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보는 전쟁과 지정학의 세계

[경제지리학자들의 시선]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보는 현대 지정학의 충격

전쟁과 지정학의 세계

올해 해외 관련 기사의 대부분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차지하고 있다. 2월 24일에 시작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여전히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으며, 양측의 수많은 사상자, 집과 일터를 잃은 피란민을 낳았다.

무고하고 안타까운 희생에 관한 보도가 이어지고 있으며 TV, 신문과 함께 소셜미디어에서도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보도와 의견, 주장이 넘쳐나고 있다. 30여년 전 걸프전이 "전쟁의 생중계"라는 충격으로 다가왔다면, 이번 전쟁은 모바일 기기와 소셜미디어가 전투와 심리전에 이용되고, 전쟁에 대한 정보‧분석‧주장이 실시간으로 유통됐던 전쟁으로 기록될 것 같다.

이번 전쟁에 대해 많은 내용이 전통적 미디어와 소셜네트워크를 통해 알려지고 분석되고 있는데, 러시아의 지정학적 야심과 과거 크름(크림)반도 병합, 돈바스 지역의 러시아계 주민의 존재, 나토의 동진과 러시아의 반발, 우크라이나의 유럽연합 가입 시도부터 푸틴의 건강이상설, 심지어 푸틴의 정신적 스승으로 의심되는 알렉산더 두긴의 유라시아주의까지 전쟁의 원인으로 언급되고 있다.

또한 지역 전문가가 아니고서는 알지 못했던 마리우풀, 오데사, 하르키우와 같은 우크라이나의 도시들을 알게 되었고, 수도 키에프를 키이우로 표기하는 지명 표기 원칙까지 살펴보게 되었다. 곡창지대로 알려진 우크라이나의 농업 수출의 품목과 규모를 알게 되었고, 러시아 기갑부대의 진격을 방해한 라스푸티차라고 하는 기후와 연관된 지리적 현상도 널리 알려졌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지정학의 화려한 귀환

이렇듯 다양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기사를 조금 더 큰 시각 혹은 일반화하는 방식으로 이해하는 내용들은 지정학에 대한 언급을 빼놓지 않는다. 더 나아가서 이러한 기사들은 지정학의 시대가 다시 돌아왔음을 선언하고 있다. 최근 몇 년간 지정학 관련 서적이 출판계에서 두각을 나타낸 바 있고, 이러한 지정학에 대한 늘어나는 관심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폭발하는 양상이다. 지정학 관련 서적에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 대한 내용은 주로 러시아의 해양 진출과 관련된 것이 많다.

동해함대와 북해함대의 기항인 블라디보스토크와 무르만스크는 부동항이 아니며, 발틱함대의 기항인 칼리닌그라드는 본토와 분리되어 유럽연합 국가인 폴란드와 리투아니아로 둘러싸여 있다.

따라서 흑해함대의 기항인 크름반도의 세바스토폴은 러시아에게 있어서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항구인데, 소련의 붕괴 이후 우크라이나의 영토가 되었으니, 당연히 러시아가 이 지역을 얼마나 간절하게 원했는지는 잘 알려져 있다.

또한 19세기 초반 나폴레옹의 러시아 침략과 2차대전의 독일 침공은 러시아의 지정학적 취약성을 부각시켰고, 이는 서쪽에 일종의 완충지를 두고자 하는 러시아의 열망으로 이어졌다는 설명이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벨라루스를 제외한 많은 러시아 서쪽의 국가들이 EU에 가입하였고, 나토는 과거 소련과 군사동맹을 맺었던 동유럽 국가들을 대거 회원국으로 받아들였다. 우크라이나가 EU 및 나토 가입을 추진하면서 러시아의 지정학적 취약성에 대한 걱정이 전쟁으로 이어졌다는 지정학적 설명은 이제 상식에 속한다.

전쟁의 원인, 우크라이나의 지정학에서 찾을 것인가 러시아의 지정학에서 찾을 것인가?

그러나 이러한 지정학적 서술이 내포한 문제점에 대해서도 생각해봐야 한다. 이것이 지정학의 시대 우리가 고민해야 하는 첫 번째 중요한 지점이다.

부동항, 완충지대 등의 논리는 바로 우크라이나의 지정학적 위치를 지나치게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지정학적 위치에 대한 과도한 강조는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침략당한 이유를 우크라이나의 지정학적 위치에서 찾게 만든다.

그러나 지정학적 결정론은 사실의 일부분만을 지나치게 강조할 뿐이다. 20년 전 네덜란드의 지정학자 디지킨크(Gertjan Dijkink, 2002)는 러시아의 지정학을 이해하기 위해 '지정학적 반사작용'과 '환상통'이라는 개념을 사용하였고, 이는 오늘날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디지킨크에 따르면 소련연방의 해체 이후의 상실감에 빠진 러시아의 정치적 선택은 꼼꼼하게 기획된 것이라기보다는 외부의 자극에 본능적이고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경향을 보였다고 한다.

또한 '환상통'의 비유는 과거의 영광과 현재의 초라함의 대비 속에서 과거에 가지고 있던 것을 포기하지 못하는 혹은 여전히 자신의 것이라는 착각으로 점철된 러시아 지정학의 특징이라고 한다.

이런 의미에서 슬라브의 속담 "모스크바는 러시아의 심장이고,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머리이며, 키예프는 어머니이다"가 말해주듯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시각 혹은 영토회복주의는 다른 지역과는 다른 것이었다. 즉 제국으로서의 과거와의 단절을 선택하기보다는 그 영광을 곱씹는 심리상태, 그리고 그러한 심리상태를 국내 정치에 이용해온 러시아의 선택이 비극의 씨앗이 된 것이다.

러시아 서부는 천연장벽이 없어 방어에 취약하다는 주장도 이번 전쟁으로 근거 없음이 드러났다. 세바스토폴 군항은 이미 러시아가 차지하고 있으며, 크름반도와 러시아 본토 역시 이미 다리로 연결되어 있다. 즉 우크라이나 침공의 일차적인 원인은 침략받은 우크라이나의 지정학이 아닌 러시아의 지정학에서 찾아야 한다.

우리나라와 비슷한 경제규모에, 1만 3000달러가 안되는 1인당 GDP를 가진 나라가 세계 패권을 되찾을 수 있다고 허망한 구호를 외쳐온 러시아 지정학이 전쟁의 가장 큰 원인이다. 또한 수만명의 러시아의 젊은 목숨을 허망하게 사라지게 한 원인은 서쪽에서의 공격에 취약한 러시아의 지정학적 위치가 아니라 그들의 위정자의 결정이다.

▲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월 27일(현지시간) TV 연설에서 국방부 장관과 총참모장에게 핵 억지력 부대의 특별 전투임무 돌입을 지시했다. ⓒCNN 방송화면 갈무리

패권국 이외의 국가도 중요한 지정학 행위자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지정학에서 우리가 명심해야 할 두 번째 사실은 우크라이나 역시 지정학의 중요한 행위자였다는 것이다.

물론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제국의 영광과 패권을 꿈꾸고 이용해온 러시아의 정치적 선택에서 전쟁의 일차적 원인을 찾아야 하지만, 우크라이나정치권의 친러와 친유럽의 널뛰기, 유로마이단과 같은 사회운동은 이미 중요한 전쟁의 변수로 고려되고 있다.

또한 이 지점에서 우리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시각을 우리에게 돌려볼 필요가 있다. 과연 우크라이나는 미-러 패권전쟁의 피해자이기만 한 것일까? 자신들의 정치적 선택이 이러한 비극으로 이어지는 복잡한 방정식의 변수로 작동한 것은 아닐까 하는 점이다.

우리는 지정학적 사건을 분석할 때 패권국의 입장과 전략을 중심으로 분석하고 이 이외의 일들은 지정학적 결과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패권국 이외의 국가들의 지정학적 전략과 선택 역시 지정학 분석에서 매우 중요한 요인이 된다. 제1차 세계대전은 독일과 러시아가 아니라 오스트리아와 세르비아 사이에서 시작되지 않았는가 말이다.

친미와 친중을 넘어 : 우리나라의 지정학은 무엇인가?

마찬가지로 동아시아 지정학에서 우리의 결정과 행동은 중요한 변수가 된다. 우리는 미국과 중국의 동아시아 전략과 남중국해에서의 충돌 가능성을 설명하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이면서, 우리의 동아시아 전략에 대해서는 잘 이야기하지 않는다.

한미동맹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 안보는 미국과 경제는 중국과 협력해야 한다는 주장, 친미와 친중이라는 정치적 선긋기와 이름 붙이기, 한미일-북중러의 대립체제가 강해지고 있다는 하나마나한 분석을 넘어서 과연 우리는 어떠한 동아시아를 구체적으로 상상하고 행동하고 있는지 물어볼 때이다.

물론 우리가 상상한다고 다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의 상상과 행동이 주변국에 미치는 영향도 깊이 생각해봐야 한다. 러시아의 정치와 지정학도 중요하지만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미친 영향도 고려해야 하는 것처럼, 미국과 중국의 지정학이 아닌 우리의 지정학도 고민해야 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우리는 우크라이나가 아니다. 오히려 더 강하고 발전된 국가이다. 우리의 지정학이 다른 나라의 지정학에 어떠한 영향을 줄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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