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시대에도 지역은 의미있다

[경제지리학자들의 시선] 지역 역량과 디지털 시대

코로나19는 우리 삶의 많은 부분을 바꾸어 놓았다. 사람들은 어플리케이션으로 음식을 주문하고, OTT 서비스를 통해 영화를 보며, 대면 회의나 수업보다 온라인 공간을 더욱 편안하게 느낀다.

뿐만 아니라 2년 이상 지속된 사회적 거리두기는 기업의 근무방식에도 큰 변화를 불러왔다. 최근 네이버는 전면적으로 재택근무를 도입했다. 임직원들은 주 5일간 자택이나 원하는 장소에서 근무하거나 원하는 요일, 원하는 시간에 주 3일 이상 회사로 출근하는 방식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고 한다. 카카오를 비롯한 IT 기업들도 전면 또는 부분적으로 재택근무를 실시한다는 계획이다.

디지털 전환, 새로운 성장전략인가?

지속적인 저성장 및 생산성 저하, 글로벌 산업경쟁 심화를 경험하면서 세계 유수의 기업들은 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rmation)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꾸준히 준비해왔으나, 코로나19는 그 변화의 시기를 급속하게 앞당긴 계기가 되었다.

디지털 전환은 빅데이터,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등 디지털 기술을 이용하여 기업의 기존 운영방식에 변화를 일으키고,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창출하는 프로세스라 할 수 있다.

디지털 기술과의 융·복합은 비용 절감은 물론 산업의 고부가가치화, 생산성 제고를 통한 경쟁력 향상이라는 측면에서 굴뚝산업이라 일컬어지는 전통 산업부문에서도 큰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의 자료에 따르면 미국의 완성차 제조업체 제너럴 모터스(GM)는 2016년 자율주행기술 전문기업 크루즈(Cruise)를 인수한 데 이어 마이크로소프트(MS)와 소프트웨어, 하드웨어 엔지니어링, 클라우드 서비스까지 협업을 계획 중이다. 이와 더불어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3000명 신규 채용, 인공지능과 머신러닝을 활용한 디지털 판매 플랫폼 개발 등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국내 조선업계에서는 올해 1분기 대규모 적자에도 불구하고 디지털 전환을 위한 공격적인 연구개발 투자를 계획하고 있다. 최근 현대중공업그룹은 스마트 조선소 구축, 건설기계·로봇 분야 무인화 및 자동화 등에 12조 원, 자율운항 선박 및 빅데이터 플랫폼 구축 등에 1조 원, 친환경 연구개발에 7조 원 등 향후 5년간 21조 원에 이르는 대규모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삼성중공업 또한 작년 마이크로소프트와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고 클라우드,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해 저비용·고효율 조선소로의 전환을 발표한 바 있다.

디지털 전환의 공간적 양면성

그렇다면 디지털 전환으로 인해 산업공간은 어떻게 변화해나갈 것인가? 디지털 전환이 기업의 활동공간에도 혁신적인 변화를 일으킬 것인가?

위에서 언급한 네이버 사례처럼 전통적인 업무공간은 디지털 기술과의 융합을 통해 새로운 유형으로 변화할 수 있다. 기업들은 지난 2년간의 경험을 통해 초고속 인터넷, 클라우드 등 디지털 기술이 물리적 공간으로 인한 제약을 극복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그 결과 시간과 공간 제약이 없는 원격근무, 유연근무가 보편화되었으며, 이는 창의적이고 자율적인 근무환경을 원하는 기업들이 기존의 입지에서 벗어나 지리적으로 확산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기업활동이 도시로 집중될 개연성 또한 높게 나타난다. 도시는 스마트폰과 같은 다양한 장치를 통해 대량의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생산하고 축적할 수 있는 중심지이자, 디지털 관련 기술 연구개발을 위한 전문인력 공급이 원활한 공간이다.

높은 수준의 물리적 인프라와 풍부한 인적자본은 공간 제약의 감소에도 불구하고 기업의 도심 입지에 유의미한 장점으로 작용한다. 특히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 개발에 중요한 다양한 고객층의 수요와 피드백은 기업의 도시 집중에 당위성을 부여한다.

이와 같은 공간적 양면성은 우리나라의 균형발전에 지대한 파급효과를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무엇보다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 격차가 나날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지역 간 역량 차이는 디지털 전환 수준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비수도권은 상대적으로 기술 역량이 부족하고, 지역 기업들을 위한 제도적 지원체계가 미진하여 수도권에 비해 디지털 전환 투자가 저조한 상황이다.

지역의 역량 차이, 격차는 더 커질 수 있다

산업연구원에서 발표된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지역의 수용력 연구>는 인적자본역량, 혁신역량, 지역경제역량이라는 변수를 토대로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우리나라 각 지역의 수용력을 분석했다. 그 결과 산업부문에 따른 차이는 존재하나 서울, 경기, 인천을 포함한 수도권이 다른 광역시·도에 비해 압도적으로 우위에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즉, 지역에 축적된 인재, 기술, 경제기반은 디지털 전환을 촉발시키는 중요한 자산임과 동시에 전환 과정에서 지역 격차 확대의 원인이 될 수 있기에 이를 보완하기 정책적 노력이 필요하다.

▲ 표. *주: 각 변수를 평균이 0이고 표준편차가 1인 표준화값을 이용해 평균값을 구함. 따라서 각 변수값이 음수이면 평균 이하, 양수이면 평균 이상을 의미함. (이원복·정우성. 2020.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지역의 수용력 연구. 산업연구원. p.134)

가령 독일 정부는 중소기업 디지털 전환 정책을 추진하면서 지역 기반 중소기업의 기술 이전, 법적·제도적 상담, 근로자 교육 등 맞춤형 컨설팅 지원을 하는 지역별 역량센터를 설치했다. 역량센터의 범기업적 지원 네트워크에는 연구기관을 포함해 각종 협회, 지방정부 등이 소속되어 있으며, 기업이 다양한 전문가와의 교류를 통해 디지털 전환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고 로드맵 수립, 프로젝트 수행 등 실질적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

우리나라는 지난 5일 산업디지털전환촉진법이 시행됨에 따라 범부처 차원에서 본격적으로 디지털 전환을 지원할 수 있는 체계가 마련되었다. 이를 토대로 각 부처에서 추진하던 관련 사업의 연계, 인력 양성, 고용지원, 연구개발 지원, 제도 정비 등 종합계획 수립을 준비하고 있다. 특히 지역 특성을 고려하여 지역별 디지털 전환 시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향후 지역에 대한 면밀한 분석과 구체적인 지원 및 실행방안을 기대할 수 있다.

새정부 또한 마찬가지다. 산업 디지털 혁신 가속화를 위한 종합지원체계 구축, 지역 디지털 혁신거점 조성, 지역 디지털 인재 양성 등을 주요 국정과제로 제시함으로써 디지털 전환을 통한 지역과 국가경쟁력 제고 의지를 나타내고 있다.

디지털 전환 과정에서 수도권과 비수도권, 도시와 비도시 간 격차 확대를 막고 균형있는 발전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지역의 고유한 특성을 고려한 맞춤형 전략이 필요하다. 지역의 경제 상황 및 산업구조, 주력산업의 경쟁력 등을 검토하여 유형에 따른 접근방식이 요구되며, 경우에 따라서는 인프라 구축을 비롯해 중앙정부의 과감한 재정 지원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또한 비수도권 혁신역량 강화를 위해 지역별 종합지원센터를 설치함으로써 지역 기업과 연구기관, 지방자치단체 등 혁신 주체 간 협업 네트워크 구축을 위한 플랫폼 마련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지역사회에서 지방대학의 역할 강화를 통해 지역 인재 양성과 창업 활성화의 선순환 체계를 만들어 지역의 인적자본 역량을 키우고, 장기적 관점에서 디지털 혁신 환경 개선에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 필자소개

최성웅 박사는 미국 뉴욕주립대 지리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현재 산업연구원 국가균형발전연구센터에서 부연구위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지역의 산업과 고용, 균형발전 등을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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