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왕고래는 소화기관이 비닐시트로 막혀 고통 속에 죽었다"

[함께 사는 길] <플라스틱, 바다를 삼키다> 그리고 고래

화제의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선 우리가 놓치고 있었던 고래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때문에 CG(컴퓨터 그래픽)로 그려낸 여러 고래가 자주 등장한다. 3화에선 한강을 달리는 전철 위로 하늘을 날아다니는 거대한 고래가 나온다. 이 고래가 바로 지구상 가장 큰 동물인 대왕고래다. 흰수염고래 또는 흰김수염고래라고도 불리는 대왕고래는 배 쪽을 제외한 몸 전체가 청회색이기에 영어권에선 블루웨일(Blue Whale)이라고 부른다. 자료에 따르면, 북반구에서 발견되는 대왕고래는 몸길이 24~26m, 몸무게 약 125t, 남반구 대왕고래는 최대 몸길이 33m, 무게 약 179t에 달한다.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은 대왕고래를 야생에서 절멸할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로 멸종위기종 리스트(Red List)의 위기(EN : Endangered) 등급으로 정하고 있다.

여기 대왕고래 매력에 빠진 이가 있다. BBC, CNN 등에서 일했던 30년 경력의 저널리스트이자 영화제작자 크레이그 리슨은 어린 시절부터 <내셔널지오그래픽>에 실린 대왕고래를 동경해 직접 바다 탐험에 나섰다. 그는 '인도양의 진주'로 불리는 스리랑카에 가서 2주를 기다린 끝에 대왕고래를 만났다. 리슨과 촬영팀은 대왕고래를 찍기 위해 바닷속으로 들어갔지만, "수면에서 수심 1m까지는 정말 끔찍하고 역겨웠다"라는 말처럼 대왕고래가 깃든 바다는 심각하게 오염돼 있었다. 곧이어 카메라는 마지막 숨을 몰아쉬며 죽어가는 브라이드고래 비춘다. 대왕고래과에 속하는 이 고래 배 속에선 6㎡ 크기의 비닐 시트가 나왔다. "소화기관이 비닐시트로 막혀서 끔찍한 고통 속에 죽었다"라는 영화 내레이션은 이 다큐멘터리가 보여주는 참혹함의 단지 시작일 뿐이었다. 리슨의 다큐멘터리는 원래 아름다운 대왕고래 이야기여야 했지만, 현실은 플라스틱이 점령한 끔찍한 바다였다. 2016년 <플라스틱, 바다를 삼키다(A Plasstic Ocean)>는 8년 동안 전 세계 21개국 해양 쓰레기 현장을 돌아다니면서 만들어졌다. 

▲ 다큐멘터리 <플라스틱, 바다를 삼키다(A Plastic Ocean)>(크레이그 리슨 감독, 2016) 포스터.

20세기 '신의 선물'이라고 했던 게 플라스틱이었다. 지금은 지구의 골칫거리, 아니 인류 생존을 위협하는 존재라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지구에서 가장 깊은 바다인 필리핀 마리아나 해구에서 영화 <겨울왕국>의 비닐 풍선이 발견됐고, 다른 심연에서 신종 해파리로 추정된 것이 사실은 비닐봉지였다는 국제뉴스도 있었다. 이 이야기를 2022년 8월 15일 <한겨레>에 기고로 담은 김종덕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 원장은 '해양 쓰레기는 인류가 지구에 남기는 영원한 상처'라고 지적했다.

플라스틱에 신음하는 바다

'빚어내다'라는 의미의 고대 그리스어 '플라스티코스(Plastikos)'에서 유래된 플라스틱은 현대 생활 곳곳에 사용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플라스틱의 첫 상업화는 자연을 지키는 용도였다. 19세기 중반 상아 무역은 아프리카코끼리 숫자를 격감시켜놨다. 당시 유행하던 당구는 공을 상아로 만들었는데, 공급을 맞출 수가 없어서 대체품에 거액이 상금이 걸렸다. 이때 등장한 것이 플라스틱 당구공이었다. 이후 석유화학 기술이 발전하면서 플라스틱 사용은 매우 증가했다. 고무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던 제2차 세계 대전은 플라스틱 기술 발전의 결정적 계기로 작용했다. EBS <다큐프라임>을 제작한 최평순은 <인류세: 인간의 시대>(해나무 펴냄)에서 만약 임진왜란 때 수군이 플라스틱을 사용했다면 우리는 당시 플라스틱을 목격했을 거라 말한다. 플라스틱은 450~500년 동안 썩지 않기에 말이다. 최평순은 "현시대는 지질학 관점으로 보면 인류세(Anthropocene)"라면서 "문명사적으로는 석기시대, 청동기시대, 철기시대에 이어 플라스틱기(器) 시대다"라고 지적했다.

플라스틱기의 대표적 증거 중에 '플라스티클로머리트(Plastiglomerate)'라는 존재가 있다. 우리 말로 하면 '플라스틱 암석'이다. 암스테르담 플라스틱 수프 제단의 미힐 로스캄 아빙은 <플라스틱 수프: 해양오염의 현주소>(김연옥 옮김, 양철북 펴냄)에서 '(플라스틱 암석은) 녹은 플라스틱이 산호, 용암, 모래 등과 합쳐진 새로운 암석"이라면서 "공식적으로 인정받았다"라고 밝혔다. 플라스틱 암석은 2010년 하와이에서 처음 발견됐다. '(46억 년의 지구의) 지질학 시간을 24시간으로 환산했을 때 1000분의 1초에 불과한 인류세가 새로운 암석을 만든 것'이란 전문가 지적은 우리 인간이 지구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쳐는 가를 느끼게 한다.

사실 <플라스틱, 바다를 삼키다>의 감독 리슨이 이 작품을 제작하게 된 직접적 동기는 그의 해양학자 친구와 북태평양 환류에 가서 해양 쓰레기 문제를 직접 경험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서핑할 때 다리에 감기는 비닐봉지, 바닷가 미역 줄기에 걸린 플라스틱 조각, 잠수했다 하면 바위에 엉킨 낚싯줄과 그물, 그동안은 이게 왜 안 보였을까?"라면서 "일회용 플라스틱이 너무나 편리하고 내 일상에 깊숙이 파고들어서 보이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리슨이 갔던 북태평양 환류에는 GPGP(Great Pacific Garbage Patch), 우리말로 '태평양 거대 쓰레기 지대'가 있다. 이 GPGP가 플라스틱기의 또 다른 증거다. 1997년 GPGP를 처음 발견한 찰스 무어는 <플라스틱 바다>(이지연 옮김, 미지북스 펴냄)에서 "바다 한가운데 (있는) 플라스틱 수프"라고 표현할 정도였다. 비영리 연구단체 오션클린업파운데이션은 2018년 3월 GPGP 플라스틱 쓰레기양은 초대형 여객기 500대와 비슷한 8만 톤에 이르고, 약 1조8000억 개의 플라스틱이 있다고 밝혔다. 면적은 남한 면적의 15배 이상일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때문에 전 세계 환경운동가들은 해양 쓰레기 문제를 알리기 위해 2017년 UN에 이 GPGP를 국가로 인정해 달라는 청원을 했고, 50만 명의 서명했다고 한다. 문제는 GPGP가 계속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 UCLA 대학 롤랜드 가이어 교수는 1950년부터 2015년까지 생산된 플라스틱의 총량을 86억 톤으로 계산했다. "아르헨티나 넓이의 땅을 발목 높이로 뒤덮을 양"이라는 게 가이어 교수의 말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플라스틱의 40~45%는 1회용이다. 다회용 플라스틱이라도 1~2년이면 수명을 다한다. 기계에 사용되는 플라스틱 부품은 10~15년 이상 간다. 이렇게 보면, 1950년부터 65년 동안 생산된 86억t 중에 63억t이 버려졌다는 계산이다.

전 세계적으로 매년 800~1300만t의 해양 쓰레기가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세계자연기금(WWF)은 해양생물 종의 88%가 플라스틱 쓰레기에 부정적 영향을 받고 있다고 평가했다. <플라스틱, 바다를 삼키다>에서 죽은 바닷새 몸에서 245개의 플라스틱 조각이 나왔다. 다른 바닷새에게서는 558개의 나왔고, 2010년 브라질 해안에서 발견된 죽은 바다거북에게서는 5㎜ 이상 플라스틱만 3575개가 나왔다.

▲ 다큐멘터리 <플라스틱, 바다를 삼키다(A Plastic Ocean)>(크레이그 리슨 감독, 2016) 스틸컷.

우리은하 별보다 500배 많은 미세플라스틱

화학적으로 분해되지 않는 플라스틱은 파도 등 물리력에 의해 부서지면서 미세플라스틱이 되고, 나노 단위로도 쪼개진다. 다큐멘터리 <씨스파라시(Seaspircy)>의 감독 알리는 "1분마다 트럭 한 대 분량의 플라스틱 쓰레기가 바다에 버려져 이미 떠 있는 1억5000만t 이상의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라면서 "(미세플라스틱은) 우리은하(Our Galaxy)의 별 개수보다 적어도 500배는 많으며 바다에 서식하는 모든 생명체에 침투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자료에 따르면, 바닷새의 90%, 바다거북의 52%가 미세플라스틱을 섭취한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은하의 항성(태양)은 1000억~4000억 개라고 한다. 이것의 500배라고 하면 50조~200조라는 말이다. 이 중 바다 표면 미세플라스틱은 15조~51조 개로 추정된다. 그럼 나머지는 어디에 있을까? 이 의문에 미힐 로스캄 아빙은 "해양동물이 플라스틱을 삼키는 것이 사라진 플라스틱의 미스터리를 푸는 한 가지 답이 될 것"이라 말한다. 해저 200~1000m 깊이에 사는 물고기는 매년 1만2000~2만4000t의 플라스틱을 삼킨다고 한다.

해양수산부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해안가 플라스틱의 67%는 육상에서 유입된다. 기후위기 가속화에 따라 집중 호우 빈도가 잦아지고 강도가 강해지면 육상 기인 플라스틱이 더 많이 유입될 거란 전망이다. UN 등 국제사회는 플라스틱 전주기 관리 결의안 채택에 합의했다. 우리나라 해수부는 우리나라 연간 해양 쓰레기 발생량을 17만7000t으로 추정하면서 2050년까지 생활 플라스틱 제로화를 목표로 설정했다. 그러나 지금 플라스틱 사용을 멈춰도 2050년 물고기보다 해양 쓰레기가 더 많을 것이란 전망이다. 사람도 매주 신용카드 1장 정도의 미세 플라스틱을 섭취하고 있는데, 2050년에 두 배가 된다는 보고가 있을 정도다. 이 미세플라스틱엔 플라스틱 제조 시 들어간 화학물질이 있어 사람과 동물 모두에게 악영향을 미친다. 더욱이 석유로 만들어진 플라스틱은 분해하면서 메탄, 에틸렌과 같은 온실가스를 발생시킨다. 잘게 부서진 플라스틱은 식물성·동물성 플랑크톤의 탄소 흡수 능력을 떨어뜨려 기후에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바다에 사는 식물성 플랑크톤은 매년 아마존 열대우림의 4배에 달하는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우리가 호흡하는 산소의 85%를 생성한다. <씨스파라시>에서 감독은 고래가 수면 위로 올라오면서 식물성 플랑크톤에게 비료(배설물)를 주는 역할을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탄소와 기후변화를 우려하는 세상에서 이런 동물들을 보호하는 것은 지구 전체를 보호한다는 의미다. 돌고래와 고래가 죽으면 바다도 죽는다. 바다가 죽으면 우리도 죽는다"라고 말했다. 고래와 바다, 그리고 우리를 위해 플라스틱 중독에서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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