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자 대거 풀어 준 날, "범죄 수사 말란 거냐" 역설한 한동훈의 모순  

[기자의 눈] 국회를 '싸워 이겨야 할 대상'으로 보는가

물구나무 선 풍경이다. 한동훈 법무부장관은 12일 입장문을 내서 '검수완박법(검찰청법, 형사소송법)' 시행령 개정안의 정당성을 설파했다. 한 장관은 "정부가 범죄 대응에 손을 놓고 있으면 오히려 직무유기"라며 "(검찰이) 서민을 괴롭히는 깡패 수사, 마약 밀매 수사, 보이스피싱 수사, 공직을 이용한 갑질 수사, 무고 수사를 도대체 왜 하지 말아야 하는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날 법무부가 검찰 직접 수사 범위를 대폭 확대하는 시행령을 발표, 국회의 입법 취지를 무력화한 후 내놓은 설명이다. 3권 분리 원칙이니, 법리니 하는 건 둘째로 치자. 이 정부의 정무 감각을 보면 왜 대통령 지지율이 하락하는지 잘 알 수 있다.

한동훈 장관이 국회를 향해 일갈하던 날, 윤석열 대통령은 범죄자를 대거 사면했다. 그 사면심사위원회 논의는 한동훈 장관이 주도했다.

국정농단의 사건으로 86억 원의 뇌물공여 및 횡령 범죄로 징역 2년6개월을 선고받았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국정농단 사건과 업무상 배임 등으로 2019년 대법원에서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은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과 상습도박 등의 혐의로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받은 동국제강 장세주 회장, 2조3000억원대 분식회계, 회삿돈 557억 원을 빼돌린 혐의 등으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은 강덕수 전 STX 회장 등이 그 대상이다. '경제'를 위한 것이라는데, 이미 회사가 해체된 STX그룹의 강덕수 '전직' 회장은 왜 사면됐을까?

범죄 수사든 범죄자 사면이든 모두 그들의 '합법적' 권한이라고 하니 토를 달긴 어렵겠다. 그런데 정치는 그런 게 아니다. 상식선에서 봤을 때 범죄자를 풀어 준 날 '범죄자를 수사하지 말란 말이냐'고 강변하는 건 사람들에게 혼란을 준다. 이 정부는 '공정과 상식 회복'을 부르짖으며 당선된 '검찰 출신 대통령'을 둔 정부 아닌가. "솜방망이 처벌 후 사면 남발(경실련 논평)"을 위해 검찰 수사 대상과 범위를 넓히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지극히 상식적인 의문에 제대로 된 답을 내놓길 바란다.

정치인과 관료들은 개별 사안을 쪼개 판단하지만, 국민은 사안의 총합이 발생시킨 풍경을 따진다. 그래서 정치가 어렵다. 이를테면 국민의힘 김성원 의원의 '비 좀 왔으면 좋겠다'는 망언은 '장난기'가 발동한 젊은 국회의원의 농담이겠지만, 유권자들은 비대위를 출범시키고, '내부 총질 당대표'를 내쫓은 국민의힘 풍경 속에서 발언을 이해한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12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윤석열 정부 첫 특별사면인 '8·15 광복절 특별사면' 대상자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가지 더 있다. 한동훈 장관은 전날 개정된 '검수완박법(검찰청법, 형사소송법)'에 근거해 시행령을 개정했다.

그러면서 한 장관은 "다수의 힘으로 헌법상 절차를 무시하고 소위 검수완박 법안을 통과시키려 할 때 '중요범죄 수사를 못하게 하려는 의도와 속마음'이었다는 것은 국민들께서 생생히 보셔서 잘 알고 있다"며 "그 '의도와 속마음'이 국민을 범죄피해로부터 보호하라는 국민의 뜻에 정면으로 반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정부에게 법문을 무시하면서 그 '의도와 속마음'을 따라달라는 것은 상식에도 법에도 맞지 않다. 정부가 범죄대응에 손을 놓고 있으면 오히려 직무유기"라고도 했다.

한 장관 말대로 '헌법상 절차를 무시'해 제정됐다는 그 '검수완박 법안'에 대해 법무부는 헌법재판소 권한쟁의심판청구를 해둔 상황이다. 쉽게 말해 절차가 잘못됐으므로 그 과정에서 법안이 탄생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법안 처리 절차'도 위헌이고, 법안의 내용도 '국민 권익 침해'로 이어지니 위헌이라고 하면서, 그 법안에 근거해 시행령을 만들어 발표했다.  

결국 한동훈 장관은 지금 헌법재판소의 역할을 '법무부장관 권한'의 주어진 범위 안에서 대신 하고 있는 셈이다. 물론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위헌적 법안'이므로, 그 법안의 개정 취지를 무력화하는 '시행령'을 합법적으로 제정하는 것은 문제가 아니라고 강변할 것이다.

논리의 성찬이다. 하지만 보통 사람들은 궁금하다. "'검수완박' 법안은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법인데, 왜 그 법안을 토대로 시행령을 만들지?", "헌법재판소가 법무부 주장을 받아들이면 한동훈 장관이 만든 시행령도 무효화되는 것 아닌가?" 이런 일을 왜 하는가?

그래서 생각해 본다. 국회의원을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윤석열 대통령은 국회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 윤 대통령의 '복심'이라는 한동훈 장관은 '선출직 대통령'이 임명한 것이므로 국회와 대등한 관계를 갖게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아니, "국회의 의도와 속마음(입법 취지)이 국민을 범죄 피해로부터 보호하라는 국민의 뜻에 정면으로 반하는 것"이라는 한 장관의 발언을 보면 '위헌적 행위'를 일삼는 국회는 싸워 이겨야 할 대상이다. 물론 여기에서 '위헌적 행위'라는 건 한 장관의 머리 속 판결이다. 

목표를 정해 두고 그 목표를 위해 합법적 수단과 자원을 총동원하는 한 장관의 모습을 보면서,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을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범죄 수사를 하지 말라는 것이냐'고 일갈하면서 검찰이 기소한 범죄자들을 사면해주는 이 모순은 어떤 결과를 낳게 될 것인가. 윤석열 대통령 지지율은 그가 위법한 일을 해서 떨어지고 있는 게 아니다. 합법적인 일을 하고 있는데도 지지율이 떨어지는 것이라면 '상식적'으로 자신의 행보를 복기해 볼 필요가 있다. 물론 '선수는 전광판(지지율)을 보지 않는다'고 말한다면 할 말은 없다. 다만 관객은 '전광판'을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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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열

정치부 정당 출입, 청와대 출입, 기획취재팀, 협동조합팀 등을 거쳤습니다. 현재 '젊은 프레시안'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쿠바와 남미에 관심이 많고 <너는 쿠바에 갔다>를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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