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전 총리 사망 비극 여파는…일본 극단주의 자극제 되나

2차대전 후 일본 정치 최대 사건…개헌 비롯 아베 추진 정책 가속화 전망도

일본 참의원 선거를 이틀 앞두고 지원 유세를 벌이던 아베 신조 일본 전 총리가 총격을 당해 숨졌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눈물을 흘리며 "친구" 아베 전 총리에 대한 애도를 표한 가운데 개헌 등 아베가 추진하던 정책 목표가 아베의 유지를 계승한다는 기치 아래 자민당 내에서 가속화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일본 NHK 방송 등 외신을 종합하면 8일 오전 11시30분께 나라현 나라시에서 자민당 지원 유세 도중 아베 전 총리가 총에 맞았고 즉시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이날 오후 끝내 숨졌다. 아베 전 총리를 치료하던 나라현립의대병원은 이날 오후 6시께 기자회견을 열고 아베 전 총리가 오후 5시3분께 사망했다고 밝혔다. 병원 쪽은 아베 전 총리가 총에 맞은 뒤 약 1시간 가량 지난 낮 12시20분께 심폐정지 상태로 병원에 도착했다고 밝혔다. 병원 쪽은 탄환에 의한 것으로 보이는 상처가 심장까지 도달해 있었고 사인은 과다 출혈을 의미하는 실혈사라고 설명했다.

이날 아베 전 총리는 나라시 야마토사이다이지역 부근에서 유세 도중 적어도 2발의 총성이 들린 뒤 쓰러져 구급 헬기로 병원으로 이송됐다. 이미 총격 직후 일본 언론에선 소방당국을 인용해 아베 전 총리가 심폐정지 상태라는 보도가 나왔다.

아베 전 총리를 저격한 용의자 야마가미 테츠야(41)는 살인미수 혐의로 이날 오전 현장에서 체포됐다. NHK는 용의자가 경찰에 '아베 전 총리에게 불만이 있어 죽이려 했다'는 취지로 진술하는 한편 '아베 전 총리의 정치 신조에 원한을 품은 것은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다고 전했다. <마이니치신문>은 방위성 관계자를 인용해 용의자가 2005년 무렵까지 3년간 일본 해상자위대에서 근무했다고 보도했다. 범행에 사용된 총기는 직접 제작한 것으로 보인다. NHK는 용의자가 '여러 권총과 폭발물을 제조했다'고 진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총기는 당국에 의해 압수됐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이날 오후 7시께 도쿄 총리관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부디 목숨을 부지해 주었으면 하고 빌었는데 부고를 받게 돼 정말 유감"이라며 아베 전 총리가 "친구"이면서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낸 사람"이라고 애도를 표했다. 회견에서 눈물을 보인 기시다 총리는 이번 총격을 "비열한 만행"이라고 비난하고 폭력에 굴복하지 않고 내일도 선거 운동을 이어나가겠다고 했다. 이날 기시다 총리는 야마가타현에서 지원 유세를 이어가던 중 아베 전 총리 피격 사건을 보고 받고 즉시 유세를 중단한 뒤 헬기를 타고 도쿄 총리관저로 돌아왔다. 관저로 돌아온 직후인 이날 오후 2시30분께 기시다 총리는 기자회견을 열어 아베 전 총리가 "심각한 상황"이라고 설명하고 이번 총격은 "용서받을 수 없는 행위"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아베 총리의 사망 소식에 각 국 지도자들은 애도의 뜻을 밝혔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은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일본은 평생을 나라에 헌신하고 세계에 균형을 가져오기 위해 일한 위대한 총리를 잃었다"며 조의를 표했다.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G20 외무장관 회담에 참석한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아베 전 총리는 미-일 관계를 "새롭게 끌어올린 특별한 파트너이자 위대한 비전을 가진 지도자"였다고 추모했다. 앤서니 알바니즈 호주 총리도 "아베 전 총리 집권 아래 일본은 아시아에서 호주와 가장 마음이 잘 맞는 파트너 중 하나가 됐다"며 애도를 표했다. 차이잉원 대만 총통, 자오리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도 조의를 표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아베 전 총리의 모친과 아내 앞으로 애도의 뜻을 표하는 서한을 보내 아베 전 총리가 "양국의 우호 관계 발전에 많을 기여를 한 위대한 정치가"라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도 "선거 중에 일어난 테러 행위는 민주주의 근간에 대한 공격"이며 "용납될 수 없다"고 규탄한 뒤 "아베 전 총리의 가족과 일본 국민에 대해 애도를 표한다"고 밝혔다. 외교부도 성명을 내 "깊은 애도와 위로"의 뜻을 전했다.

2020년 퇴임 뒤 자민당 내 가장 큰 파벌의 수장을 맡고 있던 아베 전 총리는 사망 뒤에도 일본 정계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미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중국 관영매체 환구시보의 영문판 <글로벌타임스>는 뤼야오둥 중국사회과학원 일본연구소 연구원을 인용해 아베 전 총리의 계승자는 "아베의 유지를 계승한다"는 기치 아래 개헌 추진을 가속화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헤이룽장사회과학연구원의 동북아시아연구소장 다지강도 선거를 앞두고 아베 전 총리가 숨진 것이 일본 대중의 동정심을 불러 일으키며 자민당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봤다. 마리코 오이 BBC 아시아 특파원은 "이웃나라 한국과 중국을 분노하게 한 아베의 개헌 추진은 그의 자민당 동료들에 의해 여전히 메아리치고 있다"며 "고위 인사들의 애도가 쏟아지는 가운데 아베 전 총리의 영향력이 줄어들지 않을 것으로 확신한다"고 밝혔다.

이 사건으로 일본 내 극단주의 세력이 자극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글로벌타임스>는 "분석가들이 이 사건을 2차대전 이후 일본 정치에서 가장 큰 사건으로 보고 있다"며 "최근 몇 년 간 일본 정치는 표면적으로는 조용했고 자민당의 지위도 안정적인 것으로 보이지만 포퓰리스트와 극단적 사상들이 오랜 경기 하강 등을 배경으로 급증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매체는 "이러한 폭력은 강하게 비난받아야 하지만 일본도 국내 정치 양극화의 위험성에 대해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샹하오유 중국국제관계연구소 연구원을 인용해 보도했다.

아베 전 총리는 2006~2007년, 2012~2020년 두 차례에 걸쳐 집권한 일본 최장수 총리다. 2020년 9월 건강을 이유로 퇴임한 뒤에도 자민당 내 가장 큰 파벌인 아베파의 수장으로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집권 중에는 완화적 통화정책을 포함해 디플레이션 극복과 경제성장을 위한 정책, 이른바 '아베노믹스'를 펼쳤고 퇴임 뒤에도 개헌과 방위력 강화를 주장해 왔다.

▲8일 아베 신조 전 총리가 피격된 일본 나라시 야마토사이다이지역 부근에 아베 전 총리를 추모하는 꽃다발과 일본 국기가 놓여 있다. 이날 참의원 선거 지원 유세 도중 총에 맞은 아베 전 총리는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끝내 숨졌다.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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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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