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혜 후보의 SF급 철도 공약, 하이퍼루프인데 30분이나 걸려?

[기고] 부동산 욕망과 타오르는 GTX 역세권 공약

출퇴근길 지하철을 탈 때 "안녕하십니까!! 기호 0번 000입니다"라는 부담스러운 단체 인사를 받는다. 선거운동원들에게 "설마 그럴 리가?"라는 답을 해주고 싶기도 하지만 영혼이 담기지 않은 반복 구호에 굳이 대응할 마음은 생기지 않는다. 6월 1일 실시되는 지방선거에 나선 후보들은 정말로 시민들의 안녕을 염려하고 있을까? 시민들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아 행사하겠다는 출마자들은 왜 선거에 뛰어들었을까? 권력을 잡아서 누굴 위해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지 궁금해서 서울시장과 경기도지사 후보들의 선거 공보물을 찾아봤다. 조금 아는 분야가 교통이기 때문에 교통 관련 공약을 꼼꼼히 살펴봤다.

오랜만에 웃을 수 있었다. 경쟁 후보와 결코 화해할 수 없는 정책적 차이가 있거나 미래비전이 다른 후보는 극히 소수에 지나지 않았다. 발표된 여론 조사에 따른 당선 가능성에 근접한 후보들의 공약은 서로 당을 바꿔서 나가도 주장하는 바가 다르지 않았다. 공약 전반에 흐르는 기조는 엄청난 개발을 해서 잘살게 해주겠다는 것이었다. 모든 시민들을 부자로 만들어주겠다는 프로젝트를 범 정치권적 과제로 삼은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시민이라고 뭉뚱그려진 그룹 안에는 수십 수백억 부동산을 가진 사람도 있고 당장 생활비를 걱정해야 하는 사람도 있다.

빅뱅 이후 끝없이 확장하는 우주처럼 양극화도 시대를 뛰어넘어 질주하고 있다. 사람과 사람사이, 지역과 지역사이를 더 극단적으로 갈라놓고 있는 시대이다. 많은 후보들의 공약은 양극화에 좋은 연료를 제공하는 듯 보인다. 시대정신도, 미래에 대한 고민도, 현실 문제에 대한 대안은 보이지 않는다. 똑같은 이야기를 다른 색 옷을 입은 사람들이 거대한 확성기로 반복하고 있다.

민주당의 송영길 후보는 부동산 정체성 만큼은 국민의 힘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교통공약 중 지상철 지하화는 이미 정치권에서 합의가 끝난 내용 같다. 송영길 후보나 오세훈 후보 모두 지상철 지하화를 약속했다. 도심 철도 지하화는 부동산 개발과 맞닿아 있어 두 후보에게는 반드시 추진해야 할 과제로 자리 잡은 것처럼 보인다. 더 시급한 교통 문제들이 산적해 있고 천문학적 예산이 소요되며 그럼에도 시민들에게 공급을 확대할 수 없어 교통 여건 개선에 크게 기여할 수 없다는 점은 전혀 고려되지 않는 듯 하다.

송영길 후보의 강북과 강남의 도시철도 불균형 해소를 위한 강북지역 철도망 확대는 현실 문제에 제대로 접근했다. 하지만 해결 방식은 표 확보용 부풀리기 공약으로 나타났다. KTX(SRT) 수도권 동북부 연장추진으로 강북 지역에서 고속열차를 쉽게 이용할 수 있게 하겠다는 약속은 달콤해 보이지만 철도망의 유기적 구성과 조화라는 관점, 사회적 비용 측면에서의 타당성은 고려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이러다가 다음 선거에서는 동네마다 KTX역 설치 공약이 나오지 말란 법도 없을 것 같다.

오세훈 후보는 장애인과 교통약자 이동권 강화를 약속했다. 공약의 진정성이 있다면 지하철 역사에서 이동권 확보를 위해 시위를 하고 있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의 목소리에 먼저 귀를 귀울이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특히 산하기관인 서울교통공사가 보이는 전장연 시위에 대한 악의적 대응은 공공성을 기반으로 하는 공기업이 가져서는 안 될 모습이다.

송영길 후보는 65세 이상 어르신을 위한 버스 요금 무료화를 우선 마을버스부터 시작하겠다고 했다. 오세훈 후보는 청년 대중교통비 지원을 약속했다. 두 후보의 공약을 합치면 노인과 청년에게 교통비를 지원하게 돼서 더 많은 시민들에게 혜택이 돌아가게 된다. 단 이 과정에서 공공 교통의 재원을 확보하는 설계가 우선되지 않으면 적자 논쟁의 악순환에 빠져 사회적 갈등만 키울 것이다.

정의당 권수정 후보는 선거비용의 부족 때문인지 공보물에 많은 내용을 담지 못했다. 그럼에도 기후 위기 시대에 필요한 핵심 교통 공약을 요약해 냈다. 이미 많은 선진국에서 채택하고 있는 도심 승용차 통제 정책을 서울 4대문 안에 도입하고 준공영제인 버스를 완전히 공영화하겠다는 것도 인상적이다. 또 트램을 도입하자는 것도 발상의 전환 측면에서도 시대적 필요성에서도 적극 고민해볼 요소이다. 무엇보다 공영주차장 10% 감축은 주차공간을 확보하겠다는 송영길 후보 등 다른 후보들과 차별성을 갖고 있다. 도심 승용차 이용을 줄이는 주요 방법 중의 하나는 공용 주차공간을 줄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도심 교통 문제를 겪고 있는 나라들이 채택해 효과가 검증된 공약이다.

서울과 다르게 경기도지사 후보들은 교통 문제에 더 깊게 대응하고 있다. 그것은 경기도민 대다수가 서울로 출퇴근하는 현실을 반영한 것이리라. 후보들은 어느새 교통 문제 해결의 만능키가 되어버린 GTX를 조기 착공 또는 완공하고 연장하겠다고 약속했다. 김동연 후보는 GTX플러스 프로젝트란 이름으로 현재 제시된 GTX를 뛰어넘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더 나아가 내 집 앞 철도, 우리 동네 철도를 주창하고 있다. 김은혜 후보는 경기 어디서나 서울 도심 30분내를 약속했다. 김동연 후보의 GTX플러스와 우리 동네 철도를 합친 개념이라 할 수 있다. 김동연, 김은혜 후보의 공약에 따르면 경기도에 갑자기 철도망 대 확산의 시대가 오기라도 할 것 같다.

김은혜 후보의 공약 중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가는 것은 "GTX역세권 콤팩트시티로 과도한 집값 부담 제로화" 공약이다. GTX 공약은 교통 불편 해소라는 취지를 뛰어넘어 부동산 욕망과 결합해 경기도와 서울 각지에서 활활 타올랐다. 역세권으로 결정된 지역의 집값은 치솟았다. 역 유치를 위한 지역 간 경쟁도 불꽃이 튀었다. 이런 마당에 "역세권 집값 부담 제로화"는 "뜨거운 얼음" 같은 구현 불가능한 수사가 아닐까?

김은혜 후보 공약의 백미는 의정부-고양-인천공항을 30분대로 연결하는 하이퍼루프 공약이다. 어린이 잡지 미래의 풍경 코너나 정치 풍자 개그 프로그램에서 등장할 만한 이야기가 현실 정치에 등장했다. 처음엔 웃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참담했다. 차라리 자기부상열차를 놓겠다고 했으면 현실 가능한 이야기로 이해할 수도 있었다.

상하이 자기부상열차는 푸동 공항에서 시내 지하철 2호선 루앙루 역까지 약 30여 킬로미터를 최고시속 430킬로미터로 7분 20초 만에 주파한다. 개발자들이 생각하는 하이퍼루프는 진공 튜브를 이용해 음속(약 1200킬로미터)을 뛰어넘는 속도를 내는 교통수단이다. 비행기보다 빠르다. 이런 개념의 하이퍼루프를 의정부에서 인천공항까지 30분대에 연결하는 것은 세계 최초의 사례가 될 텐데 그보다 뒤떨어진 상해 자기부상열차보다 느린 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실제 일론 머스크가 구상하는 식의 하이퍼루프라면 의정부에서 인천공항까지 30분이 아니라 1분대로 주파해야 한다. 그렇다면 김은혜 후보의 하이퍼루프는 진짜 하이퍼루프인가. 이름만 하이퍼루프인가, 아니면 하이퍼루프도 아닌 것인가.  

공약이 아무말 대잔치는 아닐 것이다. 임기 4년의 지자체장이 100년의 과제를 실행하겠다고 나선다. 서울시장과 경기도지사 후보들이 내세운 공약이 정교하게 실현될수록 대한민국은 수도권밖에 남지 않을 것처럼 보인다. 정치가 더 이상 시민들의 삶을 책임지지 않는 것 같은 모습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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