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치분권과 균형발전은 함께 할 수 있나

 [경제지리학자들의 시선] 수평적 조정제도와 같은 균형친화적 분권전략 필요

윤석열 정부는 분권을 바탕으로 균형발전을 추구할 전망이다. 새정부 인수위 지역균형발전 특별위원회는 지난 4월 '지역균형발전비전 및 국정과제'를 발표하면서, 지역이 주도하는 균형발전을 하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김병준 전 지역균형발전 특위위원장은 수시로 "지금은 중앙집권적인 국가 중심 체제가 작동하지 않는 시대이며, 중앙정부의 역할은 자유와 분권을 보장해주고, 지방이 자율적 방식으로 스스로 뛸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줘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문재인 정부와 달리 균형발전보다 분권을 더 우선시 할 가능성이 보인다.

▲ 윤석열 정부 지역균형 발전 비전 ⓒ국가균형발전위원회

그런데 경쟁과 지역의 책임을 강조하는 분권과, 형평 및 고른 발전을 강조하는 균형발전이 같이 갈 수 있을까? 과연 분권화가 균형발전에 유익한가. 분권과 균형을 둘러싼 해묵은 논쟁이 다시 재현될 우려가 보인다.

흔히 균형론자는 분권에 부정적이다. 정부가 지방자율에 맡긴다면서 정부의 역할을 방기하고 지역간 경쟁의 조장하여 지역 간 격차 확대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그러나 분권론자는 국가가 지방으로 권력이전을 할 때 생기는 경제적 이점(economic dividend)에 주목한다.

분권은 지역 요구에 맞게 정책을 조정하고, 지역 간 경쟁을 통해 정부 서비스 제공에 혁신을 일으키며, 주민 참여와 지방정부 책임을 자극하여 효율화와 지역발전을 촉진한다는 것이다.

지역별로도 입장이 다르다. 부산, 대구, 경남 등 영남권은 분권에 더 적극적인 반면에 상대적으로 낙후한 광주, 전라 등 호남권은 균형에 더 관심이 있다. 이 때문에 과거 참여정부(노무현 정부)때부터 분권과 균형의 우선순위에 관한 갈등이 지속되어 왔다.

공간을 대상으로 하는 경제지리학에서도 분권과 균형발전의 상관관계는 뜨거운 논쟁 주제 중에 하나였다. 대략 1980년대 초반까지 지역정책은 중앙정부 주도하에 성장지역의 경제적 자원을 각종 인센티브를 통해 낙후지역으로 재배분하는 하향식 지역정책이었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지역개발 정책 추진에 따른 국가의 부담이 가중되고, 지역산업의 발전과 혁신에 대한 클러스터론이나 지역혁신체제와 같은 이론이 나옴에 따라 지역산업 정책에서도 분권화와 지역자율성의 중요성이 새롭게 부각되었다.

그런데 과연 탈중앙화와 분권화의 이점이 실증적으로 얼마나 입증될 수 있을까? 관련 문헌 연구를 종합하면 그 결정적인 증거를 입증하기는 쉽지 않다. 2000년대 이후 영국의 저명한 경제지리학 학술지 Regional Studies를 중심으로 이와 관련한 많은 논쟁이 있었는데, 그 결론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A.Pike 등, 2010)(1)

1) 대부분의 경험적 연구는 분권화가 이득이 있는지 여부와, 분권화가 지역 격차를 가져왔다면 정확한 인과관계가 무엇인지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하지 못했다. 기간에 따라, 또 나라에 따라 지역 격차, 공간 경제 정책 및 분권화 간의 관계는 다양하고 불균등했다.

2) 권한 이양의 '경제적 이득'이 나타났다는 증거가 제한적으로 있지만, 분권화의 범위와 효과는 공간 격차의 패턴을 결정하는 국가 경제성장의 정책 방향이나 패턴에 더 의존하고 종속됐다.

3) 분권화는 정부의 질이 높은 지역일 수록 잘 작동했다.

실제로 독일과 북유럽 국가(스웨덴, 덴마크 등)는 분권화의 정도가 우리나라 보다 높지만 지역 간 격차는 우리보다 훨씬 덜하다. 반면에 1980년대 대폭적인 지방분권이 실시된 영국과 미국에서는 지역간 격차가 더욱 확대됐다.

당시 미국과 영국의 지방 분권화는 민영화와 작은 정부, 시장기능 확대와 같은 신자유주의 개혁과 함께 이루어졌기 때문에, 지역 간 불균형을 더욱 심화시켰다. 이런 점에서 프루돔(Prud'homme R, 1995)의 다음 말은 시사점이 크다.

"분권화의 이점은 재정 연방주의의 표준 이론이 제시하는 것만큼 분명하지 않으며 분권화는 만병통치약(Panacea)이 아니다. 적절한 시점에 정확한 용량으로 처방될 때 유익한 효과를 가질 수 있다."

따라서 문제는 집권과 분권이 아니라, 어떤 기능을 중앙과 지역 또는 지방 정부가 나누어 담당하는 것이 적절한지, 또 필요한 경우 중앙과 지방이 어떤 기능을 공동으로 담당할지 주의깊게 설계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그간 우리나라에서 재정분권은 마치 뜨거운 감자처럼 다뤄졌다. 지역 간 갈등이 심할 뿐만 아니라, 일부 학자는 지방세 재원이 수도권에 편중되었기 때문에 분권을 하지 말자고 한다.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는 격이다. 그러나 분권은 분권 나름대로 민주화와 자치, 효율화의 장점이 있다.

이런 점에서 자치분권과 균형발전을 잘 조화하고 있는 독일과 북유럽 등 유럽형 모델을 주의깊게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유럽형 모델은 중앙과 지방의 역할을 엄격히 분리하고 있는 영미와 달리 복지와 지역간 재정 균형을 위해 중앙정부의 적극적 역할을 인정한다. 일종의 행정통합형 분권체제라고 할 수 있으며, 전국적으로 복지와 고른 형평을 달성하기 위한 방편이다.

아울러 독일과 스웨덴의 경우 국세와 지방세 비중은 약 6대 4로, 우리보다 재정분권도가 훨씬 높지만, 세원의 지역편중에 따른 수평적 재정 불균형은 잘사는 지역이 돈을 내고 가난한 지역이 받아가는 로빈훗식 수평적 조정제도로 보정하고 있다.

이 재원은 소득세나 소비세를 가지고 공동세 방식으로 조달한다. 1987년에 덴마크도 지방분권을 추진하면서 개별보조금을 포괄보조금화와 일반세원이양으로 전환하는 과정에 이런 식으로 분권과 재정균형의 조화를 도모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방소비세 확충 이후 수도권과 비수도권 광역지자체간에 위와 유사한 지역상생발전 기금을 운영 중이나, 향후 이 규모를 더 확대하고, 광역-기초 간 수평적 조정기금도 운영하는 등 이번 기회에 보다 적극적으로 로빈훗식 수평적 조정제도를 도입해 볼 필요가 있다.

아울러 공간 격차의 패턴을 결정하는 국가의 경제성장 전략도 분권화 못지 않게 중요하다. 정권 초기부터 수도권 대학 중심 반도체학과 설치부터 수도권 규제완화, 디지털 학과 정원확대 등 수도권 집중정책 등이 잇다라 발표되고 있다. 이런 식의 수도권 위주의 국가성장 정책이 지속되는 한 지방의 균형발전은 요원하다.

신정부는 말 그대로 '지방시대를 구현'하기 위해서 분권과 아울러 국가의 균형정책에 대한 적절한 책임, 그리고 국가 성장정책의 공간적 편향 효과(수도권 집중 효과)를 사전에 엄밀하게 고려하는 균형 친화적인 정책 설계를 강구해야 한다.

그리고 이왕에 분권을 추진한다면, 이번 기회에 중앙이 마음대로 휘두르는 국고보조금을 대폭 삭감하는 대신, 교부세와 포괄보조금을 확대하고, 적극적으로 수평적 재정조정제도의 도입을 논의하는 기회로 삼기를 바란다.

■ 저자 소개

박경 교수는 내발적 발전론과 지역산업정책을 연구해 왔으며, 한국공간환경학회 및 한국지역정책학회 회장, 목원대학 금융경제학과 교수 및 동경대 경제학부 객원연구원, 멜버른 대학 경제발전·지리·인류학부 초빙강사를 역임하였다.

■ 필자 주석

(1) Pike. A, Rodríguez-Pose.A, Tomaney. J, Torrisi. G, Tselios, V.(2010), In Search of the 'Economic Dividend' of Devolution: Spatial Disparities, Spatial Economic Policy and Decentralisation in the UK, SERC(Sepacial Ecomonic Research Center) DISCUSSION PAPER 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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