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품위 있는 삶' 지침에 "상장사 이사 40%는 여성으로"…한국은 고작 5%

기업이사회 성별균형 지침 10년만에 합의…최저임금 기준도 합의

유럽연합(EU)이 10년간 표류하던 상장사 이사의 40%를 여성으로 채우도록 하는 지침에 합의했다. EU는 같은 날 '품위 있는 삶'을 보장할 수 있는 적정 최저임금 지침에도 합의했다.

EU 집행위원회는 7일(현지시각) 보도자료를 내 유럽의회와 EU 회원국 정상들의 모임인 유럽이사회가 2012년 집행위가 제안한 상장기업 이사회의 40%를 여성으로 채우도록 하는 기업이사회에서의 성별 균형 지침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해당 지침에 따라 2026년 6월30일부터 유럽에서 운영되는 상장기업은 비상임이사의 최소 40%를 통상 여성인 '과소대표되는 성별'로 채우거나 상임이사·최고경영자(CEO)·최고운영책임자(COO)를 포함한 고위직의 33%를 과소대표되는 성별로 채워야 한다. 직원 250명 미만의 기업은 이 지침을 적용받지 않는다.

지침은 이사 선임 때 동등한 자격이 있는 성별이 다른 두 명의 후보자가 있을 경우에는 과소대표되는 성별의 후보자에게 우선권을 부여해야 한다고도 제시했다. 회사는 탈락자가 요청할 경우 선임 때 사용된 자격 기준을 공개해야 하며, 만일 과소대표되는 성별의 후보가 관련해 의문을 제기할 경우 절차 위반이 없었음을 증명할 책임을 진다. EU는 회사가 지침이 제시한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을 경우 실패 사유와 시정 방안을 보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U는 해당 지침을 어긴 회사에 대한 일괄적인 처벌 조항을 제시하지는 않았다. 다만 각 회원국에 벌금 부과 혹은 이사 임명 취소 및 무효를 포함한 효과적인 처벌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했다. 각 회원국은 또 기업간 상호 압력을 증진시키기 위해 지침이 제시한 목표를 기업이 제대로 지키고 있는지에 대한 현황 정보를 공시해야 한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다양성은 단지 공정성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성장과 혁신을 촉진한다"며 "EU 집행위가 이 지침을 제안한지 10년이 지난 지금, 유리천장을 깰 적기가 도래했다. 최고위직에 오를 자격을 갖춘 여성이 매우 많이 있으며, 그들은 그 자리에 올라야 한다"고 말했다.

EU 집행위는 기업 이사회의 투명성 제고 및 성별 균형을 위한 해당 제안을 2012년 11월에 처음 제시했지만 당시 회원국이었던 영국 등 일부 회원국의 반대로 지침은 거의 10년간 표류했다.

성평등을위한유럽연구소(EIGE)가 지난 4월 발간한 보고서를 보면 2021년 10월 기준 EU 상장사의 여성이사 비율은 평균 30.6%다. 이번 지침에서 제시한 여성이사 비율 40%를 넘는 나라는 이미 40% 할당제를 실시하고 있는 프랑스(45.3%) 뿐이다. 보고서는 2011년 거의 모든 회원국에서 13% 내외로 비슷했던 여성이사 비중이 10년 뒤인 2021년 할당제 등 강력한 조치를 취한 나라들에선 36.4%까지 오른 데 비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나라들에서는 16.6%로 큰 변화가 없었다며 성별 균형을 위한 정부 조치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한국의 경우 여성가족부가 상장사 사업보고서를 분석해 내 놓은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1분기 상장사의 여성임원 비율은 5.2%에 불과하며 상장사 2246곳 중 여성임원이 1명도 없는 기업이 1431곳으로 전체 상장사의 63.7%를 차지했다. 등기임원 중 여성 비중은 4.8%에 불과하고 등기임원 중 사내이사의 여성 비중은 4.6%, 사외이사의 여성 비중은 5.2%다.

2020년 개정된 자본시장법에 따라 자산 2조원 이상의 상장사는 올해 8월5일부터 이사회의 이사 전원을 특정 성별의 이사로 구성해서는 안 되며 여성 등기임원을 적어도 1명 이상 둬야 한다. 여가부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1분기 기준 자산 2조원 이상 기업 152곳의 여성임원 비율은 5.7%에 불과했고 45%에 달하는 기업이 여전히 여성 등기임원을 1명도 두고 있지 않았다.

"새 옷도 사고 스포츠클럽도 다녀야"…'품위 있는 삶' 위한 최저임금 기준에도 합의

이날 EU 집행위는 유럽의회와 각 회원국들이 집행위가 2020년 10월 제안한 적정 최저임금 지침에도 합의했다고 밝혔다. 지침은 모든 회원국의 최저임금 도입을 의무화하거나 일률적인 최저임금을 제시하지는 않지만, 최저임금이 '품위 있는 삶'을 가능하게 하는 수준으로 책정돼야 한다는 원칙을 제시했다. 이번 합의에 따라 EU 회원국들은 최저임금 책정 때 중위소득의 60%, 평균임금의 50% 따위의 기준을 사용하거나 실제 상품 및 서비스 가격을 반영해야 한다. 또 단체교섭 대상 노동자가 80%에 못 미치는 회원국들은 대상 노동자 비율을 높이기 위한 실행방안을 만들어야 한다. 지침은 약 2년 안에 각 회원국 법에 반영될 예정이다.        

아그네스 용에리우스 유럽의회 의원은 "최저임금을 받는 이들이 새 옷도 사고 스포츠클럽에도 가입할 수 있어야 한다. 이들이 품위 있는 삶의 기준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며 "이 법으로 우리는 임금격차를 줄이고 유럽에서 가장 적은 임금을 받는 노동자들에게 더 높은 임금을 주도록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U 27개 회원국 중 법정 최저임금 제도가 있는 나라는 21곳이다. 노동조합을 통한 임금 협상이 원활히 이뤄지는 스웨덴을 포함해 핀란드, 덴마크, 오스트리아, 키프로스, 이탈리아 등 6곳의 회원국에는 최저임금제가 없다. 영국 BBC 방송은 덴마크와 스웨덴은 해당 지침을 받아들이지 않을 의사를 표명했다고 보도했다. 지침은 최저임금제도가 없는 6개국에는 적용되지 않을 예정이다. 그러나 BBC는 노동력의 30%가 시급 9유로 미만을 받는 이탈리아에서 최저임금 도입에 대한 요구가 커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EU 통계기구 유로스태트를 보면 2022년 1월 기준 최저임금의 적용을 받는 EU 21개 회원국 중 최저임금이 가장 높은 나라는 월 2257유로(약 302만원)로 책정된 룩셈부르크이고 가장 낮은 나라는 월 332유로(약 44만원)로 책정된 불가리아다. 명목상으로는 7배 가량 차이가 나지만 물가 수준을 고려하면 이 차이가 3배 가량으로 줄어든다. 이번 지침에서 최저임금 책정의 기준 중 하나로 제시한 중위소득의 60%를 넘는 최저임금을 이미 책정하고 있는 나라는 2018년 기준 프랑스, 포르투갈, 슬로베니아, 루마니아의 4곳이다.

▲7일(현지시각)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 위치한 유럽의회에서 의원들이 표결에 참여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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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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