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추행 전력 인사 요직에 앉혔다가…영국 존슨 총리 또 정치적 위기

장관 2명 포함 내각 사퇴 이어져…당 내서도 퇴진 압박

성추행 전력을 알고도 해당 인사를 당내 고위직에 임명한 것을 인정한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불신임 투표에서 기사회생한지 불과 한 달만에 또 다시 정치적 위기에 직면했다. 총리의 공개 사과 직후 장관들이 잇달아 사퇴하면서 총리가 내각을 유지할 힘을 잃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영국 매체 <가디언> 등 외신에 따르면 존슨 총리는 5일(현지시각) 지난달 30일 성추행 혐의로 사임한 크리스 핀처 보수당 전 원내 부총무가 이전에도 비슷한 사건을 저지른 적이 있다는 보고를 받았음에도 올 2월 그를 원내 부총무로 임명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존슨은 보고를 받은 뒤에도 핀처를 고위직에 임명한 것은 "잘못"이며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고 있다고 영국 BBC 방송에 말했다. 그러나 <가디언>은 존슨이 하원 다과실을 방문해 "누구나 두 번째 기회를 얻을 자격이 있다"는 취지로 의원들에게 말하며 현 시점에서 스스로 물러날 의사가 없음을 시사했음을 전했다.

지난달 29일 술집에서 남성 2명을 성추행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다음날 핀처는 곧바로 원내부총무직을 내려놨다. 그러나 이후 그가 과거에 유사한 사건을 일으켰음에도 존슨이 임명을 강행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앞서 총리실 쪽은 존슨이 핀처의 전력에 대해 몰랐다고 해명했지만 5일 사이먼 맥도널드 영국 전 외무부 차관이 핀처가 외무부 부장관이던 2019년에도 성추행 관련한 제보가 있었고 이를 존슨에게 보고했다고 폭로하자 사실을 시인했다.

존슨이 사실을 인정한 직후 리시 수낙 영국 재무장관과 사지드 자비드 영국 보건장관이 사임했다. 자비드는 사직서에서 "이 정부에 복무하면서 더 이상 양심을 지킬 수 없다"며 사임의 변을 밝혔다. 수낙도 사직서에서 "대중은 정부가 적절하고 유능하고 진지하게 운영되기를 기대한다. 나는 이게 내 마지막 장관직이 될 것을 알고 있지만, 이러한 기준을 위해 싸울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 그게 내가 사임하는 이유"라며 정부를 비판했다.

존슨은 이미 지난달 불신임 투표를 치르고 살아 남았기 때문에 현재 당의 규정상 1년 안에 다시 불신임 투표를 할 수는 없다. 때문에 내각 장관들의 사임은 사실상 존슨에 대한 강한 사퇴 압력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뉴욕타임스>(NYT)는 존슨이 파티게이트를 비롯한 일련의 의혹에도 불구하고 불신임 투표에서 살아남은 것은 "내각의 일관된 지지 덕분"이었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내각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존슨은 곧바로 후임 장관을 지명하며 자리를 지킬 의지를 표명했다. 재무장관으로는 교육부 장관인 나딤 자하위를 임명했고 보건장관 공석에는 스티브 바클레이 비서실장을 임명했다. 교육부 장관으로는 미셸 도닐런 교육부 차관을 앉혔다. BBC는 총리실 소식통을 인용해 존슨이 "국민들과 약속한 것을 지키겠다"며 물러나지 않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버티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보수당 의원들은 존슨의 사임을 압박하고 있다. 로렌스 로버트슨 보수당 하원의원은 소셜미디어(SNS)에 장관들의 사임을 언급하며 "총리는 사퇴해야 한다"고 썼다. 보수당 원내대표를 역임한 앤드류 미첼 하원의원은 BBC에 총리는 "끝났다"며 존슨은 "비상한 카리스마가 있고 매우 재미있지만, 총리의 기질을 갖지는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앤드류 브리젠 보수당 하원의원도 이 방송에 총리가 사임해야 하며 그렇지 않을 땐 "당이 그를 축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뉴욕타임스>는 보수당이 이미 불신임 투표를 앞당길 수 있도록 당규 변경 논의에 들어갔다고 보도했다.

여론도 존슨에게 등을 돌렸다. 여론조사기관 유고브가 6일 영국 성인 3009명을 대상으로 긴급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의 69%가 존슨이 사임해야 한다고 답했다. 총리직을 지켜야 한다는 응답은 18%에 불과했다. 그러나 존슨이 총리에서 스스로 물러날 것으로 보는 응답자는 21%에 불과했다. 68%는 그가 스스로 사임하지 않을 것으로 봤다.

다만 내각 줄사퇴가 이어지지 않은 것을 두고 총리의 입지가 더 단단해질 것으로 보는 낙관론도 있다. 리즈 트러스 외무장관을 비롯해 도미닉 라브 부총리 겸 법무장관, 프리티 파텔 내무장관, 마이클 고브 주택부 장관, 테레즈 코피 노동연금부 장관, 벤 월러스 국방장관 등 다른 장관들은 사임 의사가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대니얼 카우친스키 보수당 하원의원은 총사퇴를 막은 것이 궁극적으로 총리의 입지를 더 탄탄하게 만들 것이라고 BBC에 말했다. 보수당은 존슨의 뒤를 이을 마땅한 총리 후보를 찾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며 존슨이 지난달 불신임 투표에서 살아남은 큰 이유도 여기에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러나 BBC는 장관들뿐 아니라 내각 하위 구성원들의 사퇴가 이어지는 것을 언급하며 "존슨의 미래는 안전하지 않다"고 평가했다. 이날 장관들뿐 아니라 알렉스 초크 잉글랜드·웨일스 법무차관, 빔 아폴라미 보수당 부의장, 각료 보좌관 4명도 사임 의사를 밝혔다.

야당은 내각 총사퇴를 요구하고 나섰다. 안젤라 레이너 노동당 부대표가 남은 내각 장관들도 사퇴해 "영국 국민들을 위해 옳은 일을 하라"고 말했다고 BBC가 전했다. 레이너는 "보리스 존슨이 총리직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 명백해졌다"며 "보수당은 존슨을 지지해 온 것을 부끄러워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키어 스타머 노동당 대표는 2024년으로 예정된 총선을 앞당길 것을 제안하며 정권 교체 필요성을 역설했다.

<가디언>은 5일 사설에서 남은 장관들의 사퇴를 요구하고 "총리는 이제 그의 시간은 끝났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며 총리의 퇴진을 촉구했다.

▲당내 인사의 성추행 관련 비위를 묵인하고 요직에 앉힌 것이 드러나 정치적 위기에 몰린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의 지난달 30일(현지시각)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나토 정상회의 참석 때 사진.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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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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