 것 같다.

▲2023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일인 17일 오전 대구 수성구 대륜고등학교 시험장에서 수험생들이 시험 준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참사 앞에서 애도할 수 없는 현실

올해에도 수능 시험까지 며칠 남지 않은 시점, 또다시 큰 사건이 발생했다. 10월 29일, 서울의 이태원에서 할로윈을 즐기러 모인 사람들이 좁은 골목에 너무 많이 몰리게 되면서 약 160명 가깝게 목숨을 잃었다. 그중에는 중고등학생도 6명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국가애도기간을 선포했고 여러 학교에서도 묵념 시간을 가지고 현장체험학습 등을 취소했다. 희생자가 다니던 학교에서는 임시휴업이나 애도의 자리를 가지기도 했다. 그러나 정부의 애도기간 선포가 겉치레였듯이 학교, 특히 고등학교들에서의 애도도 대부분 형식적인 것으로 지나갔다. 오히려 이태원 참사를 들며 학생들에게 그러니까 놀러 다니지 말고 공부에 집중하라고 하는 구실로 쓰였다는 경험담도 있다.

사실 세월호 참사 때에는 더 심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 많은 사람이 충격을 받았고 애도와 추모,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활동이 수년간 이어졌다. 고등학생들이 많이 죽은 사건이었기에 청소년들의 참여도 많았다. 이때 세월호 참사에 관해 활동에 참여한 청소년들 상당수는 학교에서 '그런 것에 신경 쓰지 말고 공부나 하라'라는 식의 말을 들어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입시 공부에 전념하기 위해서 참사는 되도록 빨리 잊고 묻어 둬야 하는 것이 되었다.

바쁘게 흘러가는 입시 일정 앞에서는, 갑자기 벌어진 사건에 대해 이야기할 겨를이 거의 없다. 경쟁적인 교육 환경 속에서는 남보다 앞서가기 위해, 아니 뒤처지지 않기 위해 한눈팔지 말고 공부에 전념해야 한다. 사회 문제나 정치 문제도, 가능하면 개인적인 사정도 입시 공부에 집중하는 데 방해가 되는 것은 구석으로 밀어 놓아야 한다. 사회적 참사나 충격적인 사건도 예외가 아니다. 교사나 누군가가 명시적으로 그렇게 말하지 않더라도 여유가 없는 경쟁적 교육 환경에서는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정치와 사회에 무관심해지게 하는 교육은 민주주의 사회의 교육으로서 낙제이지 않을까. 게다가 우리가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같은 사건을 겪고 그 의미를 나누고 슬픔을 위로하는 것은 이 사회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감각을 가지기 위해 꼭 필요한 과정이다. 이러한 사회적 관심과 애도, 참여를 거추장스럽게 느끼게 하고 형식적인 제스처만 취한 뒤 무관심해지라고, 외면하라고 요구하는 교육은 그 자체로 비교육적이다.

멈춰야 할 때 멈출 수 있는 교육

참사를 외면하는 교육은 당연히 일상에서의 문제 역시 외면하게 만든다. 일하다가 죽는 산업재해 사망자 수가 수백 명에 달해도 먹고살기 바쁜 한국 사회에서는 무감각하게 지나가는 일이 되어 버린다. 청소년 사망 원인 1위가 자살이고 최근 몇 년간 청소년·청년 자살률은 증가 추세다. 질병관리청의 청소년건강행태조사에 따르면 청소년 4명 중 1명이 우울증을 겪고 있다. 이런 현상은 학업 스트레스와 장시간 학습, 수면시간과 여가시간 부족의 영향이 크다.

이러한 문제점들을 모두가 알고 있음에도, 매년 수능 시험은 치러지고 대학 입시 제도와 경쟁, 차별, 서열화 위주의 교육은 멈추지 않는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뒤 학교에서 가장 먼저 취해진 조치는 수학여행을 취소하거나 소규모로 축소하는 것이었다.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나자 학생들의 놀 거리와 여행부터 쉽게 취소해 버린 것이다. 그러나 입시 경쟁과 수능 등은 학생들의 스트레스와 고통의 직접적인 원인임이 분명한데도 결코 취소되지 않는다.

마치 공장 컨베이어 벨트에 맞춰 일해야 하는 노동자들에게 다른 데 관심을 가지거나 쉴 여지가 주어지지 않듯이, 멈추지 않고 쉼 없이 돌아가는 입시 앞에서는 모두가 지금의 방식과 체제의 문제점에 대해 돌아보고, 이야기할 여유가 없다. 개인에게 불행이 닥쳐도 그 개인의 사정일 뿐이고, 사회적 참사가 일어나도 외면하고 잊어야 할 남의 일일 뿐이다.

반복되는 참사와 위기 앞에서 우리에게는 '멈출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하다. 이는 첫째로는 수능이 상징하는 지금의 교육과 입시를 바꾸기 위한 반성과 논의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의미이다. 특히나 기후 위기가 심화되고 지금의 체제의 지속 가능성과 정당성에 대한 의문이 커지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기존에 해오던 것을 멈추는 '파업'과 '거부'의 시간일지도 모른다. 둘째로는 문제가 발생했을 때, 개인에게 힘든 일이 생겼을 때, 사회적 사건이 발생했을 때 이를 묻어 두고 외면하지 않고 잠시 멈출 수 있는 여유가 있는 교육, 멈추어 가고 쉬어가며 서로를 돌볼 수 있는 교육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지진에도, 감염병 대유행에도, 파업에도, 사회적 참사에도 멈추지 않는 입시 경쟁은 결코 자랑스러운 모습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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