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퓰리즘 넘어 푸틴 닮은 '권위주의', 서방 세계 잠식할까

WP "선거 불복 풍조는 권위주의 지름길…'탈진실' 타고 집권하지만 결과는 '무능·부패'"

최근 이탈리아에서 파시스트 무솔리니를 찬양한 경력이 있는 조르자 멜로니가 총리에 오를 것이 확실시 되고 이달 말 대선 결선을 앞둔 브라질에선 자이르 보우소나루 현 대통령이 선거 결과에 불복하려는 움직임을 이미 보이고 있으며 다음 달 중간선거가 예정된 미국에선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선거 불복 주장을 받아들이는 정치인들이 대거 공화당 후보로 나섰다. <워싱턴포스트>(WP)는 최근 민주주의 국가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닮은 극우 권위주의 물결이 일고 있다고 봤다.

<워싱턴포스트>는 16일(현지시각) 보도에서 소련 붕괴 뒤 약 30년 간 동구권에서부터 2010년 아랍의 봄에 이르기까지 확산된 민주주의와 국제 무역이 최근 많은 국가들에서 동시다발적인 권위주의 물결로 대체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 민주주의 선거로 선출된 지도자의 상당수가 강경한 우파 성향을 가지고 있다. 지난달 총선을 치른 이탈리아의 경우 극우 이탈리아형제들(Fdl)이 이끄는 보수 연합이 승리했고 지난 5월 필리핀에서는 독재자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전 대통령의 아들인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2세가 승리했다. 이달 초 치러진 브라질 대선 1차 투표에선 좌파 루이스 디나시오 룰라 다시우바 전 대통령의 압승 예상이 깨지고 우파 포퓰리스트라는 평가를 받는 보우소나르 현 대통령과 접전을 벌였고 보우소나르 대통령은 이달 말 2차 투표에서 이미 선거 결과에 불복할 준비를 하는 중이다. 미국에선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2020년 대선에서 패한 뒤 제기한 선거 부정 주장이 힘을 잃지 않고 있으며 중간선거 후보로 나선 공화당 후보 과반수가 이 주장에 동조하거나 선거 결과에 의문을 제기한 적 있다. 매체는 역사가들과 정치학자들이 선거 결과에 불복하는 풍조를 어떤 나라를 권위주의 통치로 향하게 움직이는 핵심 요소로 본다고 지적했다.

매체는 많은 경우 기업인 등 비정치인 출신이 지도자로 등장하는 권위주의 정권 득세의 이유로 세계화, 정치적 양극화, 주요 기관에 대한 신뢰 붕괴로 시민들이 기존 정부에 대한 믿음을 거둬들인 것을 꼽았다. 이 문제에 대한 답으로 민족주의적 해법이 등장한 것이 극우 득세의 배경이라는 것이다. 니컬러스 그보스데프 미국 해군대학 국가안보연구 교수는 이 매체에 "우리가 현재 세계적으로 목도하고 있는 이 (권위주의 득세) 경향은 민주적 절차가 효율적이고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를 배출하는 데 실패했다는 대중의 환멸을 반영한다"고 말했다. 그는 "강력한 지도자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각 국에 퍼지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비단 정치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일론 머스크와 같은 기술 분야 최고경영자(CEO)가 추진력 있는 문제 해결사로 평가 받는 것을 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베네수엘라 산업장관을 지낸 모이제스 나임 미국 싱크탱크 카네기국제평화재단 최고연구원은 권위주의 정권이 포퓰리즘(populism), 양극화(polarization), 탈진실(post-truth)을 뜻하는 이른바 3P에 공통적 기반을 갖고 있다고 본다. 나임 연구원은 "정체성 정치를 통해 정당은 스포츠 클럽처럼 변해 사람들을 고정된 진영으로 양극화한다. 그리고 소셜미디어의 부상으로 시민들은 누구를 믿어야할지 알 수 없게 되고, 이는 우리를 탈진실 시대로 이끈다"고 분석한다. 그는 권위주의의 세계적 확산을 분석한 올초 발간된 저서 <권력의 복수>에서 탈진실의 특성을 "복잡성, 뉘앙스(미묘한 차이), 합리성에 대한 거부"로 묘사하고 이것이 권위주의적 통치자의 기이한 주장을 반박하지 못하게 하는 기제가 된다고 설명한다. 더구나 소셜미디어와 자극적인 온라인 뉴스는 전문지식이나 사실보다 "공포, 불확실성, 의심"으로 특징지어지는 정보 환경을 만들어 정보의 정확성에 대한 신뢰를 더욱 떨어뜨린다. 나임 연구원은 각 국 정부가 "시민들이 마땅히 누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제공하기가 지독히 힘들다는 사실이 발견될 때 강한 지도자가 약속하는 질서에 대한 갈망이 발생한다"고 부연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코로나19 대유행 기간 동안 팬데믹 기간 동안 선거가 취소되고 감시가 늘며 권위주의 지도자들을 도왔고, 미국의 경우 백신은 정부에 대한 신뢰를 복구시키기는 커녕 당파적 분열만 드러냈다고 분석했다.

매체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권위주의적 지도자들의 모델이 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캐슬린 프라이들 미 존스홉킨스대 교수는 "정치적 극우 운동은 세계화로 인한 대중의 분노를 이용한 것"이라며 "불평등과 인종차별 등 각 국에서 권위주의가 득세하는 이유는 다르지만 푸틴 대통령이 권위와 통제의 모델이 되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고 설명했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서방 "엘리트"들의 성소수자 정책을 비난하며 러시아에서도 학교에서 "여자와 남자 외의 성별이 있고 성전환 수술을 받을 수 있다고 가르치길 원하는가"라고 발언했다. 매체는 이 발언이 미국에서 유럽에 이르기까지 시민들에게 친숙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매력적인' 발언이라고 설명했다.

매체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주장한 '미국을 더 위대하게' 주장 속에 권위주의적 통치에 대한 승인과 동경이 내재돼 있다는 점에도 주목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1989년 톈안먼(천안문) 민주화 운동을 중국 정부가 탄압한 데 대해 "힘을 보여준 것"이라며 찬사를 보냈다. 2016년 대선 선거운동 중에 이라크 독재자 사담 후세인의 테러리스트 소탕에 감탄했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관례를 깨고 3연임을 앞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 대해서도 "그는 15억 인민을 철권통치하고 있다. 난 그가 영리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동부 루한스크주와 도네츠크주의 '독립'을 내세운 푸틴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침공 구실이 "천재적"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세계의 극우 권위주의적 지도자들은 연대하여 서로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이웃나라의 민주주의를 불안정하게 만들기 위해 소셜미디어의 가짜 계정을 이용하거나 가짜 비정부기구를 후원하기까지 하는데 정작 시민들의 민주주의 자체가 위협받고 있다는 위기감은 그리 높지 않다. <워싱턴포스트>는 지난달 21일부터 25일 시행된 몬머스대 여론조사를 인용해 응답자들의 54%가 중간선거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제로 경제와 생계비를 꼽은 데 비해 38%만이 기본권과 민주적 절차를 꼽았다고 지적했다.

분노·불신 타고 집권하지만 '무능'권위주의 정권 수명은?

권위주의 물결이 지속될 것이라는 데는 전문가들마다 의견이 다르다. 권위주의를 닮아가는 포퓰리스트들의 반이민, 반세계화 주장을 떠받치는 핵심 공략 대상 중 하나인 일자리 위기에 처한 저숙련 노동자들의 좌절이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 있는 데다 소셜미디어 상에서의 양극화는 문제를 악화시킨다.

다만 결국 권위주의자들이 집권하더라도 문제 해결 능력이 없기 때문에 수명이 짧을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그보스데프 교수는 이에 더해 권위주의자들은 "'규칙은 너를 위한 것이지 나를 위한 건 아니다'라는 접근 방식을 취하기 때문에 부패를 저지를 수 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그는 이러한 지도자의 예로 브라질의 보우소나루 대통령,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전 대통령을 들었다.

그러나 통상 카리스마적 인물의 인기를 얻어 집권하는 권위주의 정권에서 그 인물이 퇴진한다고 해서 그가 심어 놓은 권위주의의 씨앗이 제거되는 것은 아니라는 우려도 나온다. 프라이들 교수는 1950년대 미국 상원의원인 조지프 레이먼드 매카시의 이름을 딴 반대파를 공산주의자로 몰아붙여 탈락시키는 극우의 배타성을 잘 드러낸 '매카시즘'이 그가 실권을 잃은 다음에도 미국 정치사에서 인종주의, 반이민주의를 이끌며 거듭 부활해 왔다고 지적했다. 그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멕시코 이민자 및 무슬림 이민자들을 공격한 데에도 매카시즘이 기여했다고 본다.

더구나 미국 사회에선 이 같은 경향이 실시간으로 일어나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연임에 실패했지만 선거 부정을 비롯해 그의 민주주의의 근간을 부정하는 주장들은 미국 사회와 정치에 여전히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다만 그보스데프 교수는 극단주의 경향이 사회에 남아 있더라도 결국 "카리스마적 지도자에 의해 전면으로 부상한다"며 미국의 '트럼피즘'은 "더 효과적 지도자에 의해 유지될지, 아니면 그것이 다른 이에게 전이되는 것이 쉽지 않다는 패턴을 따를지" 기로에 서 있다고 진단했다.

역사적으로 각 국이 권위주의를 몰아낸 방식은 한 가지 경로가 아니고 정해진 해법은 없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전 대통령이 히틀러의 초기 집권 당시 미국 일부에서 분출했던 친나치 운동에 대해 그러했듯 정치 지도자가 단호하게 민주주의적 입장을 취하는 경우도 있고 동독이나 남아프리카공화국, 미국민권운동 당시처럼 활동가, 노동조합, 정치적 집단들이 권위주의에 대항해 들고 일어난 경우도 있다. 매체는 이에 더해 서독과 일본의 경우 큰 충돌 없이 민주주의로 이행한 사례라고 짚었다.

나임 연구원은 "누구도 권위주의 정권의 몰락을 예견할 수 없지만 우리는 몰락의 요소는 알고 있다"며 "선거, 독립적 사법부, 임기 제한"을 들었다.

▲지난달 30일(현지시각) 러시아 모스크바 붉은광장에서 우크라이나 점령지역 합병을 선언하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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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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