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에 항의해 중국이 벌이고 있는 대만 포위 군사훈련에 대해 일본, 미국, 호주가 중단 및 자제를 촉구하고 나섰다. 특히 훈련 도중 자국의 배타적경제수역(EEZ)에 미사일이 떨어진 일본의 반발이 거세다. 각 국은 미사일 오발 위험을 경고하며 중국의 행위가 지역 안보를 위협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일본 NHK 방송은 5일(현지시각) 오전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한국에 이어 일본을 방문한 펠로시 의장과 도쿄 총리관저에서 조찬회담을 가진 뒤 기자들과 만나 전날 중국이 대만 부근 군사훈련 중 발사한 탄도미사일 중 5발이 일본 배타적경제수역(EEZ) 안쪽에 떨어진 데 대해 중국에 강하게 항의했음을 밝혔다고 보도했다. 이날 기시다 총리는 이번 훈련이 "일본의 안전보장과 국민 안전에 대한 중대한 문제"라며 중국 쪽에 "즉시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고 펠로시 의장에게 전했다고 말했다.
전날 일본 국방부는 중국이 4일 오후 2시56분에서 4시8분 사이 발사한 9발의 탄도미사일 중 푸젠성과 저장성에서 쏜 5발이 오키나와현 하테루마지마 서남쪽 일본 EEZ 내에 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일 국방부는 또 이중 4발의 미사일은 대만 상공을 통과해 일본 EEZ 내에 떨어진 것으로 보인다고 발표했다. 이날 기시 노부오 일본 방위상은 "일본 국가안보와 일본국민의 안전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라며 강하게 비난했다. 아세안외교장관회의가 열린 캄보디아를 방문 중인 하야시 요시마사 일 외무상도 중국이 군사훈련을 "즉시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NHK는 5일 일본의 항의에 대해 중국 정부의 공식 반응은 없었고 다만 화춘잉 중국 외무부 대변인이 4일 훈련 구역에 "일본 EEZ가 포함된다는 견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고 전했다.
미국도 경고음을 냈다.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외교장관회의 참석차 캄보디아를 방문 중인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4일 "중국이 위기를 만들거나 공격적인 군사행동을 늘릴 구실을 찾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 카린 장 피에르 백악관 대변인도 3일 브리핑에서 "중국은 미국의 지속적 정책과 일치하는 이번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을 위기로 전환할 이유가 없다"고 비판했다. 5일 일본을 방문한 펠로시 의장은 기자회견에서 미국은 중국이 대만을 고립시키는 것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호주는 이 지역의 갈등 완화를 주문했다. 아세안 외교장관회의가 열리는 캄보디아에 방문한 페니 웡 호주 외교장관은 4일 "모든 당사자들이 당면한 긴장을 완화하는 데 어떻게 공헌할 수 있을지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은 훈련을 구실로 4일 대만 북부, 남부, 동부 주변 해역에 11발의 탄도 미사일을 발사하며 대만을 압박했다. 이번 훈련은 4일부터 7일까지 대만을 포위하는 형태로 치러진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4일 브리핑에서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 관련해 필리핀해에 배치한 항공모함 로널드 레이건호가 로이드 오스틴 국방부 장관 지시로 이 지역에 머무르면서 상황을 주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번 훈련이 펠로시 의장이 떠난 뒤 시작된 것을 지적하며 중국이 실제 군사적 충돌을 유발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지만 의도치 않은 오발로 갈등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팽배하다. 커비 조정관은 4일 미 MSN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중국의 군사훈련을 "매우 면밀히 주시하고 있다"며 "이런 훈련이나 미사일 발사의 골칫거리 중 하나가 바로 계산의 위험성, 실제로 일종의 충돌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실수의 위험"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이 중국의 군사훈련을 촉발했냐는 질문에 "도발자는 중국 정부"라고 분명히 하며 "중국 정부는 의회 구성원의 지극히 정상적인 대만 방문에 대해 이런 방식으로 반응할 필요가 없었다. (이 사태를) 고조시키고 있는 것은 중국인 뿐"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웡 장관도 "이 지역에서 우려되는 위험 중 하나는 계산 실수의 위험"이라고 지적했다. 전날 일본 EEZ 안쪽으로 중국이 훈련차 발사한 탄도 미사일이 떨어지기도 했다. 훈련 장소 일부가 대만 남부 해안에서 16킬로미터(km) 가량 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는 점도 위험요소다.
중국은 계속해서 위기감을 조성하고 있다. 펠로시 의장이 떠난 뒤에도 관련 소식에 대한 실시간 속보란을 운영하고 있는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펠로시 의장이 대만에 도착한 지난 2일부터의 상황을 지난 1954년, 1958년, 1995년과 1996년에 이은 4차 대만해협 위기로 규정하는 그래픽을 5일 올렸다. 매체는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이 4차 대만해협 위기로 생각되는 사태를 촉발했다"고 설명했다. 5일 중국 외교부는 전날 대만에 대한 무력시위를 비판한 공동성명을 낸 주요 7개국(G7) 대사들을 불러 중국 내정에 대한 간섭이라며 항의하기도 했다.
대만 국방부는 4일 중국이 발사한 미사일이 대만 상공을 가로질렀다는 우려에 대해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다"며 대중을 안심시키려 노력했다.
차이잉원 대만 총통은 5일 소셜미디어를 통해 "우리 군과 정부는 중국 군사훈련을 면밀히 주시하고 있고 필요시 대응할 준비가 돼 있다. 국제사회에 대만 민주주의를 지지해 줄 것과 지역 안보 상황이 더 이상 고조되는 것을 막아 주기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민족주의 분출하는 중국, 위협 익숙한 대만인들은 '담담'
영국 매체 <가디언>은 5일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을 계기로 중국 내 민족주의가 분출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매체는 최근 며칠간 중국 소셜미디어 웨이보에서 펠로시 의장을 비판하는 해시태그(#)가 인기를 끌었다고 전했다. 중국 소셜미디어 트렌드를 분석하는 매체 왓츠온웨이보의 만야 코에체 편집장은 <가디언>에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은 소셜미디어에서 중국군에 대한 지지와 대만 통일 촉구에 대한 단결심을 불러일으켰다"며 "많은 이용자들이 '내일 잠에서 깨어나면 대만과 통일돼 있길 바란다'고 표현하고 있다. 이 정도로 강한 통일 정서를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반면 중국의 위협에 익숙해진 대만인들은 비교적 담담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고 외신은 보도했다. 영국 BBC 방송은 인터뷰에 응한 대부분의 대만인들이 중국이 대만을 공격할 것으로 보지 않았다고 4일 전했다. 대만 북부 해안에서 낚시를 하고 있던 한 남성은 이 매체에 "중국 공산당은 말은 강하게 하지만 실제로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 우린 그들의 위협과 함께 70년을 살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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