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양훈 "김해 대성동29호분 금동관, 3세기 후반 추정"

"삼국사기 초기기사 속 가야관계기사 적잖은 연구 이루어졌지만, 한계도 많았다"

국립김해박물관은 2022년 가야학술제전의 첫번째 심포지엄으로 '삼국사기'의 가야인식을 지난 24일 국립김해박물관 강당에서 열였다.

이번 심포지엄은 가야사 기초 문헌자료 연구를 목적으로 '가야사학회'와 공동으로 마련했으며 '삼국사기'를 주제로 했다.

'삼국사기'는 적지 않은 가야 관련 기록을 남기고 있었서다.

▲가야학술제전 심포지엄 모습. ⓒ김해시

이날 김양훈 김해시 시사편찬 위원(대성동고분박물관)은 "지금까지 삼국사기 초기기사 속의 가야관계기사는 적잖은 연구가 이루어졌지만, 그에 따른 한계도 적지 않음은 분명한 사실이다"고 말했다.

김 위원은 "'신라본기' 혁거세 19년의 변한은 '백제본기' 마한관계기사와 비교해 신라본기 찬자가 하나의 國으로 인식했고, 혁거세 38년 마한왕과 호공의 대화에서 마한왕이 자신의 지배하에 변한을 거론한 것은 '후한서'의 삼한관을 따른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기사 속의 수로왕을 해당 사건에 첨입된 인물로 판단했고, 기사 전반에 깔린 가락국왕의 정치적 위세를 '위서동이전'의 '변한왕'과 '대성동 29호분'의 금동관을 주목해 3세기 후반의 사건으로 추정된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김 위원은 "가락국과 신라가 황산강을 두고 대치한 것은 5세기 말~6세기 전반이며 1~3세기 가소성·마두성 그리고 가소성과 인접한 남변은 언양으로 비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초기기사의 가야는 삼국지위서동이전에 기록된 변진접도국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뜻이다.

김 위원은 "파사이사금 23년조 기사는 수로왕의 생몰연대 혹은 재위연대가 불명확한 점과 기사 전반에서 살필 수 있는 신라와 제소국간의 관계가 1~3세기에 걸친 점으로 보아 해당 기년을 신뢰하기 어렵다"고 했다.

하지만 김양훈 위원은 "기사 속의 수로왕을 해당 사건에 첨입된 인물로 판단했고, 기사 전반에 깔린 가락국왕의 정치적 위세를 '위서동이전'의 '변한왕'과 '대성동 29호분'의 금동관을 주목해 3세기 후반의 사건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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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민규

경남취재본부 조민규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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