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가족부 폐지, 누구를 위한 정책인가

[창비주간논평] 성평등 없는 '인구가족' 정책은 불가능하다

2022년 10월 윤석열 정부는 여성가족부 폐지를 포함한 정부조직 개편안을 발표했다. 여성가족부를 없애고 주요 기능을 보건복지부와 고용노동부로 옮긴다는 계획이다. 수백여 개의 비판 기사와 칼럼이 쏟아져 나왔고 여성단체의 성명서 발표와 시위가 연일 이어지고 있다. "여성 등 약자에게 더 좋은 정책"이 될 것이라는 대통령의 말이나, "이보다 더 좋은 폐지안은 없다"는 여가부 장관의 발언은 공허한 메아리를 넘어 '국민에 대한 기망'(한국여성학회 입장문)으로 들릴 뿐이다.

지난 대선 전후 시작된 여가부 폐지 논란은 1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어도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그동안 폐지의 부당성을 지적하는 의견들이 수없이 제시되었지만 윤석열 정부는 일방적으로 묵살해왔다. 여가부도 관계자 회의와 간담회 등 의견수렴 절차를 거쳤다는 말뿐 공식적인 회의록조차 제시한 적이 없다. 김현숙 여가부 장관은 바로 그 자신이 최고 수장으로 있는 행정조직이 왜 폐지되어야 하는지 납득할 만한 설명도 내놓지 못했다. 여성을 지우고 성평등만 삭제해버리면 '이대남'이 등 돌리지 않을 것이라는 정치적 계산이 이 모든 소동의 원인이라는 추정만이 현실에 접근할 수 있는 유일한 단서로 남아 있다.

이런 정치적 소동의 한편에서 소란을 잠재울 책임이 있는 더불어민주당 역시 소극적이다 못해 오리무중의 태도를 보이고 있다. 아직껏 여가부 폐지 반대 당론도 세우지 못한 채 이 사람 저 사람의 입을 통해 의견 수준의 해명이 피력되고 있을 뿐이다. 이재명 대표와 당 지도부가 무엇을 얻으려 하는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알 길은 없지만, 이대남이라는 표밭의 주인이 되고픈 욕망은 버리지 못하는 모양이다. 그들에게도 여성은 지우고 싶은 존재가 되어가는 지도 모른다. 늘 집토끼로 조용히,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존재로 머물길 바라는 것일까? 그러나 여성은 집토끼가 아니다. 이제 뜨겁게 정치세력화되고 있는 목소리들이다.

여성가족부는 민주주의 실천과 여성운동의 역사적 산물이다. 단순히 행정부의 한 부처로서 관료조직의 운영논리로만 움직이지 않는다. 그것은 여성운동과 여성주의 정책공동체―여성 관료, 여성 국회의원, 여성단체, 여성학자, 여성정책 전문가 등의 네트워크와 연대 체계―의 숙의와 토론, 협력에 의해 작동한다. 예를 들어, 여성폭력의 예방 및 대응 관련 법·제도를 개선하고 정책을 기획·집행·평가하는 과정 전반에 걸쳐 여성주의 정책공동체는 상시적으로 협력한다. 한국여성의전화나 한국성폭력상담소 없이 여성폭력에 대한 국가의 대응이 가능했을까를 생각해보면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오히려 여성가족부는 여성 시민과 여성주의 정책공동체의 의견을 수렴해 정책의 틀로 직조한 내용을 집행하는 파트너 역할에 머물러왔다. 그러므로 여성가족부의 존폐에 관한 논의는 행정부의 관료나 정치인들이 독점할 수 있는 것이 절대 아니다.

윤석열 정부의 여가부 폐지안이 갖는 문제점은 이미 여러 차례 지적되어왔다. 첫째, 정책의 가치와 비전으로서 성평등과 성인지적 관점의 상실이다. 여가부의 모든 업무는 성평등 사회의 실현을 목표로 하며 방법론으로 성인지적 관점을 채택한다. 사회적·생물학적 성별 차이가 차별을 낳고 격차를 생산하는 불평등의 연쇄를 끊기 위해 성인지적 관점의 도입은 필수적이다. 여가부가 폐지되면 이 관점을 견지하고 성평등 목표를 향해 사회를 견인해갈 구속력이 사라진다. 가족복지 정책이 보건복지부에 통합되어 서비스나 현금 지원을 늘린다고 해도 돌봄을 전담하는 쪽이 여성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고, 일터와 가족에서 성별 불평등은 지속될 것이다.

둘째, 정부 부처의 모든 업무에 대한 성인지적 총괄·조정 기능의 상실이다. 여가부는 고유 업무 이외에 타 부처의 정책과 사업을 성인지적 관점에서 조정하는 책임을 가지고 있다. 국무회의에 참여해 정책을 제안하고 타 부처 업무의 성차별적 효과를 규제하는 발언권을 지닌 장관직의 역할은 그간에도 쉽지 않았으며, 이를 보건복지부 본부장이라는 직책에 맡겨 효과를 거두리라고 기대하는 이는 드물 것이다.

셋째, 결국 여가부 폐지안은 그동안 최저 수준의 예산과 인력으로나마 수행해오던 여성정책과 성평등정책을 폐지하겠다는 선언에 다름 아니다. '인구가족양성평등본부'라는 명칭과 양성평등기본법의 존재로 이름은 유지하지만, 여성이 처한 사회적 조건을 개선하고 성별 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정부의 노력은 크게 축소될 것이다. 그렇다면 남은 '인구가족' 정책은 무엇일까? 인구를 늘리고 가족을 보호한다는 것이 목표가 될 텐데, 성평등 정책 없는 인구문제의 해결이 가능하다고 믿는 것일까? 가족의 성평등 수준이 높아지고 다양성이 증진될 때 가족문제가 개선되리라는 사실을 모르지는 않을 텐데, 그렇다면 이것은 알면서 하는 거짓말인가, 아니면 스스로 그렇게 믿고 싶은 것인가. 자기와 타인에 대한 기만, 알면서도 내뱉는 거짓말, 뻔뻔한 거짓말(the bare-faced lie)이 아닌가.

모든 정책은 그 대상과 목표를 갖는다. 윤석열 정부 여가부 폐지 정책의 실질적인 대상과 목표는 무엇인가? 혐오발언을 주도하는 일부 남성 커뮤니티와 이대남의 지지인가? 윤석열 대통령이야말로 이 정책의 최종 수혜자가 되려는 것인가? 만약 그렇다면 여가부 폐지가 지지율 반등을 가져올 것이라는 기대는 포기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지난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나타났듯이 이미 많은 청년 남성들이 돌아섰고, 여성들의 분노는 눈덩이처럼 커져갈 것이기 때문이다. 이 시점에서 우리가 질문해야 할 것은 이것이다. 대체 이 정책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이 지난 14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성범죄자 알림e 운영상황 점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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