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정상회담을 마치고 일본에 도착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일본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사실상 국제사회에서 일본의 역할 확대를 공언한 셈인데, 헌법 개정을 통한 재무장을 숙원으로 하는 일본 보수 세력의 구상이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23일 일본 공영방송 <NHK>는 바이든 대통령이 이날 열린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와 가진 정상회담에서 일본의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을 지지하는 뜻을 표명했다고 보도했다.
방송은 두 정상이 안보리 개혁에 공감했고, 바이든 대통령은 이 과정에서 일본이 상임이사국에 진출하는 것을 지지한다는 의견을 밝혔다고 전했다.
안보리 상임이사국은 중화민국(The Republic of China)·프랑스·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소련)·영국 및 미합중국 등 5개국으로 구성돼 있는데, 러시아는 이 중 소련을 계승했다는 이유로 소련 붕괴 이후에도 상임이사국에 남아 있다.
상임이사국의 가장 큰 권한은 '거부권'으로, 상임이사국 중 한 곳만 반대 의사를 표명하면 안보리 내에서는 어떠한 합의도 만들어내지 못한다. 실제 최근 북한의 대륙간 탄도 미사일(ICBM) 발사가 안보리 결의에 위반됨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와 중국의 반대로 안보리 내에서는 어떠한 추가 제재도 도출해내지 못하고 있다.
유엔 안보리가 이러한 체제를 갖추게 된 것은 세계 2차대전 종료 이후 승전국인 미국, (당시) 소련, 프랑스, 영국을 중심으로 국제질서가 재편되는 과정에서 탄생한 기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같은 상임이사국의 거부권 때문에 미국 등을 비롯한 여러 회원국들 사이에서 안보리를 개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과거부터 꾸준히 제기돼왔다. 지난 2005년에는 일본과 독일, 브라질, 인도 등이 상임이사국을 늘리는 방안을 제안하기도 했다.
그러나 안보리 개혁을 위한 절차는 상당히 까다롭기 때문에 일본을 비롯한 다른 국가들의 개혁 시도는 번번이 실패해 왔다.
안보리 상임이사국 규정을 바꾸려면 일단 유엔 헌장의 개정이 필요한데 이는 전체 회원국 3분의 2 이상의 동의가 필요하다. 이것이 통과되는 것도 어렵지만 설사 통과된다고 하더라도 각자 회원국에서 이 헌장을 비준해야 하며 상임이사국을 포함한 3분의 2 이상의 국가들에서 비준이 나와야 한다.
일본의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을 지지한다는 발언을 한 것 역시 바이든 대통령이 처음이 아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역시 지난 2010년 11월 간 나오토(菅直人) 당시 일본 총리와의 정상회담 후 기자회견에서도 같은 입장을 표한 바 있다. 이에 일부에서는 바이든 대통령이 발언이 일종의 '인사치레'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다만 이전과는 달리 최근에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를 안보리 상임이사국에서 축출시켜야 한다는 국제적 여론이 나오면서 안보리 개혁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만큼, 일본이 이를 이용해 실제 유효한 행동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미국과 러시아, 미국과 중국 간 갈등이 첨예한 상황에서 중국이나 러시아가 미국의 대표적인 동맹국인 일본의 상임이사국 진출을 승인할 가능성은 거의 없기 때문에 현실화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것이 일반적 평가다.
따라서 바이든 대통령의 이날 발언은 일본의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 그 자체를 지지하는 것보다는 향후 미-러, 미-중 간 대결에서 일본이 군사적 측면에서 보다 적극적 역할을 하기 위해 무장을 강화하는 것을 지지하는 뜻으로 해석해야 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실제 백악관은 바이든 대통령이 이날 기시다 총리와 회담에서 일본의 방위력을 증강하겠다는 기시다 총리의 결의를 지지했다고 전했다.
또 기시다 총리 역시 일본의 방위력 강화를 위해 방위비를 증액할 것이며 방위 분야에 있어 반격 능력을 포함한 모든 선택지를 올려 두겠다고 바이든 대통령에게 전했다고 밝혀, 향후 전쟁 포기 및 전력(戰力) 비보유 등을 규정한 헌법 9조 개정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가능성을 열어 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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