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유·탐폰…여성에게 다급한 공급망 혼란은 이야기되지 않는다

여성들 몇달전부터 탐폰 부족 호소했지만…6개월 뒤 늑장대처 '분유대란'과 닮은 꼴

"나 자신에게 계속 물었어요. '내가 미쳐가는 걸까?' 왜냐면 어느 상점을 가도 (탐폰을) 구할 수 없었거든요."

지난주 미국 주간지 <타임>이 미국에서 여성 월경용품인 탐폰 부족을 최초로 보도한 뒤로 미 언론은 앞다퉈 이 현상을 다루고 있다. 부족 그 자체에 더해 이미 몇 달 간 지속된 부족 현상에도 아무도 이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는 요지다. 최근 아이가 있는 미국 가정을 공포로 몰아 넣었던 분유 부족 사태와 마찬가지로 코로나19 안정세 이후 거의 모든 분야의 공급망 붕괴가 이야기되지만 여성이 주로, 혹은 여성만 사용하는 물품에 관해서는 거의 이야기되지 않고, 대처도 뒤늦게 나온다는 것이다. 

<타임>은 "지난 6달 동안 탐폰을 구하기 어려웠는데도 탐폰 부족에 대한 이야기는 여전히 찾기 어렵다"며 여성이 텅 빈 탐폰 매대를 보고 '내가 미쳐가는 건지' 자문하게 되는 것도 소셜미디어(SNS) 등에서 경험담이 공유되는 것 외에 정부며 언론에서 이 현상을 전혀 다루지 않은 것과 관련이 있다고 봤다.

탐폰 공급 부족은 수요자인 여성들 사이에서는 최소 몇 달 전부터 회자돼 왔다. 7일 <타임> 기사에서 언급된 미국의 대표적인 육아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DCUM)에서는 이미 지난 4월부터 탐폰 부족이 언급됐다. 기사를 작성한 기자는 자신도 지난 몇 달 간 뉴욕·매사추세츠·캘리포니아 등 미국 전역의 소매점에서 탐폰을 발견하기 어려웠다고 덧붙였다. 미 CBS 방송은 소셜미디어 트위터에서 '해시태그(#) 탐폰 부족(tamponshortage)'이 유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언론의 문제 제기도 없고 정부나 당국, 제조업체에서 내 놓은 통계도 없기 때문에 탐폰이 정확히 얼마나 덜 공급되고 있는지에 대한 자료는 찾기 어렵다. 다만 CBS는 탐폰 제조업체 중 하나인 피앤지(P&G)가 "일시적 현상"이라며 공급 부족을 인정했다고 보도했다. 저소득층 및 노숙 여성에게 월경용품을 지원하는 단체인 아이서포트걸스(I Support the Girls·소녀들을 지원합니다)는 올해 들어 5월25일까지 21만3000개의 탐폰을 기부 받았는데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61%나 감소한 양이라는 것을 지적하고 "탐폰 공급 부족의 영향을 실감하고 있다"고 이 방송에 토로했다. 아이서포트걸스 설립자 다나 말로웨는 이 문제가 받아야 할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다며 "월경용품에 대한 사회적 낙인이 강한 데다 대다수의 의원들은 (남성이어서) 생리를 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전세계적 공급망 혼란 및 탐폰 제조 재료 일부가 코로나19 기간 수요가 급증한 의료제품 재료와 겹친 것이 탐폰 부족 현상의 원인을 일부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타임>은 이러한 공급망 혼란이 언급되지 않고 해결이 지연되는 배경에는 주로 남성인 기업 및 정부 의사결정자들이 분유와 탐폰과 같이 여성이 주로 사용하는 용품 공급 부족의 중요성을 낮게 보는 것이 깔려 있다고 지적했다. 매체는 미국 부모들을 공포에 빠뜨린 분유 부족 사태도 이미 지난해 11월부터 지방당국 및 비영리 단체가 경고했음에도 정부가 6개월이나 지난 5월이 돼서야 조치를 취했다고 짚었다.

네슬레·펩시 등 소비재 업체에서 27년간 근무한 경력이 있는 유기농 제품 업체 톱오가닉프로젝트의 최고경영자(CEO) 팀 설리반은 <타임>에 국가와 회사를 운영하는 사람의 성별이 탐폰 부족을 설명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탐폰 부족은 결정권자들에게 아무런 직접적 영향도 끼치지 않기 때문에 논의도 별로 안 되고 빠른 해결 수단도 강구되지 않는다며 "이건 단지 누가 요구하고, 또 누가 결정권자인지에 관한 문제"라고 말했다. <타임>은 코로나 유행 초기에 휴지·위생용품·마스크 부족 현상이 있었지만 금세 해결됐고 "이는 결정권자들이나 최소 그들의 가족이 이를 필요로 했기 때문일 수 있다"며 그러나 탐폰을 포함한 생활용품업체인 유니레버나 P&G의 최고경영자는 남성이라고 덧붙였다.

미 언론은 탐폰 부족이 "분유 부족에 이어 여성에게 닥친 또 하나의 공급망 악몽"이라고 평가했다. 지난달 저널리스트 엘리자베스 스피어스는 <뉴욕타임스>(NYT) 칼럼에서 "남성이 아이에게 젖을 물리는 세상이라면 분유 부족은 이렇게까지 심각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그 세상에서 분유를 먹이는 것은 남성들이 원하는 바이기 때문에 낙인찍히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지난 11일 저소득 여성에게 월경용품을 지원하는 단체인 아이서포트걸스가 소셜미디어(SNS) 트위터에 미국 소매점의 텅 빈 월경용품 탐폰 매대 사진을 올렸다. ⓒ아이서포트걸스 트위터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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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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