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점화된 글로벌 가치사슬의 변동, 지역산업 대응은?

[경제지리학자들의 시선] 지역 산업정책과 글로벌 가치사슬의 재편

코로나19로 점화된 글로벌 가치사슬의 변화

예고 없이 찾아온 팬데믹은 사회의 많은 것들을 바꾸어 놓았고 그 변화는 지리적 경계를 넘어 전 세계로 뻗어나갔다. 특히 글로벌 가치사슬(Global Value Chain, GVC)로 연결된 세계 경제 체제는 개별도시의 봉쇄조치 영향을 지구 반대편의 도시로 전달하기에 충분했다.

글로벌 가치사슬이란 제품의 연구·개발에서 원료공급, 부품생산, 조립, 최종제품 생산 및 판매에 이르기까지 모든 공정이 국가의 경계를 뛰어넘어 하나의 사슬처럼 조직되어 있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에서 디자인된 아이폰이 중국의 폭스콘(Foxconn)에서 생산된 후 한국의 애플스토어에서 판매되는 것이 오늘날 전 세계의 경제체제를 하나로 연결한 글로벌 가치사슬의 예라고 할 수 있다. 교통 및 정보통신 기술의 발전과 함께 확산한 경제적 세계화 속에서 글로벌 가치사슬은 전 세계 대부분의 국가가 참여하고 있으며, 이 사슬의 연결은 단일제품의 최종 판매에 담긴 부가가치를 서로 다른 국가와 도시에 배분하며 발전해 왔다.

하지만 코로나19의 발발 이후 글로벌 가치사슬은 전세계로 피해를 전달하는 매개체로 작동하였고, 개별 국가들은 글로벌 가치사슬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는 등 대비책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글로벌 가치사슬의 종말? 재편!

그런데 글로벌 가치사슬에 변화가 감지된 것은 코로나19가 처음이 아니다. 1960년대 세계화 이후 급격하게 성장해오던 글로벌 가치사슬의 성장세가 둔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글로벌 가치사슬의 규모는 총수출액 중 전통적인 방식의 수출 즉, 단일 국가에서 생산 후 판매되는 수출(Traditional Trade, 이하 전통적 수출)액을 제외한 금액(GVC-related trade, 이하 글로벌 가치사슬 수출)으로 추산해 볼 수 있는데, UNCTAD의 'Eora 글로벌 가치사슬 데이터'에 따르면 1990년 이후 2008년까지 급속한 성장을 한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2006년을 기점으로 글로벌 가치사슬 수출이 전통적 수출의 규모를 능가했으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경험하며 대폭 감소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후 어느 정도 회복하는 듯했으나 이전의 성장세를 회복하지는 못했다.

이러한 변화의 배경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의 전 세계적인 경기침체, 미국과 중국 간 무역 갈등과 같은 지정학적 요소 등이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이에 더해 코로나19까지 경험하며 전 세계 경제는 글로벌한 수요의 감소와 공급단절을 경험했으며 이로 인해 경제적 세계화의 종말을 논의하기에 이르렀다.

물론 경제적 세계화의 종말과 같은 극단적인 변화가 나타날 것으로 예상하는 전문가는 극소수로 대신 글로벌 가치사슬의 재편이 중요하게 논의되고 있다. 재편의 방향은 공급망의 다양화, 리쇼어링(Reshoring), 니어쇼어링(Nearshoring), 지역 가치사슬(Regional Value Chain, RVC)구축, 국내 가치차슬(National Value Chain, NVC)구축 등으로 예측된다.

이와 같은 변화를 종합해보면 위기가 찾아왔을 때 공급망과 수요의 안정을 담보하기 위해 물리적으로 가까운 곳(near, regional), 또는 내부에(re, national) 사슬을 구축하는 움직임으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 그림. 2022년 6월 13일 기준 Eora 전 세계 전통적 수출 및 글로벌 가치사슬 수출 규모 변화(1990-2015). ⓒ월드뱅크

글로벌 가치사슬의 변화에 따른 지역산업의 영향

이와 같은 변화를 사전에 감지하여 대응책을 마련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데, 한국의 글로벌 가치사슬에 대한 민감도는 전세계에서도 매우 높은 수준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수출 주도형 산업화를 통해 눈부신 발전을 이룩한 만큼 글로벌 가치사슬의 참여도가 높으며, 이 과정에서 성장한 산업도시들은 지역의 GRDP 중 높은 비율을 글로벌 수출입에 의존하고 있다. 즉 글로벌 가치사슬로 전달되는 충격에 민감하며, 글로벌 가치사슬 자체의 변화에도 영향을 크게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지난해 한국은행의 분석에 따르면 경남지역의 GVC 참여도는 전 세계 및 한국의 평균 참여도보다 높으며, 2020년 경기연구원은 경기도의 부가가치 창출 해외의존도 역시 전 세계 및 한국의 평균 의존도 보다 높아 글로벌 가치사슬의 변화에 큰 영향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실제로 2020년 5월 25일 경상남도의 보도자료에 따르면 코로나19 이후 도내 주력산업인 자동차, 항공 산업의 수출이 각각 35.6%, 49.5% 감소하여 지역산업에 악영향을 미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처럼 오늘날의 지역산업 위기의 시발점은 외부에서 발생할 수 있으며, 같은 이유로 글로벌 가치사슬 측면에서 지역산업 정책을 검토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글로벌 가치사슬 방법론은 국가 간의 관계, 정치, 경제와 같은 거시적인 측면과 개별도시의 공급업체와 같은 미시적인 측면을 연계하는 다층위적 분석을 가능하게 한다.

즉, 지방소멸 위기 대응, 균형발전과 같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지역산업 정책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위기와 변화의 양상을 글로벌한 스케일에서 분석하고, 국가의 하위 차원인 지역 스케일에서의 현황진단 후 이를 결합하는 형태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것이 경제지리학자의 관심 분야이며 글로벌 가치사슬 분석이 지역의 산업정책 마련에 필요한 이유이다.

글로벌 가치사슬과 지역산업 정책

그러나 국내의 지역산업 정책은 글로벌 차원에서의 변화와 위기를 파악하고 그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하는 단계에서 멈춰 서는 것이 일반적이다. 윤석열 정부의 국정과제를 살펴보면 '글로벌 공급망 위기 대응', '제조업 등 주력산업의 고도화(디지털 기술의 접목으로 부가가치 향상)'와 같은 글로벌 이슈에 대응하는 산업정책을 담고 있다.

하지만 실제 지역산업 현장에서 필요한 정책은 담기지 않았다. 물론 정권 초기로 추후 많은 전문가가 지역에 맞는 정책을 고안하여 제시할 것이다.

강조하고 싶은 것은 그에 앞서 글로벌 가치사슬 관점에서의 지역산업 현황에 대한 진단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정책의 집행 형태가 정부 주도의 하향식이건 지방정부 주도의 상향식이건 상관없이 모든 지역에 새로운 글로벌 공급망이 필요한 것이 아니며, 일괄적인 디지털 혁신을 선물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특히나 지역 가치사슬, 국내 가치사슬과 같은 새로운 스케일의 산업 사슬 구축이 예상되는 시점에서 지역의 보유기능, 잠재력, 기존 글로벌 가치사슬에서의 역할 등에 대한 진단이 선행되지 않을 경우, 빠르게 재편되는 세계 경제 체제에 발맞출 수 있는 지역 산업정책을 마련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경기도, 경상남도에서 개별적으로 수행한 것과 유사한 형태로 지역산업이 글로벌 가치사슬에 얼마나 의존하고 있는지, 어떤 형태(전방 참여 또는 후방참여)로 참여하고 있는지, 부가가치 창출 비율은 어느 정도 인지 등 면밀한 분석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지역별 진단이 끝난 뒤에는 어느 지역에 어떠한 공급망이 추가되어야 하는지, 또는 사슬 내에서 새로운 공급망으로 육성할 수 있는 지역(산업)은 없는지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통해 전 세계적 차원에서는 새로운 공급망으로서 경쟁력이 약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중국이라는 거대한 시장을 곁에 둔 지리적 이점과 주변 동남아시아국가와 비교하여 우수한 기술력을 확보하고 있다는 점이 글로벌 가치사슬이 재편되는 현시점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를 통해 새롭게 구축되는 지역 가치사슬에서 허브 국가의 역할을 선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단편적이고 획일화된 산업정책에서 벗어나 보다 입체적인 관점에서의 정책 마련을 통해 '지역산업의 활성화', '지방소멸 대응', '글로벌 산업 선도국가'와 같은 달라 보이지만 얼마든지 함께 할 수 있는, 여러 마리의 토끼를 잡을 수 있길 기대해 본다.

■ 필자소개

구지영 연구원은 전남대학교 지리학과에서 '글로벌 가치사슬의 변화와 한국의 산업별 가치획득 분석:2005년~2015년'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2016년부터 국토연구원 도시연구본부 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며, 도시와 도시의 기반이 되는 산업이 주요 연구 분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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