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시마 원전 사고에도 '탈(脫)탈원전' 선언한 윤석열 정부

[기후위기와 '원한의 정치'] ①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영원한 결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 뉴스를 지켜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가능성이 높아보이지는 않지만, 설사 러시아가 전투와 전쟁에서 모두 이긴다 하더라도 우크라이나 영토와 주민(전체 또는 동남부 돈바스 지역일대)의 통합이라는 러시아의 침공 목표는 장기적으로 오히려 더 멀어지지 않을까. 전쟁이 나면 어느 쪽이 옳고 그르든 맞서 싸우는 쌍방이 피를 흘리기 마련이다. 그 규모가 클수록 원한도 더 크고 깊어져, 그 상처는 영원히 치유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한국전쟁(6.25전쟁)을 떠올리며 그런 생각을 했다. 그 전쟁이 일단 멈춘 지 이미 두 세대 이상의 세월이 흘렀다. 하지만 그때 서로 죽인 원한들이 여전히 시퍼렇게 살아, 어떤 이성이나 합리나 연민이나 사랑도 그것을 넘어서지 못하는 것 같다. 남북관계가 풀릴 듯 풀리지 않고 매번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이유들이 셀 수 없이 많이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아마도 가장 큰 것이 그때 그 뼈에 사무친 원한과 상처, 육친들이 눈앞에서 처참하게 죽임을 당하는 모습을 지켜 본 충격, 그로 인한 증오와 불신이 아닐까. 남북으로 오르내리며 여러차례 서로를 그렇게 죽여 그 희생자가 수백만에 이르렀으니, 살아남은 이들 중에 그 끔찍한 기억에서 자유로울 이가 없을 것이다. 그런 트라우마와 공황상태에서 대화나 화해가 잘 될 리 없지 않겠는가. 김일성을 비롯한 북한 집권세력의 최대 패착은 그들이 명분으로 내세웠던 민족통일이, 그것을 위해 그들이 시작한 전쟁 때문에 오히려 어쩌면 영원히 멀어지게 만든 것이 아닐까.

북대서양 조약기구(NATO)의 끝없는 확장(동진) 등 블라디미르 푸틴의 침공 결정 배경이나 의도가 결코 단순하진 않아 보이지만, 어떤 명분을 내세웠든 우크라이나에서 수십만 명이 서로를 죽이고 수백만 명이 삶터를 떠나야 했다. 그들은 그 처참했던 순간과 원한을 두고두고 기억하며 서로를 증오할 것이다. '카틴 숲의 학살'로 기억되는 스탈린 시대 러시아의 만행을 폴란드 사람들이 오늘날까지도 잊지 못하듯이. 지금 폴란드가 러시아를 불신하며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고, 러시아와의 전쟁에 대비하는 이유가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짧지 않은 세월 동안 하나의 국가 안에서 살았고 다수가 같은 언어를 쓰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영원한 진짜 결별의 시작점일 수 있지 않을까.

일본이 패전하고 물러난 지 80년이 가까워 오지만 아직도 한일관계는 원한이 가시지 않은 채 뒤죽박죽이다. 그 침략과 식민지배의 여파로 남북한은 갈라져서 여전히 동족끼리 싸우고 있다. 책 제목은 기억나지 않지만, 언젠가 읽은 책에서 "나라가 한 번 망하면 다시 일어서는데 최소한 100년이 걸린다"는 구절을 읽은 적이 있다. 이민족의 침략으로 나라가 망했다면, 역시 많은 이유들이 있겠지만, 이 또한 서로 죽이거나, 일방적으로 당한 통한의 기억과 분열 때문이 아닐까.

▲ 2011년 3월 11일 일본 도호쿠 지방 태평양 해역에 규모 9.0의 지진이 발생, 도쿄전력이 운영하는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원자로 1-4호기에서 원자력 누출 사고가 났다. ⓒ프레시안

비극의 씨앗을 뿌린 일본

2013년 말에 교토 히가시야마구에 있는 도요쿠니 신사 앞에 세워져 있던 미미즈카(귀무덤)를 봤을 때의 충격이 지금도 가시지 않는다. 서로 다투거나 싸우다 그리된 것도 아닌, 일방적으로 침략한 일본군이 파죽지세로 조선을 유린했다. 그들은 12만, 많게는 수십 만의 조선사람(명나라 군인도 포함)들의 코를 잘라 소금에 절여 포상의 증거품으로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보냈다. 그걸 전리품 삼아 큰 봉분으로 꾸며 놓은 그 '전승 기념물'. 그것이 아직도 그 히데요시를 '모신' 신사 앞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원래 '코무덤'이었으나 너무 잔인해 귀무덤으로 바꿨다는데, 21세기인 지금도 야만에 대한 반성과 회오를 위한 기억장치가 아니라 그냥 관광의 대상이거나 타민족에 대한 우월감을 상기시키는, 그리고 대다수는 있는지도 모르는 유물로 방치돼 있었다.

그 300년 뒤에 히데요시의 후예들이 다시 조선을 침략해 식민지로 만들고 수탈했다. 그 과정에서 자행된 이민족에 대한 무자비한 폭력과 야만, 수탈. 많게는 수십만 명의 여성들(주로 10대와 20대 초 나이의 소녀들)이 '위안부'라는 이름의 노동노예와 성노예로 끌려가고 수백만 명이 전쟁에 동원당했다. 알다시피 그들 중 수많은 사람들이 이역에서 죽거나 죽임을 당했고, 다수는 살아남았으나 고향에 돌아오지 못했다. 그렇게 해서 쌓인 깊고 깊은 원한이 오늘날 '국교 정상화 이래 최악'이라는 한일관계의 출발점이다. '소녀상'에 대한 그들의 집요한 해코지에서도 보듯 거기에 대한 제대로 된 진상규명 의지도 사죄도 배상도 없다. 그들이 아직도 나라로 인정하지도 않는 또 하나의 처참한 피해자 북한. 대남 공작을 위해 북이 저지른 10여 명(많게는 수십 명)의 일본인 납치범죄를 앞세우며 일본은 오히려 자신들을 피해자로 세계에 선전하면서 스스로를 속이고 있다. 자타가 인식하는 일본 쇠락의 주요 원인이 철학의 빈곤, 정신세계의 퇴락이라면, 그 빈곤과 퇴락의 원인은 과거사와 가해자의식의 부정일 것이다. 같은 전범국들이지만, 이것이 독일과 일본이 다른 이유다.

원한은 침략자와 피침략자로만 갈라 놓은 게 아니다. 침략과 식민지배 과정에서 배태된 무수한 가해자와 피해자들, 침략자들 편에 선 자와 거기에 맞선 자들, 빼앗은 자와 빼앗긴 자들로 갈린 피침략자들간의 증오와 원한. 그리고 분단과 전쟁, 서로를 죽인 대살륙, 증폭된 원한. 그 모든 것이 히데요시와 그의 후예들, 이른바 '메이지 유신'을 주도한 '정한론'자들의 침략에서 시작됐다고 하면 너무 단순화하는 것이겠지만, 그렇다고 그게 아니라고 얘기할 수 있을까. 한번 뒤틀리고 찢긴 역사는 계속 악순환의 연쇄반응을 일으키며 원한을 낳고 수백 년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는다.

'은혜'의 나라가 된 미국

그리고 미국. 미국은 일본의 패전 뒤 제국주의 일본이 근대 이후 저지른 전쟁범죄를 징벌하고 침략 이전의 상태로 되돌려 놓을 임무를 연합국(전승국)들로부터 부여받았다. 미국은 그러나 연합국과의 약속을 어겼다. 단독으로 군국 일본의 죄악에 면죄부를 주고 패전국 일본을 최대의 동맹국으로 만들어 그들의 앞잡이로 육성했다. 미국은 패전국 일본을 자신들이 온전히 차지하기 위해 일본이 아니라 그 피해자였던 조선을 주민들 의사도 물어보지 않고 마음대로 분단시켜 소련과 전리품을 나누듯 절반을 장악했다. 그리고 일본을 점령한 그들은 남한의 친일파를 비롯한 일제잔재를 온존시키며 일제에 맞서 싸운 사람들을 오히려 소외시키거나 내쫓아 분열을 심화시켰다. 그것은 결국 한국전쟁으로 가는 길을 열었다. '애치슨 라인'을 긋고 한반도에서 철수했던 미국은 전쟁이 나자 다시 개입했다. 한국민을 구원하는 것이 그들의 주목적이 아니었다. 그것은 베트남전쟁에 미국이 개입한 경위와 목적만 봐도 자명해진다. 그 전쟁으로 본격화한 냉전 전략을 위해 미국은 친미와 반미, 친공과 반공으로 한민족을 다시 분열시켰다. 전쟁은 이땅에서 벌인 미국과 중국의 전쟁이 됐다.

오늘날 미국이 대다수의 한국인들에게 '구원자'나 '은혜의 나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그 미국이 저지른 한국 및 한민족 분단과 해체 덕이라고도 할 수 있다. 미국을 구원자로 인식하는 사람들은 주로 분단된 남쪽에 사는 사람들이다. 한민족 전체로 보면 미국은 1905년의 '가쓰라-태프트 밀약' 이래 한반도와 한민족을 해체하는데 앞장 섰다. 그것이 촉발한 전쟁에서 북쪽 절반을 적으로 돌려 철저히 파괴하고 남쪽 절반을 '수호'하고 '원조'했다. 그렇게 해서 절반의 구원자가 됐다. 한반도와 한민족을 절반으로 가르고 왜소화시킨 '공로'로 구원자가 된 미국, 이 역사의 아이러니의 최대 수혜자가 미국이 동아시아 전략 교두보로 삼아 육성한 전범국 일본이다.

기묘하게도 비극의 원천 유발자인 그들 외부세력과의 원한은 그렇게 해서 감춰지고 왜곡되면서 탈색되고 심지어 '은혜'로까지 뒤집혔다. 성폭행 피해자가 가해자를 오히려 사랑하게 된다는 '스톡홀름 증후군'이 이런 경우에도 적용될 수 있을까.

반면에, 그 희생자들인 남북간의 원한은 오히려 증폭되면서 그 모든 원한들을 압도하는 최악의, 유일한 원한으로 남았다.

원한이 만든 세계사

인도의 저술가 판카지 미슈라의 <분노의 시대>(열린책들 펴냄)는 인류 역사, 특히 근대 이후의 역사 전개를 루소와 볼테르로 대표되는 두 가지 다른 세계관 내지 철학의 충돌로 설명하면서 원한(르상티망)을 그 동력으로 본다. 히틀러나 무솔리니의 등장과 그들이 일으킨 전쟁 등 세계사의 비극도 자본주의 선발국과 후발국의 격차와 불평등, 강박과 좌절, 그로 인한 원한으로 설명한다. 미슈라의 머리를 지배한 채 그 책을 쓰게 만든 것도 영국의 인도 침탈과 뒤틀린 역사로 인한 깊디 깊은 원한이 아니었을까.

따지고 보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도 일종의 원한에서 촉발됐다고도 할 수 있다. 1991년의 소련 해체 뒤 러시아의 재구축은 실패의 연속이었다. 그 실패에 따른 약화를 서방은 나토를 앞세워 자기 확장의 기회로 삼았다. '짜르'적 강권을 쥔 푸틴의 등장은 그런 러시아와 서방의 실패가 낳은 원한의 산물이라고도 할 수 있다. 서방의 확장 공세를 생존을 위한 방어 차원에서 감행한 것이 우크라이나 침공이라는 푸틴의 항변은 일리가 있다. 하지만 그것으로 정당화될 수 없는 침략을 감행한 푸틴은 우크라이나에서 새로운 원한을 쌓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미중 패권경쟁으로 흔들리던 기존의 글로벌 역학구도를 한층 더 유동화시키면서 기후변동 대응전략마저 위태롭게 만들고 있다. 서방의 러시아 제재와 러시아의 천연가스 공급 축소로 유럽에 에너지 대란이 발생하면서 전 세계 대기온도 상승폭을 최대 섭씨 1.5도로 묶고, 이를 위해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0년 대비 최소 45% 줄여야 한다는 국제협약이 더욱 위태로워졌다. 2030년까지 내연기관 자동차를 완전히 추방하겠다는 유럽연합(EU) 27개 회원국의 맹세도 흔들릴지 모른다. 석탄과 석유 소비가 다시 늘어나고 독일을 비롯한 유럽의 대세가 되는 듯했던 탈원전 정책마저 그 앞날을 장담할 수 없게 됐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원전가동을 중단하며 재가동의 기회를 노리던 일본 자민당 정부도 거리낌 없이 재가동 쪽으로 돌아섰다. 한국도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탈(脫) 탈(脫)원전'을 선언했다.

우크라이나 침공의 복사판이 중국과 대만 사이에도 일어날 수 있다는 관측이 나돌면서 미국의 '대만문제' 개입 강도가 증폭됐다. 앵글로-색슨의 '파이브 아이즈'에 일본이 적극적으로 가세하면서 아시아태평양 정세가 요동하고 에너지 수급과 생태환경에도 큰 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서방의 러시아 제재 속에 러시아의 석유·천연가스가 대량으로 중국과 인도로 흘러가고 있다. COVID-19 팬테믹 여파와 겹친 중국과 호주간의 무역분쟁은 중국의 석탄·석유 소비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세계는 명백히 '신냉전'이라는 새로운 세계전쟁으로 향하고 있다. 19세기 20세기의 도전자들이 독일 이탈리아 일본 등의 후발 자본주의 국가들이었다면, 지금은 중국과 러시아다. 그들의 상대는 그때나 지금이나 영국 미국 주축의 앵글로 색슨이다. 전선은 늘 글로벌 부의 분배를 둘러싸고 기득권을 지키려는 선발국들과 그들의 독점적 이익을 잠식하면서 더 큰 몫을 요구하는 후발국 리드 그룹들 사이에 형성된다.

이 또한 원한과도 깊숙이 얽혀 있다. '대만 문제' 자체가 영국 등 유럽 열강의 19세기 중국 침략과 약탈의 산물이거니와, 19세기 중반의 '아편전쟁'은 중국에 지울 수 없는 원한과 패배의식을 안겼다. 그것은 서방에 편승한 이웃 일본에 대한 연이은 굴욕적인 패배로 이어졌고, 다시 동서냉전과 함께 서방에 대한 중국의 피해의식과 굴욕, 경계, 원한은 한층 더 증폭됐다. 1978년 개혁개방 이후 과도할 정도의 속도로 진행된 중국의 경제적 팽창에는 그 원한과 가해자들을 빠른 시간 안에 따라잡고 추월해야 한다는 강박과 앙갚음의 감정이 그 바탕에 짙게 깔려 있다. 그리하여 14억 인구의 자원 대량소비형 자본주의+사회주의 결합형 경제개발이 아닌 다른 친환경의 대안적 개발방식 모색의 가능성을 날려버린 것도 결국 그 원한 때문이었다고도 할 수 있다.

기후변화협약(IPCC) 당사국 회의가 대기온도 상승 한계치 목표를 1.5도 이하로 잡고, 그게 지켜지지 않을 경우 대다수 지표면이 인간이 거주할 수 없는 절멸지대로 돌변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는 사태의 밑바탕에도 자본주의 선발진영과 후발진영간의 근대 이래의 격차와 불평등, 좌절과 분노의 기억과 원한이 짙게 깔려 있는 것이다.

* 이 글은 웹진 <나비>의 '기후@나비'에 동시 게재됩니다.(☞ 바로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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