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러스, "감세"로 수낙 약점 공략하며 영국 총리 결선 진출

英 총리, 수낙 vs. 트러스로 압축…9월 5일 차기 총리 확정

성추행 전력 인사 요직 임명 파문 뒤 내각 줄사퇴에 직면한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이달 초 사임 의사를 밝힌 뒤 당내 경선을 치른 영국 보수당이 차리 총리 후보를 리시 수낙(42) 전 재무장관과 리즈 트러스 외무장관(46)으로 압축했다. 당내 경선에선 수낙이 1위를 차지했지만 평당원 여론조사에서는 트러스 지지가 높아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다는 평가다.

20일(현지시각) 영국 BBC 방송 등 외신을 보면 차기 총리 후보를 2명으로 압축하기 위한 보수당 하원의원들의 투표에서 수낙 전 장관이 137표로 가장 많은 표를 얻었고 트러스 장관이 113표로 2위를 차지해 결선에 올랐다. 최종 결정은 보수당 평당원 손에 달렸다. 보수당은 8월1~5일 사이 당원들에게 총리 선출을 위한 투표용지를 발송할 예정이며 당원들은 9월2일까지 우편투표로 2명 중 원하는 후보에게 표를 던져 차기 총리를 선출하게 된다. 집계 뒤 9월5일께 차기 총리가 발표될 예정이다.

앞서 보수당은 지난 12일부터 당내 하원의원 투표를 통해 총리 경선을 진행해 왔다. 최종 결선에 남은 2명의 후보를 포함해 페니 모돈트 국제통상부 부장관, 케미 바데노크 전 평등담당 부장관, 톰 투겐드하드 하원 외교위원장 등 하원의원 20명 이상의 지지를 받은 8명의 후보가 경선을 치렀고 1차로 30표 미만을 득표한 후보들을 제하고 다음으로는 최하위 득표자를 탈락시키고 마지막엔 2명의 후보가 추려질 때까지 연속 투표 하는 방식으로 최종 후보가 선정됐다.

의원투표에서는 수낙 전 장관이 더 많은 표를 얻었지만 당원들 사이에서는 트러스 장관의 인기가 더 높아 결과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여론조사업체 유고브가 18~19일 보수당원 725명을 대상으로 벌인 가상 양자 대결 설문조사에서 수낙 전 장관과 트러스 장관이 총리직을 두고 대결할 경우 트러스를 지지하겠다는 응답(54%)이 수낙 지지율(35%)을 크게 넘어섰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뒤 강경 발언을 쏟아낸 트러스 장관은 소셜미디어(SNS)를 적극 활용하며 대중에게 자신의 이미지를 각인시켰다. 올해 초 옌스 스톨텐베르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사무총장과의 주먹 인사 사진, 지난해 말 에스토니아에 주둔 중인 영국군 탱크에 올라탄 사진 등 수많은 인상적인 사진들을 게재하며 인지도를 올렸다. 영국 매체 <가디언>의 필자인 모야 로시안-맥린은 "이미지 메이킹"에 능한 트러스가 총리가 될 경우 "영국은 최초로 인플루언서 겸 총리을 갖게 될 것"이라고 비꼬기도 했다.

경선 과정에서 트러스 장관은 수낙이 재무장관 시절 추진한 법인세 인상을 폐지하겠다고 공언하는 등 감세 정책을 무기로 일찌감치 1위 후보로 자리매김한 수낙 전 장관을 공략했다. 2023년부터 법인세를 19%에서 25%로 인상하기로 한 수낙 전 장관의 방침은 보수당원 사이에서 그의 인기를 떨어뜨린 요인 중 하나다. 트러스의 공격에도 수낙은 자신이 추진한 정책을 쉽게 되돌릴 수 없는 입장이다. 수낙은 "인플레이션 통제 정도에 따라" 감세가 가능하다고 밝혔다.

수낙 전 장관은 이달 초 존슨 총리가 정치적 위기에 처했을 때 내각 장관 중 가장 먼저 사표를 던지며 줄사퇴를 이끌어 사실상 존슨 퇴임의 가장 큰 공로자가 됐다. 때문에 존슨을 지지하는 보수당원들의 미움을 살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영국 매체 <더타임스>의 15일 보도를 보면 존슨은 보수당 경선에서 탈락한 후보들에게 "수낙만 아니면 된다"며 다른 후보를 지지할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지난 4월 인도 부유층 출신 아내의 세금 회피 논란이 터진 것도 걸림돌이다. 트러스 장관의 경우 2016년 브렉시트 투표 때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를 반대하는 쪽에 표를 던진 기록이 계속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야당인 노동당은 일단 "기이한" 카리스마로 대중의 인기를 얻었던 존슨 총리가 물러나는 것 자체를 기회로 보고 있다. 야당이 집권할 때를 대비해 미리 꾸려 놓는 예비 내각인 그림자 내각의 한 구성원은 <파이낸셜타임스>(FT)에 "우리가 두려워했던 단 한 명의 후보는 보리스 존슨이었고 이제 그는 떠났다"며 물가상승률이 9.4%까지 치솟은 현 상황에서 보수당에서 어떤 새 총리를 내든 전보다 야당에 유리할 것으로 봤다.

<가디언> 필자인 사힐 두타는 "보수당원 대부분이 부유하고, 나이가 많고, 백인이고 남성"이라며 새 총리를 뽑는 이들과 영국 국민들 간의 격차를 지적했다. 그는 "이것이 리시 수낙과 리즈 트러스의 경제 논쟁이 영국 자본주의의 현실과 동떨어져 보이는 이유"라고 비판했다. 2017년 기준 보수당원의 71%가 남성이고 대부분 런던과 잉글랜드 남부에 거주하며 평균 연령은 57살이다.

앞서 존슨 총리는 코로나19 봉쇄 기간에 총리실 파티에 참석한 이른바 '파티게이트'로 지난달 신임 투표를 치러 기사회생한 뒤 이달 크리스 핀처 전 원내 부총무의 성추행 전력을 보고 받은 뒤에도 그의 원내 부총무 임명을 강행한 사실이 밝혀져 수낙 전 장관을 위시한 내각 구성원들의 줄사퇴가 이어지며 결국 사임을 선언했다. 다만 즉시 물러나진 않고 차기 총리가 결정될 때까지 자리를 지킬 예정이다.

▲20일(현지시각) 영국 차기 총리 결선에 진출한 리즈 트러스 외무장관(왼쪽)과 리시 수낙 전 재무장관.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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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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