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는 노동자의 죽음, 기업의 사회적 책임 어디에

[경제지리학자들의 시선] 지역공동체와 함께하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필요한 때

오늘날 인류는 전례 없는 물질적인 풍요를 누리고 있다. 이는 산업혁명으로 촉발된 기술의 진보, 생산력의 비약적인 증대로 인한 것이다.

그러나 산업혁명으로 우리가 누리고 있는 물질적 풍요는 수많은 노동자들의 피, 땀, 눈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이러한 물질적 풍요의 이면에는 국가 스케일부터 개인의 신체라는 미시적 스케일까지 다양한 공간 스케일에서의 착취와 사회 문제가 존재하고 있었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 1832년 영국 의회에서 발간한 공장 아동 노동에 관한 특별 위원회의 조사 보고서(Report of the Select Committee on Factory Children's Labour; Sadler report)다. 이 보고서는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과도한 노동으로 인한) 수면 부족 등 사소한 실수로 심각한 부상이나 신체가 절단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공장들은 (최소한의 안전장치인) 울타리도 없는 상태로 기계 종류들을 둘 수 있었다. 사고가 발생한 순간부터,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임금도, 의료 서비스도, 금전적 보상도 받지 못한 채 방치되었다."

이러한 비극은 압축적인 근대화와 산업화를 경험한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한국은 압축적인 근대화와 산업화를 경험하면서 선진국들이 이미 경험했던 산업 재해와 노동착취 문제 도 압축적이고 극심하게 나타났다.

기업들은 기업의 제1목표인 이윤 추구를 위해 노동자들의 고통과 죽음을 방치하였고, 이에 반하여 노동자의 권리와 생존의 문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노동자는 기업의 이윤 추구에 동원되는 도구가 아니라 사람으로서 존중받아야 할 존재라는 목소리가 힘을 얻었고 이는 노동자들의 행복추구권, 건강권 등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지역과 상생하기 위한 기업의 책임과 의무

이에 기업은 기업이 입지해 있는 지역이라는 공간에서 눈앞의 이익에만 매몰될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의 이해관계자로서 지역 공동체와 함께 사회 발전을 견인하는 건강한 기업 시민의 역할을 다해야 한다는 의견들이 대두됐다.

이러한 노동자들에 대한 인식 변화, 기업의 지속적인 존속을 위한 사회와의 공존 필요성의 대두, 지역과 기업의 지속가능한 발전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최근의 경제지리학에서는 기업은 단지 이윤 극대화의 존재가 아닌 사회 문화적 존재임을 강조하면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윤리적 경영, 공유가치 창출에 대한 연구들을 수행하고 있다.

▲ 그림 1. 신한금융그룹의 사회적 책임 전략 (신한금융그룹 홈페이지 자료를 바탕으로 필자 수정)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필요하다고 바라보는 관점에서는 다양한 스케일의 공간에 입지하고 있는 기업들이 지속적으로 존속‧발전하기 위해서는 기업의 제1목표라고 할 수 있는 이윤추구활동 외에도 법령과 윤리를 준수하고, 기업의 이해관계자의 요구에 적절히 대응할 뿐만 아니라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책임 있는 활동(기업의 사회적 책임, CSR; 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이 담보되어야 함을 주장한다.

즉 기업의 입지는 지역이라는 공간 스케일과 지역 공동체라는 사회 집단과 떼려야 뗄 수 없기 때문에, 이들을 무시하거나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상생하는 전략이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기업의 윤리 경영과도 연결된다.

여기서 기업의 윤리 경영(Moral Management)이란 회사의 경영과 기업활동에 있어 기업윤리를 최우선 가치로 생각하며 투명하고 공정하고 합리적인 업무 수행을 추진하는 것으로, 이윤 추구를 위해 기업윤리를 저버리는 경영방식인 비윤리 경영(Immoral Management), 합법적인 테두리 내에서는 어떠한 행동도 용인된다는 경영 방식인 초윤리 경영(Amoral Management)과 반대되는 개념이다.

하버드 대학의 마이클 포터 교수는 여기서 한 발 더 나가 기업은 수익 창출 후에 사회공헌 활동을 하는 사회적 책임에서 그칠 것이 아니라, 기업활동 그 자체로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고 동시에 경제적 수익을 추구함으로써 기업과 지역 공동체가 공동으로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공유가치 창출(CSV, Creating Shared Value)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국제적인 요구에 발맞춰 우리나라 또한 2000년대 초반부터 전통적인 기업의 목표인 이윤 극대화라는 시장경제적 가치뿐만 아니라 지역 공동체와 상생하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꾀하는 윤리적 경영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그림 1).

이는 2022년 5월 대한상공회의소에서 개최한 '신 기업가정신 선포식'의 선언문에서 두드러지게 드러난다. 우리나라의 주요 대기업, 경제단체 등이 참여한 이 선언문은 "기업은 성장을 통해 일자리와 이윤을 창출하는 과거의 역할을 넘어 고객은 물론 조직 구성원과 주주, 협력회사와 지역사회 등 모든 이해관계자를 소중히 여기고 함께 발전할 수 있도록 새로운 기업가 정신을 선언"한다는 내용을 핵심으로 삼고 있다.

그럼에도 반복되는 비극'들' : '사람'을 잃는 우를 반복하지 말아야

그러나 이러한 인식의 변화와 기업들의 윤리적 경영 선언이 이어짐에도 불구하고, 비극은 반복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루가 멀다하고 안전장치의 부재, 관리감독의 문제, 편법, 규제 회피로 인한 노동자들의 죽음과 부상을 다루는 기사들이 보도되고 있는 작금의 현실은 새들러 보고서가 발표된 1832년으로부터 200년에 가까운 시간이 흐른 2020년대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이다.

실제로 고용노동부에서 공표하고 있는 산업재해현황에 따르면 2020년 한 해 동안 발생한 요양재해자 수는 10만 8379명, 사망자 수는 2062명에 달했다. 단순 순치로만 보자면 하루에 6명에 가까운 노동자들이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죽음을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기업의 역할에 대한 사회적 기대는 점점 높아지고 있으나, 현장에서는 여전히 기업의 전통적 목표라고 할 수 있는 이윤 극대화에만 매몰되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저버리고 편법으로 법망의 규제를 회피하거나 초윤리 경영(Amoral Management)을 일삼고, 노동자들을 언제든 대체 가능한 도구로만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5월 기업과 경제인들이 발표한 '신기업가정신 선언'이 기업의 이미지 제고를 위한 일회성의 공허한 메아리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지역 사회와 기업 모두 지역 공동체 내에서 지속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정부에서는 보다 적극적으로 노동자들의 기본적인 권리를 보장해야할 뿐만 아니라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노동자들을 위한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한 보완이 필요하며, 기업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윤리적 경영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

눈앞의 이익인 황금알에만 매몰되어 기업이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할 '사람'이라는 오리의 배를 가르는 우를 반복해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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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11월 한국 지리학내 전문학회로 발족한 한국경제지리학회는 국내외 각종 경제현상을 공간적 관점에서 체계적으로 접근하는 동시에, 연구 역량을 조직화하여 지리학의 발전과 사회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한국경제지리학회는 연 2회 정기 학술 발표대회와 국내외 석학을 초빙해 선진 연구 동향을 토론하는 연구 포럼, 학술지 발간 등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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