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에 '이재명 책임론'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연이은 선거 패배 원인의 중심에 '이재명 전 대선후보'와 '이재명 전 총괄선대위원장'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책임론은 자연스레 차기 당권 불가론으로 이어지고 있어 이 의원의 차기 당 대표 출마에 제동이 걸릴지 주목된다.
최근 선거 패인 분석에 여념이 없는 민주당은 15일 하루 동안에만 초선의원 모임, 재선의원 모임, 당 싱크탱크 더좋은미래 등 세 그룹의 토론회를 동시다발적으로 개최했다. 같은날 비슷한 시각 이뤄진 각 토론회의 화두는 단연 '이재명'이었다.
더미래 토론회 발제에 나선 김기식 더미래연구소장은 후보 책임론을 대대적으로 앞세웠다. 김 소장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김대중 정권에서 노무현 정권, 이명박 정권에서 박근혜 정권으로 정권이 연장된 사례와 비교하며 "후보의 책임이 명백히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2002년 김대중 전 대통령 지지율은 24%였음에도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당선됐다"며 "2012년 대선 때는 정권교체를 원하는 여론이 57%였음에도 박근혜 전 대통령이 당선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문재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이 40%가 넘는 상태에서 대선을 패배했다는 것은 후보의 요인을 배제하고는 설명하기 어렵다"며 "정권교체론이 문재인 정부 하의 민심 이반과 구도의 문제라고만 탓할 수 없다"고 햇다.
김 소장은 "(이재명) 후보가 가진 이미지 요소, 대장동 의혹과 법인카드 논란 등이 지지율 상승을 누르는 결정적 요인이었다"며 "무엇보다 이슈를 대하는 후보의 태도가 중산층과 국민의 공감대를 만드는 데 실패했다"고 비판했다.
재선 토론회 발제를 맡은 신동근 의원은 "문재인 정부가 잘못한 것 맞다. 그런데 그것 때문에 선거에서 졌다고 하면, 대선을 치를 일이 뭐 있나. 그냥 정권 넘겨주면 되지 않느냐"면서 "그럼에도 문재인 정부의 한계를 딛고 넘어서는 비전과 경쟁력은 후보가 만들어내는 것이지, (대선후보를) 자임하고 나온 사람이 조건을 탓하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대선도 지선도 직접 후보로 뛰었고 총괄선대위원장으로 뛰었다"면서 "지선에서도 이재명 위원장이 스스로 뭐라 했나. '이 선거는 이재명 살리는 선거'라고 이야기했다. (본인 지역구에) 이재명 위원장이 안 왔으면 좋겠다는 후보도 있을 정도였다"고 했다.
그러면서 "(국민 눈에) 반성도 자성도 없는 이상한 세력으로 비칠 수밖에 없었다"면서 "송영길 후보의 출마 과정도 코미디 그 자체인데, 그리고 (송영길 후보 지역구인) 계양에 떡하니, 이재명 후보가 사는 지역도 아닌데 출마를 하는 것을 누가 납득을 하겠나"라고 비판했다.
신 의원은 특히 "당권과 대권은 다르다고 본다"며 이재명 의원의 당 대표 출마 반대 입장을 피력했다. 그는 "대권은 우리 당에서 제일 큰 칼 차고 나오는 사람이지만 당권은 혁신이 요구될 때는 혁신형 대표를 세우는 것이고 통합이 필요하면 통합형 인물이 서는 것"이라고 했다.
쓴소리, 소신파로 유명한 조응천 의원은 이어진 자유토론에서 발언을 신청해 "이재명 의원이 전당대회에 나오면 당선될 것"이라면서도 "반성과 성찰. 쇄신이 우리한테 주어진 과제인데, 직접적인 책임 있는 분들이 대표가 되면 가능하겠는가"라며 이 의원의 당 대표 출마에 대해 회의적 입장을 드러냈다.
조 의원은 그러면서 또 다른 발제자인 김병욱 의원에게 "이재명 의원이 이번 전대 때 나오지 않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는 의견에 대해 '예스 오어 노(Yes or No)'?"라고 직접적으로 물었다. 김 의원은 친이재명그룹인 7인회 소속 의원으로 잘 알려져 있다.
김 의원은 조 의원의 즉석 질문에 대해 "지방선거가 끝나고 다음 날 10여 명이 이재명 책임론을 거론했지 않나. 그때부터 정치 공세가 되고 있다고 본다"면서 "냉정하게 패인을 분석하고 그 속에서 책임도 경중이 있는 거고, 다양한 방법이 있지 않겠느냐"고 말하며 이재명 책임론에 대한 반대 입장을 에둘러 밝혔다.
초선 의원 모임인 더민초는 비공개 토론회 후 토론 결과에 대해 "연이은 패배에 책임 있는 부분과 계파 갈등을 유발하는 이런 분들은 이번 전당대회에 참여하지 않는 것이 좋지 않겠냐 의견이 있었다"고 전했다.
더민초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는 고영인 의원은 "전체 의견은 아니고 좀 더 많은 수의 의견이 모인 것"이라면서 이같은 토론 내용을 소개했다. 특정인을 지목하지는 않았으나, 연이은 선거 패배에 대한 책임론이 제기되고 있는 이 의원을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선수를 뛰어넘어 이 의원에 대한 문책론이 분출되고 있지만, 당사자인 이 의원은 침묵을 유지하고 있다. 이 의원 측 인사는 "이재명 책임론이 타당하냐"며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가 선거 패배의 큰 원인이었지 않느냐"고 항변했다.
민주당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는 이 의원의 전당대회 출마를 막기 위해 이르면 16일 연판장을 돌릴 계획으로 알려졌다. 당내 중진급 한 의원은 이날 "연판장이 오면 연명할 것"이라면서 환영 입장을 보이기도 했다.
"강성 당원 요구에 '검수완박', 지선 패배 초래"
이날 각급 토론회에서는 민주당이 팬덤 세력과 결별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재선 토론회에서 발제를 맡은 김병욱 의원은 "국민의힘을 보면 태극기(부대)로부터의 결별, 그걸 했기 때문에 우리 대체하는 집권당으로 자리매김한 거 아니냐"며 "(경기도지사 선거에서) 강용석과도 손해를 보면서도 절연하는 과감한 용기를 보였고, 중도층은 그 부분에 박수를 치고 환호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 당은 조국 사태 이후 강성 당원과 팬덤에 끌려오고, 자유스럽지 않은 목소리가 커져 중도층과 멀어지고 일부 당원에만 어필해 신뢰를 잃고 '저 당에 일을 맡기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특히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적 박탈)을 진행해나가는 과정에서도 상당 부분 강성 당원들의 요구와 그분들의 의견이 많이 반영돼 저희가 그런 결과(지선 패배)를 초래하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좀 더 크게, 조직적으로 반대했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한 점에 대해 당 일원으로서 죄송하다"고 반성의 태도를 보였다.
신 의원은 나아가 자신이 "강성 지지층의 수혜를 가장 많이 받았다"며 자성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그는 "저도 최고위원 선거에 나가면서 팬덤에 편승해서 된, 팬덤을 전략적으로 활용한 후보이기도 하다"며 "제가 20년 넘게 정치하면서 인연이 많다 보니까 끌려간 게 있다"고 회고했다.
그는 "우리가 해왔던 팬덤 행태를 다 혁신할 필요가 있다"며 "계파 갈등을 유발한 초선·재선 그룹들이 다 참여해야 성공할 수 있다. 계파 해체를 선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더미래 토론회 발제를 맡았던 김 소장은 이른바 팬덤 정치에 대해 "당내 민주주의를 확대하는 측면이 있지만, 포퓰리즘이 지배하는 정당 구조를 만들 수 있다"며 "미국에서 '티파티'가 공화당을 장악해 '트럼프당'으로 만들어가던 과정과 굉장히 유사하다"고 말했다.
고 의원 또한 "국민이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는 것은 민주당이 민심에 기초해 정치활동을 하느냐는 것"이라며 "소수 당심(黨心)이 과대 대표되는 측면이 굉장히 문제라는 부분을 자성하며 얘기했다"고 초선 모임 토론회 내용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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