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안여고 학생들이 쏘아올린 '작은 공'…지역사회 환경을 바꾸다

학생들 노력에 군의회-부안군-기업 도움으로 자원순환 로봇 '네프론' 설치

지난 13일 전북 부안여자고등학교에 인공지능 순환자원 회수로봇 ‘네프론’이 설치됐다.

소셜벤처기업 수퍼빈에서 제작하고 운영하는 이 로봇은 쓰레기의 가치를 측정하고 보상해주는 똑똑한 기능을 갖추고 있다.

투명페트병과 캔을 유상으로 회수하는데, 로봇에 페트병이나 캔을 투입하면 1개당 10원의 포인트를 적립하고 2000원 이상이 쌓이면 계좌이체를 통해 현금으로 지급해 준다.

'개인이 쓰레기를 거래하여 금전적 이익을 얻고, 거래된 쓰레기가 새로운 자원으로 재탄생 되는 순환 경제'를 추구하는 첨병인 셈이다. 이렇게 깜찍한 기기가 부안여고에서 멋진 활동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전북 부안여고에 설치된 자원순환 회수로봇 '네프론' ⓒ

순환자원 회수 로봇을 우리 학교에 설치할 수 없을까?

네프론이 부안여고에 설치되기까지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었다. 

부안여고의 환경지킴이 활동을 여러 해째 왕성하게 이끌고 있는 자율동아리 ‘지구지킴이 다시씀’은 다양한 활동 과정에서 이미 여러 지역에 설치 운영되고 있는 AI 재활용품 수거 로봇에 깊이 눈독을 들였다.

참신한 원리와 뛰어난 효율성에 크게 매료되었기 때문이었다.

전국 재활용품 선별장에는 50m 길이의 컨베이어 벨트가 설치되어 있고 사람이 옆에 서서 육안으로 재활용품을 골라내는데 이런 방식으로는 기업들이 원하는 깨끗한 소재를 분류해 낼 수 없다고 한다.

생활 속에서 아무리 페트병을 열심히 모은다 해도 결국 재활용율은 크게 낮다고 하는데, 인공지능 로봇은 이러한 단점을 극복했다.

사용자가 로봇에 페트병이나 캔을 투입하면 내부에 설치된 카메라가 이를 인식해 재활용 가능 여부를 판단하고 재활용이 불가능한 소재거나 오염이 심해 재활용이 어렵다고 판단하면 다시 배출한다.

이 과정을 거쳐 수거된 순도 높은 페트병은 재활용을 통해 옷과 신발이 되고 음료 캔은 비행기의 날개 등으로 재탄생 된다는 것이다.

학생들은 그동안 재활용에 힘쓰면서도 분리 수거된 자원이 마구 섞여 선별장으로 실려 간다는 점에 늘 낙심이 컸는데 이 정도의 분류 시스템이라면 자신들의 수고가 아깝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컸다.

열망은 기회를 만들었고 마침내 ‘네프론’이 찾아왔다

열망을 현실로 바꾸는 일은 뜻밖에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 출발은 학교와 부안군의회의 만남이었다. 지난해 12월말에 1학년 교육과정의 일환으로 ‘전문가와의 멘토링’ 프로그램이 기획되었고 이 행사의 정치 분과에 당시 부안군의원이었던 김정기 현 전북도의원이 전문가로 참여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지역 의회의 역할과 청소년의 사회 참여에 대하여 활발한 의견 교환이 이루어진 끝에 김 의원은 환경보존의 중요성과 자원회수로봇 설치 필요성을 강조하는 ‘다시씀’ 1학년 위원 최윤정 양의 민원을 접수했다.

마침 지역의 환경문제 해결을 위해 남다른 노력을 기울이고 있던 김 의원은 이 요구에 부응해 올해 1월 말경 권익현 부안군수가 참석하는 환경과 직원들과의 워크숍을 주선했고, 이 자리에서 ‘다시씀’ 대표인 김해강 학생은 ‘부안군 자원순환 프로젝트’를 브리핑하면서 순환자원 회수로봇 구입 및 설치를 제안해 관계자들의 긍정적인 동의를 끌어냈다.

▲부안여고가 진행하는 '전문가와의 멘토링 프로그램'에서 학생들과 토의하는 김정기 부안군의원. ⓒ

이어 4월에 김 의원은 군의회에서 부안군을 지속가능한 자원순환사회로 만드는 데 기여할 ‘부안군 자원순환 기본 조례안’을 대표 발의해 본의회에서 의결을 이끌어냈고 5월 초 ‘다시씀’의 청와대 방문과 박미자 기후환경비서관과의 간담회를 주선하는 등 ‘다시씀’의 교외 활동을 적극 지원했다.

한편 ‘다시씀’의 활동에 깊이 공감하고 있던 수퍼빈의 김정빈 대표이사는 부안여고에 네프론 1대를 무상 대여하겠다는 의지를 밝혔고 최근 꿈에 그리던 네프론을 학교 강당 앞에 설치하게 된 것이다.

학생들의 열망에 부안군의회와 부안군청이 호응하고 기업이 협력해 ‘자원순환사회’로 전환하는 감동적 모범사례를 만들어낸 것이다.

부안군은 별도로 2대의 네프론을 구매해 조만간 부안읍 선은리에 위치한 자연생태공원 부안해뜰마루에 설치하고 운영에 들어갈 예정이다.

네프론 설치…관심을 보이는 학교와 이웃의 학생들

네프론이 설치된 후 학교에는 뜨거운 반응이 이어지고 있다.

학생들은 네프론 앞을 지나칠 때마다 호기심과 기대감으로 몇 개의 페트병이나 캔을 투입하며 친밀감을 높이고 있다.

소문을 듣고 찾아온 인근 초중고생들의 발길도 이어지고 있는데, 포인트도 쌓고 지구도 지킨다는 자부심에 이용자들의 기대도 높아지고 있다. 학생들은 재활용 자원이 눈에 띄면 그냥 지나치지 않고 등굣길에 가정에서 챙겨온 자원을 네프론에 투입하기도 한다.

▲자원재활용 로봇을 활용하는 초등학생들. ⓒ

학교는 이 기기를 활용하여 환경보존과 지구지킴이 활동에 힘쓰는 한편, 자원회수와 재활용, 기업의 사회적 책임, 인공지능로봇의 원리와 쓰임 등을 비롯하여 지역참여 활동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교육 주제와 연계하여 적극 활용할 예정이다.

‘다시씀’은 교내 활동을 넘어서 지역과 연계하는 활동에도 이미 팔을 걷었다.

네프론 도입을 계기로 학교와 ‘다시씀’은 지역 교육계, 학부모회, 주민들과의 소통을 한층 넓혀나갈 계획이다. 

조만간 2학기 개학이 되면 ‘다시씀’은 지역 초중고 학교와 경험을 공유하고 활동을 보급할 예정이다. 

희망하는 초중고교를 대상으로 분기별 네프론 활용교육과 자원순환 캠페인을 실시해 나갈 계획이며 여름방학 동안 네프론을 활용한 지구지키기 활동 영상을 제작해 유튜브를 통한 홍보 활동에 나설 예정이다.

▲자원재활용을 돕고 있는 부안여고 학부모회원들. ⓒ

학부모회도 학생들의 활동에 발맞추어 학교행사 때마다 직접 분리수거의 모범을 보이고 가정에서의 분리수거 실천 의지를 다지고 있다. 

‘다시씀’은 또한 학부모회 및 부안군과 함께 지역 공동주택들의 분리수거 공간에 올바른 분리수거 실천과 네프론 활용을 독려하는 현수막을 부착하며 지역민의 생활 속 지구사랑 동참 권유를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활동들을 통해 구매-소비-폐기의 현행 선형 소비 방식을 구매-소비-수거-재활용의 순환 소비 방식으로 바꾸는 일에 앞장설 예정이다.

다시씀과 수퍼빈, 보람찬 협력의 오랜 인연

‘다시씀’과 소셜벤처 수퍼빈의 인연은 몇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3년 전 이 학교의 가리사니 동아리 학생들이 환경교육을 위해 서울에서 수퍼빈이 운영하고 있던 ‘쓰레기 마트’를 방문한 것이 연대의 계기가 되었다.

학생들은 캔과 페트 등 쓰레기로 쇼핑이 가능한 신개념 마트를 접하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으며 ‘재활용도 놀이다’라는 이 회사의 모토에 깊이 공감하게 된다.

코로나19 대유행이 시작된 2020년 9월, 부안여고는 수퍼빈의 김정빈 대표이사를 온라인으로 초대해 ‘재활용, 미래를 위한 실천행동’이라는 주제의 특강을 열었고, 이 특강에 참가한 학생들은 재활용의 어려움과 실천 아이디어 그리고 미래를 위한 사명감에 대한 김 대표의 열정과 비전에 감동하게 된다. 

그 후 부안여고 ‘다시씀’은 수퍼빈과 주기적으로 대량의 순환자원을 효율적으로 수집하고 회수하는 ‘수퍼모아’ 협약을 맺었고 지난 6월에는 배달용기 뚜껑 재활용을 위해 수퍼빈이 ‘배달의민족’과 공동으로 추진한 ‘루키뚜껑모아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등 활발한 연대 활동을 펼치고 있다.

부안여고와 수퍼빈의 유대는 이번 네프론 설치를 계기로 한층 강화될 전망이다.

특히 최근에 열린 부안여고 학술제 기간에 네프론 설치를 기념해 김정빈 대표이사가 개막 특강을 맡은 일은 또 한 번 학생들의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

▲특강을 마친 뒤 '다시씀' 위원들과 간담회를 하고 있는 수퍼빈 김정빈 대표.ⓒ

지난 14일 오전에 부안여고 강당에서 ‘환경 스타트업, 세상을 바꾸는 힘’을 주제로 진행된 특강에서 김 대표는 쓰레기를 양산하는 기업 및 소비환경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처음부터 폐기물이 나오지 않는 제품 만들기, 단일소재 제품 생산과 완전 분해 가능한 기술 개발의 필요성 등을 역설하며 학생들의 호기심을 일깨우는 한편, 배달 문화의 신기원을 이룬 ‘배달의 민족’, 실증 재배 데이터 기반의 규격화된 농장 ‘N.THING’ 등 획기적 스타트업 사례를 흥미롭게 소개했다.

김 대표는 “오늘날처럼 모든 것이 불확실한 시대에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가지고 한번쯤 창업을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면서 “자신의 불리함을 인정하고 그 핸디캡을 적극 극복해 나가고 내면의 힘을 믿고 자기 방식대로 행동하라”는 등의 강연으로 학생들의 공감을 얻어냈다. 

특강을 마친 후 김 대표는 활발한 질의 응답과 다시씀 위원들과의 간담회를 통해 청소년의 꿈과 끼를 독려하였고, 가을에 수퍼빈에서 완공할 인공지능 기술과 디지털 장비를 활용한 신개념 재활용 공장 ‘아이엠 팩토리’ 견학 프로그램에 부안여고 학생들을 초대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지역에 뿌려진 다시씀의 '선한 영향력'은 계속된다

부안여고 동아리 ‘다시씀’은 학년별 3명씩의 중앙위원과 교실별 2명씩의 학급위원들로 구성돼 활발한 활동을 자랑한다.

지난해에 환경부가 주관하는 자원순환 리더십 프로젝트에 참가해 전국 고등부 최우수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누렸고 올해도 2년차 공모전에 도전하고 있다. 

또 전라북도교육청에서 주관하는 지구살리기 실천학교로 선발되어 쓰레기 배출 줄이기와 탄소발자국 줄이기 등 다채로운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러한 다시씀의 활동에 힘입어 부안여고 모든 학생들은 평소 일회용품 쓰지 않기와 분리수거 실천을 생활화하며 학교 전체를 환경교육의 장으로 일구어나가고 있다.

▲부안여고 동아리 '다시씀' 학생 위원들ⓒ

‘다시씀’ 지도를 맡고 있는 김중기 부안여고 교사는 “생활 속 실천을 통해 자원의 소중함을 익히고 지구지키기에 힘쓰는 다시씀 학생들의 의지가 뜨겁다”면서 “학생들과 어른들, 지자체와 기업이 합심하여 새로운 장을 열어가는 모습도 뿌듯하다”고 말했다.

'다시씀'을 계속 지도해 온 김경희 교사도 “개인이 변하고 모두가 함께 실천해야 지속가능한 미래가 가능한데, 그 일에 앞장서는 학생들의 모습이 대견하다”고 힘을 보탰다.

‘다시씀’ 2학년 위원인 신유림 양은 “지난해 김정기 의원님과의 만남을 통해 제안했던 네프론 설치가 실제로 추진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면서 “부안군과 의회, 기업의 도움으로 설치된 네프론을 잘 활용하고 지역 단위로 네프론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지구를 지켜나갈 수 있도록 열심히 홍보하고 사용을 권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기사는 김중기 부안여자고등학교 교사의 도움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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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홍

전북취재본부 김대홍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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