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수출용 가스 '태워버리기' 의혹…탄소 대량 배출해 북극 빙하 위협

노르트스트림1 가스시설서 대규모 연소 목격…그을음 등 북극 이동해 빙하 녹는 속도 가속화 우려

전 세계가 연료난에 신음하는 가운데 러시아가 수출용 천연가스를 대량으로 태워버리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연소 과정에서 나온 온실가스가 북극의 빙하를 위협하고 있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영국 BBC 방송은 25일(현지시각) 상트페테르부르크 북서쪽에 위치한 러시아 포르토바야 액화천연가스(LNG) 시설에서 6월부터 여름 내내 막대한 양의 가스가 연소되는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핀란드 국경 인근에 위치한 이 시설의 대규모 연소에서 발생하는 화염이 핀란드 시민들에게까지 목격될 정도다. 노르웨이 소재 에너지 연구 기업 리스타드 에너지는 이 시설에서 하루 연소되는 가스의 양만 434만입방미터(㎥)에 달한다고 추정했다. BBC는 전문가들이 매일 1000만 달러(약 133억 원) 어치에 달하는 가스가 연소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가스 처리 시설에서 안전상의 이유 등으로 가스를 연소시키는 것은 일반적 관행이지만 이 정도 규모는 유례를 찾아보기 어렵다는 평가다. 위성데이터 전문가인 제시카 맥카티 마이애미대 지리학 교수는 6월부터 대규모 연소가 지속되고 있다며 "LNG 시설에서 이렇게 많은 연소가 발생하는 것은 처음 본다"고 BBC에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 시설에서 태워버리고 있는 가스가 당초 독일로 수출할 용도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저장 용량보다 더 많은 가스를 생산하는 러시아가 저장고가 꽉 차자 가스를 연소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이 시설은 러시아에서 독일로 가스를 공급하는 노르트스트림1 가스관을 위한 가압기지와 인접해 있다. 러시아는 지난 7월 열흘 간 가스관 수리를 명목으로 노르트스트림1 가스관을 완전히 잠근 바 있다. 독일 주간 <슈피겔>을 보면 공급을 재개한 이후에도 공급량은 이전의 14% 수준에 불과하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서방 제재에 맞서 에너지를 무기로 사용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포르토바야 가스 시설은 러시아 국영 가스회사 가스프롬 소유다.

신드레 크넛손 리스타드 에너지 가스시장조사 부사장은 "화염 발생의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다"면서도 그 규모와 발생 장소를 볼 때 "노르트스트림1이나 다른 공급망을 통해 수출됐을 가스"를 연소시킨 것으로 보인다고 BBC에 말했다. 그는 대규모 연소에 대해 "이보다 더 명확한 신호는 있을 수 없다. 러시아는 내일이라도 에너지 가격을 하락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뒤 석유 및 가스를 러시아에 의존해 왔던 유럽은 물론이고 공급 부족 우려로 전 세계가 높은 에너지 가격에 신음하고 있다. 유럽의 경우 가스값이 지난 10년 평균에 비해 14배나 오른 상태다. 국제유가는 전쟁 초기 지난해의 두 배 수준으로 뛰었다. 미국 씨티은행은 최근 높은 에너지 가격에 기인해 영국의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이 내년 1월 18.6%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러시아가 서방 제재로 부품 조달에 난항을 겪으며 기술적 문제로 화염이 계속 발생하고 있다는 의견도 있다. 에사 바킬라이넨 핀란드 LUT 대학 에너지 공학 교수는 "이런 종류의 장기간 연소는 일부 장비가 누락됐음을 의미할 수 있다. 러시아와의 무역 금지 조치 탓에 석유와 가스 처리에 필요한 고품질의 밸브를 조달하지 못해 일부 밸브가 고장나도 대체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북극과 인접한 지역에서 이뤄지고 있는 대규모 가스 연소가 북극 빙하가 녹는 속도를 더 빠르게 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이 연소로 하루에 9000톤에 이르는 이산화탄소가 배출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더해 불완전 연소에서 발생하는 그을음·먼지·분진 등 고형입자의 형태로 배출되는 탄소(블랙 카본)가 북극으로 이동해 빙하에 직접 축적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매튜 존슨 칼튼대 에너지 및 배출 연구실 교수는 "북극 인접 지역에서 이뤄지는 고형입자 탄소 배출에서 특히 우려되는 점은 이것이 북쪽으로 이동해 눈과 얼음에 쌓여 이들의 녹는 속도를 가속시킨다는 것"이라며 "많이 인용되는 일부 추정치는 가스 연소를 북극의 고형입자 탄소 축적의 지배적 요인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이 지역에서 추가적인 연소가 일어나는 것 특히 환영받지 못할 일"이라고 설명했다.

▲2011년 9월 6일(현지시각) 당시 러시아 총리였던 블라디미르 푸틴 현 대통령(가운데)이 러시아 포르토바야 가압기지를 독일 전 총리 게르하르트 슈뢰더(왼쪽)와 러시아 국영 가스기업 가스프롬 최고경영자(CEO) 알렉세이 밀러(오른쪽)와 함께 둘러보고 있다.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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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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