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에 단 한 번 있는 국정감사 기간이다. 선거를 제외하면, 정치인들이 자신의 존재감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기간이기도 하다. 훌륭한 정책과 정치로 존재감을 드러내면 좋으련만, 그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여느 때처럼 정파를 위한 싸움으로 국정감사를 원활하게 진행하는 것조차 쉽지 않아 보인다. 그 와중에 언론은 자극적 이슈들에 주목한다.
우리는 과거 논평에서도 여러 차례 국정감사를 다룬 적 있다. 상황과 인식이 4, 5년 전과도 크게 다르지 않으니, 다시 한 번 짚고 넘어가려 한다. 입법부의 기능과 역할은 단지 행정부 활동에 '반응적'으로 대응하는 수준을 넘어,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것까지 포함한다.
현재 국정감사는 행정부의 활동에 대한 반응을 넘어, '부재' 상태를 정치적 과제로 만들어가고 있는가? 개인과 사회적 생존 조건을 파괴하는 여러 축의 불평등을 기존의 패러다임으로 대응할 수 있을까? 예컨대, 차별금지법은 지금 어디에서 논의되고 있는가? 기존의 시장 중심적 보건의료체제로 지역의 건강불평등을 해결할 수 있을까? 기후위기를 체험하고 있는 가운데, 보건의료 영역에서 필요한 정책과 정치는 무엇인가?
물론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축하는 데 앞장서고, 더 나은 정치를 만들어가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국정감사, 더 나아가 입법부의 역할로 가장 흔하게 언급되는 행정부를 견제하는 것은 어떤가. 온전히 감사에만 집중해도 모자랄 시간을 정쟁으로 허비하고, 행정부의 일부 피감자들은 책임 있는 답변을 회피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감사에서 지적한 사항들이 이후에 어떻게 조치되었는지 모니터링과 추적도 잘 안 된다. 실효성 없는 일과성 정치 행사로 비난 받는 이유이다.
시민들의 기대에 못 미치기는 하지만 중요한 이슈들이 등장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보건 영역에서는 건강보험 국고지원 일몰제 폐지 및 건강보험 재정에 대한 국가의 책임 강화, 공공의료 지원, 응급의료체계 보완, 상병수당 시범사업에 이주노동자를 포함한 외국인 포괄, 동성혼을 이유로 한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 박탈, 임신중지 급여화와 유산유도제 도입, 건강보험 생계형 체납자 결손처분, 부양의무제 폐지 등을 포함해 시민들이 당면한 고통과 직결되는 이슈들이 언급됐다. 그렇지만 국정감사 이후 정치의 중심에서 다뤄질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중요한 내용들이 충분히 의제화되지 못하는 이유, 입법부가 '능동적' 실천을 하기 어려운 이유는 절대적 시간 부족과 같은 국정감사 제도의 한계와 깊은 관련이 있다. 이와 관련해, 우리는 '상시국정감사'를 포함한 제도 개선의 필요성을 언급하고, 무엇보다 국정감사에 대한 시민참여를 강조하면서, 국정감사를 감시하자고 주장한 바 있다. 시민참여형 감사는 국회가 제 역할을 충실히 하고, 시민과 밀접한 정치를 만들어 나가는 데 핵심적인 토대가 될 수 있다.
현재로서는 단기간에 그러한 제도 변화가 이루어지기 쉽지 않아 보인다. 그렇다 해도 국정감사에 대한 감시를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다. 소극적으로는, 막말과 정쟁이 언론의 주목을 받는 가운데서도 정치적·사회경제적 약자를 대표하는 정치인을 구별하는 것이 필요하다. 자칫하면 정치 혐오로 빠지기 쉬운 요즘 같은 시기에, 그러한 정치인들이 좀 더 주목받고,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한다. 자극적인 언사보다 훌륭한 정치와 정책 제안이 정치인으로서 합리적 선택이 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거리에서 목소리 높이는 것도 빠질 수 없다. 한참 부족한 국회에서 그나마 중요한 문제들이 다뤄졌다고 한다면, 그것은 정치인 한 명의 전문성이나 정치력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그동안 거리 위에서 연대하며 투쟁했던, 국회 밖에서 끈질기게 목소리 높였던 사람들의 큰 역할이 있었다.
지금도 국회 밖 투쟁은 계속되고 있다. 기후정의 행진, 주거권 행진이 있었고, 지난 15일에는 여가부 폐지 반대 집회, 빈곤철폐의 날 퍼레이드 등이 이어졌다. 모두 한국 사회에서 정치화되어야 할 이슈들이다. 국정감사는 곧 막이 내리지만,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논의하고 해결해야 할 문제들은 산적하다. 국정감사가 끝나더라도 국회에 대한 감시는 계속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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