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급 400원짜리 투쟁'?…여성 노동자들이 일어선 이유는

[기고] '파업에 나선 여성노동자를 응원한다!' 집담회

철도, 병원, 화물 등 시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파업이 이어지고 있다. 11월 25일엔 하루 전면 파업에 들어간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여의도에 모였다. 11월 25일은 세계여성폭력추방의날이기도 하다. 세계여성폭력추방의날을 맞아 파업에 들어가는 공공부문 여성노동자들이 모여 집담회를 했다. 싸우는데 성별이 무슨 상관일까? 싶지만 더 치열하고 특별한 그들의 투쟁을 소개한다.

Q. 먼저 어디에서 일하고 계신지 본인 소개를 부탁합니다.

지현: 저는 코레일의 자회사 코레일네트웍스에서 운영하는 철도고객센터 상담사로 19년째 일하고 있는 철도 비정규직 노동자입니다.

수은: 서울 충무로역에서 역무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원순: 저는 덕성여대 청소노동자 한원순입니다.

금영: 건강보험고객센터에서 상담사로 일하는 김금영입니다.

Q. 파업에 나서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지현: 정부가 공공기관을 혁신한다고 하면서 코레일네트웍스 노동자 236명을 감축한다고 합니다. 저임금과 차별도 모자라 고용불안까지 더해져 우리의 노동권을 어디까지 추락시키려고 하는 것일까요?

금영: 건강보험고객센터 상담원들은 성과 경쟁, 상담노동자의 건강권, 저임금 해소, 공공기관 고객센터의 노동자로써 건강보험 제도를 국민들에게 가장 먼저, 가장 잘 안내할 수 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공공성 강화를 위해 원청인 건강보험공단이 고객센터를 직접 고용하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투쟁합니다!

원순: 덕성여대, 고려대, 광운대를 포함해 서울지역 13개 대학·재단 청소노동자들은 12년 동안 ‘집단교섭’을 해오고 있습니다. 올해 요구는 시급 400원 인상, 휴게실 개선, 샤워실 설치입니다. 12개 사업장에서 잠정합의했지만, 덕성여대의 몽니 때문에 본합의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덕성여대는 임금인상의 조건으로 퇴직자 12명을 충원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노골적이고 폭력적인 구조조정을 대학이 추진하는 겁니다. 총장실 앞 철야농성은 오늘(11/25)로 53일입니다. 지난달에는 9일간 전면파업, 5일간 간부파업을 했습니다.

수은: 신당역 여성노동자 살인사건, 오봉역 철도노동자 사망사고 등 지금도 노동자는 일하다가 목숨을 잃고 있습니다. 원인은 너무나 명확합니다. 인력부족, 안전업무의 외주화. 인력부족은 지하철 노동자의 안전하게 일할 권리뿐만 아니라 지하철을 이용하는 시민들의 안전마저 위협합니다. 대책 또한 분명합니다. 더 이상 일하는 노동자가 죽지 않도록 안전인력 충원을 요구합니다.

▲'파업에 나선 여성노동자를 응원한다!' 집담회에 참석한 여성 노동자들 ⓒ공공운수노조 

Q.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에 특별함이 있다면?

수은: 우리 조직에서 여성노동자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힘이 있습니다. 십여 명의 여성조합원으로 구성된 '서울교통공사 책읽는 여성노동자 모임(이하 책여노)'은 이번 달 50번 째 모임을 앞두고 있습니다. 거리두기 기간엔 온라인으로 모임을 이어가며 50개월이 넘는 기간 동안 함께 생각을 나누고, 같이 행동하는 원동력은 여성노동자들이 모였을 때 내는 힘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현: 대부분 여성 노동자이고 오랫동안 같은 공간에서 같은 일을 하면서 사측의 온갖 탄압을 같이 경험하고 같이 극복해 왔습니다. 그래서 노동조합의 소중함을 알고 있으며 조직력이 매우 탄탄합니다. 우리는 파업하면 참여율이 99%입니다. 1%는 병가나 휴직 등의 사유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2020년 66일간의 파업을 진행했고 성과 면에서 만족스럽지 못한 상태에서 복귀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를 주저앉히려고 탄압하고 회유하고 노조를 비방하는 사측의 온갖 계략에 절대 동요하지 않고 다시 투쟁의 길로 나서고 있습니다. 장기 파업으로 인한 상처를 투쟁으로 극복해내고 파업을 결의한 우리는 넘어지지 않는 오뚜기 같습니다.

원순: 철야농성을 하면서 밥을 지어먹습니다. 각자 반찬을 해오는 방식입니다. 그래서 우리 투쟁은 색다른 레시피, 자기만의 비법을 조합원들과 공유하는 즐거운 시간이기도 합니다. 또, 강도 높은 투쟁을 하면서도 단 한명도 조합을 탈퇴하지 않을 정도로 조직력이 탄탄합니다. 다른 노조까지 우리 파업에 동참할 정도로 투쟁을 만들었습니다. 서로 사정을 배려하면서 소통했기 때문 아닐까 싶습니다.

금영: 저희는 조합 활동을 시작하고 1년 만에 전면파업을 해본 사업장입니다. 농성장도 잘 짓고, 집회물품도 잘 만들고 특히 고객센터 상담사들이라 다들 언변이 좋아서 발언문도 훌륭하게 잘 씁니다.

Q. 여성·노동자로 일하면서 어려웠던 점이나 자긍심이 생기는 순간이 있다면?

지현: 철도고객센터 상담사들은 여성 노동자 차원의 차별이 아닌 비정규직 노동자로서의 차별에 대한 문제의식이 더 큽니다. 코레일네트웍스의 현장 직원 90% 이상이 무기계약직이고 최저임금 노동자입니다. 여성, 남성 차별 없이 똑같이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환경이 우리의 삶의 질을 떨어뜨리고 좌절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하지만 좌절하지 않고 끊임없이 저항하고 요구하며 싸워나가는 나와 나의 동지들의 투쟁 정신이 자랑스럽습니다.

수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겪고 위협을 느낄 때 화가 나고 현실이 바뀔 것 같지 않아 답답함을 느낍니다. 그럼에도 끊임없이 목소리를 내는 여성/노동자들이 있어 고맙고 힘을 얻습니다. 특히, 직장내성폭력으로 살해된 신당역 여성노동자 추모제에 많은 단체에서 연대해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금영: 비정규직 노동자이자 여성노동자이기 때문에 차별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특히 원청은 유급휴가 제도가 60일이나 있는데 하청업체 소속인 우리는 유급휴가는커녕 연차도 눈치를 봐야했습니다. 그나마 지금은 연차나 보건휴가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지만 여전히 유급휴가는 상상도 하지 못하는 현실이 답답합니다. 고객센터는 상담사 1명이 받을 수 있는 콜 수는 제한적이지만 늘 콜이 많습니다. 한 콜이라도 더 받기 위해서는 상담사는 개인의 기본권리를 포기하고 옥죄야 합니다. 하지만 저희 고객센터 노동자들은 건강보험제도를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고 고객들에게 잘 설명할 수 있다는 자부심이 있습니다.

원순: 육체노동 조건과 상황이 대부분 남성노동자에게 맞춰져 있고, 이런 문제의식으로 현장을 바꿔 가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현장에서 가장 힘든 점이기도 합니다. '센 힘'을 요구하는 육체노동의 조건과 상황 말이죠. 하지만 노예 같이 착취당하고, 갑질 당했던 현장을 우리 조합원들과 함께 끈질기게 바꿔왔습니다. 제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자부심입니다.

Q. 파업·투쟁에 임하는 각오를 말해주세요.

원순: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끝까지 싸울 겁니다. 이건 시급 400원 인상 투쟁이 아니라 5년짜리 구조조정을 분쇄하는 투쟁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투쟁은 서울지역 청소노동자들의 삶을 바꾸는 투쟁이고, 현장에서부터 진짜사장을 밝혀내고 최저임금을 인상하는 투쟁입니다. 그래서 꼭 이겨야 합니다. 꼭 이기겠습니다.

지현: 누군가는 포기하면 편하지 않냐고 합니다. 하지만 포기하면 우리의 미래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전에 안 됐다고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한번 힘을 모아 싸우고 다음에 또 싸우고 끈질기게 싸움을 이어 나가 언젠가는 노동자의 힘으로 승리를 거머쥐려고 합니다. 누가 해주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 스스로 노동자의 삶을 바꿔나가자는 정신이 진정 노동해방일 것입니다. 그 정신으로 투쟁의 끈을 놓지 않고 2022년 파업투쟁에 나서겠습니다.

금영: 하나된 목소리로 우리의 힘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노동의 주체인 노동자로서 노동 환경 조성에 적극적으로 나서야합니다.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 우리의 힘으로 비정규직이 없는 세상을 함께 만들어 갑시다. 투쟁!

수은: 일하던 노동자가 죽어도 아무 것도 바뀌지 않고 아무도 책임지지 않습니다. 더 이상 이렇게 둘 수 없습니다. 안전한 일터, 평등한 사회를 위해 투쟁하겠습니다.

▲'파업에 나선 여성노동자를 응원한다!' 집담회에 참석한 여성 노동자들 ⓒ공공운수노조

Q. 11월 25일 세계여성폭력추방의날 공동행동은 젠더폭력의 주범을 국가와 사회라고 말합니다. 성차별, 젠더폭력을 멈추기 위해 정부나 기업에 하고 싶은 말 한마디!

수은: 구조적 성차별은 우리 사회와 일터 곳곳에 존재합니다. 현실을 직시하고, 잘못을 인정하고, 문제를 바로잡으십시오.

지현: 성별을 가리지 않고 만연해 있는 차별과 폭력에 대해 책임 있는 해결을 해야 할 양반들이 왜 갈등을 부추겨서 정치에 이용할 궁리만 하시나요? 안정적인 일터, 가사노동에서의 해방, 폭력으로부터 보호 등은 국가가 책임져야 합니다. 우리가 내는 세금은 기업을 보호하는 법과 제도, 기업한테만 퍼주는 예산 말고 소외받는 이들을 위한 법과 제도, 예산 확보에 쓰이는 것이 당연하지 않습니까?

원순: 여성이 안전하게 일할 권리 보장하라! 여성이 건강하게 일할 권리 보장하라!

금영: 얼마 전 신당역 사건을 다시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도 추모 집회를 다녀왔고 그 자리에서 발언도 하였습니다. 여성폭력으로부터 안전한 한국은 아직 요원합니다. 온라인 성 착취, 교제살인과 데이트폭력, 불법촬영물 범죄 발생률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한국입니다. 국가가 변해야 여성 폭력을 철폐할 수 있고, 국가가 변해야 성평등을 완성할 수 있습니다. 더이상 정부는 이 사안을 회피하지 말고,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식의 제도가 아닌 여성들이 안전하게 일하고 일상을 살아 갈수 있는 실질적인 안전제도를 만들어 주시길 바랍니다.

* 잡담회 정리 : 공공운수노조 이민진 여성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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